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를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 순수 WPA

클러치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클러치 능력의 존재 여부는 야구계의 해묵은 논쟁거리이다. 이것은 성악설과 성선설의 대립처럼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이므로, 필자는 클러치 능력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으로써의 클러치’가 아니라 ‘실적으로써의 클러치’를 측정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함이 이 글을 쓴 목적이다.

클러치 실적(이하 클러치)을 보여주는 가장 대중적인 지표는 득점권 타율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득점권 타율은 본질적으로 자기모순적인 지표임을 알 수 있다. 타율은 상황•맥락을 배제한 지표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데, 득점권 타율은 거기에 다시 상황•맥락을 합친 셈이니 결국 돌고 돌아 타점 또는 WPA를 측정하는 일밖에 안 된다.

얘기가 나온 김에 WPA(Win Probability Added)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WPA는 ‘승리 확률의 변화량’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WPA 하나만 가지고는 클러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예컨대, 마이크 트라웃이 아무리 클러치 상황에 약했다 할지라도 클러치 상황에 극강인 백업 포수보다 WPA가 높을 것이다. 점수차, 주자 배치 상황 등을 모두 떠나 기본적으로 트라웃이 백업 포수보다 더 많은 안타를 치고 더 많은 볼넷을 얻어내기 때문이다.

 

알쏭달쏭한 스탯, Clutch

위에서 언급한 WPA의 문제점을 보완한 지표가 바로 팬그래프에서 제공하는 Clutch다. Clutch는 (WPA/pLI) – WPA/LI 로 계산된다. 위 식에서 WPA/pLI는 선수의 WPA를 모든 타석의 평균 LI(값이 클수록 중요도가 높은 상황, 리그 평균은 1)로 나눈 ‘조정 WPA’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의 WPA가 1.3이고, 이 선수의 시즌 평균 LI가 1.3이었다면 WPA/pLI는 1이 된다. 이 선수는 리그 평균에 비해 전체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상황에서 많이 등장해 WPA를 쌓을 기회가 많았으므로 그것을 감안하여 WPA 값을 깎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WPA/LI는 WPA/pLI와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데, 각 타석의 WPA를 각 타석의 LI로 나눈 다음 그 값을 모두 합친 것이다. 예를 들어, 시즌 동안 2타석을 소화한 한 타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첫 번째 타석의 LI는 2였고, 그 타석에서 안타를 쳐내 0.15의 WPA를 기록했다. 두 번째 타석의 LI는 0.3이었고, 그 타석에서는 아웃을 당해 -0.01의 WPA를 기록했다. 이 경우 이 선수의 WPA/LI는 0.15/2+(-0.01/0.3)=0.04이다. 한편 pLI(시즌 평균 LI)는 (2+0.3)/2=1.15이므로, WPA/pLI는 0.14를 1.15로 나눈 0.12이다.

결국 (WPA/pLI) – WPA/LI, 즉 Clutch는 0.12-0.04=0.08로 계산되는데, 이 선수는 중요한 타석에서 안타를 쳐내고 중요하지 않은 타석에서 아웃을 당했으므로 Clutch 값이 양수가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리그 평균 Clutch는 0이다).

이처럼 복잡한 계산을 통해 얻어지는 Clutch이지만 이 지표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는 오로지 WPA와 LI만을 이용하여 계산되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타격’을 가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 사례를 생각해 보자. 같은 1사 1루에서 A타자는 단타를 쳐서 1,2루를 만들었고, B타자는 볼넷으로 1,2루를 만들었다. 이 경우 OPS, wRC+ 등은 A타자가 더 높지만, WPA는 서로 같고 따라서 Clutch에서도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타격 능력 자체는 A타자가 더 뛰어나지만 결과적으로 팀 승리에 기여한 정도는 같다면, B타자가 더 ‘클러치’인 것 아닌가? 그러나 Clutch는 둘의 클러치 능력이 똑같다고 말한다(두 타자가 다른 타석들에서 정확히 같은 성적을 거뒀다는 가정 하에). 이는 Clutch 계산식에 OPS, wRC+ 등 상황 중립적인 타격 지표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위 사례가 와닿지 않는다면, 다음 경우를 생각해 보자. 1사 2,3루 등 타점 기회에서 1루가 비어 있는 경우, 투수는 타자에게 좋은 공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타자들의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볼넷으로 걸어나가는 데에 만족하는 타자들이 있는가 하면 기어코 안타를 쳐내서 타점을 올리려는 타자들도 있다. 팬들은 전자에 해당하는 강타자를 보고 ‘스탯 관리’를 한다며 비난하고 한다. 김태균, 조이 보토 등이 이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타자들인데, 물론 이들의 타석 접근법이 틀린 것은 아니나 ‘클러치 타격’을 한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1루가 비어 있을 때 볼넷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볼넷 출루의 wRC+는 340~380 정도이다. 그런데 1사 2,3루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것이 wRC+의 정의에 따라 리그 평균보다 240~280% 더 팀 승리에 기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Clutch에서는 높은 확률로 이 볼넷이 타자의 Clutch 값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

