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민서 >
2022년 12월 9일은 NPB가 공들여 마련한 제도가 첫선을 보였던 날이다. ‘현역 드래프트’라는 이름이 붙은 새로운 이적 제도의 시행으로 이날 NPB에서는 12명의 선수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당시 이적했던 선수의 면면을 보고 많은 팬들은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2023시즌 개막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만년 2군 멤버였던 선수들이 새 팀에서 1군의 4번 타자와 주축 선발투수로 환골탈태하는 사례가 탄생한 것이었다. 현역 드래프트가 어떠한 제도이기에 시행 첫해부터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탄생한 배경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역 드래프트의 탄생 배경
MLB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한 대형 선수의 이적 소식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에 비해 NPB는 이러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선수가 서비스 타임 6년을 채우면 FA 권리를 얻는 MLB와 다르게, NPB는 1군 출전등록일수가 145일 이상인 시즌이 7년(고졸 선수는 8년) 이상이어야 선수에 FA 자격을 부여한다. 전반적으로 NPB의 이적 시장이 MLB에 비해 훨씬 경직적인 셈이다.
이적 시장 활성화는 오랫동안 NPB 선수협회(이하 ‘선수협회’)의 핵심 목표 중 하나였다. 선수가 소속 팀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해도 환경을 바꿀 방법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2018년에 선수회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고자 NPB 사무국(이하 ‘사무국’)에 MLB의 룰5 드래프트를 모방한 형태의 신제도 도입을 요청했다.
당초 선수협회는 선수가 일정 연차를 채우면 자동으로 현역 드래프트 대상이 되는 방식을 요구했다. 그러나 각 구단과의 협의를 거쳐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선수 중 구단이 선택하는 선수 2명 이상이 드래프트 대상이 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세부 사항에 관한 논의가 추가로 진행된 끝에 사무국은 현역 드래프트가 2022년부터 정식으로 실시될 것임을 밝혔다.
현역 드래프트의 독특한 추진 과정
우선 드래프트 풀을 구성하는 방법을 정의해야 한다. 드래프트 시행 전, 각 구단은 이하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를 2명 이상 리스트에 올려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
< 표1 = 현역 드래프트 풀에서 제외되는 선수의 범위1 >
각 구단이 대상자 리스트를 제출하면 사무국은 리스트를 통합해 명부를 작성함으로써 드래프트 풀을 구성한다. 사무국의 통합 명부를 확인한 각 구단은 타 구단의 대상자 중 영입 희망 선수 1명을 지정해 다시 사무국에 전달한다. 그리하여 12개 구단의 영입 희망 선수가 정리되면 가장 많은 영입 희망 선수를 지명받은 팀 순으로 잠정 지명 순위를 부여받는다.
상기한 ‘잠정 지명 순위’는 실제 드래프트의 지명 순위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드래프트 당일 1순위를 부여받은 구단이 특정 구단의 선수를 지명하면, 해당 선수의 소속 구단이 다음 지명 순위를 받기 때문이다. 이미 지명권을 행사한 구단의 선수가 지명되었을 경우에 한해 미지명 구단 중 잠정 지명 순위가 가장 높은 구단이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역 드래프트는 선수의 이적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 만큼 모든 구단이 1위(1라운드) 지명에는 반드시 참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강제 참여 방식을 채택하면 구단이 좋은 선수를 드래프트 풀에 내놓을 유인이 부족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사무국은 상기한 바와 같이 영입 희망 지명 수에 따라 드래프트 지명 우선권을 부여했다.
룰5 드래프트와 비교해 보는 현역 드래프트의 장단점
현역 드래프트는 제정 시 모델로 삼았던 룰5 드래프트와 같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NPB도 MLB도 한정된 로스터의 제약으로 인해 젊은 선수들이 소속 팀에서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두 제도는 타 팀으로의 이적을 통해 선수가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진다.
