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도 FA등급제?] FA 선수들에게 등급을 매겨 본다면?

<13년 만에 얻은 FA, 하지만 끝내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NC와 ‘코치’ 계약한 용덕한. (사진 제공 = NC 다이노스)>

[야구공작소 이상희] KBO는 지난해 11월 24일 최형우가 KIA와 4년 총액 100억 원에 대형 계약을 하면서 바야흐로 ‘FA 100억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만에 이대호가 롯데와 150억 원에 달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최형우의 역대 최고 FA 금액을 갈아치웠다. 메이저리그에서 금의환향한 이대호를 논외로 본다 하더라도 KBO 구단들의 선수 영입 경쟁이 과열되면서 특급 FA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 이는 KBO의 현행 FA 규정에 큰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FA제도 규정상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원소속 구단뿐 아니라 다른 구단과도 자유롭게 계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단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선수들은 일부 최상급 선수들에 불과하다. 바로 보상선수 때문이다.

보상선수란 FA 획득 구단이 FA 선수의 전 소속 구단에게 FA 선수를 취득한 보상으로 내어 주어야 하는 선수를 말한다. KBO 규약 제 172조 [FA획득에 따른 보상]에 따르면, FA 선수의 전 소속 구단은 FA 선수의 직전 연도 연봉의 200%와 보상선수 혹은 FA 선수의 직전 연도 연봉의 300% 가운데 선택하여 보상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선수층이 얇은 KBO의 특성상 대부분의 구단들이 보상선수를 받는 전자를 선택한다. 때문에 보상선수를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구단 입장에서는 확실한 카드에만 큰 돈을 쓰게 되고, 자연히 특급 FA 선수들에게만 큰 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굳어졌다.

일부 선수만 혜택을 받는 현행 FA제도의 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KBO와 구단, 선수협 역시 현행 FA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FA등급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편 미국프로야구(MLB)는 2012년 이전까지, 일본프로야구(NPB)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FA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MLB의 FA제도

MLB의 경우 현재는 FA등급제가 아닌 ‘퀄리파잉 오퍼(Qualifying offer)’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퀄리파잉 오퍼는 구단이 FA 자격을 얻은 선수에게 정해진 액수의 1년 계약을 제시하는 제도다. 퀄리파잉 오퍼를 제시하지 않으면 해당 선수가 타 구단과 계약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반대로 퀄리파잉 오퍼를 받지 못한 선수들은 보상선수나 보상금 없이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

그러나 MLB 역시 2012년 이전에는 등급에 따라 드래프트 지명권 보상에 차이를 두는 FA등급제를 실시했다. 엘리아스 스포츠 뷰로라는 통계 업체가 비공개 방식으로 최근 2년 동안의 성적을 평가해 상위 20%에게는 A등급, 차상위 20%에게는 B등급, 그리고 나머지 60%에게는 C등급을 매겼다.

등급 산출 방식이 자세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공개한 방식에 의하면 각 선수를포지션에 따라 5가지 그룹(선발/불펜/포수/1루수 제외 내야수/그 외)으로 나누고 각 그룹별로 몇 가지 스탯을 종합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너무 기본적인 스탯들로 등급을 나누었고 공정한 평가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퀄리파잉 오퍼 제도로 대체되었다.

 

NPB의 FA제도

NPB는 2008년부터 연봉을 기반으로 한 FA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선수의 팀 내 연봉 순위를 기준으로 1~3위는 A급, 4~10위는 B급, 이하는 C급으로 나눈다. 이렇게 등급을 나눠 A,B등급은 보상선수와 보상금(A등급 – 연봉의 50%, B등급 – 연봉의 40%)을 지급하고 C등급 선수는 보상선수와 보상금 없이 자유계약이 가능하다. 또 보상선수가 20인 외 지명인 KBO와 달리 NPB는 28인 외 지명이다.

 

모의 FA 등급

FA등급제가 KBO에 도입됐을 때 어떤 효과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FA등급제를 가상으로 KBO에 적용해 지난 3년 동안의 FA 선수들에게 등급을 매겨 보았다. MLB와 같은 성적 기준 등급제와 NPB의 연봉 기준 등급제의 결과를 각각 구했다.

성적 기준 등급제의 경우 과거 MLB와는 달리 포지션에 따라 나누지 않고 모든 선수들을 합해 순위를 계산하였다. FA 신청 최근 2년의 WAR 평균으로 등급을 나누었으며, 정규분포에서 상위 20% 이내인 경우 A, 20~40%인 경우 B, 40% 이하인 경우 C 등급을 부여했다. 군 복무 시즌이 있는 경우 입대 직전 시즌을 반영했다. 예를 들면 2017시즌 김광현의 경우 2015, 2016시즌 WAR이 각각 3.96, 3.69로 평균 3.83이고 정규분포 상 2015, 2016시즌 WAR 상위 20% 커트라인이 2.01이기 때문에 A등급을 받게 된다.

