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희진 >
위 사진은 우리나라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유명한 짤방, ‘가르시아 8점홈런’이다. (8점과 홈런 사이에 띄어쓰기가 없다) 사실 타자 카림 가르시아는 이때 홈런을 치지도 않았고, 점수를 내지도 못했으며, 더 나아가 한화가 아니라 롯데 소속일 때였다. 하지만 8점 차로 지고 있음에도 개막과 함께 이어진 19타수 무안타 행진을 깨는 2루타를 친 후 기쁨에 겨워 세레모니를 한 것이 마치 8점홈런을 친 것 같다고 해서 ‘가르시아 8점홈런’이라 불리게 되었다.
물론 현행 야구 규칙에서는 8점짜리 홈런은 불가능하다. 공식야구규칙에 따르면 득점이란 타자가 주자가 되어 모든 베이스에 정상적으로 닿아야만 이뤄질 수 있다. (공식야구규칙 1.04) 즉, 한 번의 타석에서 최대로 낼 수 있는 점수는 4점이다.
새로운 리그의 독창적인 시도
그러나 2023년 11월 25일, 공식 경기에서 사상 최초로 5점 이상을 획득한 타석이 기록되었다. 남아시아 및 중동 야구 리그, 베이스볼 유나이티드(Baseball United)의 시작을 알리는 올스타 쇼케이스(All-Star Showcase) 경기에서다. 이번 올스타 쇼케이스에는 베이스볼 유나이티드에 드래프트 된 선수들과 함께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우간다, 팔레스타인 국가대표 선수 총 8명도 경기에 나섰다.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한 타자는 ‘쿵푸팬더’로 알려졌으며 월드시리즈 반지를 세 개나 보유한 파블로 산도발, 허용 투수는 인도 출신의 사우랍 가이콰드(Saurabh Gaikwad)이다. 올스타 쇼케이스 2차전 2대 2로 동점인 상황, 5회 초 무사 주자 23루에서 산도발은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 산도발이 속한 이스트(East)팀은 ‘머니볼(Moneyball At-Bat)’을 시도한다. 머니볼은 경기당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기회로, 해당 타석에서 기록한 득점을 두 배로 인정하는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만의 독특한 규칙이다. 머니볼 규칙에 따르면 만루에서 머니볼을 선언한 후 홈런을 치면 8점을 득점한다. 따라서 ‘가르시아 8점홈런’이 정말로 가능하다.
이전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산도발은 대량득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스트라이크존 하단으로 들어가는 115km/h(75mph) 커브를 제대로 받아치며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가르시아가 ‘8점홈런’을 쳤을 때와 비슷한 열정적인 세레모니는 없었지만, 산도발은 팀원과 함께 ‘6점 홈런’의 기쁨을 충분히 즐겼다. 5회에 등판한 허용 투수 가이콰드는 홈런 이후 교체되며 아웃 하나 잡지 못한 채 등판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 산도발은 두바이에서도 허리띠를 차는 자신만의 홈런 세레모니를 보여줬다. >
공식 기록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홈런을 친 산도발에게는 6타점이 기록되었다. 자신이 불러들인 주자는 자신을 포함해 3명밖에 안 되었지만, 머니볼로 얻은 추가 3점을 모두 자신의 타점이 되었다. 가이콰드는 6실점이 기록되었지만, 자책점은 3점만 기록되었다. 즉, 머니볼로 잃은 3점은 비자책점으로 간주되었다.
점수는 곧 즐거움이다
그러면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는 왜 머니볼과 같은 규칙을 도입했을까? 이는 더 많은 득점이 곧 즐거움으로 이어진다는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만의 철학이 깔려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쇼케이스가 열린 아랍에미리트나 베이스볼 유나이티드에 참가하는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은 야구 저변이 아직은 깊지 않다. 선수도, 팬도 이제 조금씩 싹을 틔우는 단계에 있다. 베이스볼 유나이티드 대표 카시 샤이크(Kash Shaikh) 역시 이 지역에서 야구의 인기가 커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팬들에게 즐거움을 더 선사할 수 있는, 소위 팬들의 도파민을 고취할 방법이 필요했다. 더 나아가 기존의 야구 규칙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가 성공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란 이름을 알릴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 전직 메이저리그 슈퍼스타의 손을 통해 가장 큰 점수인 ‘8점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번째로 큰 점수인 ‘6점 홈런’ 이 터진 것이다.
물론 객관적인 입장에서 올스타 쇼케이스가 성황리에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 야구팬이 많은 지역이 아닐뿐더러, 표 가격은 외야 $22.4, 내야 $47.9달러로, 현지 물가를 고려해도 제법 비싼 표 가격을 자랑했다. (두바이에서 영화 1편 평균 $13.6) 그로 인해 최대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두바이의 크리켓 구장 두바이 인터내셔널 스타디움(Dubai International Stadium)에서 열린 두 번의 경기 당시, 관중보다는 빈 객석이 더 많이 보였다.
하지만 야구 불모지에서 세계 최정상을 누볐던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본 관중들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며 두바이에서 11년째 거주 중인 제니퍼는 “산도발과 같은 선수를 두바이에서 볼 수 있어 매우 짜릿했다면서, 두바이처럼 스포츠를 사랑하는 도시에서 야구와 같은 스포츠가 터를 잘 잡을 수 있을것”이라고 평했다.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란?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는 미국 신시내티에 본부를 둔 스포츠 컨설팅 및 투자 회사인 비에스비 그룹 인터내셔널(BSB Group International)이 야구의 세계와 및 야구 보급을 목표로 창설한 리그이다. 마리아노 리베라, 배리 라킨, 아드리안 벨트레, 펠릭스 에르난데스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직 메이저리거들이 새로운 남아시아 및 중동 야구 리그 탄생에 기여했다.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는 이 지역에서 프로야구를 시작할 뿐만이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역내 야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원,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거점 지역에서 유소년 야구 육성 프로그램을 병행할 예정이다.
< 한화에서 활약했던 윌린 로사리오. 3라운드 전체 24번으로 두바이 울브즈에 지명됐다. >
베이스볼 유나이티드는 2024년 두바이, 아부다비, 뭄바이, 카라치를 거점으로 하는 네 개 팀이 참가하는 리그를 개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가 발표되진 않았지만, 2023년 10월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이미 팀 구성을 마친 상태다. 메이저리그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바톨로 콜론, 로빈슨 카노, 안드렐톤 시몬스, 디디 그레고리우스 등이 드래프트 되었으며, KBO 팬들에게 익숙한 윌린 로사리오, 데이비드 허프 등도 활약할 예정이다.
참고 = SBS Sports, Baseball United, The Prospect Farm, Talkin’ Baseball, Khaleej Time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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