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O 제공)
[야구공작소 김동윤] 매년 뜨거운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찾아올 처서 쯤이면 프로야구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어린 선수를 맞이하는 중요한 행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매년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열리는 KBO 신인 드래프트다. 작년과 같이 2주 미뤄진 올해 드래프트는 시작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유명 해외파 선수들의 드래프트 신청, 구단 간의 이해관계, 신인들의 포지션 문제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재미를 더했다. 8월에 시행된 해외파 선수 트라이아웃은 자칫 뻔할 수 있는 드래프트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KBO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이번 드래프트,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던 회장
모두가 기다린 신인 2차 드래프트 현장(사진=김동윤)
9월 10일에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이번 드래프트 현장엔 선수 35명, 선수 가족 및 구단 관계자 200여 명, 야구팬 150여 명이 참석했다. 조금 일찍 입장한 회장은 전체적으로 들떠 보였다. 응원팀의 유니폼을 입고 온 프로야구 팬은 어떤 선수가 응원팀에 오게 될지 궁금해 했다. 고교야구를 즐겨보는 팬은 응원하는 학교나 지역의 선수가 얼마나 지명될지에 관심을 쏟았다.
행사를 기다리는 선수들의 모습도 서로 달랐다. 고등학교 선수들은 선수 대기실에서 소속 학교의 유니폼을 입고 기다린 반면 해외파 선수들은 정장을 차려입은 채 자유롭게 회장을 오갔다. 경찰청 소속으로 제대를 앞둔 이대은은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특히 상위 지명을 받을 것이 유력했던 해외파 선수들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을 반기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옷매무새를 수시로 점검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이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대은으로 시작한 무난한 지명
현장에 참석한 35명의 선수(사진=김동윤)
올해 신인 2차 드래프트 지원자는 총 1,072명이다.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806명, 대학교 졸업 예정자 256명, 해외파 등 기타 10명이 대상이다. 순서는 KT-삼성-한화-넥센-LG-SK-NC-롯데-두산-기아로 2017년 성적의 역순으로 진행됐다. 10개 구단은 10라운드 동안 한 번도 패스하지 않으며 총 100명의 선수를 선택했다. 드래프트 신청자 중 10% 남짓만 선택받았다. 현장에 있던 35명의 선수는 모두 지명을 받으며, 지켜보던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전체 1번으로 지명된 이대은(사진=김동윤)
전체 1번은 모두의 예상대로 경찰 야구단 소속 이대은이었다. 현장 분위기도 이대은의 KT 위즈 행은 당연하다며,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전체 2번으로 지명된 이학주(사진=김동윤)
주전 유격수 김상수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가 됨에 따라 삼성의 선택은 자연스레 내야자원의 보강으로 점쳐졌다. 前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이너 출신 이학주와 경남고 내야수 노시환을 두고 고민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삼성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학주를 지명했다.
1라운드로 선택받은 8명의 선수(사진=김동윤)
지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야 리빌딩이 필요했던 한화 이글스는 경남고 내야수 노시환, 좌완투수가 필요했던 넥센 히어로즈와 엘지 트윈스는 前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너 소속 윤정현, 부산고 투수 이상영을 차례로 지명했다. SK 와이번스의 광주일고 내야수 김창평, NC 다이노스의 장충고 투수 송명기의 지명 또한 팬들의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순서는 조금 달랐다.
롯데는 북일고 내야수 고승민, 두산은 부천고 투수 전창민을 각각 지명했다. 이때 현장의 팬들 사이에서 놀라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덕수고 투수 홍원빈의 이름이 먼저 불릴 것으로 예상한 팬들이었다. 롯데와 두산이 선택한 선수들에 궁금증을 가진 팬도 있었다.
현장에서 바라본 관전 포인트: 쌍둥이, SK, 대학 선수, 진행, 한선태
올해는 대체로 무난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때문인지 일부 고교야구 팬들의 환호성 외에는 팬과 선수 모두 차분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모두를 주목시킨 몇 가지 순간이 있었다.
