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
야구공작소는 연말을 맞이하여 KBO 팀별 24시즌 리뷰를 발행합니다. 12월 31일까지 매일 한 팀씩 업로드됩니다.
시즌 성적 – 72승 70패 2무 (최종 5위)
지난해 KT 위즈는 시즌 초 10위에서 2위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하는 역대급 반등에 성공하며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냈다. 창단 10년 차였던 올해, KT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마법 같은 시즌을 보냈다. 4월 21일까지 10위, 6월 30일까지 9위에 머물렀던 팀은 7월 이후 승률 2위(.581)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KT의 정규 시즌은 험난했다. 최종전까지 단독 5위가 결정되지 않아 역대 최초로 5위 결정전이 성사됐다. SSG 랜더스를 상대로 8회 초까지 3:1로 리드를 내주며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멜 로하스 주니어의 기적 같은 역전 3점 홈런이 터졌다. 이 홈런은 KT를 5년 연속 포스트 시즌 무대로 이끌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상대는 두산 베어스. 시즌 내내 두산에 약세를 보였고, 특히 1선발 곽빈은 KT를 상대로만 5승(ERA 1.51)을 따냈기 때문에 KT의 압도적 열세가 예상됐다. 그러나 윌리엄 쿠에바스가 2021년 1위 결정전을 떠올리게 하는 호투를 펼치며 1차전을 승리. 2차전마저 웨스 벤자민의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하며 와일드카드 제도가 KBO에 도입된 이후 사상 최초의 5위 팀 업셋을 달성했다.
이어진 준플레이오프에서 1, 4차전을 승리했지만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이어 LG 트윈스에게 가을 야구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5위 결정전부터 역대 최초 와일드카드 업셋까지, 올 시즌 KT는 ‘기적의 팀’이었다.
두 얼굴의 투수진
전문가들은 올 시즌을 앞두고 KT의 최대 강점이 단연 선발진이라고 예측했다. 비록 배제성이 상무 입대로 이탈했지만, 쿠에바스-벤자민-고영표-엄상백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이 건재하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팀의 고정 마무리였던 김재윤의 FA 이적, 확실한 좌완 불펜 투수 부재 등의 이유로 불펜 뎁스엔 의문 부호가 존재했다.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KT 투수진은 전반적으로 붕괴했다. 외국인 원투펀치 쿠에바스와 벤자민은 경기별로 들쭉날쭉한 모습이었다. 국내 1선발 고영표는 5경기 만에 부상으로 이탈, 엄상백 또한 많은 피홈런으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설상가상으로 5선발을 맡은 루키 육청명과 원상현 또한 1군에서 한계를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다.
불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클로저로 보직을 옮긴 박영현이 전반기에만 9개 피홈런으로 크게 흔들렸고, 김민수와 손동현마저 각각 ERA 5.47, 6.40으로 무너졌다. 불펜으로 보직을 옮긴 김민만이 10홀드, ERA 2.74로 분전하며 무너진 불펜을 지탱했다.
< KT 투수진 전후반기 비교 >
그러나 후반기 들어 투수진에 반전이 나타났다. KT의 후반기 불펜 ERA는 4.18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리그 전반적으로 불펜 붕괴 현상이 일어났음에도 오히려 안정감을 찾았다. 선발진 또한 쿠에바스-벤자민-고영표-엄상백-조이현이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후반기 ERA 4위를 기록했다. 특히 시즌 전 5년 107억 다년 계약을 맺었지만, 전반기를 장기 부상으로 결장했던 고영표가 폼을 끌어올린 것이 고무적이었다. 9월이 돼서야 부상 여파에서 회복되기 시작했고, 구속을 다시 끌어올리며 주무기인 체인지업까지 위력을 되찾아 월간 ERA 2.74로 제 몫을 다했다.
