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파베이 레이스의 주전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야구공작소 최윤석] 최근 탬파베이 레이스는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와 6년 5,350만 달러의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그런데 몇몇 야구팬은 ‘수비만 잘 하는 반쪽짜리 선수에게 연 평균 900만 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아깝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표1. 키어마이어 연도별 성적
실제로 키어마이어의 수비는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라고 인정을 받았지만 타격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통산 wRC+(조정 득점생산력, 메이저리그 평균은 100)는 105로 매우 평범한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야구팬들은 그를 평범한 메이저리그 선수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키어마이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인 키어마이어의 숨겨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한다면 900만 달러는 전혀 아깝지 않은 금액이 될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키어마이어의 수비
키어마이어의 수비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키어마이어는 최근 두 시즌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으며, 골드글러브 수상자 중 가장 수비를 잘 하는 선수에게 주는 플래티넘 글러브까지 받았다. 역설적으로, 플래티넘 글러브 수상자의 수비실력은 지난 시즌 키어마이어가 손목 골절로 두 달 가량 결장했을 무렵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키어마이어 대신 중견수로 출전하는 동안 중견수 방면으로 향하는 타구에 가장 긴장했던 사람들은 탬파베이 팬이었다.
표2. 2016년 탬파베이 레이스 중견수 수비 성적(100이닝 이상)
*DRS: 야수가 막아낸 득점을 보여주는 지표
*UZR/150: 150경기에 출전시 평균보다 얼마나 많은 실점을 막아냈는지 보여주는 지표
지난 시즌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100이닝 이상 중견수 수비를 소화한 선수들 중 어느 누구도 키어마이어 같은 수비를 해내진 못했다. 수비로 팀에 공헌한 정도를 나타내는 DRS(Defensive Runs Saved)와 UZR/150(Ultimate Zone Rating)은 키어마이어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다(표2). 특히 키어마이어가 기록한 25의 DRS는 부상으로 정규 이닝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의 중견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림1. 2016년 키어마이어가 안타를 허용한 타구의 체공 시간 및 비거리
키어마이어의 수비는 탬파베이 투수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탬파베이는 주로 뜬공을 유도하는 투수들로 투수진을 구성했다. 지난 시즌 탬파베이 투수들의 땅볼 대비 뜬공 비율(GB/FB)은 1.05로 리그 평균인 1.29에 한참 못 미쳤다. 키어마이어의 경이로운 수비는 팀 투수들이 아웃 카운트를 늘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16년 키어마이어가 잡기 쉬운 타구(Easy, Routine) 중 안타를 허용한 것은 단 한 개뿐이었다(그림1). 하이라이트 급의 어려운 타구도 고작 십여차례 안타를 허용한 정도에 그친 무시무시한 그의 수비력은 투수들의 기록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표3. 40이닝 이상 투구한 탬파베이 투수의 중견수 방면 타구 BABIP 변화
지난 시즌 키어마이어의 출전 여부에 따라 투수들의 중견수 방면 타구의 BABIP(인플레이 타구의 타율)는 크게 차이가 났다. 키어마이어가 중견수 자리에 서 있을 때 탬파베이 투수들의 중견수 방면 타구의 BABIP는 메이저리그 평균(0.313)보다 1푼 가량 낮았다(표3). 그러나 키어마이어가 수비를 하지 않으면 같은 방향으로 간 타구의 BABIP는 무려 6푼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키어마이어의 가치가 수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타격의 가치
키어마이어는 메이저리그에서 3할 타율이나 30홈런, 100타점 등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세부 기록을 살펴보면 키어마이어의 숨겨진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는 강한 2번 타자다. 최근 5시즌 동안 증가하는 리그 2번 타자의 wRC+가 그 증거다(2012년 95, 2013년 99, 2014년 102, 2015년 107, 2016년 103). 지난 해 탬파베이의 2번 타자는 120의 wRC+를 기록하며 이 트렌드를 주도했으며 그 중심에는 키어마이어가 있었다.
표4. 2016년 탬파베이의 2번 타자 성적(50타석 이상)
지난 시즌 키어마이어는 2번 타순에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222타석에 들어섰다. 지난 시즌 그의 wRC+는 104로 메이저리그에서 평범한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2번 타순에서는 .278/.356/.434의 준수한 슬래시 라인과 119의 wRC+를 기록하며 타격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표4). 지난 해 메이저리그에서 2번 타자로 출전한 중견수의 wRC+가 93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키어마이어는 중견수 겸 테이블세터로서 평균 이상의 타격을 할 수 있는 선수다.
지난 해 키어마이어는 2번 타순에서 평균 이상의 타격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10%에 가까운 BB%(볼넷/타석 비율)를 기록하며 선구안 역시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활약 덕분에 키어마이어는 2017년 탬파베이의 1번 타자로도 거론되고 있다.
발전하는 주루 플레이
키어마이어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주루 플레이다. 키어마이어가 올 시즌 1번 타자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 또한 그의 훌륭한 주루 플레이 덕분이다. 표5에서도 볼 수 있듯이 키어마이어의 주루 플레이는 매년 발전하고 있다.
표5. 키어마이어 주루 플레이 성적
*BsR: 주루로 만든 득점 기여도
*UBR(Ultimate Base Running): 도루를 제외한 주루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
우선, 도루 개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기록한 18개의 도루는 151경기가 필요했지만 지난 해에는 2/3 수준인 105경기에서 21개의 도루를 성공했으며 도루 성공률도 10% 가량 증가했다. 도루를 제외한 주루 능력을 평가하는 UBR이라는 지표 또한 2014, 2015년 대비 2배 증가했다. 이는 전반적인 주루 플레이가 발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어마이어의 종합적인 주루 능력은 도루를 포함한 주루 플레이를 평가하는 지표인 BsR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해 이 지표에서 키어마이어는 6.8을 기록하며 리그 전체에서 10위를 기록했다. 47도루를 기록한 스탈링 마르테(7.0 BsR)나 30도루를 기록한 디 고든(6.2 BsR)과 비슷한 BsR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키어마이어는 리그 최상위권의 주루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어마이어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수비만 잘 하는 반쪽 선수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키어마이어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선수다. 구단 역시 그 가치를 인정해 6년 5,000만 달러 규모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올 겨울 잠시 트레이드설이 돌기도 했지만 키어마이어는 이제 탬파베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다.
기록 출처: Baseball Savant, Fangraphs,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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