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차승윤] 최근 몇 년간 한화 선수단의 평균연령은 꾸준히 상위권이었다. 2015년과 2016년의 야수 평균연령은 30.9(1위)-30.8세(2위), 투수 평균연령은 31.0세(1위)-30.9세(2위)였다. 계속된 FA 선수 영입으로 10년차 이상의 선수가 대거 유입되었고 젊은 선수는 보상선수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태양, 배영수, 송광민 등 수술 이력자들까지 선수단 비중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만이 한화 부진의 문제는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144경기 체제에서 이 선수들의 체력 문제를 배려해 주지 않은 벤치에 있었다. 김성근 감독 특유의 운용 탓에 한화 선수들은 선발, 불펜, 야수 할 것 없이 모두 적은 휴식 속에 시즌을 치러야 했다.
선발진: 예정된 붕괴
한화 선발 투수 이태양. /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실패한 투수’라는 감독의 도발적인 언급으로 논란이 되었던 미치 탈보트가 대표적이다. 탈보트는 2015시즌 넥센과의 개막전 등판 이후 3번 연속 4일 휴식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다 4월 12일 롯데전부터 4경기 연속 5자책 이상을 기록하며 성적 하락을 겪은 바 있다.
탈보트의 휴식일 문제는 시즌 전체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5시즌 탈보트는 156이닝을 던지면서 11회의 4일 휴식과 10회의 5일 휴식을 경험했다. 매주 하루씩 휴식일이 있는 리그 특성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많은 수치다. 다른 풀타임 외국인 투수들의 기록과 비교하면 더욱 잘 드러난다. 넥센의 에이스 밴 헤켄은 5일 휴식이 22회나 되는 반면 4일 휴식은 단 5번에 불과했다. 180이닝 이상을 소화한 켈리(8회), 린드블럼(9회), 소사(9회)와 옥스프링(10회)조차도 탈보트보다 많은 휴식일을 보장받았다.
<2015년 탈보트와 주요 외국인 투수들의 휴식일 차이>
다른 선발진도 불펜 투수들의 연투에 묻혔을 뿐 좀처럼 쉬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안영명은 4일 휴식 등판(4회)은 많지 않았지만 5월 12-14-17일에 주3회 선발 등판이라는 괴이한 기록을 남겼다. 에스밀 로저스는 시즌 후반 영입되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기간을 제외하고 8월 6일부터 27일까지 5번, 9월 8일부터 30일까지 5번 선발 등판했다. 배영수 역시 수술 경력이 있음에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면서 4일 휴식 후 선발등판을 9번이나 기록했다.
쉬지 못한 여파는 이듬해 곧바로 나타났다. 안영명은 2016시즌 어깨 웃자람 수술로 시즌을 마감했고 로저스는 토미존 수술로 이탈해 역대 최고 연봉 외국인 선수에서 역사상 최고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배영수 역시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으며 1군에서 단 한 번도 던지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2015년과 비교했을 때 순위는 한 칸, 승리는 2승 차이였지만 전혀 다른 시즌 분위기, 그리고 차원을 넘어선 2016시즌의 선수 기용은 이러한 선발 혹사의 여파이기도 했다. 2015시즌 한화 선발진은(는) 탈보트-유먼(후반기 로저스로 대체)-안영명-송은범-배영수로 사실상 10승 투수 세명에 준하는 로테이션(유먼 4승+로저스 6승)이었다. 하지만 혹사로 인한 재계약 실패와 수술로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탈했고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투수 영입도 실패로 돌아가며 선발진이 완전히 붕괴됐다. 1년만에 QS 수는 37회에서 25회로 급감했고 선발 ERA도 5.25에서 6.39로 급증하면서 선발진은 한화 호 침몰의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
구원진: 감독님, 우린 언제 쉬나요?
지난해 구원 투수로 많은 경기에 나선 심수창과 카스티요. /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구원 투수 혹사 논란은 김성근 감독 야구의 커리어 내내 따라왔던 문제였다. 그리고 구원 투수가 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황 구분 없는 등판이었다. 박빙의 상황뿐 아니라 크게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 심지어 크게 지는 경기에서조차 필승조들이 등판하면서 자연스럽게 연투와 많은 이닝으로 이어진 것이다.
