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울리고 웃긴 한국 야구게임의 25년史

 

[야구공작소 양정웅] 야구팬 중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정식 라이선스를 받은, 혹은 받지 않았더라도 한국어로 되어있는 야구게임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KBO 리그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관련된 야구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야구게임들은 하루아침에 뚝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20여년간 시행착오를 겪고 문제점을 보완해가면서 어렵게 만들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야구 게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Prologue – 아날로그 게임과 오락실 게임

한국에서 오락실이 주류가 되기 전까지 ‘야구게임’이라는 것은 주로 종이판과 연필, 지우개를 이용한 것이 보통이었다. 스프링을 이용한 기계식 게임기는 조금 사는 집 어린이들의 전유물이었다. KBO 정식 라이선스는 꿈도 꿀 수 없었고 플레이어들끼리 “1번타자 숏스탑 김재박”하면 그냥 ‘김재박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때였다.

‘스타디움 히어로’(1988)는 국내에서 최초로 인기를 얻은 전자 야구게임이었다. / 사진 = 게임 화면 캡처

오락실 문화가 만들어진 뒤에는 일본의 ‘스타디움 히어로’(당시 한국 명칭은 ‘신야구’로 2000년대의 ‘신야구’와는 다르다) 같은 게임이 유행했다. ‘499’와 ‘482’로 대표되는 마타자들의 존재는 동네야구에서도 나올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후속작인 ‘스타디움 히어로 96’도 오랜 시간 오락실에 자리를 잡았다.

 

최초의 KBO 리그 게임 등장

 ‘한국프로야구’(1993). 최초로 KBO 리그를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 사진 = 게임 화면 캡처

 

80년대 말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많은 가구에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구매했다. 이 시기에 KBO 리그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슈퍼패미콤용 게임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일본의 자레코 사에서 제작한 ‘슈퍼 3D 베이스볼’을 로컬라이징하여 현대전자에서 발매한 ‘한국프로야구’(1993)이다.

‘한국프로야구’는 93년 당시의 팀과 선수를 활용해 페넌트레이스, 올스타전 등 다양한 모드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로스터는 93년 기준이었지만 94년 팀명을 바꾼 한화 이글스가 있다거나, 93년 한국시리즈 MVP 이종범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등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초창기이기에 피하기 어려운 시행착오였다.

 

PC 게임으로의 이동, ‘라이브 스타디움’ 시리즈의 등장

미국의 accolade사에서 나온 ‘하드볼’은 90년대 중반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픽이나 게임 구성에서 기존 게임들보다 앞서있었던 ‘하드볼’의 존재는 한국 유저들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이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 나왔던 국산 게임이 바로 ‘라이브 스타디움’ 시리즈(1998~2006)이었다.

사내스포츠의 ‘라이브 스타디움 98’(1998) / 사진 = 게임 화면 촬영

‘라이브 스타디움 98’은 KBO의 라이선스를 얻은 최초의 게임이었다. 덕분에 선수의 이름이나 팀명은 물론이고 선수 사진, 각 구단의 응원가와 해설자 코멘트까지 들어가 이전의 게임들에 비해 조금 더 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기술력의 한계로 3D 캐릭터의 모션이 부자연스러운 등 당대의 외국 게임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후속작인 ‘라이브 스타디움 2001’은 그래픽이 소폭 개선되었고 당시 SBS 유협 아나운서가 해설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한 버그는 유저들을 떠나게 만들었다. 여기서 사내스포츠는 3번째 작품 ‘라이브 스타디움 2002’을 98년 버전에서 디스플레이만 바꿔 출시하는 악수(惡手)를 두게 된다. 이후 그래픽을 대폭 개선하고 온라인 모드를 지원한 ‘라이브 스타디움 2’(2004)를 출시해 권토중래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2000년대 후반 서비스를 중단하고 만다.

온라인 게임의 등장

최초의 온라인 야구게임은 2000년에 나온 ‘제트리그 베이스볼’이다. 2001년 이를 활용해 ‘한국 사이버 야구리그’라는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으나 운영상의 문제로 오래 가진 못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온라인 야구게임의 시작은 2004년 네오플이 출시한 ‘신야구’부터라고 할 수 있다.