추측컨대 여기까지의 글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는 필자의 필력이 모자라서이기도 하지만, Clutch의 두 번째 단점과도 관련이 있다. 바로 계산이 너무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계산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더러, 개념적으로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모든 타석의 WPA를 모든 타석의 LI로 나눈 다음, 그 값에서 개별 타석의 WPA를 개별 타석의 LI로 나눈 값의 합을 뺀다고? 이쯤 되면 득점권 타율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또한 직관적인 의미의 ‘클러치 퍼포먼스’와 Clutch 지표가 어긋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포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의 2020 시즌을 예로 들어보자. 바스케스는 지난해 189타석에 들어서서 0.283의 타율과 0.801의 OPS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wRC+는 115였다. 그런데 클러치 상황에 강한 편은 아니었는지, -0.06의 WPA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Clutch는 당연히 음수여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바스케스의 2020시즌 Clutch는 0.01이었다. -0.06, 0.01 등 숫자의 절댓값이 작다고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평균보다 확실히 공격력이 뛰어난 타자가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WPA를 기록했는데, 어째서 Clutch가 음수가 아니란 말인가? Clutch는 일반 팬들이 선수 평가에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에는 너무 어렵다.

 

클러치를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 순수 WPA/600

그래서 대안이 있냐고? 그렇다. 필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클러치 스탯은 바로 (WPA/pLI)-Batting Wins이다.

WPA/pLI는 위에서 설명했듯 타자의 WPA를 타석의 평균 중요도로 나눈 ‘조정 WPA’이다. 사실 타자의 pLI는 시즌을 치르는 동안 대부분 1에 수렴하므로 그냥 WPA를 쓰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4번 타자는 9번 타자보다 약간 더 높은 pLI를 기록할 것이다). 이렇게 구한 조정 WPA를 Batting Wins와 비교한다. Batting Wins를 이해하기 위해선 타자의 WAR 계산 과정을 알 필요가 있는데, 팬그래프의 fWAR은 (Batting Runs + Base Running Runs + Fielding Runs + Positional Adjustment + League Adjustment +Replacement Runs)/(Runs Per Win)으로 구해진다. Batting Wins는 위 식에서 Batting Runs를 바로 Runs Per Win으로 나눠준 것이다. 바꿔 말하면 ‘리그 평균 대비 타격으로 기여한 승수’라고 볼 수 있다.

*사실 Batting Wins를 계산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WAR과 달리 팬그래프 선수 페이지에 직접적으로 공개돼 있지도 않다. 대신 fWAR 소개에 나와있는 설명을 통해 스스로 계산할 수 있다.

Batting Wins를 WPA/pLI, 즉 조정 WPA에서 빼는 것은 곧 ‘팀 승리 기여도’를 ‘팀 승리 확률 기여도’에서 빼는 것이다. 더욱 간단히 말하면 WPA와 WAR을 간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지표는 기존의 Clutch 지표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WAR로 봤을 때 이 타자는 평균보다 2승만큼 팀에 기여했지만, WPA로 봤을 때는 평균보다 1승밖에 기여하지 못했으므로 클러치 상황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어’. 이 얼마나 쉽고 아름다운 설명인가! 이 지표를 ‘순수 WPA’라 이름 붙이기로 하자. 순수 WPA가 양수면 클러치 상황에서 강했다는 뜻이고, 순수 WPA가 음수면 클러치 상황에서 약했다는 뜻이다. 같은 양수라면 절댓값이 클수록 더욱 클러치 타자이다.

투수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클러치를 측정할 수 있다. (WPA/pLI)-Wins Above Average가 바로 그것이다. Wins Above Average는 통계사이트별로 다른 지표(RA9, FIP, DRA 등)를 이용해 구하므로 통일된 계산식은 존재할 수 없지만 WAR과 WPA를 비교한다는 점에선 타자의 순수 WPA와 같다.

하지만 순수 WPA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는 WPA와 Batting Wins가 모두 누적 지표이므로 타석이 많을수록 순수 WPA의 절댓값이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타자들의 클러치 능력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WPA/pLI)-Batting Wins를 600타석(평균적인 풀시즌 타석수) 기준으로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시즌에 700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0.7의 순수 WPA를 기록했다면 이 선수의 ‘순수 WPA/600’은 0.6이다. 한편 한 시즌에 300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0.5의 순수 WPA를 기록했다면 이 선수의 순수 WPA/600은 1이 된다.

또한 WPA에는 도루 성공과 실패로 인한 승리 확률의 변화량이 포함되지만 Batting Wins에는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로 인해 약간의 왜곡이 생긴다.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 도루의 빈도는 매우 감소하였고, 대부분의 타자는 도루 성공과 실패가 상쇄되어 WPA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순수 WPA/600 계산에서는 무시하기로 한다. 물론 정확한 계산을 원한다면 타자의 Play Log에서 도루 성공, 실패 등 주루로 인한 WPA 변화를 모두 제외한 다음에 순수 WPA/600을 구할 수도 있다.

 

야구공작소 나상인 칼럼니스트

참조=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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