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FA’ 류현진의 계약 규모와 행선지는?

(사진=Flickr Ron Gallegos)

지난 1년간 야구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메이저리그가 워싱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 대한민국 야구 팬들의 이목은 조만간 열릴 메이저리그 FA 시장으로 모이고 있다.

지난해 첫 FA자격을 얻었던 류현진은 원 소속 팀 LA 다저스의 1년 1790만 달러 규모 퀄리파잉 오퍼를 받아들여 다저스에서 한 시즌을 더 치렀다. 현행 메이저리그 CBA(노사협약)는 한 번 퀄리파잉 오퍼를 받았던 선수는 더 이상 퀄리파잉 오퍼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류현진은 이번 FA 시장에서 퀄리파잉 오퍼의 대상이 아니다. 다저스가 아닌 다른 팀이 그를 영입한다고 해도 계약에 따른 페널티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층 당당해진 발걸음으로 FA 시장에 돌아온 류현진의 계약 규모를 두고 많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과연 류현진은 얼마나 큰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까. 과거의 사례들을 근거로 그 규모를 예측해보자.


4년 ‘보장’은 쉽지 않다

류현진은 내셔널리그 ERA(평균자책점) 1위라는 생애 첫 메이저리그 타이틀을 거머쥐고 FA 시장으로 나왔다. 기대 이상의 대활약에 고무된 국내 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4년 이상의 장기계약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과연 그럴까.

투수의 장기 계약은 지난 3년 사이에 메이저리그 FA시장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시장의 변곡점은 새로운 CBA가 체결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시점은 2016년 12월 2일. 이때 강화된 퀄리파잉 오퍼, 사치세 등의 제도가 FA 투수 시장의 급격한 냉각을 초래한 것이다.

새 CBA가 체결되기 전이던 2015-16 오프시즌에는 9명의 투수가 4년 이상이 보장된 계약을 따냈다. CBA 체결 직후인 2016-17 오프시즌에는 단 한 명도 4년 이상의 계약을 보장받지 못했다. 2017-18 오프시즌에는 다르빗슈 유, 알렉스 콥 2명만이 4년 이상의 다년 계약을 선물 받았다. 지난 오프시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트릭 코빈과 네이선 이볼디 그리고 포스팅을 거친 일본프로야구 출신의 기쿠치 유세이까지 3명이 고작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4년 이상의 계약을 보장받은 투수는 단 5명뿐이다. FA 선발투수와의 장기 계약은 이처럼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최근 3년간 FA 선발투수 4년 이상 보장 계약 사례

류현진의 나이도 장기 계약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1987년생인 류현진은 2020년이면 만으로 33세가 된다. 위의 표에 이름을 올린 ‘최근 3년간 4년 이상 계약을 맺은 선발투수 5인’ 중에서 33세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다르빗슈는 32세, 콥은 31세, 코빈은 30세, 이볼디는 29세 시즌을 앞두고 시장에 나왔다. 기쿠치는 올해 6월에 만 28세가 됐다.

30대에 FA 시장을 밟은 ‘A급 선발투수’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CBA 개정 후, 30세 이상 선발투수들 중 일부는 FA 자격 취득 대신 대형 연장 계약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 3년간 30세 이후의 시즌을 포함하는 3년 이상의 연장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지난 3년간 30대 시즌을 포함한 3년 이상의 연장 계약을 체결한 선발투수 명단

이들의 수는 총 10명이다. 이 가운데 계약 당시 30대가 아니었던 선수는 블레이크 스넬, 애런 놀라, 대니 더피,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까지 4명이다. 심지어 마르티네스의 경우 만 29세 시즌이면 최소 보장 기간이 종료되는 형태의 연장 계약이다. ‘30대 연장 계약’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많다고 볼 수도 없다.

류현진은 어깨 수술 이후로 단기간이지만 적지 않은 빈도로 부상자 명단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만 30세를 넘긴 야구 선수에 대한 시장의 가치 평가는 해마다 큰 폭으로 떨어진다. 때문에 시장에서 4년 이상의 계약 기간을 보장받기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신 2~3년의 보장 기간에 소화 이닝, 건강 유지 여부 등에 따른 1~2년의 추가 옵션이 붙는 형태의 계약을 노려볼 만하다.


케이스 스터디 (1) – 랜스 린

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들 중에서 류현진과 흡사한 유형의 투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스터프나 투구 레퍼토리가 비슷한 선수로는 카일 헨드릭스가 있지만, 헨드릭스는 훨씬 젊은 만 29세 시즌(1989년 12월 7일생)에 연장 계약을 맺었고 FA 신분도 아니었다.

