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반승주] “강한 타구를 만들어라.”
이는 타자들이 타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기본적인 명제이다. 일반적으로 타구의 세기가 강할수록 안타가 될 확률은 높아진다. 과거 타자들은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배트 무게와 배트 스피드를 적절히 조절했다. 방망이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배트 스피드가 빠를수록 타구가 강해지지만 방망이가 무거우면 배트 스피드는 느려지기 때문에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중요했다.
이처럼 과거에도 강한 타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2014년까지는 타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불가능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가능해진 시기는 2015년부터다. MLB에서 스탯캐스트를 도입하면서 거의 모든 타구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팬그래프닷컴에서는 타구 강도에 따라 강한타구/중간타구/약한타구 등 3가지 형태의 분포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어느 선수가 강한 타구를 많이 만들어내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타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팬그래프닷컴의 크레익 에드워즈에 따르면 타구 속도와 장타율, 타구 속도와 wOBA(가중 출루율)는 서로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타율은 타자의 장타 생산 능력, wOBA는 타자의 전체적인 타격 생산성과 관련된다. 빠른 타구 속도가 좋은 성적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다.
<비욘드 더 박스스코어>에서는 지난해 정규시즌이 끝나고 두 시즌 동안 타자들의 타구 속도를 분석한 칼럼을 게재했다. 타구 속도를 통해 누가 잘했고, 누가 부진했는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래는 두 시즌 동안 각각 100개 이상의 타구를 만들어낸 선수 가운데 2015시즌 대비 타구 속도가 큰 폭으로 증가 및 감소한 선수들의 명단이다.
<2015시즌 대비 2016시즌 타구 속도 변화, 단위 : 시간당 마일>
피츠버그에서 활약한 맷 조이스는 짜릿한 반전을 이뤄냈다. 맷 조이스는 2015년 LA 에인절스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내며 메이저리그 생활이 마감될 뻔했고(.174/.272/.291, wRC+ 61, fWAR -1.4) 2016년은 피츠버그와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타구 속도가 시속 3.8마일이나 늘어난 가운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고(fWAR 1.3), 시즌이 끝나고 오클랜드와 2년 1100만 달러의 대박 계약을 맺었다.
맷 할러데이 또한 주목할 만하다. 2015시즌 허벅지 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인 91.6마일의 타구 속도를 기록한 할러데이는 지난 시즌에는 94.7마일을 기록해 타구 속도 상위 10명 안에 들었다. 양키스 유니폼을 입게 된 할러데이는 건강만 보장된다면 올 시즌도 활약을 기대해 볼 만하다.
가장 큰 폭으로 타구 속도가 증가한 선수는 의외로 대니 에스피노자였다. 2위인 대니 산타나에 비해 무려 1.5마일 더 증가했다. 누구보다 뜨거운 6월을 보내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지만(24개) 그것이 전부였다. 장타율도 2015시즌에 비해 감소(.409 → .378)했으며 OPS도 0.7에 못 미쳤다.(.684) 파워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증가한 타구 속도 폭에 비해 그가 2016시즌 거둔 성적은 아쉬웠다.
시카고 컵스와 8년 1억 84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제이슨 헤이워드는 지난 시즌 끝내 반등에 실패했다. 부진은 월드시리즈까지 이어지며 자칫하면 패배의 원흉이 될 뻔했다. 헤이워드는 2015시즌에 비해 땅볼 비율은 줄고 플라이볼 비율이 늘었으나(땅볼 57.2% → 46.2%, 플라이볼 23.5% → 33.3%) 타구 속도가 큰 폭으로 감소했고, 이것이 몰락의 원인이 됐다.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3.5마일이 감소된 95.1마일을 기록했지만 감소한 기록조차 넬슨 크루즈(95.9마일)에 이은 전체 2위의 기록이다. 8월 중순 사타구니 부상으로 부상자명단에 올랐던 스탠튼의 9월 7일 복귀 후의 타구 속도는 93.8마일에 그쳤다. 복귀 후 성적도 상당히 부진한 모습.(.188/.289/.406 2홈런) 지난 2시즌 동안 무려 131경기에 결장한 스탠튼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몸 상태 회복이 선결되어야만 할 것이다.
스탯캐스트를 통한 타구 속도의 보급은 타자들의 훈련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파이브써티에잇>의 랍 아서에 따르면 타자와 투수는 각각 5:1의 비율로 타구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투수가 타구 속도를 낮추려 해도 타자가 스윙을 조금만 교정하면 타구 속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타자들은 타구 속도를 높이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고, 2016년 메이저리그의 평균 타구 속도는 2015년보다 0.6마일 빨라졌다. 메이저리그 전체의 평균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량이다.
리그 전반적인 타구 속도의 증가는 메이저리그를 휘어잡았던 투고타저 경향이 완화되는 상황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타자들은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강한 타구는 대체로 비거리가 길고, 자연히 장타, 특히 홈런이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 타자는 이전과 달리 강한 타구를 만들기 위해 삼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홈런 개수는 1.16개로 역대 2번째로 높았고, 동시에 경기당 삼진 개수도 8.03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홈런의 증가로 득점이 늘어난 메이저리그는 지난 시즌 평균 득점이 4.48점으로 2014시즌(4.07점) 이후 반전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1994년 메이저리그가 파업을 겪으며 인기가 추락했을 때 인기를 회복시킨 기폭제는 홈런이었다.(물론 스테로이드의 힘이 컸다.) 이후 엄격한 금지 약물제도의 도입과 함께 투수들은 더욱 빠른 구속과 새로운 구종을 앞세워 타자들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다시 스탯캐스트의 도입으로 인한 기술 발전을 앞세워 타자들은 ‘타구 속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투수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타격과 투구라는 야구의 두 축을 두고 벌이는 타자와 투수의 치열한 경쟁의 다음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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