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KBO 리그 각 팀이 한 시즌의 첫 단추를 끼우는 페넌트레이스 개막전. 비록 시즌 전체로 보면 단지 한 경기일 뿐이지만 겨우내 야구를 기다렸던 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경기이다. 팀마다 에이스급 투수를 개막전부터 투입하면서 승리를 향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곤 한다. 이 때문인지 2021년까지 열린 KBO 리그 40번의 개막전에서는 명승부가 여러 차례 나왔다.
특히 끝내기 경기는 홈 팬들에게 극적인 승리를 안겨주며 기쁨을 만들어낸다. 프로야구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한 1982년 이종도(MBC)의 끝내기 만루홈런을 시작으로 2021시즌 KT 배정대의 끝내기 안타까지 역대 개막전에서 끝내기 경기는 총 13차례가 나왔다. 이 중에서 타자가 무언가 타격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경기가 끝난 것이 12번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번은 대체 어떻게 경기가 끝난 것일까?
롯데 자이언츠는 역대 개막전 끝내기 경기 가운데 총 4경기에 관여했다. 1989년 장효조의 끝내기 안타(vs. 삼성)와 2013년 박종윤의 끝내기 희생플라이(vs. 한화)에 팬들이 웃었다면, 2004년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삼성 김종훈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했을 때는 울어야 했다. 그리고 1997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나온 다소 어이없는 끝내기 상황에서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1997시즌 롯데는 시즌 전부터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우선 대학 야구의 양대 산맥이었던 연세대와 고려대의 에이스였던 문동환과 손민한을 각각 계약금 5억 원에 입단시킨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다만 문동환을 영입하면서 실업야구 현대 피닉스와의 계약 문제로 인해 톱타자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로 보내야 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한 손민한을 데려오면서 그의 부산고-고려대 동기이자 아마추어 최고 포수였던 진갑용을 데려오지 못한 것도 롯데에는 뼈아픈 부분이었다.
어쨌든 롯데는 영건 둘을 데리고 시즌 개막전을 맞이하게 됐다. 4월 12일에 열린 1997시즌 개막전에서 롯데는 전년도 우승팀인 해태 타이거즈를 만났다. 양 팀은 에이스였던 주형광과 이대진의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으면서 각각 강상수와 이강철로 대체했다. 시범경기에서 ‘구위가 좋다’라는 평가를 들었던 강상수는 신인이던 1994년 이후 3년 만에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서게 됐다.
선발 이름값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의외로 양 팀의 개막전은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롯데 선발 강상수는 비록 3회 최훈재의 적시타로 먼저 한 점을 내주기는 했으나 8회 1아웃까지 해태 타선을 4안타로 잘 막아냈다. 이에 맞서 1996년 한국시리즈 MVP였던 이강철 역시 5.1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막아내면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다. 선발투수들의 호투 속에 경기는 7회까지 한 점 차 승부가 이어졌다.
침묵하던 롯데는 8회 초 드디어 전광판에 이어지고 있던 0의 행진을 멈췄다. 해태 3번째 투수 이원식으로부터 2사 1, 3루 기회를 만든 롯데는 3루수 홍현우의 실책 덕분에 1대 1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분위기를 가져온 롯데는 특급신인 손민한을 8회 1사 후 투입하며 확실하게 경기를 가져오고자 했다. 하지만 9회까지 9안타 7볼넷을 얻어내고도 상대의 실수로 얻은 한 점을 빼면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하면서 롯데는 불안하게 경기를 이어갔다.
결국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10회 초 롯데는 먼저 1사 1, 3루 찬스를 만들었다. 3번 김응국이 포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나며 기회가 무산되나 생각했던 순간, 3루 주자 김종훈이 맹렬하게 홈을 파고들었다. 투수 김정수가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지 않는 것을 발견한 김종훈이 재치 있는 플레이를 선보인 것이다. 뒤늦게 1루수 이건열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왔지만 이미 늦은 상황. 김종훈이 먼저 홈을 밟으며 롯데는 10이닝 만에 처음으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프로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가 될 기회를 잡아 흥분한 탓일까, 10회 말에도 등판한 손민한은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이후 1사 2, 3루를 만든 손민한은 2번 최훈재에게 내야땅볼 타점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리드를 날렸다. 이어 손민한은 11회 말까지도 계속 마운드를 지켰다. 이닝 시작과 함께 홍현우와 이호성의 연속 안타로 손민한은 무사 1, 2루의 위기 상황을 맞이했다. 손민한은 베테랑 이순철을 2루수 앞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고비를 넘어가는 듯했다. 해태는 이어진 2사 3루에서 백인호(개명 후 백인수)를 대타로 투입하며 경기를 끝내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볼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를 만든 손민한에게 포수 임수혁은 범타 유도를 위해 몸쪽 빠른 볼을 요구했다. 그런데 손민한의 공은 포수 미트가 아닌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임수혁이 재빨리 블로킹을 시도했으나 이미 공은 백스톱까지 흘러간 뒤였다. 3루 주자 홍현우가 홈을 밟으면서 해태는 어부지리로 3대 2 승리를 챙길 수 있게 됐다. 해태에는 1993년부터 이어진 개막 4연패를 탈출하는 순간이었고, 롯데는 사상 최초로 개막전에서 끝내기 폭투를 기록하는 굴욕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해태 포수 최해식이 “이런 야구는 생전 처음 해본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이날 경기는 서로의 실수와 실수가 엉킨 경기였다. 이날 병살타를 4개나 기록한 롯데는 해태 수비진의 어이없는 실수가 없었다면 아예 득점도 하지 못하고 경기를 마칠 뻔했다. 해태 역시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로 점수를 내준 데 이어 끝내기 득점마저도 상대의 실수로 이뤄지면서 이기고도 얼떨떨한 경기를 만들었다.
많은 기대를 모으며 프로 무대에 오른 손민한은 데뷔전부터 불명예 기록을 작성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시즌 9경기 등판에 그친 손민한은 그해 10월 어깨 수술을 받은 뒤 1999시즌 후반기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섰다. 첫 3시즌 동안 큰 활약 없이 연봉만 받아 갔던 손민한은 2000년 12승을 거두며 본격적인 투구에 나섰다.
이후의 활약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2005년 18승과 평균자책점 2.46으로 MVP를 수상한 손민한은 롯데에서만 103승을 거뒀고, 4년의 공백 끝에 2013년 NC 다이노스로 이적해 20승을 추가하며 통산 123승을 거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2021년 현재는 NC에서 1997년 롯데 입단 동기인 이동욱 감독을 보좌하는 투수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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