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헌 >
늦었지만 올 시즌도 막을 내렸다. 이제 스토브리그의 꽃인 FA 시장이 열렸다. FA 투수 명단을 살펴보면 선발 자원은 부족하지만, 눈에 띄는 불펜 투수들이 보인다. 불펜이 약한 팀들이 적극적으로 계약에 나설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과의 FA 계약, 정말 괜찮을까? 과연 이들에게 선발 투수만큼 많은 돈을 안겨줘도 괜찮은 걸까? 그러기엔 어딘가 마음 한구석 불안한 느낌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불펜은 근무 시간이 적다
올 시즌 종료 후 투수들의 WAR을 살펴보면 대부분 선발 투수들이 순위에 보인다. 물론 WAR은 누적 지표이기에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발 투수들이 대부분 유리한 점은 있다. 따라서 불펜 투수를 주로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기여도)로 평가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이닝을 소화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등판해 이닝 소화를 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앞선 WAR 차이의 바탕이 된 이닝 차이는 상당히 컸다. 표를 살펴보면 많게는 100이닝 이상 차이가 난다. 어쩔 수 없는 두 보직의 태생적으로 다른 점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선발 투수가 불펜 투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큰 이유 역시 될 수 있다.
< 2023시즌 투수 WAR, 이닝 >
불펜은 아프다
그래도 적은 이닝을 소화한 불펜 투수가 내구성 면에서는 앞서지 않을까? 예상과 다르게 더 많은 불펜 투수가 부상으로 이탈한다. 불펜 투수는 선발 투수보다 자주 경기에 등판해 몸에 피로가 쉽게 쌓이기 때문이다. 의학적인 근거도 뒤따른다. ASMI(American Sports Medicine Institute, 미국스포츠의학연구소)에 따르면 청소년 투수들이 팔에 피로가 있는 상태에서 연투를 하면 팔꿈치나 어깨를 수술할 확률이 36배 더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견했다. (물론 성인 투수 역시 해당된다)
“The American Sports Medicine Institute (ASMI) found that adolescent pitchers who undergo elbow or shoulder surgery are 36 times more likely to have routinely pitched with arm fatigue.”
결국 불펜 투수는 잦은 연투로 부상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불펜 투수는 일정한 기량 유지가 힘들지 않을까? 특히 선수 수급이 어렵고 특정 불펜 투수 의존이 큰 KBO 리그라면 이런 경향이 더 강하지 않을까? 2015-23시즌 KBO 데이터로 불펜 투수의 연도별 상관성을 살펴봤다.
한 시즌 불펜 등판을 30번 이상 한 투수를 불펜 투수라 하자. (결과를 보여주는 WPA보다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WAR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WAR 사용) 이후 2015년과 2016년에 모두 불펜 등판을 30번 이상 했다면 데이터로 채택했다. 하지만 2015년 불펜 등판을 30번 넘게 했지만 2016년에 넘지 못했다면 데이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결과로 바로 가보자. 상관계수가 0.108로 상관관계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즉, 이전 시즌 불펜 WAR은 다음 시즌 불펜 WAR과 상관 없었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기량을 꾸준하게 유지한 불펜 투수들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함은 구단 입장에서 불펜 투수에게 과거의 기량을 토대로 높은 성과를 내길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 있게 많은 돈을 쥐어 주기가 곤란한 상황이다.
< 불펜 투수 연도별 WAR 상관관계 >
불펜은 풍부하다
기량이 꾸준히 유지되는 선수가 적은 만큼, 그만큼 우리는 매년 불펜에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다. 많은 투수가 불펜 문을 열고 처음 1군 마운드에 대부분 오른다. 이뿐만 아니라 원래 알고 있던 선수들이 불펜으로 터를 옮기는 사례도 많다. 로테이션 우선순위 탈락, 투구 메커니즘의 문제, 구종 다양화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선발로 도전했다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불펜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와중에 불펜에서 자신의 기량을 만개해 그대로 자리를 잡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1군 선발 로테이션 5개 자리 중 2개는 고정적으로 외국인 선수에게 할당하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태생적으로, 결과적으로 투수 중 절대다수는 불펜을 한두 번씩 거친다. 시장에 선발 투수보다 불펜 투수가 많은 것도 자연스럽다.
