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야구, 유럽 야구

< 사진 출처 =  MLB.COM >

2023 WBC가 성황리에 열렸다. 아쉽게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호주전과 일본전의 패배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WBC에는 유독 유럽 팀들의 선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8강에 진출한 이탈리아의 선전과 함께 콜롬비아에 승리를 거둔 영국, 중국에 승리를 가져간 체코 등 과거에 비해 발전한 유럽 국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체코가 사상 최초로 WBC에 진출하는 장면 >

유럽의 야구는 중남미의 야구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리그에 유럽 국가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상위 리그에서 뛰는 야구선수들을 보유한 타 국가들과 팽팽한 경기를 보여주며 WBC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선수들이 자라날 수 있었을까?

 

유럽의 프로 리그

우리는 잘 알지 못했지만, 유럽에도 프로 리그가 있다. 세계 유럽 소프트볼 연맹은 41개국으로 구성된다. 이 연맹은 2018년 기존의 유럽 야구 연맹(Confederation of European Baseball)과 유럽 소프트볼 연맹(European Softball Federation)의 합병으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유럽의 야구 강국 네덜란드의 ‘혼크발 호프트클라시’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세리에 A’, 프랑스의 ‘디비시옹 엘리트’ 등 여러 국가에서 세미프로, 아마 야구의 형태로 리그가 존재한다.

혼크발 호프트클라시와 디비시옹 엘리트는 1920년대에 설립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그러나 타 스포츠와 경쟁에서 밀려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야구 리그인 혼크발 호프트클라시 역시 정규 시즌 팀별 약 50경기를 치를 뿐이다. 야구가 유럽 국가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인 경우는 드물다.

 

메이저리그 엘리트 캠프

하지만 유럽 야구는 비인기를 만회할 시스템이 있다. MLB는 야구 저변의 확장을 위해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야구 캠프의 확장을 이어갔다. 우선 MLBI(Major League Baseball Internatinoal) 주도 아래 국제적으로 엘리트 야구 캠프(Elite Baseball Camp)를 개최했다. 사무국은 캠프를 통해 재능 있는 선수들에게 전문화된 훈련과 교육을 제공한다. MLB 출신 선수들과 코치들로부터 야구 기술, 영양, 부상 예방 등의 내용을 담는다. 단순히 유럽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뤄진다.

< 2018년 MLB 유럽 엘리트 캠프가 개최되는 장면 >

이 아카데미를 수강한 선수 중 일부는 MLB 구단들과 계약했다. 이탈리아 최초의 야구선수 알렉스 리디를 시작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눈길을 끌었던 기프트 은고페 역시 이 캠프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리투아니아 최초의 메이저리거 도비다스 네브로스카스를 비롯해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맥스 케플러 역시 이 아카데미 출신이다.

이 캠프의 장점은 유럽의 재능 있는 청소년 선수들이 이른 나이에 선진 야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맥스 케플러는 만 17살에 루키 리그에 데뷔했다. 어린 나이에 루키 리그를 경험한 그는 3년 동안의 루키 리그 생활 후 차근차근 마이너리그 단계를 밟아 미국 진출 6년 후인 2015년 MLB에 데뷔했다.

꼭 MLB에 승격해야만 선진 야구를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선수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미국의 프로 리그에서 뛰었다. 국내 고교 야구의 경우더라도 단순히 국내 고교 야구만을 경험하는 것보다 미국의 선진 야구를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될 터. 이 아카데미는 유럽의 재능 있는 선수를 대상으로 높은 수준의 야구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특히나 선진 야구를 경험하기 쉽지 않은 유럽의 경우 MLB의 이런 지원은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유럽의 다양한 야구 관련 행사들

최근 WBC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일본과의 정기적인 평가전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정에 비해 유럽은 국가대항전 면에서도 활발하다.