신야구’(2004)의 팀 선택 화면. 가상의 팀 ‘네오플 원더스’는 훗날 ‘고양 원더스’라는 이름으로 실제 나타나게 된다. / 사진 = 게임샷 제공

‘신야구’는 단순한 인터페이스와 캐릭터로 사용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5년 말에는 게임순위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자동모드의 너무나도 낮은 타격 난이도로 인해 밸런스가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단순한 디자인의 캐릭터가 코나미의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를 표절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법정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악재들로 인해 ‘신야구’는 결국 2007년 12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마구마구’(2006)는 엄청난 성장세로 프로야구 메인스폰서 자리까지 꿰찼다. / 사진 = 게임 화면 캡쳐

‘신야구’가 온라인 야구게임의 서막을 열었다면 이후 주인공이 된 것은 애니파크의 ‘마구마구’(2006)였다. 2006년 3월 정식 오픈한 ‘마구마구’는 말 그대로 2등신 캐릭터가 마구(魔球), 마타(魔打)를 쓴다는 ‘판타지’와 원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팀을 (재정만 허락한다면) 플레이해볼 수 있다는 ‘현실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마구마구’는 메이저리그(MLB)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서비스를 시작했고 유망주 생성, FA 영입, 감독훈련 등의 제도를 추가했다. 프로야구의 흥행과 유저들의 구매력 덕분에 ‘마구마구’는 넷마블 내에서도 수익 선두권을 달렸다. 이에 힘입어 CJ인터넷은 2009년부터 2년간 ‘마구마구’의 이름으로 KBO 리그의 메인스폰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밸런스 문제와 과도한 현금결제 유도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현재 ‘마구마구’는 온라인 야구게임 중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외에도 ‘슬러거’(2007)는 보다 현실성 있는 게임 컨트롤과 그래픽으로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동시에 야구장을 중심으로 한 공격적 마케팅으로 외연을 넓혀 나갔다. 이후로도 ‘와인드업’(2010), ‘MVP 베이스볼 온라인’(2012) 등의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온라인 야구게임의 규모는 크게 성장했다.

 

온라인 게임 번외편 – 시뮬레이션 게임

여기서 이 글을 읽을 정도의 야구팬이라면 미국의 ‘아웃 오브 더 파크 베이스볼(OOTP)’이나 ‘베이스볼 모굴’ 등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돌려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국산 시뮬레이션 게임이 2010년을 전후하여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프로야구 매니저’(2009)와 ‘야구9단’(2011)이다.

프로야구 매니저’(2009) 홍보사진 / 사진 = 엔트리브 제공

‘프로야구 매니저’(프야매)는 세가의 ‘프로야구를 만들자2’를 들여온 게임이다. 카드 자체의 능력치나 구종 간의 상성, 유학이나 스킬 블록, 작전카드 등 많은 요소를 조합하여 게임을 운영해야 했던 ‘프야매’는 특히 매니아층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7년 3월에 서비스 종료가 선언됐다.

‘야구9단’은 웹게임으로서 따로 설치를 요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프야매’가 구단 운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반면 ‘야구9단’은 구단의 감독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차별점도 있었다.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으로 ‘프야매’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2017년 6월 현재에도 서비스 중이다.

 

모바일 게임, 내 손 안의 야구장을 만들다

모바일 야구게임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포켓프로야구’ 같은 게임은 밀리언셀러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야구게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게임빌 프로야구’ 덕분이었다. 과거 ‘스타디움 히어로’처럼 마타자와 마투수가 등장하고 나만의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었던 데다가(2005부터) 당시 열악했던 게임환경에서도 최적의 성능을 자랑한 ‘게임빌 프로야구’는 많은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게임빌은 ‘2013프로야구’까지 10번의 버전 업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KBO와 계약을 맺고 사실적인 게임을 지향했던 ‘KBO프로야구’ 시리즈(2007~2010), ‘EA프로야구’ 시리즈(2010~2011) 등이 피쳐폰 시절 WAP(무선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를 통해 출시되었다. 역시 KBO와 계약을 맺었지만 만화와 같은 캐릭터의 사용으로 친근감을 높여준 ‘컴투스 프로야구’(2005~)는 ‘게임빌 프로야구’와 라이벌을 이루었다. 스마트폰 시대인 현재 모바일 야구게임들은 그래픽 개선을 이뤄내며 모바일 스포츠게임 매출 최상위권에 올라있다.


