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 강승호의 음주사고
[야구공작소 한민희] SK와이번스 소속의 강승호는 2019년 4월 22일 새벽 경기도 광명시 광명IC 부근에서 혈중 알코올 농도 0.089%로 음주운전을 하다 도로 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더욱이 그는 파손된 도로 분리대를 그대로 지나쳤고 구단에 알리지 않은 채 퓨처스리그에 출전하는 대담함을 보여 충격을 줬다. 강승호는 음주운전행위 외에 사고 후 미조치행위에 대해서도 별도의 범죄가 인정되어 단순한 음주운전 단속보다 훨씬 엄하게 형사 처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2019년 4월 25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강승호에 대한 제재를 심의했는데, 음주운전을 하며 도로 분리대를 파손한 만큼 단순적발이 아닌 음주접촉사고로 판단했다. 또한 강승호가 음주사고 후 바로 구단에 알리지 않은 점을 고려해 2019 KBO규약(이하 ‘규약’) 제151조에 따라 「출장정지 90경기, 제재금 1,000만 원, 봉사활동 180시간」으로 가중 제재했다.
< 출처 : KBO 홈페이지, 2019 KBO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 >
KBO가 제재를 부과하자 SK는 같은 날 바로 강승호에 대해 구단 차원의 최고 징계수위인 「임의탈퇴」를 결정했다고 구단 자체제재를 발표했다. 그리고 임의탈퇴로 인해 지급이 정지되는 올해 잔여 연봉을 교통사고 피해가족 지원에 활용할 계획이며, 임의탈퇴 기간이 끝난 뒤 강승호가 얼마나 반성했는지 보고 향후 신분에 대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SK가 강승호에게 임의탈퇴의 제재를 가한 것은 적당할까.
규약 제151조가 규정한 제재종류
규약 제151조가 음주사고에 대해 정한 제재종류는 ‘실격처분, 직무정지, 참가활동정지, 출장정지, 제재금 부과, 경고처분’이다.
< 출처 : KBO 홈페이지, 2019 KBO규약 >
그런데 SK는 규약 제151조에 규정되지 않은 「임의탈퇴」를 제재수단으로 했고 이것이 구단 차원의 최고 징계라고 했다. 물론 구단이 자체적으로 제재사유와 수단을 정할 수 있지만 구단도 KBO의 회원인 만큼 그 사유와 수단을 정할 때 규약을 존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 구단이 선수에 대한 제재로 임의탈퇴를 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지난 2월 LG트윈스가 음주운전을 한 윤대영에 대한 구단 내부징계로 임의탈퇴 시켰다. 하지만 규약 제151조에서 음주사고의 제재 종류로 정하지 않은 임의탈퇴가 구단 내부 징계로 적절한 것일까?
임의탈퇴란
구단은 규약 제31조 제1항이 규정한 4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총재에게 선수의 임의탈퇴를 신청하고 총재는 해당 선수를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한다.
구단이 임의탈퇴를 신청할 수 있는 경우는 ① 선수가 참가활동기간 또는 보류기간 중 선수계약의 해지를 소속구단에 신청하고 구단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선수계약이 해지된 경우, ② 선수가 선수계약의 존속 또는 갱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인정되어 구단이 선수계약을 해지한 경우, ③ 규약 제59조 제2항 제1호에 의하여 보류기간이 종료한 경우, ④ 기타 KBO규약에 의하여 임의탈퇴선수로 신분이 변경된 경우다.
임의탈퇴 신청사유에 나타난 것처럼 임의탈퇴는 보통 선수가 계약기간 중 은퇴의사를 표현하거나 구단과 마찰이 있어 활동 의지가 없는 경우, 구단이 선수의 의사에 동의하여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즉 선수와 구단이 합의하여 잠정적으로 계약관계를 중단하는 것으로, 구단이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선수계약을 해지하는 방출과 다르다.
하지만 임의탈퇴는 선수계약기간의 종료나 구단의 잘못으로 해지되는 것이 아닌 만큼 일정한 제한을 받는다. 우선 임의탈퇴로 공시되면 해당 선수는 표준야구선수계약서 제3조에 따라 연봉을 받지 못하고, 이전 소속구단은 물론 다른 구단과의 계약도 금지된다.
임의탈퇴 된 선수가 KBO에 복귀하려면 규약 제65조에 따라 복귀신청서를 총재에게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규약 제66조 제1항에 따라 총재가 해당 선수를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한 날로부터 1년이 경과한 날부터 복귀를 신청할 수 있다. 총재가 복귀허가를 할 경우 해당 선수는 규약 제68조에 따라 임의탈퇴 당시의 소속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다른 구단과 계약할 수 없다.
임의탈퇴, 음주사고에 대한 징계로 적당한가
이렇듯 규약이 임의탈퇴에 대해 규정한 내용을 보면 선수의 의사에 따라 구단이 계약해지에 동의하되 계약해지에 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속성을 고려할 때, 규약 제151조의 출장정지·제재금·봉사활동과 같이 일방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임의탈퇴가 과연 징계수단으로 적절한 것인가에 강한 의문이 든다.
규약이 선수에 대한 징계수단으로 「임의탈퇴선수 신분공시」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규약 제172조 제2항은 ‘프리에이전트(이하 ‘FA라고 한다) 획득구단의 보상선수가 선수계약의 양도를 거부하는 경우 원 소속구단의 임의탈퇴선수가 되고, 3시즌 동안 프로야구 활동을 금지 시킨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규약 제176조 제1항 제3호는 ‘FA와 관련한 내용이 규정된 규약 제17장의 규정을 위반한 선수에 대한 징계로 당해 연도 FA신청자격을 박탈하고 1년간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할 수 있다’고 정한다.
< 출처 : KBO 홈페이지, 2019 KBO규약 >
하지만 위 두 가지 경우는 ① 규약이 정한 선수계약양도를 해당선수가 거부한 것이거나 ② FA자격취득선수가 FA계약을 체결하면서 규약을 위반한 경우로, 선수의 소속구단이 변경되는 사안과 관련이 있다. 선수가 규약 제151조의 품위손상행위를 한 경우와는 제재사유부터 질적으로 다르다.
구단이 선수와 별도의 선수계약서를 작성하여 이러한 내부징계를 인정하도록 했더라도 타당하지 않다. 구단이 KBO의 회원인 만큼 규약 및 규약이 정한 표준야구선수계약서를 준수해야 하고 규약의 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가 안지만을 상대로 FA계약위반을 이유로 계약금반환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구지방법원은 2018년 8월 ‘KBO규약 및 규약이 정한 부속규정이 구단과 선수의 별도의 계약에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나아가 임의탈퇴는 공시 후 1년이 지나 복귀신청을 할 경우 원 구단으로 복귀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1년의 출장정지’ 제재와 큰 차이가 없게 된다. 당장은 구단이 선수와 계약을 해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수의 구단복귀가능성은 전제된 것이다.
※ 맺음말
음주운전은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할 만큼 위험한 범죄다. 그리고 교통사고 후 사상자를 구조하고 파손된 부산물을 정리하는 등 후속조치를 하지 않는 것 또한 명백한 범죄다. 그렇기에 소속 구단이 ‘최고수위’ 징계제재를 선택한 것은 의미 있는 행보다. 음주사건의 위험성 및 구단과 선수의 신뢰관계를 고려할 때 다른 선수들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의 의지를 고려하더라도 임의탈퇴를 음주사고에 대한 징계로 활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규약이 정한 임의탈퇴의 내용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속성상 품위손상행위에 대한 징계수단으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오연우, 이예림
표지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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