우선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유럽지부가 주관하는 유럽 야구 선수권 대회가 있다. 아시아의 경우에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가 있지만 주로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회다. 성인 국가대표 선수들끼리 정기적인 경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1954년 처음 개최된 이 대회는 2010년 이후 격년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프로팀들끼리의 대결도 상당히 체계적이다. 프로팀 간의 대항전은 CEB 챔피언스컵, CEB컵, 페더레이션스컵의 3단계로 나눠진다. 마치 축구의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컨퍼런스리그처럼 말이다. 다만 축구의 경우 매 시즌의 리그 성적을 기준으로 출전팀을 구분한다. 그러나 야구의 경우, 마치 리그 경기처럼 국가대항전의 성적을 기준으로 승격과 강등을 결정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경우 ‘할렘 베이스볼 위크’라는 행사가 1961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2년마다 7월 초 개최되는 대회로 2022년 30회째를 맞이했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수준 높은 선수들이 출전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열렸던 2022년의 대회의 경우에도 쿠바는 WBC 통산 최다 안타를 기록 중인 세페다를 비롯한 국가대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일부 출전시켰다. 비록 프로 선수들을 출전시키지는 않지만, 일본과 미국의 경우 역시 자국 최고의 대학 선수들을 이 대회에 출전시킨다. 2022년 대회에는 미국 대학 야구 최고 유망주 딜런 크루스 역시 이 대회에 참가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 진출한 요시다 마사타카도 이 대회에 출전한 이력이 있다.

최근 MLB에서는 런던 시리즈를 개최하는 등 유럽의 야구 저변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유럽에서 최초로 메이저리그 정규리그 경기가 개최됐다.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대결로 펼쳐진 경기는 두 경기 합계 50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가 나며 영국인들에게 짜릿한 타격전을 선사했다. 두 경기 모두 매진되었을 만큼 이 경기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던 이 시리즈는 202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 더해 2024년, 2026년에도 개최될 예정이다.

< MLB 런던 시리즈 >

야구가 익숙지 않은 국가에서 경기 개최는 단순한 매출액뿐만 아니라 타국에서의 스포츠 팬층의 확장이라는 장점도 있다. 단순히 경기장에 찾아오는 사람 외에도 과거 TV나 다른 매체로 중계된 적이 없던 야구가 영국의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기회를 얻게 한다. 이에 대해 보스턴 레드삭스의 소유주 존 헨리는 런던 시리즈에 대해 “야구가 영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지며 영국의 야구 재능들이 발견되기를 원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야구의 인프라를 증가시키며 제3세계의 젊은이들이 야구를 즐기게 해 장기적인 야구의 세계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미국의 또 다른 인기 종목 NFL의 경우 2007년부터 런던에서 꾸준히 경기를 펼치고 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와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향후 5년 동안 파트너십을 맺었다. 2023년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를 시작으로 2024년, 2026년에도 런던 시리즈를 개최하기로 한 만큼 NFL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MLB와 교류가 전부는 아니다. 물론 유럽의 야구 열기는 타 야구 강국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유럽 역시 이들만의 방식으로 야구를 즐기고 있다.

우선 야구와 달리 소프트볼 수준이 높다. WBSC 세계 랭킹 기준 여자 소프트볼에서 체코,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각각 7위, 8위, 10위를 차지했다. 남자 소프트볼에서도 체코가 6위를 차지하는 등 야구에 비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핀란드의 경우 아예 야구를 개조해 페사팔요라는 새로운 경기를 만들었다. 페사팔요는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한 핀란드 육상 선수 라우리 피흐칼라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야구가 다소 지루하다고 생각해 야구의 몇 가지를 수정한 새로운 스포츠를 창조했다.

페사팔요는 야구와 여러 면에서 규칙이 다르다. 투구 시에는 공을 1m 이상 띄워 땅과 수직이 되게 던진다. 베이스는 지그재그처럼 놓여 있다. 배트의 규격도 야구와 다르다. 특히 홈런이 없는 것, 인플레이 타구 시 주루 플레이를 선택할 수 있는 점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주루 플레이를 요구하며 더 활동적이고 화려한 운동 능력을 보여주게 한다. 페사팔요는 핀란드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 페사팔요의 한 장면 >

최근 MLB도 베이스 크기를 늘리는 실험에 들어갔다. 도루 확률을 높여 선수들의 운동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핀란드는 바로 그 야구의 단점을 상쇄한 새로운 스포츠를 이미 즐기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처럼 유럽의 야구는 프로 리그 면에서는 국내 야구에 비해 미숙하지만, 더 개방적이며 활발하다. 유소년 육성 정책과 국제 교류의 면에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지 못한 시스템도 보유 중이다.

다소 변방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이들의 야구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 유럽 야구의 활약을 다음 WBC에서도 물론 앞으로의 국제 대회에서도 기대해 보자.

 

참고 = MLB.COM, CNN

야구공작소 최준혁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이금강, 전언수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1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