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그런날 있잖아, 수비와 부딪히고 말았지만 흙을 파헤치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고 싶은..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7월 2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한화의 경기. 6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송성문은 좌측으로 높은 타구를 날렸다. 하지만 이를 좌익수 닉 윌리엄스가 놓쳤고, 타자주자는 2루에서 3루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송성문은 3루로 향하던 도중 2루수 정은원과 충돌했다. 더 이상 3루로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송성문은 2루로 귀루했는데, 그때 심판이 다음과 같은 수신호를 한다. 

심판이 여기서 오른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주루방해 (2)번 상황이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 판정에도 불구하고 송성문은 3루에 가지 못했다. 주루방해가 발생하면 보통 한 베이스를 공짜로 가야 하는데 왜 송성문은 2루에 세워진 걸까? 

야구팬 대부분은 주루방해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주루방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방해시리즈의 세 번째 주제, 주루방해 편을 이해하면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충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것은 주루방해고 어떤 것이 수비방해인지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종류의 주루방해

주루방해를 규정한 부분은 공식야구규칙 6.01(h) 이다. 아래 원문을 그대로 첨부한 후에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6.01(h) 방해의 선언

(1) 주루방해를 당한 주자를 상대로 플레이가 벌어지고 있거나 타자주자가 1루를 밟기 전에 주루방해를 당하였을 경우 볼 데드가 되고, 베이스상의 모든 주자는 주루방해가 없었더라면 도달하였으리라고 심판원이 판단하는 베이스까지 아웃될 염려 없이 진루할 수 있다. 주루방해를 당한 주자는 방해가 일어났을 때 점유하고 있던 베이스보다 적어도 1개 베이스 이상 진루할 수 있다. 주루방해를 당한 주자에게 진루가 허용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주어야 할 선행주자는 아웃될 염려 없이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수 있다.

(2) 주루방해를 당한 주자를 상대로 플레이가 벌어지고 있지 않을 경우 모든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경기는 계속된다. 심판원은 플레이가 끝난 것을 확인한 뒤 “타임”을 선고하고 주루방해로 인하여 주자가 받았으리라고 심판원이 판단한 불이익을 제거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한다. 

 

주루방해 (1)번과 (2)번의 결정적인 차이는 플레이가 주자 혹은 타자주자를 상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이다. 주루방해 (1)번이 선고되는 가장 많은 사례는 런다운 상황이다. 야수들이 주자 하나를 몰아가는 런다운 상황에서 종종 공을 잡지 않은 야수와 주자가 부딪히곤 하는데, 이때 주루방해 (1)번이 선고되며 즉시 경기는 멈춘다. 방해받은 주자는 최소한 한 개 이상의 베이스를 안전하게 진루할 수 있다.

송성문의 사례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루방해 (2)번이다. 윌리엄스가 잡지 못한 공은 3루수 노시환이 공을 잡아 근처 유격수 이도윤에게 던졌기에 송성문을 상대로 플레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주루방해 (2)에서는 심판이 오른팔을 들며 주루방해가 발생한 사실을 알리지만, (1)번과 다르게 경기가 바로 멈추진 않는다. 더 이상 플레이가 진행되지 않으면 타임이 선언되고, 그제야 심판이 상황을 정리한다.

또한 주루방해 (2)번은 주자에게 공짜 베이스가 무조건 주어지진 않으며, 심판의 판단에 따라 주자가 안전하게 갈 수 있었던 베이스까지 진루를 보장한다. 송성문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심판진은 송성문이 3루까지 갈 수 없었으리라 판단한 것 같다. 

주루방해 (1)번과 (2)번을 표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이 주루방해인가?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주루방해가 성립될까? 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그리고 심판들 또한 판정이 가장 많이 나뉘는 수비방해/주루방해 판정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수와 주자가 각각이 지닌 권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주자는 다음 베이스 혹은 이전 베이스로 이동할 권리가 있다. 야수는 주자가 달리고 있다면 길을 비켜줘야 한다. 하지만 야수가 공을 잡으려 하거나 공을 잡은 상태라면 수비할 권리가 주자의 달릴 권리보다 우선하게 된다. 따라서 수비하기 직전의 혹은 수비를 하는 야수와 주자가 충돌하면 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비방해가 주어지게 된다. 다만 이 수비할 권리는 두 명 이상의 야수가 동시에 공을 잡으러 간다고 해서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으며, 수비하기에 가장 적합한 야수 한 명만 권리를 갖는다. 

