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들의 퍼스널 컬러 찾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영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의 주무기는 커터다. 그의 커터는 역사상 최고의 구종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이 커터 하나로 리베라는 최초의 명예의 전당 만장일치 헌액자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리베라는 커터를 우연한 기회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커터는 마이너리그 시절 캐치볼 상대였던 불펜 포수 라미로 멘도자가 “너의 패스트볼이 횡 무브먼트를 가진다”는 이야기를 하며 시작됐다. 리베라는 자신의 선천적인 직구 무브먼트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투수는 본인만의 특수한 공 무브먼트를 가진다. 어떤 투수는 좌우로 더 많이 휘는 무브먼트를 가지고 어떤 투수는 아래로 더 많이 떨어지는 무브먼트를 보여준다. 이는 투구폼, 공을 놓는 위치, 스핀 효율 등 많은 요인으로 정해진다.

가령 수평 무브먼트가 뛰어난 투수라면 어떤 구종이 더 잘 어울릴까? 일반적으로 그 무브먼트를 극대화할 수 있는 브레이킹볼일 것이다. 스위퍼가 그 예이다.

이렇듯 최근 피치 디자인에 있어 투수 고유의 무브먼트를 파악하고 이를 살리며 좋은 활약을 펼치는 투수들이 있다. 

 

수평 무브먼트를 강하게 : 에릭 페디

2023시즌 KBO 리그를 지배한 에릭 페디. 페디 하면 떠오르는 구종은 스위퍼다. 하지만 페디는 2022시즌까지 스위퍼는 물론 슬라이더조차 던지지 않았다. 그의 주무기는 바로 커브였었다.

2022년 페디는 28.8%의 비율로 커브를 던졌지만, 피안타율 0.321를 기록하며 좋지 못했다. 원인은 커브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디의 커브는 평균에 비해 7.1인치나 덜 떨어졌다. 여기에 리그 평균인 81마일보다 떨어지는 구속의 커브는 타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주목할 점은 커브의 횡 무브먼트다. 페디의 커브 수평 무브먼트는 리그 평균보다 4.3인치, 무려 평균보다 41%나 더 큰 무브먼트를 보였다. 마치 슬러브와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 페디의 스위퍼 그립 >

페디는 2022시즌이 끝나고 자신이 상대를 제압할 확실한 구종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겨우내 애리조나에서 변화구를 다듬었다. 특히 그의 커브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그 결과가 스위퍼였다. 

기존에 던지던 커브는 종 무브먼트가 부족하고 횡 무브먼트가 강했다. 이 강한 횡 무브먼트를 더욱 활용하기 위해서 스위퍼를 배운 것이다. (다만 페디는 이를 스위퍼라고 특별하게 부르진 않는다)

페디는 오프시즌 동안 자신의 횡 무브먼트를 살릴 수 있는 그립을 만들고 연구했다. 종 무브먼트를 줄이고 횡 무브먼트를 유지하며 70마일대 후반의 구속을 평균 83마일대까지 끌어올렸다. 그렇게 페디의 스위퍼는 KBO에서 수많은 헛스윙을 이끌며 압도적인 무기가 됐다.

< 2024시즌 페디의 구종별 무브먼트 각도 >

또한 페디는 좌우 무브먼트의 차이를 활용해 피치 터널을 만들 수 있는 구종 조합을 선택했다. 위의 무브먼트 각도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퍼와 체인지업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인다.

흔히 횡 무브먼트는 글러브 사이드(Glove-side)와 암 사이드(Arm-side)라는 두 개의 무브먼트로 분리된다. 글러브 사이드는 투수의 글러브 방향으로 꺾이는 무브먼트를 의미한다. 우투수의 페디의 경우 왼손에 글러브를 끼기에 왼쪽으로 휘는 스위퍼가 글러브 사이드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투수 손의 방향으로 꺾이는 무브먼트는 암 사이드 무브먼트라고 한다. 싱커나 스크류볼 같은 구종이 그렇다. 페디는 이 두 무브먼트의 차이를 활용하기 위해 앞서 이야기한 스위퍼와 함께 체인지업의 그립을 암 사이드 무브먼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수정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페디는 KBO를 넘어 메이저리그에서도 훌륭한 선발 투수로 자리 잡고 있다.

