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
투구에 있어서 무브먼트의 중요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기사 등에서도 ‘이 선수의 포심은 수직 무브먼트가 높아서 포심 구위가 좋다’와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은 한 가지 중대한 분석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바로 좋은 무브먼트의 기준은 모든 투수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팔 각도 없이는 무브먼트도 없다
높은 수직 무브먼트의 포심이 위력적인 이유는 타자의 ‘예상’보다 더 높은 궤적을 그리며 홈 플레이트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투수들은 이를 통해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강한 타구를 억제한다. 싱커에는 그 역으로 더 낮은 수직 무브먼트가 유리한 경향이 있다.
높은 팔 각도의 투수는 패스트볼을 던질 때 지면과 최대한 평행한 회전축을 설정하기 용이하다. 따라서 팔 각도가 높을수록 높은 수직 무브먼트의 포심을 던지기 유리해진다.
그렇다면 ‘높은 팔 각도 = 높은 수직 무브먼트 = 좋은 포심 구위’라는 법칙이 성립할까?
< 2022 ~ 2024시즌 포심의 IVB와 헛스윙률 간의 관계 >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포심의 수직 무브먼트와 헛스윙률 사이에서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 기준을 wOBA나 xwOBA로 변경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브먼트에 대한 타자의 ‘예상’이 투수의 팔 각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타자는 수없이 축적된 경험에 기반해 무의식적으로 상대 투수의 팔 각도에 따라 다른 무브먼트를 기대한다.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저스틴 벌렌더 같은 오버핸드 투수에게서 큰 테일링을 가진 뱀직구를 기대하는 타자는 없다. 반대로 크리스 세일 같은 사이드암 투수에게서 좌우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수직 편향적인 포심을 기대하는 타자도 없다.
< 팔 각도에 따라 예상되는 포심과 싱커의 무브먼트 영역 >
팔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예상되는 무브먼트뿐만이 아니다. 포심과 싱커의 상대적인 구사 비율 또한 달라진다. 팔 각도가 낮은 투수들일수록 싱커를 더 많이 구사하는 경향을 보인다. 낮은 팔 각도에서 포심을 구사하는 투수들과 높은 팔 각도에서 싱커를 구사하는 투수들은 이 점에서 추가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다.
< 팔 각도별 포심과 싱커의 상대적 구사 비율 >
패스트볼 무브먼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투수의 릴리즈 특성에 대한 정보가 없는 무브먼트 수치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릴리즈 특성 중 대표적으로 팔 각도의 중요성은 포심의 헛스윙률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 수직 무브먼트와 팔 각도의 조합별 포심 헛스윙률 >
동일한 수직 무브먼트의 포심도 더 낮은 팔 각도에서 뿌려질수록 더 많은 헛스윙을 이끌어낸다. 또한 수직 무브먼트가 20인치에 달하는 포심이더라도 60도의 팔 각도에서 뿌려진다면 20도의 팔 각도에서 뿌려지는 수직 무브먼트 13인치의 포심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위 표는 VAA(수직 입사 각도)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낮은 팔 각도에서 낮은 수직 무브먼트의 포심으로도 많은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것은 단순히 평평한 VAA의 영향이 아니냐는 것이다. 팔 각도가 낮을수록 평평한 VAA를 생성하기 유리하다. 따라서 VAA 생성에 있어서 동등한 조건을 설정한 비교도 필요하다.
< 릴리즈 높이와 팔 각도 별 포심 헛스윙률 (IVB 15~17인치, 하이존*으로 통일) >
* 하이존에 해당하는 구역
하지만 릴리즈 높이, 로케이션 높이, 그리고 수직 무브먼트를 통일한 통계에서도 동일한 추세가 나타난다. 같은 수직 무브먼트의 포심이라면 릴리즈 높이가 같아도 팔 각도가 낮을수록 더 많은 헛스윙을 유도한다. (팔 각도가 낮을수록 무조건 유리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팔 각도가 낮으면 높은 팔 각도와 같은 수직 무브먼트를 생성하기 힘들다.) 즉 포심의 구위에 대해 VAA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팔 각도 대비 수직 무브먼트 또한 유효한 변수로 작용한다.
