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남경무] 흔히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 일컬어진다. 안타나 삼진 등 투수와 타자 간의 결과물뿐 아니라 자살과 보살, 도루와 도루 저지 등 주자와 야수 간의 대결도 모두 기록되어 나타난다. 심지어 매 투구 스트라이크/볼 여부까지 기록되는 등 경기의 세세한 상황까지 모두 기록된다. 이 덕분에 기록지만 보고도 그 경기를 어느 정도 복기할 수 있어 기록지는 그 경기를 증명하는 인증서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록지를 어떻게 읽고 쓰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시행된 ‘기록강습회’와 2011년부터 시행된 ‘전문기록원 양성과정’을 수강하여 야구 규칙을 일정 수준 이상 숙지한 사람들도 자책점 판정 내용은 종종 헷갈려 한다. 여러 선수가 실점에 얽혀있기 때문에 그 책임 소재를 누구의 것으로 해야 하는지 어렵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어떤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어느 선수가 져야 하는지 야구 기록 규칙에 근거해 다뤄보고자 한다.
1. 자책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자책점을 둔 투수들 간의 책임 공방이다. 앞선 투수 A가 주자를 남겨두고 구원투수 B가 홈런을 맞은 경우, 주자의 득점으로 인한 자책점은 A에게, 타자 주자의 득점으로 인한 자책점은 B에게 주어지는 것은 야구 팬이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홈런이 터지지 않으면 계산이 깔끔해지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앞선 투수 A가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무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B에게 마운드를 넘겨준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후 B가 3루 방향 땅볼을 유도해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3루수가 3루 베이스를 밟아 2루 주자(ㄱ)를 포스 아웃, 2루에 송구해 1루 주자(ㄴ)도 포스 아웃으로 잡아냈다.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새로운 투수 C가 올라와 B가 내보냈던 1루 주자(ㄷ)에게 도루를 허용하고 안타를 맞아 1실점 했고 이후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림1 참고)
위 가정에서 A가 내보낸 주자는 병살 플레이 때 모두 소멸했다. 득점한 주자는 B가 내보낸 주자다. 반면 C는 도루를 허용하고 안타를 맞았다. 그렇다면 이 실점은 누구의 자책점인 것일까? 정답은 A의 자책점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다. 애초에 A가 내보낸 주자가 없었다면 B는 평범한 3루수 앞 땅볼로 타자 주자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C가 안타를 맞아서 실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공식야구규칙 10.18 (g)항을 보면 ‘이닝 도중 투수가 교체되었을 경우 전임투수가 남긴 주자의 득점 및 전임투수가 남긴 주자를 아웃시킬 때 선택수비로 출루한 주자의 득점은 구원투수가 아닌 전임투수의 책임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위에서 가정한 상황에 대입해보면 전임투수(A)가 남긴 주자(ㄱ, ㄴ)를 아웃시킬 때 선택수비(야수선택)로 출루한 주자(ㄷ)의 득점은 구원투수(B)가 아닌 전임투수(A)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2. 볼넷
두 번째 경우는 한 타자를 상대하던 도중 투수가 교체되어 볼넷을 내준 경우다. 이는 자책점은 물론, WHIP, BB/9(혹은 BB%) 등의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는 문제다. 만약 볼카운트 0-2에서 투수가 교체되어 구원투수가 볼넷을 허용한다면 당연히 구원투수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3-0에서 구원투수가 등판했다면 볼을 단 하나도 던지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볼넷을 구원투수의 책임으로 보기엔 너무나 가혹하다.
볼카운트 0-2, 3-0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명백해 보이지만 애매한 볼카운트의 경우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이는 공식야구규칙 10.18 (h)항을 통해 명시되어 있다. (표1 참고)
표1에 따르면 전임투수가 볼을 던지지 않았거나 1개만 던졌을 경우에는 볼넷을 허용할 확률이 낮다고 보고 볼넷을 구원투수의 책임으로 보지만, 볼 3개를 던진 상황에서는 비록 3-2 풀카운트라 하더라도 전임투수에게 볼넷의 책임을 지게 했다. 전임 투수가 볼 2개를 던졌다면 스트라이크도 2개를 던졌어야만 볼넷 책임을 구원투수에게 넘길 수 있다. 이 결과를 지난해 KBO리그의 볼카운트별 볼넷 비율과 비교해 보자.
표2에 따르면 지난해 볼넷이 나온 비율은 9.33%였다. 이 값의 두 배인 18.66%보다 작은 구간은 초록색으로 표시했고 18.66%보다 큰 구간은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이 기준으로 나눠본 결과는 표1에서 확인했던 책임소재 구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즉, 볼카운트 0-0에서 시작했을 때보다 볼넷이 나온 비율이 두 배 이상 되는 구간에서 투수가 교체됐다면 전임투수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는 볼넷을 허용할 확률이 두 배 이상 높아진 볼카운트에서 공을 넘겨받은 구원투수를 구제해 주는 합리적인 계산이라 볼 수 있다.
3. 삼진
이번에는 투수 시점이 아닌 타자 시점의 경우다. 타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타자가 교체되고 삼진을 당했다면 그 삼진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정답은 2번째 스트라이크가 선고된 때 타석에 있던 선수다. 이는 공식야구규칙 10.17 (b)에 근거한다. 자세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타자 A가 볼카운트 0-1에서 대타 B로 교체됐다. B가 볼을 3개 골라낸 후 스트라이크 하나를 지켜봤다. 볼카운트는 3-2, 풀카운트. 이후 또다시 대타 C가 나와 2구 연속 파울을 만든 뒤 다시 대타 D가 나와 삼진을 당했다면 그 삼진의 기록은 B에게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림2 참고)
이번에도 위와 같은 판정 기준이 합리적인지 지난해 KBO리그의 볼카운트 별 타석당 삼진 비율을 통해 확인해보자.
다만 위에서 가정했던 상황을 적용해보면 타자 B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먼저 각 타자가 맞이한 볼카운트를 보자. A는 첫 번째 타자이므로 0-0이고, B는 0-1, C와 D는 3-2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타자 B는 볼카운트 0-1에서 3-2 풀카운트까지 이끌어갔다. 삼진 비율을 24.36%에서 21.57%로 2.79%P 낮추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결국 D가 삼진을 당하면서 그 기록은 B가 떠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표3에 근거하여 타자에게도 볼카운트별로 삼진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투수에게 볼넷의 책임을 묻는 경우는 전임 투수, 구원 투수 둘만 고려하면 되기에 책임을 결정하기 어렵지 않다. 공식야구규칙 3.05 (b)에 의해 투수 교체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타자는 대타 기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볼카운트에 따라 전임 타자, 대타자의 책임을 물을 경우 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맹점이 있다. 따라서 현행 방식인 두 번째 스트라이크가 선고된 때에 타석에 있던 선수에게 삼진을 부여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 외에도 야구 기록 규칙에는 평소에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한 다양한 대처 방식이 명시되어 있고 그 이유 또한 굉장히 논리적이다. 간혹 ‘파울팁을 포수가 바로 포구하지 못하고 펌블하는 과정에서 다른 야수가 그 공을 잡은 경우 규칙 적용 방법’과 같이 실제로 일어나기 매우 힘든 일은 기록규칙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어떤 규칙을 근거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심판원들과 기록원들이 회의해 합리적 결정을 도출하고 있다.
야구 규칙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야구 경기도 마찬가지이다. 야구 규칙에 대한 관심은 이제 막 출발한 2017 KBO리그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기록 출처: STATIZ.co.kr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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