[야구공작소 박기태, 윤형준] 미네소타 트윈스의 2017 시즌 전망은 밝지 않았다. 지난해 실패로 프런트 오피스의 교체를 겪은 그들의 올해 목표는 플레이오프 도전이 아닌 ‘리툴링’이었다. 그러나 타선의 미겔 사노, 투수진의 어빈 산타나와 호세 베리오스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덕에 미네소타는 6월 중순까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 자리를 수성했다. 예상 밖 분전 속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팀 최고 유망주 바이런 벅스턴의 끝없는 부진이었다.
지난해 9월 타율 0.287, OPS 1.011이라는 반전을 일궈낸 벅스턴에겐 많은 기대가 걸려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벅스턴은 2015년 초까지 베이스볼 아메리카, MLB닷컴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선정되는 등, ‘5툴 선수’로 찬사를 받으며 가파른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5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지난해, 벅스턴은 타석에서 엄청난 부진을 경험했다. 바닥을 친 팀의 상황과 맞물려 벅스턴은 메이저리그에서 한달, 마이너리그에서 한달을 머무르는 식으로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9월에는 좋은 성적을 일궈냈지만, 여전히 불안한 점이 남아있었다.
벅스턴의 문제는 완성되지 않은 타격 자세였다. 고등학교 시절, 벅스턴은 타격 과정에서 다리를 들어올리는 ‘레그 킥’ 타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미네소타 구단은 벅스턴에게 레그 킥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다리를 땅에 붙인 채 타격하는 ‘노 스트라이드’ 타법을 지도했다. 벅스턴은 수정한 타격 자세로 마이너리그에서 곧잘 성적을 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상대 투수의 투구에 타이밍을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9월 벅스턴은 레그 킥 타법으로 회귀해 좋은 성적을 냈다. 올해도 초반에는 레그 킥 타법을 차용했지만 부진을 겪었고, 다시 노 스트라이드 타법으로 변환을 시도했다.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벅스턴은 올 시즌 내내 타격 자세를 교정해왔다. 7월부터 폭발한 타격 성적은 오랜 교정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벅스턴은 과연 어떻게 타격 자세를 교정했고, 어떤 효과를 봤을까. 벅스턴의 교정 과정을 프로야구 팀과 대학야구 팀 재직 경험이 있는 윤형준 트레이너와의 문답 형식으로 분석해봤다.
개막~5월, 레그 킥 타법과 포기
올 시즌 미네소타에 새롭게 부임한 제임스 로슨 타격 코치는 선수의 큰 틀에 깊게 관여하는 대신, 세부 조정을 거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는 벅스턴에게도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벅스턴은 지난 9월과 같은 레그 킥 타법을 유지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4월 성적은 크게 나빴다. 시즌 15번째 경기를 마치고 벅스턴은 타율 0.082라는 기록적인 부진을 겪는다.
<개막전, 레그 킥을 하며 타격을 하는 벅스턴>
Q: 5월 초에는 레그 킥을 유지하며 클로즈드 스탠스에서 오픈 스탠스로 미세한 조정을 가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윤형준(이하 윤): 5월 초를 보면 타격 동작의 밸런스가 심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허리가 빠지며 타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회전을 하는데 축이 무너지고 있는 게 보인다.
Q: 회전 축이 흔들리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나?
윤: 팽이를 생각하면 된다. 팽이가 처음 잘 돌아갈 때는 지면과 팽이심이 수직을 이루며 힘차게 돌아가지만, 시간이 지나 팽이가 멈추기 직전에는 팽이의 심이 지면과 수직이 아닌 비스듬히 기울어져 원을 그리며 회전을 하다 팽이는 멈추게 된다. 신체 중심이 무너지며 회전의 꼭지점이 흔들려 타격의 궤적이 커지며 일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정확한 타격이 어렵게 된다. 또한 타구에 힘을 강하게 싣는 것도 어려워진다.
실제로 벅스턴은 타격 정확성과 장타 생산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4월 타율은 0.147이었고, 안타 10개 중 장타는 2루타 2개에 불과했다(장타율 0.176). 선구안도 무너져 볼넷은 9개인 반면 삼진은 29개나 됐다.
<5월 말에는 레그 킥을 포기했지만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됐다>
벅스턴은 결국 5월 말에는 레그 킥을 버리고 마이너리그에서 갈고 닦은 노 스트라이드 타법으로 회귀한다. 그러나 적응이 말처럼 쉽진 않았다. 타격 자세는 윤 트레이너 표현대로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였다. 5월 성적은 타율 0.254, 장타율 0.380로 4월보다 조금 나아진 수준이었다.