연봉 기준 FA등급제의 경우 NPB 방식과 동일하게 팀 내 연봉을 기준으로 1~3위는 A, 4~10위는 B, 이하는 C등급으로 나누었다. 예를 들면 2017시즌 김광현의 경우 2016시즌 연봉 8억 5천으로 팀 내 2위이기 때문에 A등급을 받게 된다. 군복무가 있었던 이원석은 2015시즌 등급을 그대로 반영했다.

 

<2015/2016/2017 FA 잔류 선수>

<2015/2016/2017 FA 이적 선수>

모의 FA등급제로 살펴본 FA등급제의 효과

이호준(NC) 선수협 회장은 “연봉으로 A,B,C 등급을 나누는 게 가장 깔끔하다.”고 밝혔고 KBO 역시 연봉 기준 FA등급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연봉 기준 FA등급제를 실시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지 보다 중점적으로 알아 보자. 모의 FA 등급과 실제 FA 계약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FA등급제가 낳을 수 있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FA등급제는 보상선수로 인한 구속을 약화시켜 FA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2015-2016년에 시장에 나온 C등급 FA 선수는 11명이고 이 중 4명이 이적했다. ‘4명이나’ 이적한 것으로 보이지만 넷 중 셋은 kt로 이적한 것이다. 당시 kt는 신생팀 특혜로 보상선수 없이 FA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2017년이 되자 신생팀 특혜는 끝났고, 이제 C등급 선수들은 잔류하거나, 아예 시장에 나오지 않거나, 혹은 은퇴하는 것을 선택했다. 낮은 등급의 FA를 보상선수까지 내어 주며 영입할 구단은 없기 때문이다. 현 FA제도가 시장의 형성 자체를 막은 것이다. FA등급제가 도입된다면 낮은 등급을 받은 선수들은 보상선수 문제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고액 연봉자를 적은 보상으로 데려오게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저액 연봉자를 높은 보상으로 데려오게 될 수 있다. 팀에 따라 연봉이 적은 선수가 A등급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연봉이 많은 선수가 B등급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 최형우는 연봉이 7억임에도 B등급이고 kt 이진영은 6억이지만 A등급이다. 이에 따라 고액 연봉자가 많은 팀에 있는 선수는 상대적으로 이적이 쉬워질 가능성이 크고 고액 연봉자가 적은 팀에 있는 선수는 이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셋째, FA등급제는 특급 선수에게 몰린 영입 경쟁을 분산시켜 FA 시장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FA등급제는 준척급 선수의 보상선수 족쇄를 풀어 원소속팀과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염가 계약을 방지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구단들은 반드시 스타 선수가 아니라도 대체재가 많아져 특급 선수의 영입 과열 경쟁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FA등급제가 거품 논란 몸값 폭주기관차의 제동 역할 하게 되는 것이다.

 

FA 등급제를 둘러싼 숙제

KBO에서 FA등급제 도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모의 FA등급제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FA등급제 도입까지는 풀어야 할 선결 과제가 많다. 여전히 구단과 선수협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부 사항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서로의 극명한 입장 차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구단은 FA등급제 도입 필요성에 동의하는 한편 특급 FA 선수에게 지불하는 거액에 대해서도 보호 장치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 시즌 LG로 이적한 차우찬은 4년 총액 95억 가운데 계약금이 55억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FA 선수는 부진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질 경우 연봉이 깎이기 때문에 보장 금액인 계약금의 비율을 높이고자 한다. 역으로 돈을 주는 입장인 구단에게는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금액인 계약금이 부담이다. 구단은 계약금 상한 분할 제도를 시행하고 계약금 총액을 당해 연봉을 기준으로 일정 수준 이상 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선수협은 선수가 부상을 당했을 경우 1군 등록일수가 깎여 향후 FA 자격 취득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한 부상자명단(DL)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또 보상선수가 아닌 신인 지명권 등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FA등급제를 제시하고 있고, 이와 별도로 FA 취득 연수 단축도 원하고 있다.

FA등급제는 팀을 운영하는 구단도, 팀을 위해 뛰는 선수도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이다. 구단과 선수협이 상생 관계이며 대치가 아닌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은 활발한 FA 시장을 위해 2018년부터 FA등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KBO리그 역시 구단과 선수협 서로의 입장차를 인정하고 한 걸음씩 양보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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