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와 라이온즈의 다른 듯 같은 90년대

[야구공작소 양정웅] 뉴욕 양키스와 삼성 라이온즈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뉴욕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역대 최다 우승의 최강팀 이미지라면 삼성 라이온즈는 4연속 통합 우승 이전까지 강팀이기는 하지만 우승보다 준우승이 더 많은 2인자의 이미지였다. ‘부자구단’ 이상의 공통점은 찾기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시선을 1990년대로 돌려보면 두 팀의 공통점을 하나 더 찾을 수 있다. 양키스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0년 이상, 삼성은 90년대 중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두 팀은 그 시기를 흘려 보내지 않고 착실하게 준비해 90년대 후반부터 10년 이상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두 팀이 부진한 시기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또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어떠한 행보를 보였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만약 두 팀의 행보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강팀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팀의 암흑기를 피할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대비책이 무위에 끝난다 하더라도 암흑기를 탈출할 수 있는 청사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추락하지 않은 듯 추락한 암흑기

두 팀의 암흑기는 사실 타 약체팀 팬들의 기준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양키스는 1981년 아메리칸리그 우승 이후 13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실패에 가까웠지만 같은 기간 양키스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한 구단은 단 4팀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양키스의 암흑기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로 볼 수 있다.(평균 승률 0.445, 그림1 참조)


그림1. 1982~1994년 사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팀과 양키스의 승률 비교

데이브 윈필드를 영입하며 1980년대를 시작한 양키스는 80년대에만 11번의 감독 교체를 거치며(빌리 마틴 3회)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구단 수뇌부와 감독, 중심선수 간에도 균열이 생겼고 결국 1990년에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최하위라는 양키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거두었다.

삼성의 암흑기는 양키스와 비교했을 때 짧은 편이다. 그러나 전조는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삼성 선수단의 노쇠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1992년 기준 리그에 남아있던 원년멤버 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이 삼성 소속인 상황이었다. 노장 김성래, 이종두와 신예 양준혁, 박충식의 활약으로 1993년 페넌트레이스 2위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지만 노장들이 부진했던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되었다.

1994년에는 실질적으로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고, 이듬해에도 막판까지 4위 싸움을 벌였지만 뒷심 부족으로 5위에 머물렀다. 1996년에는 선수단 체질개선을 위해 백인천 감독을 영입했지만 김상엽의 부진과 박충식의 방위복무 등 악재가 겹치며 2016년까지 삼성의 역사 중 가장 낮은 0.448의 승률을 기록하며 6위에 머물렀다.

 

수렁 탈출

악몽의 80년대가 지나간 후 양키스는 조금씩 서광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다른 스몰마켓 팀들과는 달랐다. 페이롤을 크게 줄이지 않았고, 좋은 선수들이 있다면 기꺼이 영입했다. 그렇게 데려온 데이비드 콘, 폴 오닐, 티노 마르티네즈 등의 선수들은 암흑기의 막바지부터 팀에 힘이 되어주었다. 좋은 선수는 확실히 데려오면서도 고연봉 노장인 데이브 윈필드, 리키 헨더슨 등은 정리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표1.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베이스볼 아메리카(BA) 선정 유망주 TOP 100 순위 중 양키스 팜 선수들의 수

또한 ‘Core 4’로 대표되는 양키스의 팜 역시 무럭무럭 자랐다. 비록 1991년 전체 1순위로 지명한 브라이언 테일러는 불운이 겹치며 실패했지만 이듬해 지명한 데릭 지터를 필두로 앤디 페팃, 호르헤 포사다 등을 드래프트하며 팜을 키워나갔다. 버니 윌리엄스, 마리아노 리베라 등 해외 아마추어 자유계약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95년 BA 선정 유망주 순위에서 양키스는 해외 아마추어 계약선수와 드래프트 지명선수에서 각각 한 명씩을 10위 안에 진입시켰다.