다른 시간은 다른 무브먼트를 낳는다
무브먼트를 해석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투구의 체공 시간이 측정되는 무브먼트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구속이 느릴수록, 익스텐션이 짧을수록 투구의 체공 시간이 길어진다. 긴 체공 시간을 갖는 투구는 무브먼트가 변화할 시간도 더 길다. 따라서 체공 시간이 길수록 큰 무브먼트를 생성하기 더 쉬워진다.
문제는 긴 체공 시간에서 무브먼트가 변화할 시간이 긴 만큼 타자가 투구에 반응할 시간도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고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투구의 체공 시간을 고려한 무브먼트 수치가 필요하다.
< 메이슨 밀러와 벤 라이블리의 포심 스펙 >
2025시즌 메이슨 밀러의 포심과 벤 라이블리의 포심은 거의 동일한 무브먼트로 측정되었다. 그러나 둘의 포심은 11마일의 구속 차이 때문에 체공 시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공식을 사용해 체공 시간을 리그 포심 평균인 0.4초로 조정한 둘의 포심 무브먼트는 다음과 같다.
< 메이슨 밀러와 벤 라이블리의 체공 시간 조정 포심 스펙 >
그래서 얼마나 중요한데?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와 체공 시간이 무브먼트에 미치는 영향은 패스트볼 무브먼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맥락이다. 팬그래프에서 제공하는 Stuff+는 두 가지 요소를 반영한 업데이트 이후 이전보다 더욱 정확해졌다. 이전에는 예측력 측면에서 xFIP, SIERA 등의 지표보다 뒤쳐졌지만 업데이트 이후에는 그들과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 2023년 스탯과 2024년 ERA의 상관계수 >
실제 사례로 두 요소의 반영을 통해 동일한 무브먼트의 평가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체감해 보자. 잭 휠러의 포심은 리그 평균 포심 무브먼트와 비교했을 때는 전혀 특출나지 않다. 평균보다 0.8인치 더 떨어지고 겨우 1.6인치 더 휘는 포심은 무브먼트에서 메리트를 찾을 수 없다.
< 리그 평균 대비 휠러 포심 무브먼트 >
그러나 휠러는 24.5도라는 매우 낮은 팔 각도에서 포심을 뿌린다. 또한 평균 이상의 구속과 매우 긴 익스텐션 덕분에 체공 시간이 짧은 편이다. 두 가지 요소를 보정한 휠러의 포심 무브먼트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영역에 위치한다.
< 팔 각도 대비 휠러 포심 무브먼트 (체공 시간 보정) >
어떤 무브먼트가 어떻게 좋을까?
그렇다면 예상에서 벗어나는 무브먼트는 패스트볼의 퍼포먼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당연히 예상에서 벗어난 거리가 같다는 것만으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수직으로 양의 방향인지 음의 방향인지, 수평으로 양의 방향인지 음의 방향인지에 따라 다르다.
아래의 분석은 포심 패스트볼에 대해서만 한정돼 있다. 사각형 중앙의 (0, 0)은 팔 각도에서 예상되는 무브먼트를 의미한다. 그리고 수직으로는 수직 무브먼트가 그보다 많고 적음을, 수평으로는 수평 무브먼트가 그보다 많고 적음을 나타낸다.
< 포심의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가 헛스윙률에 미치는 영향 >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상보다 많은 수직 무브먼트는 헛스윙 유도와 매우 높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와 반대로 수평 무브먼트는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경우에 한해서만 미약한 영향을 행사한다. 중요한 사항은 수평 무브먼트는 예상보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예상에서 얼마나 크게 벗어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포심에서 수직 무브먼트가 수평 무브먼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타자의 스윙이 수직보다 수평으로 훨씬 큰 오차 범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스윗 스팟에서 수평으로 몇 인치 벗어난 공은 여전히 타자의 배트에 걸리지만, 수직으로 몇 인치 벗어난 공은 헛스윙으로 직결된다.
그렇다면 예상보다 낮은 수직 무브먼트는 왜 예상보다 높은 수직 무브먼트보다 불리한 걸까? 포심은 애초부터 타자에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구종이다. 때문에 예상보다 높은 수직 무브먼트는 작은 차이로도 유의미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상보다 낮은 수직 무브먼트로 이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예상에서 매우 크게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영역까지 진입한 포심은 포심이라기보다는 싱커나 커터에 가깝게 작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포심의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가 발사 각도에 미치는 영향 >
직관적으로 예상보다 많은 수직 무브먼트가 더 높은 발사 각도를 초래한다. 더 높은 발사 각도는 더 많은 장타 허용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높은 발사 각도가 무조건 해로운 것은 아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수직 무브먼트의 포심은 그 역보다 팝업 타구를 유도하는 데 더 적합하기도 하다.
