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공부하는 야구선수’를 육성하는 세현고의 수장 진성룡 교장을 만나다.

<올해 초,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세현고등학교 야구부>

[야구공작소 송동욱] KBO 10개 구단 1군 엔트리를 전부 합치면 약 250명이다. 그 중 선발 라인업에 드는 선수는 선발투수를 포함해 10명. 리그에 100명 남짓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들기 위해 전국 80여 개 소속 고교 선수들은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쉽게도 이 선수들 모두가 프로에 갈 순 없다. 일반 입시생들에게는 재수, 편입과 같은 일종의 재도전 기회가 있지만, 고교 선수들은 조금 다르다. 프로에 진출하거나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면 야구선수가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오로지 야구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야구인들은 입을 모아서 말한다. 꼭 야구가 아니더라도, 야구인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생활이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고교 성적을 기반으로 프로 지명을 받거나, 대학진학을 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주 1일은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하는 독특한 규칙을 세운 야구부가 있다. 감독실에 야구용품과 선수들의 책상이 같이 놓여 있던 낯선 광경을 보여준 세현고 야구부의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왔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옛날에 테니스 선수를 했고 40년간 체육 교사를 하며 체육계에 몸담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야구선수 이전에 학생입니다. 훗날 야구인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더라도 본인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능력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제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병행시키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감히 제가 한국 고교야구계를 바꾸겠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팀도 있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공부하는 야구선수를 키워내는 야구부’를 목표로 삼고 있는 세현고등학교 교장 진성룡입니다” 

‘공부하는 야구선수’라는 단어가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는 한국 고교야구에서는 아직 낯섭니다. 세현고 야구부는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관학교 교관도, 체육 교사도, 체육고등학교에서 배드민턴부 감독도 했습니다. 얼추 체육계에 40년 정도 몸담아온 셈이죠. 그러면서 우리나라 체육계, 특히 야구계의 발전 방향은 어때야 할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일본 고교야구입니다. 고시엔, 그 무대를 밟아 보기 위해 4,400여 개 정도의 팀이 참여해요. 하지만 그 학생 중 프로 무대를 꿈꾸는 선수는 10% 남짓입니다. 그런데도 야구를 정말 열심히 하면서 공부로 대학을 진학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는 거죠.

이런 차이를 보며 느낀 정말 아쉬운 점은 저렇게 즐기면서 열심히 야구를 해도 본인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교육환경이 아직 한국 고교야구, 더 크게는 고교 교육에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요컨대 그 친구들은 야구에 본인 인생을 걸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국 고교야구 선수들은 본인이 프로에 갈 재능과 실력이 되든 되지 않든 한번 시작하면 운동에 본인 인생을 겁니다. 그리고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평생 야구만 해 온 아이들에게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야구계에서 일자리를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마저 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집니다. 사회가 운동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품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야구 말고 다른 것을 해 본 경험 자체가 없기 때문에 먼 훗날 본인들이 사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본인들이 좋아서 야구를 시작했는데 최소한 그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경험 없이 운동 하나에 모든 걸 투자하는 지금 이 구조대로라면 후회할 여지가 너무나 많습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야구 한 가지에 인생을 거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시킨다면 이런 위험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책상에 앉아 본 경험이 있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좋은 말씀과 취지이지만, 현실과의 거리감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말씀하신 병행이 가능한 선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도 분명 존재할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떤 대비책을 세우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야구부에 재학 중인 아이들이 오롯이 야구만 해서 본인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을 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꼭 야구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이 아이들이 진학할 수 있는 대학과 과에 들어갔을 때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잡아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상적인 답안과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운동과 대학 진학을 위한 학업을 병행하는 상황에 부담감을 느끼거나 혼란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분명히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다수의 체육 계열 학생들이 이미 그것을 해내고 있습니다. 단지 야구와 입시 체육으로 종목만 다를 뿐이죠. 저는 우리 야구부 아이들도 당연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택 교과제를 통해서 입시 체육 과정을 병행시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따라오지 못했지만, 입시 체육 실기를 병행하면서 다소 부족했던 기초체력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좋은 효과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선택 교과제: 고교생 본인이 직접 진로 및 학업 방향에 맞게 교과목을 선택하여 듣는 제도

꼭 입시 체육이 아니더라도 대학 진학 후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는 꼭 책상에 붙어서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습관은 절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거든요.

또 야구는 끊임없이 상황에 따라 생각해야 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인내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인내력은 공부하는 습관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점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야구선수는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지워주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야구는 굉장히 개인적인 운동입니다. 팀 훈련에만 참여해서는 그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틈을 메꾸는 방법으로 이미지 트레이닝 등의 개인 훈련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습관과 공부하는 습관도 분명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모든 선수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잘 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선수들이 나중에 ‘그때 공부하지 말고 스윙 한 번이라도 더 돌렸다면…’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부분이야말로 지도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말고 정말 이 선수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지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공부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야구선수 이전에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팀에 뿌리내려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정착시켜주는 것이 우리 야구부 지도자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문화를 1학년 선수들은 3년 동안 받아들일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이 다소 적은 2, 3학년 선수가 찾아와서 ‘선생님 저는 선수입니까? 학생입니까? 제 본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당연히 선수 이전에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철학을 꾸준히 가지고 왔고 절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명의 학생이 아닌 야구 선수로만 키우는 것’ 이 점이 한국 엘리트 체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 포지션을 영어로 써보라는 간단한 질문도 아이들은 답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저는 뭔가 크게 바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2, 3학년 선수들이 이전에 있던 학교보다 세현고등학교에 와서 공부를 시도해 본 경험을 통해 본인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생각해주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을까요?

“제가 이 학교에서의 임기가 1년 반 남았습니다. 공부하는 야구부에 대한 반발도 반대도 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탁정근 감독님이 저와 뜻을 함께해 주고 있기에 지금과 같이 야구부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떠난 뒤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 됩니다. 그게 좀 아쉽습니다.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보는 심정일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제가 떠나더라도 유지될 수 있도록 그 뿌리는 단단히 잡아주고 가고 싶습니다.

근데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선수들 경기를 관전 가면 보통 상대편 관중석 쪽에 앉습니다. 그날 저희가 콜드 게임으로 패배했는데, 학교 교장까지 왔는데 콜드 게임으로 지면 사실 비웃을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관중석에서 “세현고는 공부 다 시키고 야구까지 한다며? 대단한 곳이네” 하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들렸습니다. 저희가 바꾸고자 하는 인식이 고교야구에 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죠. 대단한 일은 아닐 수 있지만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향후 목표도 있을까요?

“늦어도 내년까지는 야구 좋아하는 일반 학생들을 모집해서 B팀을 만들어 실제로 선수들과 경기를 해보는 등, 야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 학교는 방과 후 활동 중점학교로 지정되어 있어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야구선수가 공부하는 것처럼 일반 학생들에 대한 야구 저변 또한 넓혀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점진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저희가 일순간에 영향력을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깥에서도 어려울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큰 목표를 잡기보다는 작지만 확실하게 시작해보려 합니다.” 

 

야구 선수는 야구를, 일반 학생은 공부를. 우리는 지금까지 야구를 선택한 아이들에게 야구만을 강요해 왔다. 할 때는 최선을 다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라는 답변이 무척 와 닿았다. 

이미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실무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진성룡 교장에게서는 여느 감독들 이상으로 선수들에 대한 애정과 팀의 방향성에 대한 열정이 묻어져 나왔다. ‘공부하는 야구부’ 세현고의 유쾌한 반란을 기대해보자.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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