구단들도 알고 있다
종합해 보면 불펜 투수는 선발 투수보다 이닝 기여도도 낮고, 까다로운 근무 환경 탓에 부상 위험에도 많이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 시장에 풀린 자원의 절대적인 숫자도 더 많다. 여기까지만 보면 불펜 투수는 대체하기 손쉽고,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사 올 이유가 많지 않은 자원이다. 시장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한국 KBO리그에 비해 선수 수급이 더 원활한 환경을 갖고 있다. FA 자격 취득 시한이 6년으로 한국보다 1~2년 더 짧다. 또한 연봉 조정 신청이 훨씬 빈번하고, 그 결과 선수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도 많다. 이에 연봉 부담을 덜기 위해서, 구단에서 연봉 조정 자격이 갖춰진 선수를 방출하는 경우도 매년 숱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선수들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시장에는 더 많은 선수가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려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다.
그 결과 많은 구단이 베테랑 불펜 투수를 상대적으로 값싸게 영입한다. 또한 가능성 있는 선수를 최저 연봉에 가깝게 데려와 ‘개조’에 성공해 마운드에 다시 올리는 성공 사례를 꿈꾸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블레이크 트레이넨, 에반 필립스를 상대적으로 싼값에 영입해 특급 불펜 투수로 만들어 낸 LA 다저스다. 가끔 에드윈 디아즈(뉴욕 메츠)처럼 2,000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는 FA 불펜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선발 투수에 비하면 훨씬 적은 액수가 투자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역대 최고액 불펜 FA는 2017년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와 4년 84억원 계약을 맺은 정우람이다. 그다음 규모는 안지만(4년 64억), 손승락(4년 60억)이다. 총액 60억 규모를 넘은 것은 단 세 번뿐이다. 최근 박세웅이 5년 90억원에 연장 계약을 맺는 등, 선발 투수와 타자의 다년 계약 규모가 커지는 것에 비하면 조촐하다고 볼 수 있다.
방출된 투수가 각 팀의 불펜에 합류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김진성(LG), 김상수(롯데), 고효준, 노경은(이상 SSG) 등이 최근 염가에 새로운 팀으로 옮겨가 수준급 불펜 투수로 부활에 성공한 사례다. 물론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20대 중후반의 투수가 재정적인 이유로 타 팀으로 이적하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다만 이는 미국과 리그 규정이 달라 그런 것이다. 하지만 불펜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 기조가 크게 다르진 않다.
그렇다면 불펜 투자는 무조건 반대?
위에서 다소 부정적인 불펜의 효율성과 이를 통한 각 리그의 불펜 영입 기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불펜의 궂은일을 누군가는 해줘야 하고 야구에서 불펜은 작지 않은 부분이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믿을 수 있는 불펜 투수가 필요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다 잡았던 경기를 자주 놓쳤던 팀이라면 더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앞선 내용들을 생각한다면 선발에 비해 불펜 보강에 큰 금액 지출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도 합리적인 영입 기준이 있다면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정답은 아니지만 몇 가지 영입 기준을 제시해 봤다.
