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가윤 >
보스턴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는 가장 개성이 강한 구장 중 하나다. 과거 펜웨이 파크는 외야 뒤 건물을 통해 시민들이 무료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구단주였던 존 테일러는 긴 울타리를 세워 문제점을 해결했다. 화재로 울타리에 문제가 생긴 후 높이 11m에 달하는 그린 몬스터를 세웠다. 그린 몬스터는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우타자들이 긴 비거리의 타구를 만들어도 그린 몬스터에 맞아 홈런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펜웨이 파크의 그린 몬스터 / 사진 = Pixabay 제공>
구장에 따라 달라지는 기록을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구장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오라클 파크는 주변 환경을 활용한 설계가 이뤄졌다. 외야 펜스 배치나 관중석 형태도 달라졌다.
로스터에 미치는 영향
변화는 구단 운영에 영향을 준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홈런 빈도다. 담장이 타석과 가까운 구장은 홈런이 많이 나온다. 반대로 멀거나 높은 구장은 상대적으로 홈런이 적다. 공기 밀도, 기후 등 변수도 함께 작용한다. 파급효과는 의외로 크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는 거포 이승엽, 마해영이 이적했다. 이후 투수 중심의 운영을 선보인 선동열 감독이 부임했다. 과거 선보인 장타 중심의 야구가 힘들어졌다. 삼성은 구단 방향성에 맞춰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시민 운동장 야구장의 펜스를 뒤로 미뤘다. 넓어진 야구장에서 경기를 하게 된 삼성은 오승환, 윤성환, 안지만 등 훌륭한 투수진을 구성했다. 새로운 로스터는 우승 6번에 성공하며 ‘삼성 왕조’를 이끌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삼성 라이온즈는 다시 타자 친화형 홈구장을 사용한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현재 가장 많은 홈런이 나오는 KBO 구장이다. 현재 삼성 로스터의 중심 타자들도 장타력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홈구장에 맞춘 전략은 삼성을 다시 한번 한국 시리즈에 진출시켰다. 1군 로스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2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2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파워가 돋보이는 선수들을 지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홈구장 중심 전략이 많이 나온다.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양키 스타디움은 우측 펜스가 비교적 짧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양키스는 파워가 강점인 좌타자들에게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최근에도 양키스는 장타에 강점을 보이는 좌타자를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양키스의 방향성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양키스에서 활약 중인 재즈 치좀 주니어 / 사진 = Getty Images 제공>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도 마찬가지다.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형 구장이다. 2019년 계약을 맺은 슈퍼스타 브라이스 하퍼를 시작으로 장타를 칠 수 있는 타자들을 영입했다. 이 선수들을 제외하고도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야수들이 포진되어 있다.
투수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타자 친화형 구장에선 탈삼진 능력이나 땅볼 유도 능력이 좋은 투수가 가치가 높다. 2024년 6월 필라델피아는 크리스토퍼 산체스와 4+2년 5,150만 달러 연장 계약을 맺었다. 산체스의 통산 성적에 비하면 이른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산체스는 땅볼 비율이 60%에 임박한다. 필라델피아는 산체스의 땅볼 유도 능력에 주목해 과감히 투자했다. 탈삼진 능력이 좋은 잭 윌러도 투수 최고 연봉으로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투수, 타자 모두 구장의 특성에 맞춘 필라델피아는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전략과 흐름의 변화
야구장 범위는 투수나 수비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외야 범위가 넓으면 뜬공 타구가 쉽게 잡힌다. 투수들은 과감히 높은 코스로 공을 던져 뜬공을 유도한다. 홈런이 잦은 구장에선 실투 한두 개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낮은 코스 위주 땅볼 유도 피칭이 잦다.
수비 쪽에서도 외야 범위가 달라지면 선수 구성이 달라진다. 2022시즌 박해민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계약 규모 4년 60억은 박해민의 성적에 비해 비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주전 중견수로 활약한 박해민은 강점인 수비력으로 LG 트윈스의 외야진에 안정을 만들었다.
<최근 5년 LG 외야 수비 지표>
외야 범위가 넓은 구장은 외야 수비가 보다 중요해진다. 박해민의 합류는 매년 하위권을 기록하던 LG의 외야 수비를 진화시켰다. 2022시즌 LG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했고 2023시즌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이적 후 3년 전경기에 출장한 박해민은 현재 LG의 주장이자 성공적인 FA 사례라 평가를 받고 있다.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에서는 외야수도 공격에 강점이 보이는 선수가 많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처음 부임한 2017년 SK 와이번스는 팀 홈런 234개를 기록하며 역대 1위를 기록했다. 당시 SK의 외야진은 한유섬, 김동엽, 정의윤, 노수광이 책임졌다. 노수광을 제외하면 다들 수비보다 타격적으로 가치가 높았다. 강타자들을 중심으로 SK는 강공 위주의 득점 전략을 펼쳤다. 다음 시즌 팀 홈런 233개를 기록한 SK는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플레이와 기록의 변화
구장의 특성은 홈 어드밴티지에도 연결된다.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선수들은 구장 구조, 바람의 방향, 해발고도, 조명 등에 적응한다. 반면 원정 구단 선수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 낯선 환경에 적응이 필요해 불필요한 실수를 범할 확률이 높다.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의 경우 내야에서 외야 방향으로 햇빛이 강하게 내리쬔다. 간단한 포구 기회에도 외야수들이 자주 실수를 범한다. 홈팀 외야수들은 노하우를 만들어둔다. 원정팀 선수들은 제한된 시리즈 동안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경기를 하다 보면 기록에도 영향을 준다. 투수 친화형 구장을 홈으로 두는 투수는 같은 퍼포먼스라도 성적이 좋아진다. 타자 친화형 홈구장을 사용하는 타자도 마찬가지다.
가령 토드 헬튼과 프레드 맥그리프의 성적을 비교해 보면 헬튼이 우위에 있어 보인다. 그러나 헬튼은 콜로라도 로키스 원클럽맨이다. 콜로라도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형 구장인 쿠어스 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반면 맥그리프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6개의 팀에서 활동했다. 맥그리프가 홈구장으로 사용한 구장들은 대부분 평균 혹은 약간 더 낮은 파크 팩터를 기록했다. 파크 팩터를 보정한 지표들로 비교하면 맥그리프의 지표가 우위에 있다.
<클래식 지표와 파크 팩터 보정 지표 차이>
마치며
구장 설계의 다양화는 공정성, 기록의 일관성 등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이 덕분에 선수단 구성, 전술적 운영, 성적 평가 방식까지 더욱 입체적이고 예측이 어려워진다. 프로야구 구단들은 홈구장의 개성을 극대화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구단들은 더욱 혁신적인 구장을 설계할 것이다.
올해부터 한화 이글스는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이 구장의 특이한 점은 우측 담장 파울 라인 거리가 95m로 짧고 9m짜리 몬스터 월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좌·우측 홈런 비거리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측 타구는 높은 타구 각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홈런이 되기 쉽지 않다. 한화 노시환도 높은 탄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우측 방향 홈런은 힘들 거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몬스터 월을 활용한 한화의 전략도 지켜볼 만한 요소다.
이렇듯 야구의 스토리텔링과 전술적 다양성은 한층 풍부해질 예정이다. 다양한 구장에선 무한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야구는 계속 예측 불가능한 드라마를 만들어 팬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참고 = Fangraphs, Baseballsavant, STATIZ, Pixabay, Getty Images
야구공작소 이동건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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