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혁명의 시대에 반기를 든 조병현, 최고의 마무리에 등극하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동헌 >

SSG 랜더스에 또 한 명의 압도적인 마무리 투수가 등장했다. 2024시즌에 풀타임 첫 시즌을 보내고 2025년에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마무리 투수로 등극한 조병현이 그 주인공이다. 2024년 후반기부터 팀의 마무리 투수로 낙점받은 그는, 이듬해 2025년에는 명실상부 KBO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섰다. (10개 구단 마무리 투수 중 ERA/WHIP/WAR 1위, 리드 수성률 2위)

 

압도적인 위력의 포심 패스트볼

2025년 조병현을 견인한 구종은 단연 포심 패스트볼이다. 그의 패스트볼 구종 가치는 불펜 투수 중 2위(1위 김택연)를 기록했으며, 100구당 구종 가치는 모든 투수를 통틀어 1위를 기록했다.

조병현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7.5km/h(스탯티즈 기준)이다. 최고 구속이 약 160km/h에 달하는 강속구 투수들이 등장하는, 이른바 구속 혁명의 시대를 맞이한 KBO리그에서 압도적인 구속은 아니다. (KBO리그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 146.2km/h)

조병현은 어떻게 빼어나지 않은 구속을 가지면서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조병현의 피칭 메카닉에서 찾을 수 있다.

 

본론

< 조병현이 투구하는 것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

현대 야구는 강한 공을 던지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법이 확립되었다. 그 결과 리그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신체 조건에서 최대한의 구속을 이끌어내 타자를 압도하고자 했다. 이른바 ‘구속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조병현은 다른 투수들과 달리, 자신의 신체 조건에서 최대한의 구속을 얻는 것을 포기했다. 빠른 스피드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대신, 90도에 가까운 매우 극단적인 암슬롯(팔 각도)를 형성하여 자신의 투구 패턴을 확립했다.

 

분석 포인트 1. 요추(허리)의 이른 신전

< 요추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회전. 그림에 나타난 각도는 일반적으로 회전이 일어나는 한계치, 즉 가동범위(아래에서 다시 서술)를 의미한다. >

요추(허리)에서는 허리를 뒤쪽으로 젖히는 신전(폄, Extension), 앞으로 굽히는  굴곡(굽힘, Flexion), 옆으로 굽히는 측굴(가쪽 굽힘, Lateral bending)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투수가 하체의 전진을 상체의 회전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선 착지할 때 요추에 굽힘이나 폄이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약간의 폄이 일어나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 조병현이 착지한 순간의 모습. 상당한 범위의 요추 신전이 일어나 있다. >

반면 조병현과 같은 극단적인 오버핸드 투수들은 90도에 가까운 팔 궤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허리를 더 일찍 뒤로 젖혀야 한다. 즉 요추의 신전을 더 일찍 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투수들은 높은 구속을 내기 불리하다.

< 수많은 오버핸드 투수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팀 린스컴의 투구 모습. 착지 시 허리에 큰 범위의 신전이 일어나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신전이 이르게 나타날수록 자신의 가동 범위1 이상의 신전이 일어나기 쉽다. 이는 만성적인 허리 부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허리를 일찍 뒤로 젖히면 (즉 요추에 신전을 일찍 일으키면) 이후 투구 과정에서 허리를 다시 앞으로 굽히는 타이밍이 늦어진다. 즉 요추에 굴곡을 일으키는 타이밍이 늦어진다.

이로 인해 하체의 전진이 상체의 회전으로 전달되는 타이밍이 늦어지기 쉽다. 이러한 현상은 높은 구속과 일정한 릴리즈 포인트 형성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다.

 

분석 포인트 2. 팔을 잔뜩 추켜 올려 생성한 극단적인 하이 암슬롯

< 조병현이 투구하는 것을 뒤에서 바라본 모습 >

조병현과 여타 하이 암슬롯 투수 간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조병현은 다른 투수들과 달리 팔꿈치가 자신의 양 어깨를 이은 선보다 훨씬 더 위에 있을 정도로 팔을 잔뜩 들어 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병현은 여타 하이 암슬롯을 지닌 선수들보다도 훨씬 더 높은 팔 각도를 형성한다.

팔을 높이 든 채 오래 있으면 어깨와 어깨 주변으로부터 통증을 느낀다. 팔을 높이 들수록 어깨 근육과 등 상부에 있는 근육(특히 승모근)에 작용하는 부하가 커지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팔을 추켜 올려서 높은 팔 각도를 형성하면 높은 구속을 내는 데에 불리하고 어깨 근육에 많은 부하가 가해진다.

< 각기 다른 팔 각도를 가진 투수들의 투구 모습. 양 어깨를 이은 선 상에 팔꿈치가 위치하며 팔이 앞으로 가속하고 있다. >

특히 팔꿈치가 양쪽 어깨를 이은 선보다 높으면 어깨 부상의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 뿐만 아니라 몸통이 돌아가는 방향과 팔이 회전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몸통 회전 운동이 팔의 회전 운동으로 전달되는 효율이 감소해서 높은 구속을 내는 데에도 불리하다.

