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이창우] 야구장에는 우리의 눈을 혹하게 할 요소들이 가득하다. 선수단, 치어리더, 먹거리, 구단의 특색을 잘 살린 상품들과 마스코트까지. 단순히 야구 보러 가는 장소를 넘어 야구장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우리 삶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마스코트를 주목해 보고자 한다.
마스코트의 존재감이 희미한 KBO리그에 비해 MLB는 구단마다 마스코트를 이용해 다양한 행사를 펼칠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까지 마스코트를 전천후로 활용하고 있다.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 마스코트 인기 랭킹, 마스코트 올스타 등 마스코트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있으며, 홈런을 칠 때마다 마스코트가 미끄럼틀을 타거나 클리닝 타임 때 마스코트끼리 경주를 펼치는 모습은 메이저리그의 재미 중 하나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야구장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MLB의 다양한 마스코트들. 구단 개수가 30개인 만큼 각 구단의 마스코트도 사람의 형상을 한 것부터 귀여운 동물까지 그 특징도 각양각색이다. 마스코트의 세계로 빠져보자.
마스코트의 역사 – 동물부터 사람까지
마스코트(mascot)는 마녀, 요정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mascoto에서 유래했다. 1860년대엔 마스코트가 부적, 마법사의 매력이라는 속어로 사용되기도 했고, 1880년대 메이저리그 태동기엔 ‘행운의 부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일례로, 당시 Chic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선수들에게 장비를 가져다주곤 했는데, 선수들은 Chic을 행운의 부적이라 여겼다고 한다.
최초의 ‘동물’ 마스코트는 1884년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염소다. 염소가 구장 내에서 선수들 근처를 돌아다니자 관중들은 염소를 마스코트라 생각했으나, 사실은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던 것이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구단에서 공식으로 지정한 마스코트는 아닌 셈이다.
구단이 공식으로 인증한 최초의 마스코트는 1916년 시카고 컵스가 지정한 새끼 곰이다. 20세기 초부터 컵스는 곰 형상의 옷을 입은 사람 혹은 박제된 곰을 마스코트로 사용하다가, 1916년엔 조아(Joa)라는 아기 곰을 공식 마스코트로 지정했다. 하지만 조아는 선수들을 공격하기도 했고 관중을 위협하는 일마저 발생했다. 게다가 ‘행운의 부적’으로 데려온 조아의 데뷔 후 컵스는 지구 5위까지 내려앉았고, 결국 조아는 동물원에 20달러에 팔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이 마스코트로 지정된 적도 있었다. 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스코트였던 신체장애인 에디 베넷이 그 주인공이다. 에디가 행운을 가져다줬던지 화이트삭스는 당해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선 지금도 구단의 흑역사로 평가되는 ‘블랙 삭스 스캔들’이 벌어졌고, 다음 시즌부터 에디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스코트의 역사 – 사람 형상부터 오늘날까지
이후 마스코트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었으나, 한 마스코트의 등장을 계기로 다시금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뉴욕 메츠의 Mr.Met이다. Mr.Met은 ‘인간 형상’을 한 최초의 메이저리그 마스코트였다. 당시 신생구단이었던 메츠는 신구장 셰이 스타디움으로 이전하면서 인기를 끌기 위한 방편으로 Mr.Met을 마스코트로 도입했다.
Mr.Met은 ‘우리가 아는’ 마스코트의 전형이다. 우스꽝스러운 인형 탈을 쓴 사람 형상의 무엇이다. 참혹했던 초창기 메츠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Mr.Met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에 힘입어 구단은 그의 부인 Ms.Met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Met 부부는 1970년대 이후 사라졌고 한동안 그들을 볼 수 없었다. 2013년이 돼서야 메츠는 다시 마스코트를 부활시켰고, 현재까지도 메츠 부부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가장 흥행에 성공한 마스코트는 테드 지아놀라스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우스꽝스러운 닭의 형상을 한 샌디에이고 치킨이다. 창단 이후 하위권을 전전하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그의 등장과 함께 인기를 끌 수 있었으며 소속사와 구단 간 갈등 때문에 내부 인물이 교체되자 테드를 복귀시키기 위한 고소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 치킨은 NBA 게임이나 TV 쇼, 올스타전 등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다. 테드는 오늘날까지 무려 40년 이상 마스코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캐릭터 샌디에이고 치킨은 전미 스포츠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최초의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샌디에이고 치킨의 흥행은 전미 최고의 마스코트 중 하나로 꼽히는 필리 파나틱의 등장에 영향을 끼쳤고, 이를 벤치마킹한 수많은 구단은 앞다투어 마스코트를 도입하게 되었다.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
매년 필라델피아에서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 입회식이 열린다. 프로 혹은 대학 스포츠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팬들과 지역 사회에 지속적으로 인상적인 영향을 미친 마스코트만이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가질 수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명예의 전당 입회식은 마스코트 연기자들, 명예의 전당 임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투표를 진행한다. 최종 후보 6명 중 3명 이상이 매 투표마다 입회한다. 최초로 등재된 3인의 마스코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필리 파나틱, 피닉스 선즈의 선즈 고릴라 그리고 샌디에이고 치킨이다.
