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이재성 >
야구에서 바람은 경기에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다. 특히 타자가 친 공이 외야로 날아갈 때 바람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경기장 안에 설치된 깃발이 펄럭이는 방향을 통해 야구장 내 바람의 방향을 유추하거나 당일 기상 예보를 통해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곤 했다. 이러한 방법은 야구장 최상층 바람의 방향만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야구장 외부와 내부가 바람이 흐르는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러한 방법에서 탈피하여 유체역학(액체와 기체의 움직임 패턴을 다루는 학문)과 모델링 기법을 도입하여 경기장 내부의 바람을 정밀 분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그 분석 결과를 토대로 타구의 궤도와 도착 지점을 예측하고, 파크 팩터 등의 통계에 접목하여 선수의 기량을 더 정밀하게 평가하는 데 반영하려는 등의 시도도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전산유체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 이하 CFD)이 있다.

< 오라클 파크에 설치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깃발을 펄럭이게 하는 바람은 야구장 밖에서 부는 바람이다. >
전산유체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이란?
CFD는 컴퓨터를 활용하여 유체(액체 및 기체)의 흐름을 논하는 유체역학의 한 분야이다. CFD는 컴퓨터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통해 유체역학에서 통용되는 방정식을 해결하여 유체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이에 따라 기존에 방정식을 해결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방정식을 부분적으로 해결하여 유체의 움직임에 대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다. 또한 실험을 통해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유체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결괏값을 도출할 수 있다.
CFD를 이용한 분석 과정
(1) 컴퓨터를 통해 해결할 방정식의 결정
유체역학에는 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다양한 방정식이 존재한다. 유체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방정식이 다르다. 이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해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있는 상황에 어떤 방정식을 적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2) 유체가 흐르는 영역의 인식
어떤 방정식을 적용할지 정한 이후, 유체가 흐르는 3차원의 연속적인 공간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경기장을 포함한 유체 주변의 온도, 기압 등 주변 환경이 컴퓨터 상에 그대로 복제된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 상에서 구현된 경기장을 특별히 ‘VIRTUAL STADIUM’, ‘STADIUM DIGITAL TWIN’이라고도 부른다.
< 유체가 흐르는 공간을 컴퓨터로 인식한 모습 >
(3) 영역을 격자로 분할
앞선 과정에서 구현된 3차원 공간을 격자로 잘게 쪼개는 과정이다. 유체의 흐름은 연속적이지만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도록 바둑판처럼 불연속적인 수많은 영역으로 공간을 나눈다.
복잡한 현상이 일어날수록 더 작은 영역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더 미세하게 공간을 분할할수록 이후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컴퓨터의 연산량이 많아져 분석하는데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이 증가한다. 현실적인 요건과 문제 상황 등을 절충하여 적절한 크기의 격자를 설정하는 것이 정확한 예측을 위해 필수적이다.
< 컴퓨터로 구현한 영역을 격자로 분할한 모습 >
(4) 각 영역마다 배정된 방정식의 해결 및 결론 도출
(3)에서 분할된 격자마다 방정식을 배정하여 각 영역에서 방정식의 해를 도출한다. 서로 다른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는 영역에 제각기 다른 프로세서가 배정되어 각기 다른 방정식이 적용된다. 예측의 정확도를 향상하기 위해 다른 방정식이 적용되는 영역을 계산할 때 다른 컴퓨터를 활용하기도 한다.
< 영역마다 다른 프로세서가 배정되어 다른 방정식이 해결되고 있다. >
CFD를 이용한 분석과 기존의 분석법 간의 차별점
전산유체역학을 활용한 분석은 기존의 방법에서 간과했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경기장 내부의 바람을 예측, 분석할 수 있다.
(1) 바람 그림자 영역
야구장 밖에서 부는 바람은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대형 구조물들과 충돌한다. 그 결과 야구장 안에는 바람이 통과하지 못하는 영역, 즉 바람 그림자 영역(Wind Shadow)이 형성된다. 이 영역 안에서는 바람의 세기, 온도, 압력 분포 등 다양한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수많은 와류1가 형성된다.
바람 그림자의 높이와 범위가 최소 15m 이상 된다는 점에서, 야구장 내부의 바람을 논할 때 이 영역에서 공기 흐름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이를 고려할 수 없다. 반면 CFD를 이용한 모델링에서는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야구장을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하여 바람 그림자 영역에서 와류를 예측하여 바람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 야구장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구조물에 충돌하여, B, C에 바람 그림자 영역이 형성되는 것을 나타낸 모식도 >
(2) 수직 방향으로 부는 바람
공기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물체의 움직임에는 수직 방향의 바람도 큰 영향을 준다. 과거에는 수평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공에 영향을 주는 정도를 산출하는 데에 그쳤다. 야구공의 궤적이 바람에 의해 얼마나 변하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존재했다. CFD를 활용한 이후에는 경기장 내부에서 바람이 위/아래 방향으로 부는 세기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현재는 바람이 타구의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양상에 대해 훨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 CFD를 활용해 오라클파크 내부의 바람을 시각화한 것. 상/하층부 바람의 방향이 반대이고, 수직 방향으로도 바람이 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3) 바람을 배제한 타구 궤도 예측, 구장별 편차 보정
CFD를 활용한 파급효과는 바람의 예측에 그치지 않는다. 바람이 타구를 변화시키는 정도를 산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타자가 친 타구가 다른 상황(바람이 불지 않는 상황, 실내에서 경기를 치르는 상황)에서 어떤 궤적을 그렸을지를 역으로 도출해 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바람의 영향을 제외한 상태에서 선수가 친 타구의 결과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구장별로 바람이 타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패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장 간 편차를 보정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서로 다른 구장을 사용하는 선수 간 성적을 정확하게 비교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 2021년 4월 20일에 맷 올슨이 친 타구를 CFD로 분석한 것. 바람의 영향이 없었을 때(Calm Condition)와 비교했을 때 타구가 12피트 더 날아가고, 11피트만큼 파울폴 안쪽으로 들어왔음을 나타내고 있다. >
결론
< 구형의 공 주변에서 기체와 공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CFD로 시뮬레이션하는 모습 >
바람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야구 경기를 지배한다. CFD는 야구에서 바람이라는 요소가 미치는 영향을 가시화한 기술적 진보다. MLB에서 CFD를 도입한 이후 타구 궤도의 정밀한 예측, 선수의 정확한 기량 평가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CFD에 힘입어 야구에서 분석 가능한 영역이 넓어지고 그 깊이 또한 더해가고 있다. CFD는 향후에도 야구라는 스포츠를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CFD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이제라도 관심있게 지켜봐도 좋을 것이다.
참조 = MLB Technology Blog, www.ansys.com, forbes.com
야구공작소 조승택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익명,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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