< 포심의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가 하드힛%에 미치는 영향 >
인플레이 타구의 구성에는 발사 각도 이외의 요소도 있다. 타구가 얼마나 강하게 맞느냐도 중요하다. 위 이미지에서는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포심이 예상보다 많은 수직 무브먼트를 보유할수록 하드힛 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상보다 많은 수평 무브먼트의 포심이 예상보다 적은 수평 무브먼트의 포심보다 더 많은 하드힛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경향을 나타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보통 예상보다 많은 수평 무브먼트의 포심은 ‘Run’ 무브먼트의 포심으로, 그리고 예상보다 적은 수평 무브먼트의 포심은 ‘Cut’ 무브먼트의 포심으로 통칭한다. 타자의 스윙 궤적상 ‘Run’ 무브먼트의 포심은 같은 손 타자에게 더 강한 성향을 띠고, 그 반대로 ‘Cut’ 무브먼트의 포심은 상대적으로 반대 손 타자에게 더 강한 성향을 띤다.
< 반대 손 타자 상대로 투구된 포심 비율 >
두 번째 경향이 나타난 이유는 포심이 같은 손 타자보다 반대 손 타자에게 더 많이 투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심 수평 무브먼트의 우열에 중요한 것은 많고 적음의 여부가 아니다. 타자의 예상에서 얼마나 크게 벗어나는지가 중요하다. 포심은 반대 손 타자에게 던져지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Cut 무브먼트 포심의 범용성이 상대적으로 더 넓다’ 정도의 해석은 가능하겠다.
< 포심의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가 xwOBAcon*에 미치는 영향 >
* xwOBAcon: 컨택 된 타구의 xwOBA
발사 각도와 타구 속도를 종합한 xwOBAcon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예상보다 매우 낮은 수직 무브먼트와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수평 무브먼트가 조합된 영역에서 그 근처보다 긍정적인 값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설명한 ‘포심이 싱커나 커터에 가깝게 작동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위와 같은 경향들이 모든 릴리즈 특성에서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팔 각도를 포괄하는 분석이기에 세부적인 팔 각도 구간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작동한다. 또한 극단적인 릴리즈 특성에서는 무브먼트의 중요성이 희석될 수 있다. 타자들에게 낯선 릴리즈 특성은 그 자체로 타자들의 ‘예상’ 형성에 혼란을 준다.
마치며
투수의 릴리즈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패스트볼 무브먼트에 대한 논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릴리즈 높이와 팔 각도 모두 유효한 릴리즈 특성이다. 하지만 VAA의 대두로 인해 릴리즈 높이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설파된 반면 팔 각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미비하다.
‘이 선수의 포심은 수직 무브먼트가 높아서 구위가 좋다’가 아니라, ‘이 선수의 포심은 본인의 팔 각도 대비 수직 무브먼트가 높다. 그래서 포심 구위가 좋다’와 같은 분석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회전축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무브먼트 분포 범위가 넓은 변화구에도 동일한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적어도 패스트볼에 대해서는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의 중요성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팔 각도 데이터가 공개된 MLB의 경우에는 팔 각도 대비 무브먼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들이 몇 가지 있다.
Pitch Leaderboard: Shape 페이지에서 순위표를 확인할 수 있다. ‘Vert DZ Delta’는 예상을 벗어난 수직 무브먼트를, ‘Horiz DZ Delta’는 예상을 벗어난 수평 무브먼트를 나타낸다.
Dynamic Dead Zone: 선수 개인에 대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신장 대비 익스텐션 또한 릴리즈 특성으로 고려한다. 2024년까지의 데이터밖에 제공되지 않는다.
Pitch Analysis Heatmap: 선수 개인에 대한 데이터는 2024시즌밖에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팔 각도를 설정한 후 무브먼트 스펙을 입력해 원하는 대로 비교할 수 있다. 체공 시간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는다.
참조 = Baseball Savant, @choice_fielder, @matan_writes, @DMstats30, @DolphHauldhagen
야구공작소 정승환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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