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주식 삼성색, 내 주식 기아색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찬희 >

브랜드 로열티란 소비자가 특정한 상표를 선호해서 그 상표의 상품을 고정적으로 구입하는 현상을 뜻한다. 브랜드 로열티를 제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리나라 기업은 예로부터 자사의 제품 개발과 고객 만족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반면 미국의 기업은 달랐다. 그들은 품질을 관리하면서도 광고 전쟁을 통해 경쟁사를 자극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자연스레 기업 간의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소비자들은 콜라를 연상할 때 ‘코카콜라 아니면 펩시’라는 구도를 떠올리게 되었다. 라이벌리는 진입 장벽 역할을 했다. 어느 브랜드도 이미 익숙해진 대결 구도를 깨부수고 콜라 시장에 진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라이벌 구도는 소비자의 팬덤화도 불러왔다. 같은 시장을 놓고 두 브랜드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소비자는 특정한 브랜드를 고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브랜드 충성도로 이어졌다. 맥도날드 대 버거킹, 나이키 대 아디다스 등 신규 시장의 부흥에는 대부분 라이벌 구도가 함께했다. 

 

88 고속도로 씨리즈의 흥행 부진

이렇듯 브랜드 충성도는 라이벌의 존재로 인해 강화되기도 한다. 이는 팬덤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스포츠 산업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이다. 현재 KBO 리그에는 라이벌이 없다. 물론 두산과 LG는 잠실 라이벌로 불리며 매년 어린이날 경기를 고정적으로 편성 받는다. 그렇지만 ‘저 팀만큼은 꼭 이겨야 해’, ‘쟤네가 지는 것만 봐도 통쾌해’라는 감정이 형성될 만큼 진심이 담겨있지는 않다. 만약 구단 차원에서 진정한 라이벌전을 테마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작정 두 팀을 싸움 붙이기 전에 라이벌이 탄생하는 원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Tyler와 Cobbs의 연구에서는 라이벌 생성 요인을 갈등, 유사성, 편향으로 분류한다. 특히 편향이라는 부정적 감정은 독일어 단어인 ‘샤덴 프로이데’로도 불린다. 샤덴 프로이데란 남의 불행을 보고 느끼는 쾌감을 뜻한다. 개인보다 집단 간에 더욱 잘 발생한다. 근거 없이 소속 집단은 높게 평가하고 타 집단은 낮게 평가하는 ‘내집단/외집단 편향’을 포괄하는 개념 역시 샤덴 프로이데다.

< 생성 요인별 라이벌전 분류 >

라이벌전이 3가지 속성 모두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억지 라이벌’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2020년, KIA와 삼성이 진행한 ‘88고속도로 씨리즈’의 흥행 부진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양 구단은 라이벌전 콘셉트로 ‘레트로’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기념 굿즈를 판매했고 랜선 팬 사인회를 진행했으며 선수단은 올드 유니폼을 착용했다. 방송사도 ‘클래식 중계’라는 테마 아래 방송 화면을 레트로하게 단장했다.

하지만 88고속도로 씨리즈는 무관중 경기였음을 감안해도 큰 화제로 이어지지 못했다. 활발한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해당 시리즈를 라이벌 생성 요인의 세 번째 유형, 즉 편향을 중심으로 이벤트화해서 다시 개최한다면 어떨까? 

 

샤덴 프로이데를 활용한 라이벌 마케팅

편향, 즉 샤덴 프로이데를 형성하는 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과 샤덴 프로이데의 구체적인 관계는 다음과 같다.

< 샤덴 프로이데 사이클1 >

옥시토신이라는 생체 물질은 인간의 진화 과정부터 함께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집단을 형성했다. 집단에 위협을 주는 요인 중 하나는 외부의 적이었다. 외부의 적은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이때 인간의 뇌에서는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된다. 옥시토신은 우리 편에 대한 애착을 심화하고 상대편에 대한 반감을 끌어올린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규율 등으로 집단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의 정체성은 집단의 일원으로 최우선시된다. 행동 양식마저 ‘외부의 적을 물리치자’는 집단 목표 달성 행위로 귀결된다.

세 번째 유형의 라이벌 구도를 설계할 때는 위의 샤덴 프로이데 사이클을 활용할 수 있다. 샤덴 프로이데 사이클에는 정해진 출발점이 없다. 6개 꼭짓점의 각 요인이 샤덴 프로이데를 강화하고, 역으로 샤덴 프로이데도 각 요인을 강화한다. 

의도적으로 적개심을 조장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회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사이좋게 지내던 두 무리도 얼마든지 서로를 적으로 여길 수 있다. ‘로버스 동굴 실험’, ‘제3의 물결 실험’과 같은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프로야구단의 목표 역시 팬들의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래야 샤덴 프로이데가 활성화되고 충성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 내집단/외집단 편향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편애하는 동시에 대척점에 있는 집단은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를 내집단 편견, 후자를 외집단 편견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말 그대로 편견이므로 아무 근거가 없다. 하지만 소속 집단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타 집단을 배척하는 행위는 집단의 단결을 유도한다. 강한 결속력은 궁극적으로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내집단/외집단 편향을 활용해 군중 심리를 이끌어냈다.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감정을 시각화하는 기법으로 내집단/외집단 편향을 유도하곤 한다.