화룡점정
먼저 불펜이 강하면 어떤 점을 기대하는가? 일반적으로 불펜이 강하면 많은 1점 차 승리를 기대한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1점 차 승리는 ‘강한 불펜’ 말고도 많은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 1점 차 승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 보자. 선발, 타선, 불펜의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적절한(?) 활약이 필요하다. 즉 강한 불펜만으로는 1점 차 상황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 결국 접전 승리는 물론이고 안정적인 승리를 위해서 불펜 이전에 선발과 야수의 활약이 먼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선발, 야수 자원이 갖춰진 팀이라면 방점으로 확실한 불펜 투수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경쟁력이 있는 부분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을 보강한다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보통 이런 팀은 포스트시즌에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영입한 불펜 투수를 단기전에서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현대 야구의 불펜 활용
이번에는 중간급 불펜 투수로 시선을 돌렸다. 이들은 선발과 수준급 불펜보다 몸값이 저렴하고 경쟁이 덜하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영입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중간급 불펜 투수에 대한 투자는 분명 효율적이다.
그런데 영입 후 이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최근 현대 야구의 흐름에서 활용법을 찾을 수 있다. 현대 야구는 선발 투수들에게 많은 이닝, 타자를 맡기지 않는다. 타자들의 투수 대처 능력, 적응 속도가 향상됐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 야구에서는 한 투수를 오랫동안 기용하는 대신 전보다 이른 타이밍에 교체해 타자가 계속해서 새로운 투수를 상대하도록 하는 전략을 선호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낸 LG의 기록을 살펴보면 위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밑의 두 그래프는 2023시즌 KBO 리그 각 팀의 선발 평균 이닝과 투구 수를 시각화한 것이다. LG 선발 투수의 평균 투구 수는 83개로 한화 다음으로 적었다. 이어 LG 선발 평균자책점은 3.92(5위)였지만 대신 불펜 평균자책점은 3.41(1위)로 KIA의 3.81(2위)과 비교해 크게 앞섰다. 물론 선발진이 약해서 불펜이 많이 등판했는지 아니면 불펜이 강하니까 선발을 일찍 내린 건지는 따져봐야 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풍족한 불펜을 보유해야 가능했다.
< 2023년 팀별 선발 투수 평균 이닝 >
< 2023년 팀별 선발 투수 평균 투구 수 >
과부하를 막고 불펜 이끌어 줄 투수
위처럼 팀에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불펜 투수들이 여럿 있다면 특정 투수 의존 역시 낮출 수 있다. 훌륭한 특정 불펜 투수를 보유했지만, 전체적인 불펜은 약한 팀의 경기 후반을 상상해 보자. 감독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다른 불펜 투수들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특정 투수에게 부하가 걸린다. 결국 잦은 등판을 한 해당 투수는 시즌을 치를수록 힘이 떨어져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부상의 위험도 높아질 것이다. 이 경우 이닝을 같이 소화해 줄 경험 있는 불펜 투수를 영입한다면 이들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다. 더불어 팀의 불펜에 젊은 투수들이 대부분이라면 이들을 이끌어 줄 불펜 고참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불펜 투수가 넘어야 할 문턱
글을 돌아보면 불펜이 야수와 선발에 비해 리스크가 있기에 보강 시 후순위로 밀리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불펜 투수 영입은 효율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효율성의 문턱은 예전보다 그리 낮지 않다. 내년부터 KBO리그에 샐러리캡이 도입되어 한정된 금액 안에서 효율적으로 돈을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즉 좋은 선수를 찾아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효율적인 금액 분배를 통한 적절한 로스터 구성이 필요하다.
현재 불펜 투수가 필요한 팀이 있는가? 있다면 그 팀의 영입 근거는 충분한가? 또 그 팀의 샐러리캡은 여유 있는가? 올겨울 어떤 불펜 FA 투수가 이 문턱을 넘고 위 팀과 성공적인 계약을 체결할지도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것이다.
참고 = Statiz
야구공작소 순재범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전언수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김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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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투수가 fa로 넘어가서 큰재미를 본경우가 없지않나요? 정우람 정도 제외하고 대형fa계약을 한 선수중에서 생각이 나지않네요 고무팔이라 불리던 그 정우람도 서서히 기록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했구요. 결국에는 불펜 fa는 안잡는게 맞다고 봅니다 키움도 원종현 실패한거 보면 참 위험한거같아요
내구성 문제도 클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