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궁.해] 대량 득점을 한 다음 날에는 방망이가 터지지 않는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영주 >

“속설이 궁금해, 속궁해”는 야구계에 많은 속설을 근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해 보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평소 자주 들었거나 사실 여부가 궁금했던 속설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2017년 6월 27일, KIA는 삼성을 상대로 11대4로 이긴 뒤부터 7월 4일 SSG 상대 15점을 뽑고 승리할 때까지 ‘7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 승리’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6경기째인 7월 3일 LG전, 당시 해설위원이었던 이종열 위원은 중계 중 “보통 점수가 많이 나면 그다음 게임에는 점수가 잘 안 난다”라는 말을 했다. ‘대량 득점을 한 다음날에는 방망이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칼럼의 주제다.

많은 야구팬이 응원하는 팀이 대량 득점을 하면 다음 경기에 대한 걱정을 종종 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와 같이 속설에 반증이 되는 경기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속설을 앞으로 믿어도 될까? 한번 파헤쳐 보자.

 

대량 득점을 한 다음 날에는 방망이가 터지지 않는다.

속설을 검증하기 전 필자는 조사 범위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 번째, 2019년부터 2023년의 KBO 데이터를 조사한다.

두 번째, 대량 득점의 기준을 두 자릿수 득점, 즉 10점 이상으로 잡는다. 가장 직관적인 점수이며 한 경기 한 팀 평균 득점의 2배를 상회하는 점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5년간 10점 이상을 득점한 팀의 승률은 0.953으로 매우 높았다. 대량 득점의 기준으로 잡기에 충분했다.

세 번째, 한 정규 시즌 내에 연속으로 이뤄진 경기만 포함한다. 시즌 사이의 기간이 매우 길고, 그사이 보강과 이적 등으로 팀 전력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2번의 시즌 마지막 경기 대량 득점은 제외했다.

 

위의 기준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5년간 대량 득점은 총 687번이 있었으며 다음 경기 해당 팀의 OPS는 0.741을 기록했다.

< 2019~2023년 대량 득점 횟수 및 다음 경기의 출루율, 장타율, OPS >

언뜻 봐도 낮은 수치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리그 평균 OPS와 비교해 봐도 2021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더 근사하게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속설과는 다르게 해당 팀 타격이 비슷했거나 조금 더 좋았다.

< 2019~2023년 리그 평균 OPS 및 해당 팀 평균 OPS >

다만 대량 득점은 타격이 좋은 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팀 OPS 순위와 대량 득점 횟수 간 Spearman correlation(스피어만 상관계수)이 p-value는 약 0.01, 상관계수는 약 0.597로 상관관계가 존재했다. 타격이 좋은 팀이 비교적 더 많은 대량 득점을 만들어냈다. 즉 대량 득점 다음 경기도 원래 타격이 좋은 팀의 비중이 좀 더 컸다.

< 2019~2023년 팀 OPS/ 대량 득점 간 상관관계 >

만약 편차가 크진 않지만 팀 OPS 하위권 팀의 해당 경기 성적은 좋지 않은데 상위권 팀의 성적이 매우 좋아서 평균이 높아졌다면 전체 평균 수치는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팀 OPS가 비교적 낮은 팀도 대량 득점 다음 경기에서 더 잘 쳤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팀 OPS로 그룹을 나눠 해당 팀의 전체 경기와 해당 경기의 타격 지표를 비교했다. A 그룹은 연도별 팀 OPS 1~3위 팀, B 그룹은 4~7위 팀, C 그룹은 8~10위 팀으로 구분했다.

< 2019~2023년 그룹별 출루율 >

< 2019~2023년 그룹별 장타율 >

< 2019~2023년 그룹별 OPS >

C 그룹 장타율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전체 경기보다 대량 득점 다음 경기 지표가 근소하게 높았다. C 그룹 장타율도 0.002 차이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그룹별 팀 타격 지표도 ‘방망이가 터지지 않는다’를 뒷받침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 5년간 팀별 OPS 및 대량 득점 다음 경기 OPS >

5년간 팀별 OPS 비교도 마찬가지로 절반 이상의 팀이 근소하게 더 높았으며 전체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결론적으로 “대량 득점을 한 날 다음 날에는 방망이가 터지지 않는다”는 속설은 데이터상 옳지 않았다. 대량 득점과 다음 경기 타선의 무기력함 간에 연관성은 찾기 힘들었다.

 

왜 우리는 이 속설을 공감하고 통용하게 된 것일까?

필자는 이 속설의 근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추측했다. 첫째는 ‘상대성’이다. 대량 득점은 많은 안타와 출루가 기반이 된다. 실제로 5년간 대량 득점 팀의 출루율은 0.455, 장타율은 0.602, OPS는 무려 1.057을 기록했다. 타선이 폭발한 경기를 보고 다음 날 타선이 또 폭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방망이가 터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정작 타선은 평소와 비슷했거나 그 이상을 쳤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확증 편향’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야구에 입문한 팬들 혹은 선수들은 속설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접한다. 이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인 후 야구를 보게 되면 연속으로 타선이 폭발한 경기는 기억을 못하다가 타선이 침체한 경기를 보면 역시 속설대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응원하는 팀의 타선이 어떤 경기에서 대량 득점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다음 경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경기에 득점이 적게 나더라도 “어제 경기에 몰아쳐서 오늘은 못 치네”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점수를 못 낸, 타선이 힘을 못 쓴 경기일 뿐이다.

 

참조 = 네이버 스포츠

야구공작소 장호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영주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1 Comment

  1. 좋은 분석 감사드립니다. 혹시 해당 분석을 하신 김에 대량득점 다음날의 방망이가 아닌 득점도 비슷할지 살펴봐주실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전날 좋았던 심리적 요인으로 무리하거나 오히려 느슨한 주루 플레이 등 심리적인 요소가 영향을 줘서 득점력은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궁금증도 있구요.
    또 한가지 궁금한 것은 해당경기일(대량득점다음날) 타격이 평소에 비해 표준편차가 높지 않을까하는 부분도 생각이 듭니다. 평균적으로는 평소보다 잘 친다고 나오지만 그게 이틀 연속 잘치거나 아니면 평균이하로 못치거나 해서 실질적으로 0~1점 득점에 그치는 경기비율이 시즌 전체보다 높을수도 있을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