< 표2 = 현역 드래프트로 이적한 선수의 활약 사례 >
이적 창구의 확장만으로 큰 의의가 있다는 점은 제도의 성공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좌완 피네스피처인 오타케 코타로는 팀의 최다승 투수로 거듭난 중요한 원인으로 강속구 투수를 우선 기용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벗어나 한신에서 적극 기회를 받은 것을 꼽았다.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한 뒤 새 타격 코치를 만나 팀 내 최다 홈런 타자로 떠오르며 올스타 선수로 급부상한 호소카와 세이야도 제도의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룰5 드래프트와 현역 드래프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두 가지 존재한다. 지명 대상사의 범위가 크게 다르다는 것이 첫 번째 차이점이다. 룰5 드래프트는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가 일정 연차 이상을 채우면 타 구단의 지명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역 드래프트는 <표1>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선수 중 소속 구단이 지정한 이들만 타 구단의 지명 대상이 된다. 현역 드래프트에서 구단의 선택 범위가 더 좁은 셈이다.
< 표3 = 시즌 종료 후 계약이 해지된 2022 현역 드래프트 지명자들 >
지명자에 대한 보호 장치의 유무도 큰 차이점이다. 룰5 드래프트로 지명한 선수를 액티브 로스터에서 제외하려면 구단은 웨이버 공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현역 드래프트에는 이러한 보호 조항이 없어 구단이 영입한 선수를 시즌 중 자유롭게 2군에 보낼 수 있다. 2022년 현역 드래프트 대상자 12명 중 7명이 이듬해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내며 1군 출전 경기가 10경기를 밑돌았다. 그리고 그들 중 6명이 시즌 종료 후 자신을 지명한 구단과 다시 지배하계약을 맺지 못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제도의 손질
선수가 이적한 뒤에도 기회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룰5 드래프트와 유사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현역 드래프트에서 선수를 지명하면 2군 강등에 제한을 두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구단이 영입한 선수를 시즌 개막 후부터 계속 2군에 배치한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유사한 제도인 KBO의 2차 드래프트는 1라운드 지명자에 50일의 1군 의무 등록 일수를 보장한다. 이처럼 1군 최저 등록 일수를 제도화하면 지명자는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다.
최저 등록 일수 지정을 넘어 지명한 선수를 2군으로 내릴 수 없게 만드는 방법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지명한 선수를 2군으로 강등할 수 없다면 구단들은 1군에 항시 둘 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각 구단이 현역 드래프트 대상자로 선택하는 선수의 수준도 자연히 올라가게 된다. 좋은 선수들이 드래프트 풀에 더 많이 오른다면 그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뛰며 포텐셜을 만개할 가능성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현역 드래프트의 풀을 넓히는 것도 제도를 보완할 방법이 될 수 있다. 칼럼니스트인 니시오 노리후미는 지명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만으론 구단이 매력적인 선수를 드래프트 풀에 올릴 만한 동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룰5 드래프트처럼 일정 요건을 충족한 선수가 모두 드래프트 풀에 오른다면 더 많은 이들이 환경을 바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1위 지명이 끝나도 영입을 고려할 만한 선수가 남아 있어 2~3위 지명에도 참여할 팀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NPB와 MLB에서 활약한 이구치 타다히토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소속 팀과 계약한 후 일정 연도가 경과하면 자동으로 현역 드래프트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구치가 제시한 대안은 현행 체제에서 이적이 어려운 육성선수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선수의 이적을 활성화하면서 육성선수 처우 개선도 이루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 표4 = 2023 현역 드래프트 1위 지명자 일람 >
2023 현역 드래프트가 종료된 후 선수협회장인 모리 타다히토는 현역 드래프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구단 측에서도 환경이 바뀌면 커리어의 반전을 이룰 수 있는 선수가 많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언급했다. 선수협회와 구단, 사무국의 협의로 세부사항을 적절히 보완하면 현역 드래프트는 더 많은 팀과 선수에 생기를 불어넣는 훌륭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역 드래프트에서 주니치의 지명을 받았을 당시 호소카와의 별명은 ‘2군의 제왕’이었다. 그랬던 그는 현재 주니치의 고정 4번타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닛폰햄의 지명을 받은 미즈타니 슌은 만나미 츄세이와 함께 팀의 젊고 역동적인 타선을 이끌고 있다. 제도의 발전을 통해 그들의 성공을 계승할 ‘깜짝 스타’가 더 많은 곳에서 탄생하길 기대한다.
참고 = 산케이 신문, 닛칸 스포츠, 아사히 신문, 주니치 신문, Full-Count, Baseball King
야구공작소 강상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익명,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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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