지난 오프시즌에 3년 이하의 계약을 맺은 선발투수들 중에는 랜스 린, J.A. 햅, 아니발 산체스가 류현진과 유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 선수 모두 30대에 퀄리파잉 오퍼 제약이 없는 FA가 됐고, 스터프가 압도적이지 않으며, 150~200이닝 정도의 투구를 기대할 수 있는 3~4선발급 자원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 중 랜스 린은 류현진과 같은 1987년생이고, 던지는 팔에 수술을 받았으며(2016년 토미 존 수술), 복귀 후 150~180이닝 정도를 소화하고 시장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류현진과 흡사하다. 류현진보다 2마일가량 구속이 빠르지만 특출한 수준은 아니고, 통산 14.4%의 탈삼진-볼넷 비율(K-BB%)도 류현진(16.6%)과 별 차이가 없다.

린은 텍사스 레인저스와 3년 3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류현진과의 가장 큰 차이는 부진했던 직전 시즌 성적 때문에 좋은 대우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린은 지난해 미네소타 트윈스와 뉴욕 양키스를 거치며 156.2이닝 동안 4.77의 ERA를 기록했다. 린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류현진은 적어도 연평균 1000만 달러 이상, 보장 기간 2~3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케이스 스터디 (2) – J.A. 햅, 아니발 산체스

한편 산체스는 2년 1900만 달러, 햅은 2년 3400만 달러에 각각 계약을 맺었다. 산체스는 3년간 하향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부활에 성공했고, 햅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3점대 ERA를 유지하면서 좋은 성적을 냈다. 두 선수는 모두 1984년생, 1982년생의 노장이다. 류현진은 성적상으로 햅 쪽에 더 가깝고 나이도 이들보다 젊다. 햅 이상의 연평균 금액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류현진이 수락했던 퀄리파잉 오퍼의 금액(1790만 달러)은 햅이 맺은 계약의 연평균 금액(1700만 달러)과 흡사하다.

두 선수는 계약에 옵션 조항을 넣었다. 햅은 1700만 달러의 베스팅 옵션(조건부 옵션), 산체스는 1800만 달러의 팀 옵션이다. 햅의 옵션은 2020년 165이닝 또는 27번 선발 등판을 소화했을 때 자동으로 실행되며, 산체스의 옵션은 팀에서 600만 달러의 바이아웃(위약금)을 지불하고 취소할 수 있다. 옵션 조항을 계약에 넣을 경우 부상이 잦았던 류현진 측에서는 가급적이면 베스팅 옵션 또는 선수 옵션을, 구단 쪽에서는 팀 옵션을 넣고자 할 것이다.


케이스 스터디 (3) – 찰리 모튼, 리치 힐

또 다른 유사 사례로는 찰리 모튼과 리치 힐이 있다. 최근 3년간 FA시장에서 30대의 나이로 보장 기간 3년 이하, 연평균 금액 15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따낸 사례는 이 두 선수와 제이크 아리에타(3년 2500만 달러 보장, 이후 두번의 1년 2250만 달러 팀 옵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아리에타는 FA 자격 취득 2년 전 압도적인 투구로 사이영상을 탔고, 당시 시장에서도 최고급 매물로 분류된 선수였기 때문에 류현진보다는 여건이 좋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모튼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입단을 기점으로 커리어가 완전히 달라진 사례다. 이전에는 땅볼 유도를 노리는 싱커볼러였지만, 휴스턴 이적 후로는 시속 90마일 중반대의 포심과 커브를 앞세운 탈삼진 기계가 됐다. 모튼은 압도적인 성적에도 1983년생이라는 나이와 미진했던 이닝 소화(2년간 313.2이닝) 때문에 장기계약 체결에 실패하고 말았다. 대신 탬파베이 레이스와 2년 3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오랜 부상에 시달렸던 힐은 독립리그를 거쳐 2015년 빅리그에 복귀했고, 순식간에 정상급 스터프를 앞세운 선발투수로 재탄생했다. 고질적인 물집 부상과 1980년생이라는 많은 나이가 단점으로 지적됐지만 ‘건강하기만 하면 A급 선발’이라는 가정에 매료된 LA 다저스가 3년 4800만 달러의 계약을 선물했다.

구속은 천지 차이이지만, 두 선수는 가공할 탈삼진 능력을 갖췄으며 계약 당시 36, 37세 시즌을 앞두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로케이션과 구종 배합이 최대 강점이고 이제 33세 시즌을 맞이하는 류현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프로필이다.