장내에 울려퍼진 쌍둥이의 환호성
첫 번째는 북일고 쌍둥이 최재성(SK 와이번스 3라운드 지명)-최재익(NC 다이노스 3라운드 지명) 형제의 연속 지명이다. 두 구단이 형제를 차례로 지명하자 선수 좌석에선 주황색의 유니폼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고, 가족석에선 누군가가 눈물을 보였다. 북일고의 전통인 주황색 유니폼이 조명을 받아 빛났다. 팬들이 기대했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SK 와이번스의 해외파 사랑
이대은, 이학주, 윤정현은 이전부터 무난히 1라운드 지명이 예상됐다. 하지만 前 시카고 컵스 마이너 소속 하재훈과 前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마이너 소속 김성민은 언제 어디에 지명될지 관심을 모았다. SK가 2라운드에서 하재훈을 지명할 때만 해도 팬들 사이에선 너무 늦지 않게 잘 뽑았다는 평이 나왔다. 그런데 5라운드에서 김성민마저 지명하자 ‘역시 SK’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영일(2014년 2차 드래프트 5순위 지명), 김동엽(2016년 2차 드래프트 86순위 지명), 남윤성(2017년 2차 드래프트 6순위 지명)을 지명한 SK의 이력을 팬들도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하재훈을 투수로 지명한 SK의 선택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팬도 있었다. SK의 타자 육성 능력과 해외파 김동엽의 활약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강지광을 투수로 재전향시킨 전례가 있다. 2015년 하재훈이 투수로 재전향해 싱글 A 단기리그에서 평균자책점2.33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일리있는 선택이다.
대학 선수 지명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
KT 위즈가 4라운드를 시작하며 영남대학교 투수 이상동을 불렀을 때 유독 기뻐하는 팬들이 있었다. 대학 선수 중 처음으로 지명된 이상동의 순위는 전체 31번이었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보다 확연히 늦은 순번이다. 2018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학 선수 중 가장 먼저 지명된 롯데 자이언츠 정성종은 전체 13순위였다. 수년간 거론된 대학 야구에 대한 현장의 낮은 평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강정현(원광대, 35순위, LG), 이재민(재능대, 39순위, 두산), 양승철(원광대, 40순위, 기아) 등 대학 선수들의 이름이 잇따라 호명되자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대졸 선수들의 평가가 좋지 않다는 기사 탓에 걱정을 놓지 못했던 팬들이었다.
원활하지 못했던 진행
드래프트가 5라운드를 넘어가면서 매끄럽지 못한 현장의 진행이 두드러졌다. 잦은 실수로 인해 현장에 있던 관계자나 팬들도 혼란스러워했다. 선수의 정보가 여러 차례 잘못 표기되기도 했다. 진행자가 스카우트에게 선수의 이름, 소속, 포지션을 명확하게 말해달라고 수 차례 이야기할 정도였다. 선수 표기가 잘못됐음에도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 진행자의 대처도 혼란을 야기했다.
KBO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의 비선출 선수 지명 순간
원활하지 못한 진행 탓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주목도 점차 떨어졌다. 그렇게 진행된 마지막 라운드에서 낯익은 이름이 불렸다.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 투수 한선태였다. KBO 신인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로 비 선수 출신(이하 비선출)이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은 것이다. 그는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으로 처음 야구를 접하고 뒤늦게 야구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회인야구를 거쳐 독립구단에서 꿈을 이어갔다 . 그 덕분에 모든 야구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프로 입단의 꿈을 이루게 됐다.
지명 순간 모든 이들의 눈이 한선태를 찾았으나 아쉽게도 그는 현장에 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지명인 만큼 비선출 선수는 선수석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LG의 획기적인 지명 덕분에 비선출 선수들은 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신인 드래프트 현장을 떠나며
프로 입단의 꿈을 이룬 35명의 선수(사진=김동윤)
이외에도 팬들 사이에서는 구단의 포수 수집, 부진한 대학야구 명문 연세대 ·고려대, 올해 전국대회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달성한 대구고등학교의 아쉬운 결과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전체적으로 큰 반향 없이 무난한 결과라는 평이었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장은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는 선수들을 향한 끊임없는 박수 소리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팬들이 보낸 환호와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하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지난해부터 지명되는 신인 선수들을 흔히 베이징 키즈 세대라고 부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운 초등학생들이 프로 무대에 뛰어들 때가 된 것이다.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은 이 세대가 한국프로야구를 더욱더 발전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그 기대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준 강백호도 작년 이맘때 이 곳에서 KT의 지명을 받았다. 이 날 지명 받은 선수 중 누가 새로운 스타가 될지 팬들은 벌써 기대하고 있다.
2019년 KBO 2차 신인 드래프트 결과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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