그러면 야수의 수비할 권리는 어디까지 주어질까? 메이저리그 심판 매뉴얼(Major League Umpire Manual)에 따르면 야수가 공을 받은 후 송구할 때까지는 보호받게 되며, 주자의 주루 권리보다 수비하는 권리가 우선하게 된다. 또한 야수가 공을 한 번에 받지 못하더라도, 야수를 맞고 굴절한 공이 야수가 곧바로 잡을 수 있는 곳에 떨어진다면 수비할 권리는 이어진다. 야수가 수비할 권리를 상실한 상태에서 주자와 충돌한다면 주루방해가 된다. 

 

주루방해의 사례 

2017년 5월 31일 잠실에서 열린 넥센과 LG 경기에서 2루 주자 김웅빈은 3루 땅볼에 3루로 달리다가 3루수 양석환과 부딪혔다. 얼핏 보기에는 김웅빈이 양석환이 수비를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양석환은 첫 포구를 실패한 후 몇 걸음 전진해 공을 받다가 주자와 접촉했기에 수비할 권리를 잃은 상태이다. 따라서 김준희 3루심은 양석환과 김웅빈의 충돌을 주루방해 (2)로 선고했으며, 김웅빈은 3루에 들어갔다. 

이 상황은 2023년 7월 2일 탬파베이 레이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 3회 말에 발생한 상황이다. 2루 주자 타이 프랑스와 3루수 아이작 파레데스가 충돌했는데, 3루심 크리스 구치오니는 처음에 수비방해를 선언했지만 4심 합의 이후 주루방해로 번복되었다. 왜냐하면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파레데스가 프랑스와 충돌해 공을 포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공을 흘린 후에 프랑스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 역시도 주루방해 (2) 사례이다. 프랑스는 주루방해의 결과 3루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주루방해 (2)의 사례인 2013년 월드 시리즈 3차전의 마지막 장면이다. 9회말 1사 23루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는 2루 땅볼 때 홈으로 쇄도하는 3루 주자를 잘 잡아냈지만, 포수 제로드 살탈라마키아가 2루 주자 알렌 크레이그를 잡기 위해 3루로 던진 송구가 빗나가고 말았다. 그때 홈으로 달리려던 크레이그는 포구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진 3루수 윌 미들브룩스에 걸려 넘어진다. 크레이그는 다시 일어나 홈으로 뛰었지만, 외야에서 날아온 홈 송구보다 늦게 홈에 도착했다.

하지만 3루심 짐 조이스와 구심 데이나 디무스는 모두 주루방해를 선언했고, 디무스는 크레이그의 홈 득점을 인정했다. 주루방해 (2)에 해당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심판은 경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끝난 후 타임을 선언, 주자가 주루방해로 받은 불이익을 제거했다. 

 

여전히 심판에게 맡겨야 하는 주루방해 판정

주루방해 (1)의 사례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99% 런다운 상황에서 주자와 공이 없는 주자가 부딪쳐 발생하는,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간단한 주루방해이기 때문이다. 간혹 홈과 1루 사이에 굴러간 땅볼을 잡기 위해 야수가 모인 상황에서 수비하지 않는 야수와 타자주자가 부딪혀 주루방해 (1)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프로야구에서 이를 보기는 극히 어렵다.

다만 도입부에서 언급한 송성문 사례가 주루방해 (1)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 공을 잡은 노시환이 3루를 지키던 투수 강재민에게 던졌다면 주루방해 (2)가 아니라 주루방해 (1)이 선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송성문의 3루 진루를 막기 위한 플레이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6.01(h)(1) [주3])

위 사진은 2023년 6월 23일 잠실에서 열린 롯데와 LG의 경기 8회 초에 나온 상황이다. 희생번트 때 1루 주자 황성빈이 2루를 돌면서 유격수 오지환과 부딪혔는데, 때마침 번트 수비를 위해서 3루수 문보경이 3루를 비운 상태였다. 문보경이 빠르게 자기 베이스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심판진은 주루방해 (2)를 선언하고 황성빈을 3루로 보냈다. 

주루방해 (2)는 주루방해 (1)과 달리 판정하기 어렵다. 수비의 권리가 어디까지 보장되는지를 알아야 하며, 더 나아가 주자가 과연 방해가 없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계산해야 하므로 난해하며 사람마다 의견이 나뉠 수밖에 없다. 과연 황성빈이 오지환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3루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 3루로 달려가는 문보경이 1루수로부터 공을 받아 3루로 쇄도하는 황성빈을 잡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규칙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주루방해는 주자가 응당 누려야 하는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이를 보전하기 위해 생겨난 규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루방해가 무조건 추가 베이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심판 또한 주루방해를 판정하는 데 있어서 기계적으로 주자에게 한 베이스를 무조건 부여해서는 안 된다. 팬들께는 이 글을 읽고 어떤 상황에서 주루방해가 성립되는지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심판들께는 주루방해 규칙이 담고 있는 심오함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참고 = Naver, Close Call Sports, MLB, Daum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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