< 정기전 거리 배너 >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 기간, 안암동과 신촌의 거리에는 줄줄이 배너가 걸린다. 각 학교 응원단은 지역 상권과 연계해 서로를 조롱하는 멘트를 내건다. 배너 아래 대학가 매장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지역 전체가 각자 학교를 응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학생들은 캠퍼스를 걷는 것만으로 곧 열릴 라이벌전의 열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치러지는 정기전의 흥행은 확실하다. 럭비 같은 비인기 종목을 포함한 전 경기가 매진된다. 

KIA와 삼성의 연고지에도 도시를 대표하는 번화가가 있다. 광주 충장로와 대구 동성로에 배너를 걸지 말라는 법도 없다. SNS를 통해 재치 있는 배너 멘트를 공모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단발성 스폰서를 구한 다음 우수 참여자에게 해당 브랜드 제품을 상품으로 제공해도 괜찮다. 지역 상권과 협의해 매장 한 곳을 공식 응원 장소로 지정해도 된다. 응원 열기를 끌어올리는 것만큼이나 응원 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집단 유지

집단이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는 와중에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난 이 일에 흥미 없어’라고 외칠 수도 있다. 이러한 돌연변이가 하나둘씩 나오다 보면 집단의 결속력은 급격히 무너진다. 따라서 집단을 유지하려면 내부의 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대개 엄격한 규율과 교육의 형태로 나타난다. 규칙과 학습은 인간의 마음속에 ‘그룹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최우선 순위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 입단 당시 구단 관계자로부터 ‘빨간색 차를 타지 말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토트넘의 라이벌 팀 아스널의 상징색이 빨간색이기 때문이었다. 고려대와 연세대 학생들은 새내기 배움터를 가면 응원 OT에 필수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규율이 존재한다. 학기 중에도 양교의 합동 응원전, 응원 OT, 축제 기간 응원 행사와 같은 응원 교육이 많다.

호주 풋볼 리그는 팬데믹 기간에 인기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콜링우드-리치몬드 팀 간 라이벌전을 테마화했다. 이때 협회는 가장 먼저 라이벌전 전용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양 팀의 맞대결 기록, 역사, 퀴즈, 응원 기능을 통해 팬들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88고속도로 씨리즈에 한정해 선수들의 개인 장비 색상에 대한 규정을 두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KIA 선수들은 파란색, 삼성 선수들은 빨간색 장비를 착용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라이벌전을 앞두고 네이버 스포츠 야구 칸에 홍보 페이지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양 팀의 맞대결 전적, 명승부 및 에피소드 역사, 예상 라인업 등을 정리해 놓는 것이다. 올해 롯데와 KIA의 시리즈처럼 응원하기 기능 이벤트를 추가해도 좋다. 

 

#3 집단 목표 달성

이제 구성원은 집단이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한다. 집단을 향한 충성심과 헌신이 가장 커지는 시기다.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1993년은 미국 월드컵이 열리던 해였다. 이때 국가대표에 소집된 이임생이 대표팀을 무단이탈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고려대 소속으로 정기전을 뛰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임생은 추후 징계를 받고 예정된 일본 진출도 무산된다. 선수가 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행동에 나선 예시다. 

사실 선수들의 투지를 마케팅 활동으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투지 어린 행동은 팀의 또 다른 구성원인 팬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된다. 팀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팬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수 있을까? 

FC 서울은 작년 슈퍼매치를 앞두고 팬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프런트는 메시지를 라커룸에 전시해 선수단이 볼 수 있게 했다. 88 고속도로 씨리즈 역시 경기를 앞두고 팬들로부터 응원 메시지를 받아도 된다. 응원 영상을 티저로 만들어서 경기 당일 상영해도 좋다. 양 팀의 레전드를 초청하는 것도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더해줄 수 있는 활동이다. 

이러한 사이클을 거치고 나면 선수단과 팬들은 집단의식이 강해진다. 양 팀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한다. 뇌는 옥시토신을 뿜어내며 샤덴 프로이데를 촉구한다. 그리고 샤덴 프로이데는 라이벌전의 중요한 관람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원 삼성 서포터즈는 패륜송도 부르는데요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남았다. 샤덴 프로이데를 자극하는 문화를 KBO 리그 팬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 팬들은 유독 상대 팀에 대한 비난에 민감하다. 라이벌 간에도 상호 존중과 선의가 중요하다지만 스포츠의 본질은 결국 경쟁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경기장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팬들끼리 적대 표현을 주고받는 데 거리낌이 없는 라이벌리는 흥행을 동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상대 팀을 조롱하는 걸개와 깃발이 경기장에 나부낀다. 수원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는 서울 팬을 깎아내리는 응원가 ‘패륜송’을 떼창한다. 서울 서포터즈 ‘수호신’ 역시 프렌테 트리콜로를 저격하는 노래 ‘가짜 지지자’로 화답한다. 때로 폭행 사태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솔직한 적대감이 라이벌전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도 사실이다.

스포츠 구단은 충성도 높은 팬을 원한다. 성적이 부진할 때도 욕을 할지언정 경기장을 찾아오길 바란다. 때로는 압도적인 1강을 노리기보다 맞수를 두는 게 충성심 제고에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 지금 KBO 리그에는 샤덴 프로이데를 자극하는 라이벌리가 필요하다.

 

야구공작소 조훈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재성,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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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은밀한 쾌감, 샤덴 프로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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