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으로 끝난 2011년 PHI ‘판타스틱 4’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의 화젯거리 중 하나는 두산 베어스의 ‘판타스틱 4’였다. 야구에서 ‘판타스틱 4’란 리그에이스 급 선발투수 4명의 그룹을 말한다. 두산은 니퍼트, 보우덴, 유희관, 장원준이 각각 15승 이상, 총 68승을 합작하며 ‘판타스틱 4’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두산의 ‘판타스틱 4’를 보면서 적지않은 메이저리그 팬들은 5년전에 묻은 타임캡슐을 열어본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판타스틱 4’의 시초 격인 5년 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로이 할러데이, 클리프 리, 콜 해멀스, 로이 오스왈트 4인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투수 어벤져스’ 판타스틱 4의 결성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통산 10,000패를 당한 필라델피아가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은 2007년이었다. 청정 홈런 타자인 라이언 하워드, 당대 최고의 2루수인 체이스 어틀리, 30홈런-30도루-20 3루타의 대기록을 쌓은 지미 롤린스를 주축으로 한 필라델피아는 1993년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1980년 이후 구단 역사상 2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당대 최고의 강팀으로 우뚝 선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활약에 열정적인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열광했다. 필라델피아의 홈구장인 시티즌스뱅크파크의 관중 수가 300만 명이 넘기 시작했다(2007~2013).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했다. 2009년 새로운 단장이 된 루벤 아마로 주니어는 하워드-어틀리-롤린스 트리오를 함께 쓸수 있는 2011년까지 최고의 선발투수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콜 해멀스에 2009년 클리프 리, 2010년 할러데이와 오스왈트, 그리고 2011년에 클리프 리의 재영입까지. 막강한 선발진이 우승의 지름길이자 보증수표라고 확신한 아마로 단장의 광폭 행보였다.

 

① 로이 할러데이

판타스틱 4의 리더. 투수들에게 가장 불리한 AL 동부의 토론토에서 4년간 연평균 17승 232.2이닝 ERA 3.11의 탄탄한 성적과 함께 사이영상까지 따냈던 투수였다. 필라델피아는 할러데이를 탑 유망주 패키지로 모셔온 후 최대 4년 80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선사했다.

할러데이는 2010년 21승 10패 250⅔이닝 ERA 2.44으로 NL다승왕에 오른 데 이어 만장일치 NL 사이영상을 차지하며 기대에 부응했다(역대 5번쨰 양대리그 사이영상 수상). 필라델피아 투수의 20승은 1982년 스티브 칼튼 이후 처음이었다. 그 해 포스트시즌 데뷔전에서는 신시내티를 상대로 노히터를 달성하기도 했다(역대 2번째 포스트시즌 데뷔전 노히터, 1956년 돈 라슨 이후 처음).

 

② 클리프 리

다른 멤버들과 달리 리가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복잡하다. 필라델피아 입단과 퇴단, 그리고 재입단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2009년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던 필라델피아는 클리블랜드에 유망주 넷을 주고 리를 영입했다. 시즌이 끝난 후엔 그를 시애틀로 다시 트레이드시켰다. 당시 리는 “필라델피아가 재계약에 대해 나와 한 번도 의논하지 않았다”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리는 2010년 화려한 가을을 보낸 후 필라델피아로 다시 FA 이적했다. 놀라운 점은 리가 양키스의 6년 1억 48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제안을 뿌리치고 필라델피아의 5년 1억 2000만 달러를 선택한 것이다(1992년 양키스의 6년 3400만 달러와 애틀란타의 6년 2800만 달러의 제안 중에서 애틀란타를 선택한 매덕스가 떠오른다).

클리프 리는 2011년 17승 8패 232.2이닝 ERA 2.40으로 NL 다승 4위•이닝 4위•ERA 3위로 사이영상 투표 3위에 올랐다. 특기할 것은 한 시즌 동안 6번의 완봉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1989년 8번의 완봉승을 거둔 팀 벨처 이후 최다 기록이었다. 한 시즌에 6번의 완봉승과 함께 200K를 기록한 것은 ML 역사를 통틀어 5번째다.

 

③ 콜 해멀스

해멀스는 2002년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가 1라운드에 뽑은 투수였다. 그는 샌디에이고 출신으로 트레버 호프먼을 동경한 덕에 체인지업을 갈고 닦아 체인지업 달인이 됐다. 드래프트 전부터 강속구를 뿌리며 촉망받은 그는 데뷔 2년차부터 15승 투수가 되며 에이스의 길을 밟았다.

해멀스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2008년 포스트시즌이다. 해멀스는 팀의 1선발로 나서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에서 모두 MVP를 따냈다. 5경기에 나서서 4승 무패 ERA 2.00으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범가너의 모습을 한 발 앞서 보여준 셈이다.

2011년 해멀스는 나머지 3인방보다 인지도와 커리어가 밀리는 탓에 3선발로 이동해야 했지만 14승 9패 213이닝 ERA 2.75의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3선발로 활약했다. 이후 2013년 필라델피아와 7년 1억 44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맺고 ‘드디어’ 에이스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④ 로이 오스왈트

2010년 여름, 휴스턴에서 10년차 시즌을 맞고 있었던 로이 오스왈트는 3.42라는 준수한 평균자책점에도 6승 12패라는 심각한 불운을 겪고있었다. 이에 오스왈트는 필라델피아와의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고 처음으로 소속팀을 변경했다.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오스왈트는 7승 1패 1.74의 대활약을 했고 필라델피아의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경기 14.2이닝 ERA 1.84로 명성 그대로의 투구를 펼쳤다(이적 전 포스트시즌 10경기는 5승 3.25으로 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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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에 오스왈트는 9승 10패 3.69로 부진해 ‘판타스틱 4의 일원으로 인정해야 하나’라는 논란을 불러왔다. 성적은 오히려 5선발인 밴스 월리가 11승 3패 3.01로 더 뛰어났다. 오스왈트가 1승만 더 얻었다면 필리스는 13년 만에 5명의 10승 투수를 지닌 팀이 될 수 있었다(1998년 애틀란타 이후 최초).