따라서 투수는 팔의 회전이 몸통 회전과 방향이 일치하도록 허리를 옆으로 기울인다. 어깨 부상의 위험을 줄이고 높은 구속을 쉽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쿠치 유세이의 팔 가속 구간에서의 모습 >

팔의 회전 궤도를 수정하여 구속 향상에 성공한 투수로 기쿠치 유세이(현 LA 에인절스)를 뽑을 수 있다. 왼쪽(2019시즌)과 비교하면 오른쪽(2025시즌)에서는 팔꿈치가 어깨를 이은 선에 위치한 채 회전하고 있다. 2019시즌, 2025시즌에서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각각 148.9km/h, 152.6km/h이다.

 

분석 포인트 3. 구속을 희생하며 얻은 수평에 가까운 포심 패스트볼 회전축

조병현은 어째서 다른 투수들과 달리 구속 향상에 불리한 투구폼으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일까? 그의 극단적인 오버핸드 투구폼이 포심 패스트볼에 독보적인 백스핀2을 만들기 때문이다.

< 백스핀, 사이드스핀, 탑스핀이 걸린 채 정면으로 날아가는 공을 바라본 모습 >

순수한 백스핀이 걸린 공에서는 회전 방향이 이동 방향과 반대이고, 순수한 탑스핀이 걸린 공에서는 공의 이동 방향과 동일하다. 순수한 사이드 스핀이 걸린 공에서는 이동 방향과 수직이다.

포심의 궤적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공에 걸린 백스핀의 방향, 즉 회전축이다. 투수가 던진 포심이 포수에게 날아가는 동안 공기가 공에 가하는 힘인 양력의 방향이 백스핀의 회전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 쓰리쿼터 투수의 포심에 걸리는 백스핀의 회전축(초록색 직선)과 양력이 공에 힘을 가하는 방향(하얀색 화살표). 회전축이 지면에 대해 기울어져서 양력이 공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린다. >

백스핀의 회전축이 지면에 나란할수록, 양력이 공에 가하는 방향이 지면과 수직인 방향에 가까워진다. 공기가 포심에 가하는 양력의 방향이 지면과 수직인 방향에 가까울수록 (즉 포심의 회전축이 지면에 나란할수록), 포심의 Induced vertical break(약명 IVB)*가 증가한다. 즉 타자가 보기에 솟구치는 듯한 궤도가 형성된다.

* Induced vertical break: 투수가 던진 공이 회전에 의해 수직인 방향으로 솟아오르거나 떨어진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양(+)의 값을 가지면 양력이 작용하여 공이 회전에 의해 떠오른 것을 나타내고, 음(-)의 값을 가지면 공이 회전에 의해 가라앉은 것을 나타냄.

< 조병현이 포심을 손에서 뿌리는 순간의 모습. 90도에 가까운 암슬롯으로 공을 위에서 아래로 채는 모습이다. >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조병현은 90도에 가까운 팔 각도를 활용하여 자신의 포심에 지면과 거의 완벽하게 나란한 회전축의 백스핀을 가한다. 이로 인해 조병현의 포심은 IVB에서 60.1cm의 수치를 나타냈다. 이는 리그에서 압도적인 1위인 수치로, 2위인 kt 위즈 박영현과도 3cm가량의 차이를 보인다. (트랙맨 기준)

이러한 포심을 구사하는 투수는 타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위 ‘덜 떨어지는’ 궤적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공이 솟구친다는 느낌을 줘서 공이 타자가 휘두르는 배트의 윗부분에 맞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공이 배트의 윗부분에 맞으면 뜬공이 나오는 빈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수비 실책에 의한 변수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많은 헛스윙을 유도하여 높은 탈삼진율을 기록하는 데에 기여하고, 인플레이 타구가 나오는 빈도를 감소시킨다. 조병현의 포심 패스트볼 역시 높은 IVB를 무기로 조병현의 높은 탈삼진율에 기여했다. (2025시즌 9이닝당 탈삼진 개수 10.56개)

 

결론

야구를 보며 ‘야구는 속도가 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흔히 정교한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를 현혹해 느린 구속을 만회하는 투수를 볼 때 사용되는 말이다.

구속만을 좇는 대신 극단적인 팔 각도와 공의 움직임으로 타자를 요리하는 조병현도 이 말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구속 혁명, 강속구 혁명의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KBO를 정복하고 있는 조병현. 그의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해 보자.

 

참고 = 스탯티즈, Tread atheletics, RPP baseball

야구공작소 조승택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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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동 범위: 관절이 특정 축을 중심으로 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각도 또는 운동 범위
  2. 백스핀: 구기 종목에서 공의 운동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해지는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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