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창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

서건창의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다. 2023년 11월, 서건창은 더 많은 기회를 위해 LG 트윈스에서의 방출을 요청했다. 그런 그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구단은 키움 히어로즈였다. 팬들은 환호했다. 모든 전성기를 히어로즈에서 맞이한 서건창이었기에 히어로즈 팬들은 아직까지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35. 적지 않은 나이지만, 서건창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팬들은 그의 불꽃이 다시 타오를 수 있기를 꿈꾼다.

 

신고 선수 신화

광주일고 출신 서건창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08년 LG 트윈스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 단 한 경기의 1군 기록만 남기고 팀에서 방출됐지만 그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군 복무를 마치며 2012년 넥센 히어로즈에 신고 선수로 재입단했다. 서건창은 정식 선수로 등록되기는 했으나 2012년에는 김민성이 2루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대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건창은 시즌 개막 전 김민성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수비와 타격 모든 부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넥센 히어로즈의 ‘복덩이’로 자리 잡았다. 빠른 발로 도루 2위(39개)까지 기록하며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와 신인왕을 차지했다.

 

2014년, 서건창의 해

넥센 히어로즈에서의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내고 2013년 슬럼프를 보낸 서건창은 2014년에 달라진 타격폼을 들고나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4년 시범경기에서 이장석 구단주는 서건창에게 40개의 도루가 아닌 100개의 득점을 바란다고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했다.

< 서건창 2014 시즌 기록 >

터무니는 있었다.

“국내에서 누구보다 공을 가까이에 놓고 치는 타자라고 보면 됩니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타격폼이죠.”

당시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던 염경엽의 인터뷰다. 서건창은 특유의 타격폼을 고수하며 엄청난 타격 기록을 세웠다. 이종범 전 LG트윈스 코치가 1994년 현역 시절에 세운 단일 시즌 최다안타 기록(196개)도 20년 만에 갈아치웠다. 2014년 서건창의 병살 개수는 단 1개뿐이었다. 득점 또한 135점을 기록하며 개막 전 이장석 단장이 말했던 100득점을 훨씬 넘겼다. 당시 128경기 체제였지만 현 144경기 체제에서도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이 탄생했다. 강정호와 넘버원 키스톤콤비라 불리며 슬럼프 없이 시즌을 마쳤다.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은 물론이고 시즌 MVP까지 석권했다. 분명 2014년 서건창은 최고의 선수였다.

 

LG 트윈스 서건창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난 2021년, 키움 히어로즈는 선발 투수가 필요했다. 안우진과 한현희의 코로나 방역 수칙 위반으로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지자 공백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서건창은 LG 트윈스 정찬헌과 트레이드되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정찬헌으로 공백을 메꾸고 시즌 후반에는 한현희도 복귀시키며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LG 트윈스는 서건창이 넥센 입단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양 팀의 희비는 명백하게 갈렸다. 당시 시즌 전 서건창은 연봉을 자진 삭감했다. FA 때 B등급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트레이드로 계획이 무산됐다.

서건창은 FA 선언을 미루고 재수를 선택했다. 2022년 성적도 좋지 못했다. 경쟁에서 밀렸고, 그해 겨우 77경기 출장에 그쳤다.

2023년에 염경엽 감독과 재회했지만, LG 트윈스의 치열한 내야 경쟁을 또 뚫지 못했다(44경기 출장). 2023년 LG 트윈스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서건창은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팀에게 방출을 요청했다. 그렇게 서건창은 FA 삼수생이 됐다.

 

영입 의사를 전달한 히어로즈

시장에 나온 서건창을 데려갈 것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구단은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였다. KIA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베테랑 2루수 김선빈이 FA 자격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키움 히어로즈에서는 김혜성이 2루 주전 자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KIA 타이거즈는 김선빈을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방출생이 된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구단은 친정 팀인 키움 히어로즈였다.

방출생에게 구단에서 영입 의사가 오면 바로 계약을 맺는 것이 일반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근 몇 년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서건창은 아직 행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키움의 2루수 경쟁은 지난 2차 드래프트에서 당시 SSG 랜더스 소속 최주환을 데려오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서건창이 당장 2024시즌에 키움으로 복귀하게 되면 또다시 치열한 내야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영입 의사를 밝힌 지 1개월이 넘게 지난 현시점까지 서건창의 결정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월 4일 KIA와 김선빈의 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키움으로의 복귀만이 그가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 됐다.

키움 히어로즈에게 큰바람이 불었던 2022년, 히어로즈 팬들은 또 한 번 서건창에게 고마워했다. 이미 정규리그를 마무리한 키움 히어로즈는 KT 위즈의 마지막 경기 승패에 따라서 정규리그 순위가 확정되는 상황에 놓였다. KT 위즈의 마지막 상대는 LG 트윈스였다. 히어로즈 팬들은 모두 LG 트윈스를 응원했다. KT 위즈 쪽으로 흘러가는 경기 흐름을 뒤집은 건 서건창의 태그업 플레이였다. 다소 무리한 플레이로 보였으나 서건창은 과감하게 홈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키움 히어로즈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포스트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다.

타 팀으로 이적 후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며 팬들은 안타까워했다. 다시 팀으로 돌아오는 날만을 꿈꿨다. 그렇게 부진하던 와중에도 친정 팀에게 중요한 순간에는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큰 선물을 안겨줬다. 팬들은 아직 서건창에게 영웅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그를 더 그리워했다.

리빌딩을 선언한 키움 히어로즈에는 팀을 이끌어 갈 베테랑 프랜차이즈 선수가 몇 남지 않았다. 이지영도 FA 권한을 행사해 행선지가 불분명한 와중에 이정후까지 메이저리그 진출로 떠났다. 이런 팀에는 누구보다 히어로즈를 잘 알고 있는 서건창이 필요하다.

 

팬들은 팀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테랑 프랜차이즈 선수가 방출생으로 은퇴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친정 팀으로 복귀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팬들의 곁에서 은퇴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꿈꿔왔다. 얼마 전까지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했지만 서건창이 FA 시장에 나오면서 한 걸음 현실로 다가왔다.

서건창이 히어로즈로 복귀한다면 당장에는 주전으로 자리 잡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2025년 김혜성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다면 2025년부터는 최주환과만 공존해도 된다. 최주환 역시 2024시즌이 끝나면 FA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1년만 지나도 서건창은 주전 2루수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이제 서건창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2월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고 나면, 활약을 보일 기회가 정말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건창에게는 복귀 의지만 밝히면 언제든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히어로즈가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가장 빛났던 구단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을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 STATIZ, 키움히어로즈

야구공작소 김서한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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