 

수직 무브먼트를 강하게: 로버트 스티븐슨

페디가 횡 무브먼트를 살리는 구종으로 변화했다면 스티븐슨은 그 반대다. 스티븐슨 2023시즌까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수많은 팀을 전전했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2023시즌 중 피츠버그에서 탬파베이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스티븐슨은 2022시즌 50.5%의 비율로 슬라이더를 던질 정도로 슬라이더에 자신이 있는 투수였다. 하지만 슬라이더 하나로는 부족했다. 슬라이더의 피안타율은 0.170을 기록한 것에 비해 패스트볼은 0.38을를 기록했다.

리그 최고의 투수 개발 시스템을 가진 탬파베이는 스티븐슨의 투구에 집중했다. 특히 투수 코치였던 카일 스나이더가 그의 슬라이더에 주목했다. 이후 스티븐슨에게 손 놓는 위치 변화 등의 여러 방법을 이야기하며 슬라이더의 변화를 요구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스나이더는 스티븐슨의 강력한 슬라이더를 더욱 많이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꾸고자 한 것이다. 그의 슬라이더는 횡 무브먼트가 부족한 대신 종 무브먼트가 좋은 슬라이더다. (리그 평균보다 9% 높다)

이 종 슬라이더의 회전축을 기존의 슬라이더와는 정반대로 가져가면서 종 무브먼트를 극대화했다. 횡 무브먼트가 부족한 슬라이더를 직구의 회전축과 비슷하게 만들어 구속을 올리고 특유의 큰 종 무브먼트를 살리며 보완한 것이다. 그리고 슬라이더를 더욱 많이 구사하며 타자들에게 쉽게 공략당했던 패스트볼의 구사율은 줄였다.

효과는 대단했다. 바뀐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한 6월 18일부터 시즌 끝까지 33.2이닝 2.41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고 무려 14.44의 9이닝당 탈삼진율을 기록했다. 이전까지 4.34의 평균자책점으로 평범한 불펜 투수였던 그가 슬라이더의 회전축을 바꾸며 리그 최정상급 불펜 투수로 변화한 것이다.

< 스티븐슨의 구종 변화 전후 우타자 상대 투구 구사율 차이 >

우타자 상대로는 무려 81%의 슬라이더 구사율을 보였다. 헛스윙률은 65.3%였다. 타자가 세 번 스윙하면 두 번은 헛스윙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 스티븐슨의 구종 변화 전후 좌타자 상대 투구 구사율 차이 >

또한 이러한 변화는 2023년 새로 장착한 체인지업과도 좋은 궁합을 보였다. 스티븐슨의 체인지업은 슬라이더와 달리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휘는 무브먼트가 강했다. 구속도 비슷했다.

이를 활용해 좌타자 상대로 종 무브먼트가 강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섞어 던지기 시작했다. 다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횡 무브먼트 차이를 이용해 피칭 터널을 만들어 좌타자의 눈을 속이고자 했고 이는 좋은 결과로도 이어졌다.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찾아라

최근 한국에서는 퍼스널 컬러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사람마다 지닌 고유의 피부톤을 퍼스널 컬러로 부른다. 자신의 퍼스널 컬러에 맞는 색의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게 되면 더욱 이쁜 스타일이 완성된다.

투수들에게도 퍼스널 컬러가 존재한다. 어떤 투수는 컷이 많이 먹는 톤일 수 있고 어떤 투수는 반대로 테일링이 강한 톤일 수도 있다. 혹은 종 무브먼트에 위력을 보이는 톤일 수도 있다.

페디는 자신의 무브먼트를 깨닫고 피치 터널링을 통해 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구종 조합을 만들었다. 반면 스티븐슨은 위력적인 단 하나의 구종으로 승부해도 무방한 투수로 변화했다. 이렇듯 자신의 맞는 피치 퍼스널 컬러를 파악해 더욱 매력 있는 스타일의 투수가 될 수 있다.

앞으로도 어떤 투수들이 자신의 투구 퍼스널 컬러를 인지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참고 = Baseball Savant, 연합뉴스, MLB.COM

야구공작소 이재성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안세훈,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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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좋은 글 보고갑니다. 구종은 아니지만 두산으로 이적해 하이 패스트볼을 주로 사용해 리그에서 수준급 불펜이 된 홍건희 선수가 생각나네요. 선수마다 본인에게 맞는 래퍼토리, 구종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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