삼성의 해결책 역시 육성이었다. 일찍이 2군 전용 연습장인 경산훈련장을 만들었던 삼성은 1990년대 들어 육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1996년 경산훈련장을 보수하여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를 개장했다. 최익성, 신동주, 이동수 등의 선수들이 이 시기 2군에서 실력을 가다듬고 있었다. 또한 일찍이 1군에 자리잡은 양준혁, 박충식, 이승엽 등의 선수들은 자칫 무너질 수 있는 팀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1987년 개장한 경산훈련장을 보수하여 1996년 탄생시킨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이곳은 삼성 호성적의 요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선수들을 배출했다.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삼성이 육성으로 90년대와의 안녕(Hello)을 얘기했다면 노장선수의 정리를 통해서는 80년대와의 안녕(Good-Bye)을 고했다. 우선 1992년의 원년멤버 다섯 명 중 네 명이 팀을 떠났다. 또 강기웅과 이정훈을 각각 현대 유니콘스와 OB 베어스로 트레이드했고 김성래와 이종두, 김성현은 쌍방울 레이더스로 보냈다. 마지막 남은 원년멤버 이만수는 상징성으로 인해 잔류할 수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그라운드보다 TV 광고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양키스와 삼성, 두 팀은 90년대 후반 이후 찬란한 아침을 맞이했다.

 

왕조, 그 찬란한 아침

1989년부터 4년간 5할 미만의 승률을 기록했던 양키스는 93년, 비록 그렉 매덕스 영입에는 실패했지만 새로 영입한 지미 키와 웨이드 보그스의 활약에 힘입어 5년 만에 5할 승률에 복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94년에는 파업으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기 전까지 70승 43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듬해에는 신설된 와일드카드 제도의 첫 수혜팀이 되면서 1981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조 토레 감독이 부임하고 리베라와 페팃, 그리고 지터가 모두 자리잡은 1996년부터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199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98년부터 2000년까지는 1972~74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1998년에는 162경기 체제 이후 최초의 7할 승률(114승 48패, 0.704)을 기록했다. ‘Mystique and Aura: Appearing Nightly’*라는 문구는 거짓이 아니었다.

* ‘Mystique and Aura: Appearing Nightly’ : 브롱스(양키스타디움 소재지)의 특별하고 매력적인 기운이 밤마다 나타난다는 뜻으로, 2001년 월드시리즈 당시 양키스타디움에서 극적인 승부가 이틀 연속 나오면서 등장한 문구.


1997년 이승엽의 최우수선수(MVP) 수상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상징했다.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암흑기가 길었던 양키스에 영광의 시간은 빨리 찾아온 반면, 삼성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기다림을 감수해야 했다. 1996년 최악의 성적을 거둔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한 삼성은 97년 126경기 체제 최다 홈런인 165홈런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외국인선수 영입으로 고질적 약점이던 투수진의 안정을 꾀한 98년에는 페넌트레이스 2위까지 올랐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2002년에는 드디어 우승을 차지했고, 2005년과 2006년에는 2년 연속으로 우승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호성적은 무차별적인 FA 영입 외에도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00년대 후반 부침은 있었지만 2011년부터는 4년 연속 통합 우승에 성공하며 드디어 ‘왕조’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부자 구단’의 부활공식

양키스와 삼성의 부활 과정은 몇 가지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모습이었다. 바로 ‘투 트랙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리빌딩 팀들은 주축선수를 대거 트레이드하고 탱킹*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두 팀은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이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선수들을 영입하는 동시에 내부 유망주 육성에도 총력을 다했다.

* 탱킹(Tanking) : 주로 약체팀들이 드래프트에서 좋은 순위를 얻기 위해 도박과 관계없이 고의적으로 승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행위. 리그에서 낮은 순위를 기록하기 위해 약한 전력의 팀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이는 양키스와 삼성이 각각 빅 마켓 팀과 재벌 소유 팀이라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의 라이벌 팀들이 두 팀만큼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에서 이들의 전략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두 해 좋은 모습을 보이고 몰락하는 일부 팀들과는 달리 두 팀은 10여 년 이상 강팀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구단의 소유주가 구단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 구단주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던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승리를 향한 엄청난 욕망을 적극적 투자로 나타내면서 팀의 부흥을 이끌었다. 삼성의 이건희 당시 구단주는 훈련장과 전용구장 건립을 직접 추진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눈앞의 확실한 이득이 보장되어야만 야구단에 투자하는 현 구단주 체제 하에서 두 팀이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기록 출처 : Baseball America,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STATIZ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박주현)

3 Comments

    • 확인해보니 2016년까지 삼성의 최저 승률이 1996년의 .448이 맞다고 합니다. 글 세세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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