< 김민수, 박영현, 김민 정규 시즌 성적 >
불펜에서는 특히 박영현이 구위를 회복한 후 안정감을 되찾아 후반기 ERA 2.02를 기록했다. 심지어 팀 내 불펜 투수 가운데 후반기에 가장 많은 이닝(35.2)을 소화했다. 결과, 2004년 조용준(현대) 이후 20년 만에 10승-20세이브 진기록도 달성했다. 박영현의 활약은 가을야구까지 이어져 6.1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왜 자신이 차기 국가대표 마무리 후보 1순위인지 증명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불펜 투수 김민의 성공이었다. 2018년 1차 지명 이후 성장세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올 시즌 불펜의 ‘믿을맨’ 역할을 맡았다. 특히 포심을 포기하고 투심-슬라이더 투피치로 레퍼토리를 수정해 땅볼 유도가 증가했고 삼진율도 크게 늘어나는 효과를 얻었다.
김민수는 2022년 이후 부상 여파로 폼을 완전히 되찾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리그 전체 불펜 투수 중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팀 내 궂은일을 도맡았다.
그 외에도 2차 드래프트 이적생 우규민이 2019년 이후 처음으로 2점대 ERA를 기록해 불펜에 안정감을 더했다. 부상 복귀 후 불펜 투수로 합류한 소형준(6경기 ERA 3.24), 손동현(12경기 ERA 3.00) 또한 힘을 보태 후반기 불펜진의 반전을 만들어냈다.
돌아온 ‘조원동 섹시 가이’ & 절반의 성공, 강백호
시즌 초 리드오프 고민이 생긴 이강철 감독은 5월 중순부터 과감하게 팀 내 최고 타자 로하스를 리드오프로 기용했다. 전반기 로하스-강백호로 이루어진 강한 1, 2번 타자는 상대 투수진을 초반부터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타순의 효과였을까, 전반기 KT는 팀 타율과 팀 OPS 모두 리그 6위였음에도 득점은 4위(449득점)를 기록했다.
돌아온 MVP 로하스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31세 시즌에 NPB에 진출하고 복귀한 로하스의 나이는 어느덧 34세였지만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야수였다. 9월을 제외한 모든 월간 OPS에서 .950 이상을 기록하며 타석에서 꾸준한 생산성을 보여줬다. 심지어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 전 경기에 출장했고, 더그아웃 내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소화했다.
< 로하스 2017~2020년 평균, 2024년 비교 >
특히 올 시즌 리드오프 역할을 맡아서일까, 타석에서의 선구안도 과거 KBO 리그에서 뛰었던 시절보다 더욱 발전한 모습이었다. 시즌 출루율은 .421(리그 2위)로 커리어 하이였으며, 볼넷/삼진 비율과 헛스윙률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리그 최정상의 위치에 오르며 2019년, 2020년에 이어 KBO 리그에서 3년 연속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KT 타선의 또 다른 관건은 강백호의 부활 여부였다. 2018년 데뷔 후 4년간 타격에서 일취월장한 강백호는 지난 2년 동안 부침을 겪었다. 팀 타선에 로하스와 김민혁을 제외하면 좌타자도 부족하고 젊은 야수 성장세가 전체적으로 침체돼 있다. 그렇기에 젊고, 장타를 더해줄 수 있는 강백호가 좋았던 시즌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전반기 강백호는 지난 2년간의 부진은 완전히 떨쳐낸 듯 펄펄 날아올랐다. 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인 타자 중 한 명이었으며, 전반기에 기록한 22개의 홈런은 개인 커리어 하이에 해당했다. 시즌 중 배트의 무게를 880g에서 가장 무거운 900~920g으로 늘리며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강백호는 이전 시즌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스윙을 돌렸다. 강백호가 때려낸 타구질은 왜 그가 국내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이었는지 다시 한번 야구팬들에게 상기시켜 줬다.