스마트폰용 야구게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로야구 H2’, ‘이사만루2017’, ‘진짜야구 슬러거 for Kakao’. / 사진 = 게임 화면 캡쳐

휴대폰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발전하면서 모바일 야구게임 또한 진화한다. ‘이사만루’ 시리즈(2013~)는 국내 야구게임 중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다. 선수 모션이나 개별 응원가 등을 제공해 유저들이 게임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사만루2015 KBO’가 밸런스 문제, 버그, 전작의 보상문제를 겪으며 게임에 대한 평가가 급전직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프로야구H2’(2017)는 ‘프야매’의 제작사인 엔트리브가 제작하여 사실상 ‘프야매’의 후속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걸그룹 레드벨벳을 통한 적극적 마케팅을 토대로 많은 유저가 유입되기도 했다. 사실상 시뮬레이션 게임이지만 플레이 화면의 그래픽도 타 게임 못지않게 잘 나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슬러거 모바일’(2016)은 말 그대로 온라인 인기작인 ‘슬러거’의 모바일 버전이다. ‘진짜 야구’를 표방하는 ‘슬러거’의 모바일 버전답게 카툰 캐릭터에서 특이 선수 모션을 구현해내는 등 많은 유저를 끌어오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현재 ‘슬러거 모바일’은 서비스를 종료하였으나 ‘진짜야구 슬러거 for Kakao’가 2017년부터 서비스 중이다.

 

야구게임의 아킬레스건 : 초상권 문제

마구마구’의 열성 유저인 만화가 이말년은 일부 선수 이름이 가명으로 처리되자 제작사를 고소하겠다며 카페를 만들었다. / 사진 = 네이버 카페 ‘애니파크를 고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제공

야구게임의 유저라면 가상의 선수로 플레이하기보다는 실제 선수 이름으로 플레이하는 쪽을 더 선호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작사는 KBO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약칭 선수협)와 계약을 맺어 선수들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 계약으로는 현역 선수들만이 계약대상에 포함된다. 원칙적으로 은퇴선수들과는 따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문제가 터진 것이 2009년, 이른바 ‘이상훈 사태’였다. 전 LG 선수 이상훈이 ‘마구마구’와 ‘슬러거’를 상대로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되었다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어 마해영, 홍현우, 박정태 등 은퇴선수 13명도 두 게임에 대해 성명 등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게임상에서 이들의 이름은 가명처리되었다.

*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 : 초상사용권 혹은 인격표지권. 본인이 가진 성명, 초상이나 기타의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

현재는 선수 대부분의 초상권 사용이 허용된 상태다. 현역선수는 선수협, 은퇴선수는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또는 일구회를 통해 계약을 맺어 초상권 사용료를 지급받는다. 게임회사 입장에서 이 사건은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 좋지 않은 추억이 됐다. 반면 마땅한 권익을 보장 받게 된 선수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 야구게임이 이렇게 컸어요

마구마구’의 대만 버전인 ‘전민타봉구(全民打棒球)2 온라인’. / 사진 = 게임 화면 캡쳐

여러 우여곡절에도 지난 25년 동안 한국 야구게임은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시작은 해외 게임에 국내 데이터를 이식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해외에 게임을 수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야구게임은 인터넷상에서 많은 화제가 되고 실제 야구계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냉정히 말해 ‘마구마구’, ‘슬러거’, ‘프야매’ 이후로 대박이라고 할 만한 게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야심차게 개발했던 여러 게임들이 밸런스 붕괴, 라이선스 문제, 유저들의 저조한 유입으로 인해 스크린샷으로만 남고 말았다. 아직은 미국이나 일본의 게임에 미치지 못하는 면도 많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구마구’(대만명 ‘전민타봉구’)나 ‘이사만루’(해외명 ‘퍼펙트이닝’), ‘컴투스 프로야구’(해외명 ‘9이닝스’)는 해외리그 버전으로 출시돼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잘 만든 게임은 어딜 가나 사랑 받는다. 우리나라 야구게임의 역사도 이와 같았다. 잘 만든 게임은 회자되고, 못 만든 게임은 또 다른 의미로 회자되었다. 슬러거의 한방처럼 잘 만든 야구게임은 마구마구 사랑 받을 수 있다. 25년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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