필승조의 무의미한 소비는 시즌 초반 한화의 연패 속에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어 나타났다. 개막 후 3승 16패를 기록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화의 필승조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선발 송은범이 3이닝만 던지고 내려간 후 송창식-박정진-권혁-정우람-김민우가 모두 올라온 개막 LG전의 상황은 최악의 19경기 동안 계속 이어졌다. 단 3승을 거두는 동안 권혁, 장민재가 11경기, 박정진이 10경기, 송창식이 9경기, 정우람이 7경기에 등판했다. 패배 속에 무의미한 연투만 반복한 것이다.
시즌 초 연패 기간 동안 구원진을 불필요하게 소모한 것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과부하를 시즌 전체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시즌 후반 송창식과 권혁이 수술로 이탈했고, 2017시즌 한화 불펜에는 더 많은 불안 요소만 남았다. 97억의 거액을 들인 구원진 보강은 그렇게 성적과 미래 둘 다 잃으며 소득 없이 마무리되었다.
야수: 벤치에 앉지 못하는 선수들
한화의 주전 야수진은 30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구원 혹사에 묻혔을 뿐, 한화의 베테랑 야수들 역시 쉬지 못했다. 한화는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송광민을 비롯해 30대 중반의 주전 야수진으로 시즌을 치렀다. 유이한 20대 주전 야수인 하주석과 양성우 역시 고질적인 허리 문제를 지녔기 때문에 한화 야수진에게는 반드시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화 야수들은 부진할 때가 아니면 좀처럼 쉬지 못했다. 특히 정근우는 138경기에 출장해 1181.2이닝(5위)이라는 수비 이닝을 기록했다. 정근우 이상의 출전 수를 기록한 야수 중 센터라인에 해당하는 선수는 김하성, 이대형, 서건창, 김성현 정도였고 정근우는 이중 가장 고령의 선수였다. 수비와 주력이 관건인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생각하면 정근우 입장에서도, 또 고액 연봉자로서 정근우가 롱런해야 하는 팀의 입장에서도 정근우에게는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
정근우 외에도 한화 야수진의 기용에서는 세심함을 찾기 어려웠다. 시즌 중반 이후 지명타자로 대부분 출장하긴 했지만 김태균은 전 경기에 출장했고 양성우는 허리 문제로 휴식을 원하다 핀잔을 듣는 등 한화 야수들은 부상을 당하거나 성적이 부진하지 않으면 쉴 수 없었고 지는 날에는 공포의 특타마저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부상과 부진을 겪으면서 출전하는 경우마저 존재했다. 김경언은 8월 6일 NC와의 경기에서 최금강의 사구를 맞고 오른쪽 발가락 실금 진단을 받았는데 정작 그가 말소된 것은 8월 18일이었다. 말소 후 등록이 가능한 10일이 넘도록 선수를 붙잡아 둔 결과는 4경기(대타 2회) 6타수 1안타였다. 게다가 김경언은 시즌 타율 0.264-OPS 0.753의 우익수로 정근우와 달리 공수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수조차 아니었다. 무의미한 ‘투혼’의 결과, 김경언의 2016시즌은 8월 18일로 끝이 났다.
범타는 전력투구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승리는 투혼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 선수단. /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의 암흑기 동안 한화 팬들의 유일한 자부심은 에이스 류현진이었다. ‘류윤김’의 시대에서 류현진이 시대를 지배한 이유로 많은 이들이 류현진의 완급조절을 들었다. 주자가 없을 때 가장 류현진을 공략하기 쉽다던 양준혁의 말처럼, 류현진은 상황의 중요성에 맞춰 공을 다르게 던지고자 하는 투수였다. 주자의 유무, 타순의 차이, 컨디션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던졌기에 류현진은 길게 던질 수 있었고 시대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팀의 페넌트레이스 역시 장기 레이스라는 점에서 완급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선발 투수가 100구를 전력으로 던질 수 없듯이 팀 역시 144경기를 전력으로 승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난 2년의 한화 성적이 증명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 체제를 한 해 한 해 겪으면서 한화는 해마다 더 운용하기 어려운 팀으로 변하고 있다. 부상자는 늘고 선수 평균 연령은 증가한 반면 수비나 투구에서 소위 ‘김성근 효과’를 얻은 선수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7시즌, 마지막 해에 들어선 김성근 체제는 이제 스스로 초래했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과연 2017 한화이글스는 냉정한 자기 진단과 처방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기록 출처: STATIZ
(사진=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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