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투수 임찬규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 셰익스피어

 

2025시즌 KBO리그에서 LG트윈스가 순항하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강력한 선발진의 위력이 큰 무기로 평가된다. 특히 선발 로테이션의 중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임찬규의 존재감은 눈부시다. 그는 시즌 첫 경기를 데뷔 15년 만의 첫 완봉승으로 시작했다. 4월 10일에는 역대 10번째로 한 이닝 최소 투구로 3탈삼진을 기록하며 기세를 올렸다. 이후 경기에서도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화려한 등장과 찾아온 시련

현재 임찬규의 성적과 팀 내 입지는 ‘에이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의 성장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임찬규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받으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데뷔 시즌부터 그 기대에 부응했다. 주무기인 150km/h 이상의 포심을 앞세워 팀의 즉시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82.2이닝 ERA 4.46). 팀의 미래 핵심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이 찾아왔다. 2013부터 임찬규의 포심 구속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4년엔 토미 존 수술까지 받으면서 이전 그의 패스트볼 위력을 되찾기 어려워졌다. 

 

정우영 캐스터와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두 차례 10승 이상을 기록했음에도 구속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2018년 11승 / 2020년 10승). 2021시즌에는 최고 147km/h까지 기록했지만, 꾸준히 유지하지는 못했다. FA를 앞둔 2022시즌에도 부진한 성적을 남겼고, 결국 FA 재수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속도보다 다양함

“스피드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가진 커브와 체인지업이 좋으니 변화구로 시속 150km 공의 효과를 발휘하면 된다.”

2023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염경엽 감독은 임찬규에게 조언을 건넸다. 이는 임찬규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됐다.

< 임찬규 시즌별 성적 >

염경엽 감독 부임 이후 임찬규는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렸다. 2023시즌에는 팀의 29년 만의 통합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2025시즌 4월까지 6경기에 등판해 4승을 따냈고 그중 4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해마다 낮아지는 FIP 수치만 보더라도 임찬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임찬규의 성장을 이끌었을까?

< 2025시즌 4월까지 시즌별 포심 성적 >

임찬규는 포심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선택했고, 효과를 봤다. 2022시즌 0.294였던 포심 피안타율 이듬해 0.261로 낮췄다. 포심 피장타율도 0.436에서 0.360으로 개선했다. 

< 2021~2025시즌 2스트라이크 이후 주요 구종 구사율 및 헛스윙률(2025시즌은 4월까지) >

2024시즌 임찬규의 FIP가 낮아진 데에는 크게 상승한 삼진율 영향이 컸다. 그 배경에는 구종의 다양성이 있었다.

2023시즌 임찬규의 삼진율은 리그 평균보다 낮은 16.3%에 머물렀다. 당시 그는 2스트라이크 이후 삼진을 잡을 수 있었던 상황이 350차례 있었지만, 103개의 삼진만 기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변화구의 비중을 높였다. 2024시즌에는 317차례의 삼진 기회 중 13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2025시즌에는 삼진율이 18.1%로 높지는 않지만, 2스트라이크 이후 상황에서 2023시즌보다 피OPS가 0.092 낮아졌다. (2023시즌 0.594 / 2025시즌 0.502)

임찬규의 연도별 성적을 확인해 보면 직전 시즌과 비교해 급격하게 좋아진 기록은 많지 않다. 그래도 2년 전이나 3년 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향상된 모습을 보인다. 그는 다양한 구종을 활용해 피칭 디자인을 고민하며, 점차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 2025시즌 4월까지 볼카운트 상황별 주요 구종 구사율 >

< 2022~2025시즌 피OPS(2025시즌은 4월까지) >

 

투수와 타자 간의 수싸움을 가위바위보에 비유된다. 타자는 투수가 던질 가능성이 높은 구종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노림수를 가져간다. 

임찬규는 보유한 구종을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활용한다. 2025시즌 첫 4경기 등판 동안 그는 경기마다 구종 구사율을 다르게 가져갔다.

<임찬규 2025시즌 첫 4경기 변화구 구사율> 

3월 26일 커브를 가장 많이 던진 그는 4월 3일에는 체인지업 구사율을 높였다. 4월 10일은 다시 커브를 주로 던졌고, 4월 16일엔 슬라이더 구사율을 17.5%까지 끌어올렸다(이전 3경기 슬라이더 구사율 평균은 8.5%). LG 주전 포수 박동원은 “특정 구종이 잘 안되면 다른 구종을 쓰면 된다”며, 임찬규의 유연한 경기 운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타자는 투수의 주 구종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임찬규와 같은 구종 운용은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투수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끝나지 않은 성장

임찬규는 2025시즌을 앞두고 슬라이더 횡적인 움직임을 더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좌타자 상대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이었지만, 연습 경기를 거치며 우타자 상대로도 활용하며 투구 폭을 넓혀갔다. 시즌 시작 후, 슬라이더(커터) 구종 가치는 0.8로 올랐다. (2023시즌 -2.3 / 2024시즌 -2.9)

슬라이더는 특히 우타자와 승부에서 큰 효과를 내고 있다. 기존 주요 구종인 커브와 체인지업은 모두 좌타자에게 강점을 보이는 ‘역스플릿’ 성격을 띠지만, 슬라이더는 같은 손 타자인 우타자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이는 기록으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 시즌별 우타자 상대 성적(2025시즌은 4월까지) >

4월 16일 삼성전은 임찬규의 슬라이더 가치를 알 수 있는 경기였다. 이날 그는 1회부터 주요 구종인 포심, 커브, 체인지업이 모두 안타를 맞으며 2실점 했다. LG 배터리는 볼 배합을 곧바로 조정했다. 이후 슬라이더 구사율을 22.2%로 올렸고,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다섯 차례 던졌다. 18구의 슬라이더가 허용한 안타는 내야안타 1개뿐이었다.

 

‘낭만’이 잘 어울리는 선수

필자는 배움의 원동력이 ‘꿈’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길에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따른다. 그 과정을 극복하며 성장해야 비로소 꿈에 다가설 수 있다.

임찬규는 어릴 적부터 LG 트윈스를 응원해 온 소위 ‘엘린이’(LG 어린이 팬) 출신이다. 2002년 한국시리즈를 TV로 지켜보던 꼬마 팬은 2023년 LG 우승을 이끌었다. 2024년에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픔을 안겼던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설욕에 성공했다. 그리고 데뷔 15년 만에 완봉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의 완봉승은 LG 국내 선수로서는 5년 만의 기록이었다. (이전은 2020년 정찬헌)

이처럼 값진 성과 뒤에는 부상과 부진이라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완봉승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다는 상상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이 있고 누구보다 좋은 기록을 써나갈 때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저는 매번 발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쁘다. 지난해보다 올해 조금씩 더 성장하는 저를 목표로 항상 달리고 있다.”

“상대 타자와의 승부, 경기 운영을 많이 연구하면 정말 재밌다. 그 부분들을 노력하다 보면 시합을 많이 나갈 것이고 자신감도 생길 수 있다. 저는 공 하나 던질 때 어떤 포인트로 던질지 그날 100구를 투구할 때까지 집중할 것이다. 제가 은퇴할 때까지 바뀌지 않는 목표일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임찬규의 낭만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참조 = KBO, STATIZ, 네이버 스포츠, NATE 스포츠, 연합뉴스, 조선일보

야구공작소 박경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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