6월~현재, 레그 킥 없는 타법에의 적응 과정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벅스턴이었지만, 최고 유망주다운 엄청난 학습력을 선보인다. 5월 말까지만 해도 밸런스가 엉망이었던 노 스트라이드 타법은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6월 중순, 노 스트라이드 타격으로 홈런을 치는 장면>
Q: 위 그림은 6월 14일(미국 시간) 시애틀의 샘 가비글리오를 상대로 홈런을 친 장면이다. 앞서 말한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타격 장면이 5월 말이었는데, 2주 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때다. 그새 자세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어떤 점이 다르게 보이나?
윤: 레그 킥을 하던 5월 초와 비교했을 때 중심이동이 많이 줄어든 게 보인다. 하지만 힙턴과 상체(흉추) 회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공을 타격하는 타이밍도 맞고 있고 매우 안정적인 타격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Q: 레그 킥을 할 때는 회전축이 흔들려서 문제가 된다고 했었다. 그 부분은 여기선 어떤가?
윤: 회전축의 고정이 아주 잘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전보다는 더 나아져 보인다. 덕분에 타구에 힘을 싣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홈런을 친 경기의 기세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을 잡은 벅스턴은 미세한 조정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7월부터 기세를 타기 시작한다.
<7월, 한결 정제된 노 스트라이드 타격. 결과는 홈런>
Q: 이후에도 계속 레그 킥을 하지 않는데 어떤 점이 미세하게 바뀐 것 같나.
윤: 7월, 8월 타격 장면을 보면 힙턴이 아주 많이 개선된 것이 눈에 띈다. 또 준비 자세에서 손의 위치가 내려가고, 움직임도 줄어든 게 보인다.
Q: 손의 변화는 어떤 점으로 작용한다고 보면 될까.
윤: 테이크 백(손을 뒤로 당기며 힘을 모으는 동작)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테이크 백이 길어질수록 위에 언급한 팽이의 축이 기울어지고 궤도가 변할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한다. 이건 위에서 언급한 팽이의 개념에서 나온 중심 축, 회전 축과 연관이 있다. 테이크 백이 길수록 상체의 중심 축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진다. 반대로 짧을수록 신체 중심이 좀더 고정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타격 정확성이 줄어드는 걸 방지할 수 있다. 회전 축이 흔들리는 것을 잡아주니 원하는 히팅 포인트와 타구 각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스윙이 퍼져서 나오지 않고 간결해지니, 삼진이 줄어드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벅스턴은 7월부터 타격의 거의 모든 면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 7월 15일을 기점으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게 아쉬울 정도다. 복귀 후, 8월 한달 동안(22일까지) 벅스턴이 기록한 성적은 0.316/0.349/0.566의 타율/출루율/장타율. 윤 트레이너의 말대로 6월까지 31.8%에 달했던 삼진 비율도 8월에는 24.4%로 많이 줄어들었다.
벅스턴 스토리, 본편은 지금부터
벅스턴이 8월 한 달 동안 기록한 0.915의 OPS는 60타석 이상 타자 중 45위에 해당한다. 최고 유망주의 성적치고는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A+급 수비력과 주루 실력을 갖춘 벅스턴에겐 충분한 성적이다. 같은 기간 적립한 1.1의 WAR(팬그래프 기준)은 메이저리그 전체 14위에 해당한다. A급 타격 실력과 A급 파워가 추가된다면 ‘보너스’로 봐도 될 정도다. 8월 18일 기록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은 벅스턴의 툴이 완전히 폭발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8월 18일, 커리어 2번째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치는 장면>
누구보다 많은 실패를 겪은 것 같지만, 벅스턴은 아직 만 24세 생일이 지나지 않은 어린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 그가 보낸 시간은 이제 겨우 2년이 조금 넘는다. 그만큼 걸린 기대가 큰 선수고, 성장 가능성도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고무적인 활약이긴 하지만, 겨우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보여준 모습이 미래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이미 벅스턴은 지난해 9월 이후 극심한 추락을 겪은 바 있다. 관건은 이제 겨우 적응하기 시작한 새로운 타격 자세를 온전히 제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 Reference
(분석: 야구공작소 윤형준)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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