그렇지만 ‘젊고 건강하지 않더라도 마운드에만 오르면 큰 존재감을 뽐냈다’는 점에서는 둘 다 류현진과 닮았다. 데이터 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팀에서 뛰었다는 점도 같다. 모튼과 힐은 모두 분석을 통해 투구 스타일에 변화를 줬고 성공을 거뒀다. 류현진 역시 올해 적극적으로 상대를 분석하고 커터의 활용 빈도를 끌어올리며 화려한 부활을 만끽했다. FA 직전 시즌의 임팩트는 두 선수보다도 앞선다. 이런 공통점을 생각한다면 모튼, 힐처럼 기간은 짧지만 연평균 금액이 높은 계약을 맺는 시나리오도 가능할 것이다.


변수 – FA 직전 시즌 성적

한 가지 변수는 있다. 류현진은 앞서 열거한 5명의 비교 대상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FA 직전 시즌을 보냈다(올해 bWAR 5.1, fWAR 4.8). 5명 중에서 FA를 앞두고 사이영상 후보로 분류됐던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이었던 만큼 앞으로도 같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이들보다 ‘고점’이 더 높다는 주장을 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스캇 보라스 같은 ‘슈퍼 에이전트’가 이런 강점을 효과적으로 어필한다면 연평균 2천만 달러 이상의 대형 계약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합 예상: 최대 3년 6000만 달러 보장, 행선지는 미지수

이 같은 사례들에 견줘봤을 때 류현진이 받아낼 보장 기간은 2년에서 3년, 보장 금액은 연평균 1500만 달러부터 2000만 달러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햅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2년에 3000만 달러를 보수적인 하한선으로 잡을 수 있을 듯 보인다. 여기에 1년에서 2년 정도 옵션이 더해질 가능성도 있다. 계약 마감 시간까지 뚝심 있게 버텼다는 메이저리그 진출 포스팅 당시의 일화를 생각한다면, 선수 쪽에서 성적에 따른 베스팅 옵션을 요구할 수도 있어 보인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유망주가 빅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빅 마켓 구단들은 ‘즉시전력감’에 과감히 투자하되 장기 계약을 가급적 지양하는 쪽으로 운영 방침을 잡아 나가는 중이다. 그래도 넉넉하게 3년 정도를 보장해줄 구단은 있을 것이고, 사이영상을 놓고 경쟁했을 정도의 투구를 높이 산다면 2000만 달러 정도의 연평균 금액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렇게 해서 3년 6000만 달러를 ‘보수적 상한선’으로 설정해본다. 마찬가지로 옵션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재력을 과시하려는 팀과 보라스의 입담이 어우러진다면 그 이상의 대박도 가능하겠지만, 확률이 아주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계약 규모와 별개로 행선지는 쉽사리 추측하기가 어렵다. 워낙 후보가 많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많이 언급된 LA 에인절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같은 서부지구 구단은 분명 협상 대상이 될 만하다. 에인절스는 올 시즌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가 단 한 명뿐이었을 정도로 선발이 부족한 팀이다. 샌디에이고도 3점대 ERA를 기록한 선발투수가 크리스 패댁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선발에 공백이 생기는 팀은 많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애덤 웨인라이트와 마이클 와카가 FA 자격을 얻는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는 브렛 앤더슨이 FA가 된다. 오래 전부터 농담거리로 언급되던 행선지이지만 텍사스 레인저스도 올 시즌 선발 로테이션이 원활히 돌아간 적이 없다. 기타 리빌딩 팀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구단들이 보강을 결심하게 되는 사정은 워낙 제각각이기 때문에, 원래 FA시장에서 가장 맞히기 어려운 질문이 바로 행선지다.

다저스와의 재계약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상들이 엇갈리고 있다. 필자는 50대 50 정도로 생각한다. 지난해 류현진에게 퀄리파잉 오퍼를 제시했던 다저스의 행적은 단기간이라면 연평균 1700만 달러는 충분히 지출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 표현과도 같다. 다만 다저스에는 FA로 나서는 힐과 류현진 외에도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노리는 선수들이 많다. 지금도 선발 자원을 불펜으로 돌려서 기용하는 마당에 류현진에게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야 할 당위는 그리 뚜렷하지 않다. 그렇지만 류현진의 놀라운 ‘부활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팀인 만큼 재결합을 원할 이유는 충분하다. 관건은 계약 규모보다는 양측의 의지가 될 것이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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