필라델피아 판타스틱 4의 2011시즌

‘판타스틱4’의 활약으로 2011년 필라델피아는 2010년대 최초의 시즌 100승 팀이 되었다(102승). 여기엔 선발 ERA∙이닝/다승/탈삼진/QS에서 모두 메이저리그 1위를 차지한 선발진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2.86의 선발 ERA는 1992년 애틀란타 이후 첫 2점대 선발 ERA였고 1985년 다저스(2.71) 이후 최저 수치였다(2015 세인트루이스 2.99, 2016 컵스 2.96).

로이 할러데이, 클리프 리, 콜 해멀스는 모두 한 시즌에 200이닝 넘게 소화하며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는 1986년 메츠, 1996-97년 애틀란타, 2005년 휴스턴에 이은 역대 5번째이다. 세명은 각각 NL 평균자책점 2,3,8위와 NL 사이영상 투표 2,3,5위였다(1위는 모두 클레이튼 커쇼).

 

‘미션 실패’ 필라델피아의 아쉬운 가을

필라델피아는 메이저리그 최다승(102승 60패)을 거둔 덕에 포스트시즌 홈 어드밴티지는 물론 월드시리즈 진출 시 홈 어드밴티지까지 얻었다. 게다가 디비전시리즈의 상대는 포스트시즌 진출팀 중 최소승을 거둔 세인트루이스(90승 72패)였다. 세인트루이스는 정규시즌에서 필라델피아에게 큰 열세를 보인 팀이기도 했다(3승 6패).

그러나 디비전시리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발투수는 판타스틱 4의 일원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할러데이와의 ‘슈퍼 에이스 타이틀 매치’에서 승리한 세인트루이스의 크리스 카펜터였다(1991년 잭 모리스 이후 일리미네이션 게임에서 1-0 완봉승을 거둔 첫 투수). 모두가 가을 사나이라고 자부하던 판타스틱 4는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가는 첫 관문에서 허무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필라델피아 선발투수의 2011 DS 성적

1차전: 할러데이 8이닝 3실점 (승리)
2차전: 클리프리 6이닝 5실점 (패배)
3차전: 콜해멀스 6이닝 0실점 (승리)
4차전: 오스왈트 6이닝 5실점 (패배)
5차전: 할러데이 8이닝 1실점 (패배) vs 크리스 카펜터 9이닝 0실점 (완봉승)

백전노장 라 루사 감독이 이끄는 세인트루이스는 클러치 히트와 물 샐 틈 없는 투수 운용으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탈락까지 스트라이크 카운트 1개를 남기고 데이빗 프리스가 극적인 우승을 이끈 그 월드시리즈였다.

 

우승 실패의 대가는 컸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필라델피아 ‘판타스틱 4’는 오스왈트의 퇴단으로 1년만에 짧고 굵게 해체되었다. 2012년 스프링캠프에서 구속 감소 우려를 나타낸 기자에게 격노했던 할러데이는 기자의 우려대로 다시는 예년의 피칭을 팬들에게 선보일 수 없었다(이후 15승 13패 5.15). 클리프 리는 이듬해 3.16의 평균자책점에도 6승 9패라는 극강의 불운을 맛보았다. 홀로 꿋꿋이 필라델피아 선발진을 지키던 해멀스는 매년 트레이드 루머에 휩싸이다가 2015년 여름에 텍사스로 이적했다.

판타스틱 4 멤버들은 모두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유출된 유망주의 면면을 살펴보면 필라델피아 팬들의 배가 아플 만하다. 2009년 여름에 클리프 리의 대가로 클리블랜드에 보낸 유망주 중에는 카를로스 카라스코(bWAR 10.7)가 있었다. 1년 뒤엔 오스왈트를 위해 J.A. 햅(2016년 20승 4패 3.18)과 조너선 비야(2016년 NL 도루왕)를 지출했다.

아직 해멀스의 트레이드를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해멀스가 이미 텍사스 투수진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필라델피아는 차기 에이스 감인 제러드 아이코프(2016년 11승 14패 197이닝 ERA 3.65)를 얻었으며 해멀스의 유산들을 흡수해 2016년 팜 랭킹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추후 손익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존재, 그 이상이었던 ‘Fantastic 4’

사실 2011년 이전, 이후에도 판타스틱 4라고 불릴만한 조합은 많았다. 매덕스-글래빈-스몰츠 3인방이 군림했던 90년대 애틀란타는 대니 네이글이나 케빈 밀우드를 합쳐 판타스틱 4라고 명명할 수 있다. 2014년 디트로이트의 벌랜더-슈어져-프라이스-포셀로도 현재 모두 사이영상을 수상한 조합이다. 당장 올해만 해도 세일을 영입한 보스턴이 판타스틱 4에 도전한다(릭 포셀로, 크리스 세일, 데이빗 프라이스, 스티븐 라이트).

그러나 유독 필라델피아의 에이스 4인방의 앞에 ‘판타스틱(Fantastic, 환상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배의 역사로 가득했던 필라델피아가 우울한 과거를 잊고 화려하게 부활했던 그 때가 마치 ‘환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필리스(필라델피아 사람들이라는 뜻)는 6년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고된 현실을 버티고 밝은 미래를 소망한다. 판타스틱 4는 필리스에게 이름 그대로의 존재다.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reference, Wikipedia, ESPN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 이 글은 ‘엠스플뉴스’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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