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재판 : 싱커의 역습 (2)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

역전재판 : 싱커의 역습 (2)

미국 최고의 타자를 잡은 슬라이더

2023 WBC 결승전. 일본의 투수 오타니 쇼헤이는 미국 최고의 타자 마이크 트라웃을 3-2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진으로 처리했다. 오타니가 3-2에서 선택한 공은 87마일에 17인치의 수평 움직임을 가진 슬라이더였다. 2022년 슬라이더를 던진 모든 투수 중 중앙값이 5.2인치인 것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일반적인 슬라이더는 아니었다.

모두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 공은 바로 ‘스위퍼(Sweeper)’이다. 스위퍼는 일반적인 슬라이더에 수평 움직임을 극대화한 구종으로 현재 MLB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구종이다. 오타니 또한 부족한 패스트볼을 보완하기 위해 작년부터 스위퍼의 구사 비율을 급격하게 올렸다. 그 결과 오타니의 스위퍼는 Run Value -25를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변화구 중 하나가 되었다.

스위퍼는 오타니뿐만 아니라 리그의 많은 투수들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스위퍼 그 자체가 아닌 싱커볼러들이 어떻게 이 공을 사용해서 화려하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이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스위퍼와 ‘더 꺾이는’ 싱커가 공유하고 있는 이론적인 토대, SSW로 되돌아가야 한다.

 

스위퍼, 싱커에 날개를 달아주다

SSW의 아이디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움직임을 회전축과 무관하게 추가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회전축에 의해서만 공의 움직임이 결정된다면 투수들은 필연적으로 수직 움직임을 위해 수평 움직임을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SSW을 잘 활용하는 투수들은 그럴 필요성이 적어진다. SSW은 횡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구종들에 회전축과 무관하게 추가적인 움직임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심 패스트볼과 비교하여 싱커의 회전축 편차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 2022년 투수들의 회전축 차이 분포 >

이 추가적인 움직임을 슬라이더에 입히려는 시도는 스위퍼를 탄생시켰다. 투수들은 기존 회전 효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종 슬라이더 대신 횡 움직임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회전 효율을 50%대까지 끌어올리고 회전축을 눕혀 최대한의 횡 움직임을 창출하는 슬러브 형태의 스위퍼와 투심 그립을 변형해 공기를 파쇄, SSW를 활용한 스위퍼가 고안되었다. 이 두 스위퍼의 공통점은 종적인 움직임을 다소 희생하는 대신 횡적인 움직임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이 슬라이더와 싱커에 적용된 ‘횡 움직임 극대화’는 둘의 회전축 편차를 벌려 놓았다. 투수의 팔 방향으로 움직이는 싱커와 그 반대로 움직이는 슬라이더는 서로 적용되는 횡 움직임의 방향이 반대이다. 이 움직임이 SSW로 인해 극대화되면서 결국에는 둘의 회전축이 180도로 마주 보게 되는 ‘스핀 미러링’을 발생시킨다. 즉 같은 포인트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갈라지는 ‘터널링 효과’를 예전보다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2020년의 회전축 데이터1 >

기존의 좋은 ‘미러링 조합’이었던 포심 패스트볼-커브의 맹점은 커브에 있었다. 커브 특유의 릴리즈 시 궤적이 뜨는 현상은 타자들이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를 더 잘 구별하게끔 했다. 이 문제점을 보완한 너클 커브는 수준급의 악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던질 수 없는 구종이다. 좋은 회전 효율과 수직에 가까운 팔 각도를 가지고 있는 투수가 아니면 쉽사리 쓸 수 없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슬라이더는 그렇지 않다. 투수 대부분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슬라이더를 구사한다. 커브에 비해 타자들의 구별도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슬라이더와 궤적이 상반되는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보다는 싱커에 가깝다.

 

판은 이미 뒤집히고 있다

< 득점 억제에 중요한 변수1 >

SSW를 소개한 드라이브 라인의 글에는 아주 재미난 연구 결과가 있다. 수직 움직임, 수평 움직임, 팔 각도, 구속, 회전축을 예측 변수로 득점력을 예측했을 때 수직 움직임에 이어 회전축 편차가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2020년 당시는 단축 시즌이었으니 샘플 데이터가 한정되었다는 주석을 덧붙였다.

2년의 데이터가 풀 시즌으로 쌓인 지금, 이를 확대해 싱커 자체의 득점력 억제에 어떤 변수가 영향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베이스볼 서번트 자료를 이용해 변수 중요도를 분석해봤다. 100개 이상의 싱커를 던진 545명의 투수를 대상으로, 타겟은 타자들의 헛스윙률로 설정했다. 변수 중요도는 원 글의 Random Forest에서 조금 더 확장한 알고리즘인 Xgboost에서 제공하는 것을 활용했다.