< 2024년 강백호 전/후반기 기록 >
하지만 후반기 강백호는 전반기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장타를 너무 의식한 스윙 탓이었을까, 지속적인 포수 ‘알바’로 생긴 체력 문제였을까. 전반기와 다르게 강한 타구를 거의 생산해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득점권에서 계속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다행히 9월 막바지에 강백호의 타격 컨디션이 올라오며 중요한 순간 홈런을 터뜨리는 등 결정적인 활약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포스트 시즌 7경기에서는 간결한 스윙으로 본인의 컨택 능력을 과시하며 타율 .393, OPS .990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강백호의 2024 정규 시즌 최종 성적은 .289/.360/.480 26홈런. 지난 2년 동안 겪은 부진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강백호에 대한 기대치는 이보다 높다. 전반기와 후반기, 2025시즌의 강백호는 어떤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올 시즌 기량 발전상이 있다면 KT는 단언컨대 김민혁이 수상했을 것이다. 김민혁이 기록한 타율 .353은 규정 타석 70% 기준 에레디아(.360)에 이은 리그 2위. 8월에는 월간 타율 .488을 기록하며 월간 MVP 후보에도 선정되었고, 후반기 내내 뜨거운 타격 감각을 유지했다. 하지만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이 평균치를 한참 상회하는 .399(통산 BABIP .337)로 높았기에 타격에서 어느 정도 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년 말 부상당했던 햄스트링이 시즌 내내 고질적인 불안 요소로 작용, 주루와 수비 모두에 악영향을 미쳐 타격 외의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올 시즌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초고령(야수)사회 진입을 대비하라
2016~2018년, 2022~2024년 주장을 맡았던 ‘캡틴’ 박경수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올해 4월 2일을 끝으로 더 이상 경기에 출장하진 않았지만 1군과 함께 동행하며 플레잉 코치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했다. 박경수의 은퇴와 함께 내야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 신본기 또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놀라운 점은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에도 불구하고, KT 야수진의 평균 연령은 여전히 높다. 현재 1군 야수 선발 라인업의 평균 나이는 34세. 강백호를 제외한 전원이 30대에 심지어 30대 후반 야수들도 즐비한, 리그에서 가장 고령화가 진행된 야수진으로 다음 시즌을 치르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윈나우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당연한 문제지만, 야수진의 미래가 대비돼 있지 않다는 점은 우려를 자아낸다. 권동진, 강현우와 같은 1라운더 출신 야수들의 성장 속도가 더디고, 퓨처스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윤준혁, 안현민, 강민성은 지금까지도 1군에서 충분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초반 가능성을 보여준 천성호, 백업 포수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조대현과 같은 젊은 야수들이 1군에서 자리를 꿰차야 한다. 천성호는 3~4월 타율 .352와 OPS .846로 뛰어난 컨택 잠재력을 보여줬다. 조대현은 비록 적은 표본이지만 발 빠른 주자들을 상대로 도루저지율 70%와 안정감 있는 블로킹 능력을 보여주며 가을 야구 엔트리까지 승선했다.
마무리
“안 된다, 못 한다 하지 말고 어떻게? 긍정적으로!!” KT 김주일 응원 단장의 단골 멘트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KT에 안 된다, 못 한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즌 초 10위까지 내려앉았지만 결국 마법처럼 반등에 성공. 사상 최초 5위 결정전 승리, 5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사상 최초 와일드카드 업셋까지. 모두가 안 된다고 생각한 일은 김주일 응원단장의 멘트처럼, 마법같이 이뤄졌다.
앞으로 KT의 길은 더욱 험난할 것이다. 6년간 주장을 맡아온 박경수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며, 스토브 리그가 열리자마자 주전 유격수 심우준과 선발 투수 엄상백이 나란히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팀 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강백호도 다음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스토브 리그 동안 안 좋은 일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먼저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준 우규민과 2년 7억 원에 재계약을 맺었고, 벤자민을 대체할 새로운 외국인 투수로 키움 히어로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와 계약했다. 또한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친 김민을 SSG로 트레이드하며 좌완 투수 문제를 해결해 줄 오원석을 받아 왔다. 마지막으로 어느덧 팀의 장기 외국인 선수가 된 로하스, 쿠에바스와도 재계약에 성공하며 ‘검증 마친’ 외국인 투타 조합을 완성했다.
다음 시즌 KT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또다시 마법 같은 기적을 재현하며 팀의 황금기를 더욱 길게 끌고 갈 수 있을까, 혹은 영원할 순 없는 황금기의 종언을 맞이하게 될까?
참고 = STATIZ
야구공작소 전희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당주원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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