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슬라이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사진 출처 = Javier Baez instagram >

최근 야구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스위퍼’다. 스위퍼는 기존 슬라이더에 비해 구속은 느리지만 큰 횡 무브먼트를 앞세워 타자를 상대한다. 이런 스위퍼로 WBC 결승에서 오타니가 트라웃 상대 잡아낸 삼진은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명장면으로 남게 됐다. 오타니에게 최종 결정구로 채용된 구종은 100마일의 패스트볼이 아닌 스위퍼였다는 점 역시 최신 투구의 트렌드를 잘 보여줬다.

< 2015~22시즌 MLB 패스트볼(포심, 투심, 커터), 슬라이더(슬라이더+스위퍼) >

최근 MLB에서는 패스트볼보다 변화구를 더 구사하고 있다. 그중 슬라이더의 비율이 특히 많이 늘어났다. SSW(Seam Shifted Wake) 효과의 혜택을 받은 싱커와의 궁합과 스위퍼의 등장이 적지 않게 영향을 줬다. SSW 효과는 투구시 실밥이 있는 야구공의 거친 부분과 실밥이 없는 매끄러운 부분이 비대칭을 이루면 난기류가 생기는 실밥 방향으로 공이 움직인다는 주장이다. (SSW 효과에 대한 설명) 그뿐만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구종의 구사율을 높이는 것이 타자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 역시 힘을 실어줬다. 결국 모든 투수가 굳이 패스트볼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슬라이더 때문에 타자들은 기존보다 대처가 쉽지 않아졌다.

 

기존 타자들의 대처법

야구 중계를 통해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직구 타이밍에 나가다가 슬라이더가 걸렸다.” 변화구는 패스트볼 타이밍에 나가더라도 대처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많은 타자는 기본적으로 변화구가 아닌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타석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그냥 평소대로 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 의 인터뷰 내용을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카를로스 코레아는 “슬라이더를 노려 친다면 칠 수 있다. 슬라이더가 리그를 지배하는 것은 98, 99, 100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지고 있어서이다. 이때 85, 88마일 슬라이더를 던지면 속을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선발 투수가 90, 91마일의 패스트볼과 82, 83마일의 슬라이더 던졌기에 대처가 어렵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구속 증가로 더 이상 동시에 다른 구종을 노리기는 힘들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2015~2023시즌 MLB 패스트볼(포심, 투심, 커터) 구속변화 (5/2 기준) >

 

슬라이더를 노리면 되는 것 아닐까?

패스트볼을 이전처럼 많이 던지지 않는다면 비율이 높아진 슬라이더를 노려치면 되는 일 아닌가? 물론 이럴 경우 패스트볼은 대처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비율이 낮아진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무조건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춘다는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다. 가위바위보에서 특정 하나를 유의미하게 더 많이 낸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면 이 확률에 걸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극단적인 예시로 슬라이더와 직구를 8:2로 던지는 투수 상대 시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효율적인 접근일 수도 있다. 특히 패스트볼이 빨라진 시점에서 다른 구종을 동시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면 더 설득력을 얻는다.

< 2023시즌 MLB 슬라이더+스위퍼 구사율 순위 (5/2 기준, 최소 100구 이상 투구) >

 

Swing/Take를 통한 방향 설정

< 1988년부터 1,000타석 이상 기록한 MLB 타자들의 Run Values on Swings/Takes 산점도 >

위 사진은 1988년부터 최소 1,000타석 이상 소화한 MLB 선수들의 Swings/Takes의 득점 가치를 나타낸 산점도이다. 조금 어색하지만, Swing/Take를 번역하면 타자가 스윙할 경우/스윙하지 않을 경우 얻어낸 득점 가치를 말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문단의 링크 참고) 재밌는 점은 다수의 타자가 Take를 통해 양의 득점 가치를 얻었지만, 스윙을 통해서는 음의 득점 가치를 얻어냈다. 물론 ‘배리 본즈’, ‘매니 라미레즈’ 같은 두 부분에서 모두 양의 높은 양의 득점 가치를 기록한 예외적인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둘은 약물로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제프 벡웰’’, ‘켄 그리피 주니어’, ‘짐 토미’, ’치퍼 존스’ 같은 타자들마저도 스윙으로 음의 득점 가치를 기록했다.