본디 온라인에서만 존재했던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이었지만, 2018년 12월 창립자 데이비드 레이몬드는 마스코트 박물관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25명에 달하며 대학 스포츠 마스코트도 8명으로 프로 스포츠에 비해 적지 않은 편이다. 올해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오리올 버드가 헌액되기도 했다.
마스코트 트리비아
T1. 마스코트가 없는 구단이 있다?
– LA 다저스, LA 에인절스, 뉴욕 양키스는 현재 마스코트가 없다. 다저스는 창단 이래 마스코트를 도입한 적이 아예 없고, 에인절스는 구단에서 인정하진 않았지만 비공식 마스코트 ‘랠리 몽키’가 있다. 뉴욕 양키스는 1979년 댄디라는 이름의 마스코트를 도입했으나 팬들의 반대로 인해 1981년 댄디를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T2. 마스코트의 생일을 기리는 구단이 있다?
– 필라델피아 필리스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필리 파나틱의 생일 4월 29일은 Phanatic’s Birthday라 하여 그를 위한 특별한 프로모션 행사가 진행될뿐더러 모든 메이저리그 마스코트들이 생일 축하를 위해 시티즌스 뱅크 파크로 모인다.
T3. 가장 마스코트가 많은 구단은?
– Mr. Red, Gapper, Rosie Red, Mr.Redlegs라는 이름을 가진 총 4명의 마스코트를 보유한 신시내티 레즈다. 신시내티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마스코트를 가진 구단이기도 하다.
T4.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마스코트도 있다?
– 시애틀 매리너스의 매리너 무스다. 1990 시즌 개막 전에 개최된 14세 이하 어린이 대상 마스코트 공모전의 우승작으로서 매리너 무스는 데뷔했다.
T5. 활동 중 공식으로 여자친구와 헤어진 마스코트가 있다?
–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다. 그는 2000년부터 블루제이스의 공식 마스코트로 활동했고, 2001년 토론토 구단은 그의 여자친구 다이아몬드를 데뷔시킨다. 하지만 2003년 그들이 결별했다는 에피소드 하에 다이아몬드는 사라졌고, 대신 에이스는 2011년 그의 남동생 주니어를 얻었다.
T6. 샌디에이고 치킨은 공식 마스코트가 아니다?
– 샌디에이고 치킨이 필리 파나틱과 더불어 빅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마스코트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샌디에이고 치킨은 공식 마스코트가 아니다. 파드리스의 공식 마스코트는 ‘스윙 프라이어’라는 대머리 수도승이다.
T7. 월드시리즈 우승을 함께 하고도 사라진 마스코트가 있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랠리 스퀴럴(다람쥐)이다. 2011년 필라델피아와의 NLDS에서 홀연히 나타나 피칭 중이던 로이 오스왈트를 방해(?)한 스퀴럴은 카디널스 팬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2013년 WS에서 카디널스가 패배한 이후 인기가 한풀 꺾였고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마스코트, 우리도 한 번?
이처럼 메이저리그엔 다양하고 역사 깊은 마스코트가 많다. 마스코트는 때론 구장 내에서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론 구설수를 일으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 스포츠 마스코트들은 사회 공헌 행사나 각종 콘텐츠 생산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필리 파나틱은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필라델피아 시의 마스코트로 거듭나기도 했다.
반면 KBO리그는 마스코트 활용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한때 키움 히어로즈의 턱돌이가 적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반짝이었다. KBO리그 팬 중에서도 자기 구단의 마스코트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팬이 과연 몇이나 될지도 미지수다.
무조건 메이저리그의 문화를 본받자는 게 아니다. 최근 800만 관중이 붕괴되며 ‘인기 비상’에 시달리는 KBO리그는 성인 팬뿐만 아니라 아동 및 청소년 마케팅에도 주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동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은? 바로 마스코트가 아닐까?
에디터= 야구공작소 오연우
기록출처= FOX Sports, ESPN, New York Times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