< 싱커의 헛스윙률 예측 모델의 변수 중요도2 >

이 결과 회전축 편차가 헛스윙률에 높은 상관도가 보임을 볼 수 있다. 물론 데이터가 적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이뤄지지 않았고, 헛스윙률에는 상기의 변수를 제외하고도 많은 변수가 있기에 100%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회전축 차이가 수직 움직임이나 수평 움직임만큼 타자의 공격력 억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SSW의 등장으로 중력과 마그누스 효과 이외에 공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생겼다.
  • 둘째, 이 효과는 횡 움직임을 띄는 싱커와 슬라이더에 효과적이며 이 두 구종은 회전축을 반대로 함으로써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 셋째, 아직 적은 샘플이지만 회전축 차이가 상대 타자들의 공격 지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수직 움직임, 수평 움직임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

아직 SSW는 야구계에서 화두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이론이지만, 작년의 스위퍼 열풍과 싱커의 반등으로 어느 정도 실제 경기에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횡 움직임의 구종들은 포심 패스트볼–커브를 위시한 종 움직임 구종과의 경쟁에서 훌륭한 무기를 얻었다.

<싱커재판>에서 싱커볼러들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2년이 지난 지금, 싱커볼러들은 결국 시대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찾아낸 듯하다. 그리고 이 ‘역전재판’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브래디 싱어 이야기

싱커의 반격이 시작된 2020년, 로열스는 팀 내 유망주 2위이자 2018년 1라운드 지명자인 싱어를 데뷔시켰다. 90마일 중반대의 싱커와 80마일 중반대의 슬라이더가 인상적이었던 싱어는 첫 풀 타임 시즌에서 경기당 5이닝도 소화하지 못하면서 뒷걸음쳤다(27G 128.1이닝 ERA 4.91).

이렇게 맞이한 2022년, 싱어는 예상을 깨고 날아올랐다. 24게임을 선발로 등판하면서 153.1이닝을 소화, 팀 내 WAR 리더가 됐다(bWAR 4.5, fWAR 2.9 모두 팀 내 1위). 이 성장의 원동력에는 싱커가 있었다. 2021년 Run Save -11로 리그에서 4번째로 가치가 낮았던 싱어의 싱커는, 2022년 +4로 반등에 성공했다.

활약의 비결은 회전축 차이를 이용한 싱커와 슬라이더의 ‘미러링3이다. 싱어의 슬라이더 관측 회전축과 회전 기반 회전축 편차는 무려 105도로 100개 이상 슬라이더를 던진 투수 중 4위에 올라있다. 이를 바탕으로 싱어는 싱커와 슬라이더의 완벽한 미러링을 이뤄냈는데, 싱커와 슬라이더의 관측 회전축 편차는 210도로 완벽한 미러링과 30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싱어는 SSW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투수는 아니다. 싱커의 관측 회전축과 회전 기반 회전축 편차는 -45도 정도로, 두각을 드러낸 작년뿐만 아니라 그 전 두 시즌에도 회전축4 편차는 일정했다. 슬라이더 역시 회전 효율이 높은 스위퍼의 특징을 띄지 않는다. 전형적인 종 슬라이더로 올해 슬라이더의 회전 효율은 21%에 그쳤다. 실제 움직임도 횡적인 움직임보다는 종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횡 움직임 리그 평균 대비 -42%, 종 움직임 리그 평균 대비 +3%).

< 브래디 싱어의 2022년 회전 기반 회전축과 관측 회전축 >

즉, 싱어는 그동안 움직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자이로 회전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움직임으로 싱커와의 터널을 ‘뚫어내고’ 있다.

이것이 SSW와 비슷한 원리로 야구공의 그립으로 공기 흐름을 파쇄시켜 만들어 낸 움직임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역학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종 슬라이더뿐만 아니라 스위퍼를 비롯한 횡 슬라이더에도 어느 정도의 자이로 회전이 들어가기에 이 비밀이 밝혀지면 회전 효율이 낮은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또다시 피칭 디자인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이렇듯 싱커와 포심 패스트볼, 더 나아가 횡 움직임과 종 움직임 간의 대결은 아직 진행 중이다. 뜬공 시대로 종 움직임의 구종들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이제 그 영역을 싱커와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한 횡 움직임의 구종들이 되찾아가는 모양새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져 있던 ‘공 움직임’의 마법이 실체를 드러낼수록 ‘싱커재판’은 열기를 더해갈 것이다.

 

참고 = Fangraphs.com, Baseball America, Drivelinebaseball, The Athletic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양재석,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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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는 슬라이더가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하면서 싱커와의 미러링이 만들어졌다.
  2. 변수는 순서대로 회전축 편차, 회전수, 공의 수직 움직임, 구속, 공의 수평 움직임, 회전 효율
  3. 두 구종의 회전축 차이가 서로 바라보고 있는 각도인 180도일 때 이것을 ‘스핀 미러링’이라고 한다. 두 구종의 궤적이 타자가 배트를 나오게 하는 포인트 전까지 겹치게 되면 이 회전축 차이로 인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갈라져 타자의 헛스윙을 유발한다.
  4. 회전 기반 회전축은 호크아이로 측정되는 야구공의 회전을 기반으로 관측되는 회전이고, 관측 기반 회전축은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역산한 회전축이다. 무브먼트가 온전히 마그누스 힘으로만 만들어진다면 관측 기반 회전축과 회전 기반 회전축은 일치한다. 이 차이는 순전히 마그누스 힘 이외의 다른 요소로 무브먼트가 발생할 경우 발생한다.

1 Comment

  1. 좋은 칼럼이네요. 구종의 패권이 VAA우위를 점하는 구종에서 HAA우위를 점하는 구종으로 넘어가고 있죠. 이게 타자들의 스윙궤적이 변화함에 따라 투수들도 그에 맞춰서 변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메이저리그의 두뇌싸움은 역시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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