이것은 어떤 점을 시사할까? 스윙으로 커리어 동안 양의 득점 기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Take를 통해 득점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톰 탱고는 “다른 배팅 스킬보다 스트라이크 존 판단(strike zone judgement)이 타자에게는 1순위”라고 의견을 트윗에 내기도 했다. 이어 ‘데이빗 오티즈’, ‘짐 토미’가 스윙을 통해 음의 득점 가치를 기록했음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리한 카운트와 관련이 있다.” ‘데릭 지터’의 성공 역시 Take 능력을 언급하며 카운트 선점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추가적인 Swing/Take 설명글)

따라서 카운트 싸움이 타자에게는 성공의 열쇠이다.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한다면 다른 이점도 있지만 투수에게 특정 구종을 강요할 수 있다. 과거에는 타자들이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하고 투수에게 존 안에 패스트볼을 강요했다. 이때 투수가 패스트볼을 많이 던졌던 큰 이유는 제일 제구 잡기 용이한 공이기 때문이다. 

실제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 봤다. 여전히 투수들은 불리한 카운트에서는 대부분 패스트볼을 많이 구사했다. 하지만 2스트라이크 이후 패스트볼의 구사율은 거의 절반도 구사하지 않는 수치까지 하락했다. 반면 2스트라이크 이후 슬라이더, 스위퍼의 구사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 2019~2022 MLB 투수들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슬라이더+스위퍼 구사율 변화 >

< 2022시즌 MLB 카운트별 (좌) 패스트볼 구사율, (우) 슬라이더, 스위퍼 구사율 >

아래 그래프는 특정 카운트별 타자의 슬라이더와 스위퍼에 대한 헛스윙 확률을 등고선으로 나타낸 것이다. 2022시즌 MLB  모든 투구의 수직, 수평 로케이션을 통해 로케이션 유형별 헛스윙률을 도출했다. (국소 회귀(loess) 사용) 예로 count 21은 2볼 1스트라이크 상황이다. 아래쪽을 보면 원이 큰 것을 통해 타자들은 불리한 카운트에서 존 기준으로 크게 벗어난 구간의 슬라이더에 헛스윙 확률이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불리한 카운트가 어려운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프를 통해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다. 카운트가 몰리면 패스트볼을 노릴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위닝샷으로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계속 늘리고 있다.

< 2022시즌 MLB 타자들의 슬라이더+스위퍼의의 특정 카운트별 헛스윙 경향 >

결국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타자는 승부를 봐야 하며 배팅 카운트라면 패스트볼을 어서 치고 나가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슬라이더를 많이 구사하는 투수들 역시 불리한 카운트에서 패스트볼을 많이 구사할까? 위에서 빠른 공을 보유했지만, 슬라이더 비율이 높았던 두 투수 ‘그리핀 잭스’(미네소타 트윈스)와 ‘조던 로마노’(토론토 블루제이스)를 통해 알아봤다. 

< 2022시즌 조던 로마노(좌), 그리핀 잭스(우)의 카운트별 슬라이더 구사율 >

재밌게도 잭스와 로마노는 똑같이 슬라이더 구사율이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투수였지만 카운트별로 구사율은 달랐다. 특히 로마노의 경우 ‘2-1’, ‘2-0’ 같은 타자의 카운트에서 80%가 넘는 슬라이더 구사율을 보여줬다. ‘3-0’, ‘3-1’ 같은 볼넷의 위험이 있는 카운트에서는 두 투수 모두 다른 투수들과 비슷하게 슬라이더의 비율을 줄이고 패스트볼의 비율을 높였다.

그렇다면 타자는 상대 투수의 슬라이더 비율이 높더라도 투수의 전략에 따라 그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잭스를 상대할 때는 카운트가 유리하더라도 슬라이더를 노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로마노를 상대할 때는 ‘카운트가 유리하다면 슬라이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슬라이더가 볼로 주로 들어온다면 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로마노의 로케이션을 살펴보면 카운트가 몰린 만큼 존 안에 주로 탄착군이 형성되었다.

< 2022시즌 로마노 2B 0S, 2B 1S 슬라이더 로케이션(범례의 X는 타격) >

 

야구는 돌고 돈다

메이저리그는 이미 선발투수에게 많은 타순을 돌게 하지 않으며 타자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투수가 같은 공을 많이 구사하면 그 공 역시 타자들의 눈에 익숙해진다. 즉 슬라이더의 구사율이 점점 높아진다면 좋은 슬라이더라도 타자들은 곧잘 적응할 것이다. 많은 타자가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노리거나 잘 속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더 빨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까지는 슬라이더가 효과적으로 타자들을 공략하고 있지만 이 트렌드는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나중에 다시 투수들은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지지 않을까? 그때 다시 이 글로 돌아와 보자.

 

참고 =  Tangotiger twitter, Theathletic.com, Baseball Savant 

야구공작소 순재범 칼럼니스트

에디터 = 홍기훈,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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