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KT 위즈의 리드오프로 활약하고 있는 심우준(사진=KT 위즈 제공)
2020시즌을 앞두고 KT 위즈의 이강철 감독은 팀 타선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심우준의 리드오프 기용이었다. 심우준은 1995년생의 젊은 내야수로, 팀 창단 이후 꾸준히 주목받는 유망주다. 지난해 KT는 김민혁이라는 준수한 리드오프를 발굴했기 때문에 심우준의 리드오프 기용은 어찌 보면 ‘모험’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도루 능력이 뛰어난 심우준을 1번 타자,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김민혁을 2번타자로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연습경기부터 심우준을 1번-유격수로 기용하며 굳건한 의지를 보였다. 그렇다면 심우준 리드오프 기용은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진 걸까.
KT의 고질적인 문제, 빈약한 테이블 세터
이강철 감독이 테이블세터 강화에 열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8년 KT는 강백호의 합류와 함께 멜 로하스 주니어-유한준-황재균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중심타선을 구축했다. 발군의 화력을 자랑한 KT는 20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신흥 홈런 군단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팀 홈런 2위에도 불구하고 팀 득점은 8위에 그치며 득점 효율이 떨어지는 약점을 노출했다.(팀 홈런 2위, KT 저득점의 비밀) 이처럼 KT가 저조한 득점력을 보인 데는 중심 타선보다는 밥상을 차려줘야 할 앞타자들에게 책임이 있었다. 다음은 최근 KT의 테이블세터 성적이다.
이대형이 최다안타 3위를 거머쥐었던 2016년을 제외하면 KT의 테이블세터진은 항상 부실했다. 그리고 이대형이 이탈하면서 KT는 테이블세터의 부재로 많은 고생을 했다. 2018년에는 역대급 신인이었던 강백호를 1번 타자로 기용하기도 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에는 김민혁이라는 걸출한 1번 타자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지만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에 급격한 성적 저하를 겪었다. 결과적으로 김민혁은 KT의 리드오프 고민을 온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민혁은 이전의 리드오프보다는 나은 활약을 펼쳤고, 강백호가 3번 타순에 고정되며 KT의 중심 타자들은 예년과 비교해서 더 많은 득점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평균 기량을 지닌 톱타자의 등장만으로 KT는 득점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렇듯 테이블세터의 중요성을 절감한 KT는 심우준-김민혁 테이블세터를 구성하며 시즌을 맞이했다.
성장하는 리드오프 심우준
이강철 감독의 테이블세터 구상에서 핵심은 바로 심우준이다. 내야수로서 심우준은 데뷔 초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수다. 데뷔 이래로 3루수와 유격수 자리에 번갈아 출장하며 수준급의 수비를 펼쳤으며, 박기혁이 은퇴한 후에는 KT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황재균-박경수와 함께 KT 내야진이 WAA(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도) 1위를 기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뛰어난 수비 능력에 빠른 발까지 지닌 심우준이 팀의 핵심 선수가 될 자격은 충분했다. 하지만 확고한 주전으로 발돋움하려는 심우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아쉬운 타격이었다. 2017년에 0.287의 타율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터트리나 싶었지만 이듬해에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는 2019년 전반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전반기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팀의 9번 타자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고, 물음표가 붙었던 도루 능력(2018년 11도루-11실패, 성공률 50%)까지 회복하며 팀이 기대하던 ‘타자 심우준’의 모습에 한발 다가섰다.
이런 심우준의 변화를 2017년 때처럼 반짝 활약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후반기에 보여줬던 심우준의 모습은 설레발(?)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동안 타격 능력이 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심우준은 실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다음 심우준의 Swing%와 Contact%를 살펴보자.
2017년까지 심우준은 Swing%가 60%에 육박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향의 타자였다. 2017년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가장 높은 Swing%를 보여준 나성범이 53.7%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심우준의 적극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적극적인 타자였지, 처참한 선구안으로 아무 공에나 배트가 나가는 타자에 불과했다. BB/K가 0.2를 넘지 못할 정도로 선구안과 컨택 능력이 부족한 타자였다.
타자로서 심우준의 스타일을 굳이 정의하자면, 빠른 발과 적극적인 컨택으로 출루를 노리는 ‘쌕쌕이형 타자’다. 심우준과 비슷한 유형으로 정상에 오른 선수로 박민우가 있다. 리그 정상급의 컨택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박민우는 40% 전후의 Swing%, 그리고 90%를 상회하는 Contact%를 보인다. 존 안에(In Zone) 들어오는 공에 대한 Contact%는 95%로,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은 거의 다 맞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박민우와 비교해서 80% 전후의 Contact%를 보여주는 심우준은 확실히 컨택 능력이 뒤처지며, 타석에서 참을성도 떨어지는 타자였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심우준의 타석 접근법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Swing%. 그 누구보다도 배트를 적극적으로 냈던 심우준은 60%에 가까웠던 Swing%를 40% 중반까지 낮추며 참을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Contact%도 조금씩 높여가며 공을 맞히는 능력도 발전했다.
심우준의 변화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점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공에 대한 대처법이다. 2017년까지 40%를 웃돌던 Out Zone Swing%를 30%까지 낮췄다. 존 바깥 공에 대한 Contact%는 70%까지 끌어올렸다. 성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선구안과 컨택 능력이 발전한 것이다.
과거 심우준은 수비와 주루만 뛰어난 반쪽짜리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심우준은 타석과 경기 수를 늘려가며 조용히 성장했다. 그 결과 몰라볼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과 컨택 능력을 지닌 타자가 되었다. 지난 시즌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성적이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난 기록보다 더 가치 있는 기록은 따로 있다. 바로 타석당 투구수.
지난 5월 15일 수원 삼성전, 심우준은 2번이나 10구 승부를 펼쳤다. 그중 한 타석에서는 볼넷을 얻어내기도 했다. 타석에서 가장 공을 못 보는 타자였던 심우준은 올 시즌 투수로부터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드는 타자로 변모했다. 그렇게 심우준은 타석에서 많은 공을 보면서 출루하고, 빠른 발로 상대 투수를 흔들 수 있는 전통적 리드오프에 한 발짝 다가섰다.
이종범의 뒤를 따라서
당장 심우준에게 박민우에 버금가는 정상급 리드오프의 기량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심우준이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성장한다면 박민우에 버금가는 리드오프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은 심우준의 플레이를 보며 전성기 이종범이 보인다고 언급했었다. 전성기 이종범은 3/4/5의 슬래시 라인 이상의 활약과 많은 도루와 홈런까지 생산하는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였다. 물론 이종범 이후에도 KBO리그에는 기량이 출중한 유격수들이 여럿 등장했다. 하지만 이종범처럼 리드오프 유격수로 활약한 선수는 2010년대 초반 김상수와 오지환이 전부다. 이들은 이종범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심우준을 프로야구 최고의 리드오프였던 이종범과 비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김상수 정도의 눈야구(통산 출루율 .342)를 갖추고 오지환 정도의 장타력(통산 장타율 .406)을 갖춘다면, 언젠가는 이강철 감독의 말처럼 심우준에게서 이종범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2020시즌, 심우준은 오랫동안 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유격수 리드오프의 계보를 잇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시즌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강철 감독은 꾸준히 심우준을 1번 타자로 기용했다. 그리고 심우준은 그 기대에 보답하듯 본인의 타격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다. 심우준에게 이종범이 보인다던 이강철 감독의 인터뷰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었던 걸까. 올 시즌 심우준을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야구공작소 순재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김준업, 양철종
기록=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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