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가 출전하지 않는 WBC, 존재 의미가 있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은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자신의 국가를 대표해서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대회다. 야구 팬들도 메이저리그 경기가 아닌 다른 경기를 통해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WBC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런데 시기가 문제다. WBC가 메이저리그 시즌이 개막하는 4월 이전에 열리기 때문에 선수의 참가 의지가 있더라도 소속팀이 반대를 하면 출전할 수가 없다. 또한 최근 몇 년 새 선수들의 몸값이 많이 오르면서 메이저리그 구단은 소속 선수들의 참가여부에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혹여나 고액 연봉 선수들이 WBC에서 부상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 팀의 성적, 수익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WBC 최종 엔트리 제출 시한은 다음달 6일이다. 제출 마감 시한이 가까워지면서 대표팀에 불참을 통보하는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먼저 한국 대표팀은 최초 예비엔트리에 추신수,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 등 4명의 이름을 올렸으나, 현재 모두 빠져있다. 박병호는 수술 받은 손목의 정확한 부상 회복의 시기를 알 수 없어 일찌감치 제외됐다. 지난 시즌도 부진과 부상을 이유로 시즌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 본인도 스프링캠프를 두고 출전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박병호는 스프링캠프부터 1루와 지명타자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지난 시즌 무려 4차례 부상자명단에 오른 추신수도 구단의 반대로 끝내 참가에 실패했다. 추신수는 병역혜택을 받았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마지막 태극마크였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인해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고 있다. FA가 1년 남은 김현수 역시 팀 내 경쟁 역학구도로 인해 불참을 결정했다.

유격수로 뽑힌 강정호는 귀국 후 국내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벌어지면서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그의 음주운전 전력이 1번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강정호는 태극마크를 반납할 수 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최종엔트리에 남아 있는 메이저리거는 최초 예비엔트리에도 없었던 오승환이 유일하다.

라이벌 일본도 대다수의 메이저리거들이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특히, 선발투수 마에다 켄타, 다나카 마사히로, 다르빗슈 유 3명의 선수가 소속팀의 반대와 컨디션을 이유로 불참의사를 전달했다.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구원투수 우에하라 고지도 소속팀 적응을 이유로 불참한다. 현재 유보상태인 이와쿠마 히사시도 불참 가능성이 높아 일본 대표팀으로선 마운드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참가 확정인 메이저리거는 아오키 노리치카가 유일하다.

한국 대표팀과 같은 조에 포함된 네덜란드는 디디 그레고리우스, 잰더 보가츠, 안드렐턴 시몬스 등 주축 타자들이 참가가 확정된 반면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은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다. 잰슨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5년 8000만 달러의 FA 대박을 터뜨렸다. 대형 계약 첫 해를 앞두고 있는 잰슨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소속팀의 스프링캠프 합류를 결정했다. 그나마 한국 대표팀에게는 호재다.

28명의 엔트리를 모두 현역 메이저리거로 채울 수 있는 미국도 불참자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최초의 예비명단에서 양 리그의 최고 스타라 할 수 있는 마이크 트라웃과 브라이스 하퍼가 빠졌다. 당초 참가 의사를 나타냈던 맥스 슈어저가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밖에 클레이튼 커쇼, 크리스 세일, 코리 클루버, 크레익 킴브럴, 무키 베츠 등의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는다. 지난 대회 우승팀 도미니카 공화국은 대다수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가운데 소속팀을 옮긴 에드윈 엔카나시온은 참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에이스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은 자니 쿠에토는 정확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초대 대회 때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야구의 세계화’를 외치며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참가를 독려했고, 구단의 반대도 심하지 않아서 참가 의지가 있는 선수들은 왠만하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한국 대표팀도 최고참 박찬호를 필두로 막내 봉중근까지 당시에 활약했던 메이저리거들이 총출동 했다.

그러나 대회에 나섰던 선수들 가운데 정규시즌에서 힘을 못쓰는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서재응이었다. 서재응은 2005년 생애 최고의 후반기를 보내며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직전 시즌보다 100이닝 이상 더 던진 그는 휴식이 필요했으나 WBC 참가를 강행했다. 서재응은 한국 대표팀에서 최고의 활약(2승 평균자책점 0.64)을 펼쳤으나, 정작 본 시즌에서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3승 12패 평균자책점 5.33)

WBC가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지 못하는 대회로 전락하자 이는 결국 흥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체적인 관심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올림픽과 월드컵이 세계 최고의 축제가 된 이유는 각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출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WBC는 그렇지 않다. 일부 선수들은 WBC를 스프링캠프의 일부로 인식하기도 한다. 미국 내 스포츠팬도 설렁설렁한 플레이의 WBC를 보기 보다는 ‘3월의 광란’ NCAA를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일간스포츠’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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