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김우빈] OPS는 타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주요 척도 가운데 하나다. KBO 리그에서도 세이버메트릭스가 보급되면서 타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보다 구체적인 지표들이 대중화됐지만, OPS의 입지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산출 방식이 간단한 데다가 해석도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OPS 1.000을 기록하는 타자가 리그 최정상급 타자’라는 OPS 특유의 기준은 이론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명쾌해 보인다.
KBO 리그 원년인 1982년부터 2017년까지 단일 시즌 OPS 1.000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81명이다. 그러나 이 81명의 가운데 2루수는 단 한 명도 없다. 2루수를 주 포지션으로 삼고 가장 높은 OPS를 기록한 선수는 2015시즌의 야마히코 나바로다. 나바로는 그해 48홈런 137타점을 기록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 역시 OPS는 0.988에 그치면서 1.000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내국인 선수 중에는 201안타를 때려낸 2014시즌 서건창의 OPS가 0.985로 가장 높았다. 1987년의 김성래, 1992년의 홍현우, 1999년의 박정태처럼 기라성 같은 2루수들도 넘을 수 없었던 장벽이 바로 ‘OPS 1.000’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 이 전인미답의 고지에 도전하는 2루수가 있다. 바로 KIA 타이거즈의 안치홍이다.
정규시즌이 후반기에 돌입한 7월 28일 현재 안치홍은 0.375/0.413/0.613의 슬래시 라인으로 1.026의 OPS를 기록하고 있다. 전반기를 커리어 하이 페이스로 마무리한 안치홍은 2014시즌의 나바로 이래 처음으로 전반기 OPS 1.000 이상을 기록한 2루수가 되었다. 안치홍의 성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1할 이상 높아진 장타율이다. 이러한 장타율 상승의 원인은 늘어난 홈런 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올 시즌 안치홍의 타석당 홈런 수는 지난 시즌의 1.5배에 이르고, 지난 시즌까지의 통산 기록보다는 무려 2.5배나 높다.
그럼에도 안치홍이 올 시즌 들어 타석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시도했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안치홍의 땅볼 대비 홈런(FO/GO) 비율은 지난 시즌과 별 차이가 없다. 적극적인 홈런 양산을 위해 뜬공 타구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강한 타구를 생산하기 위해 풀 히터(pull-hitter)로 변신한 것도 아니다. 타격 스타일은 기존 그대로이지만, 대신 쳐낸 공이 안타가 되는 확률이 높아졌다. 안치홍의 올 시즌 BABIP는 지난 시즌보다 4푼가량 높다. 뜬공 대비 홈런(HR/FO) 비율도 지난 4시즌 가운데 가장 높다. 그만큼 올 시즌 안치홍의 인플레이 타구들은 상당수가 기존보다 훨씬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KBO 리그의 샘플 사이즈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칼럼에 의하면 KBO 리그에서 OPS가 안정화되기까지 필요한 타석 수는 340타석 정도다. 시즌이 후반기로 접어든 현재 안치홍이 소화한 타석 수는 297타석. 평균적인 주전들의 페이스대로 타석 수를 채워온 안치홍이라면 조만간 340타석을 추월할 것이 유력하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전반기에 OPS 1.000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시즌 종료 시점에도 OPS 1.000 이상을 유지했던 경우는 27번 중 18번. 이 가운데 안치홍보다 높은 전반기 OPS를 기록하고도 시즌 OPS가 1.000 아래로 떨어진 경우는 2014년의 이재원과 2017년의 이성열뿐이었다. 이들 중 이성열은 전반기 동안 200타석도 소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록한 OPS였던 탓에 유의미한 전례로 보기 어렵다.
한편 정규시즌 최종 OPS가 전반기 OPS에 비해 5푼 이상 낮았던 경우는 27번 중 6번뿐이었다. 실제로 정규시즌 경기의 6할 이상이 전반기에 치러지는 KBO 리그에서 후반기 성적이 시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안치홍의 OPS가 종료 시점에도 1.000 이상을 유지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만 변수는 있다. BABIP와 HR/FO는 선수마다 고유의 값을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타석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특이하게 ‘튀었던’ 지표들도 선수의 고유값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올 시즌 안치홍이 기록하고 있는 높은 OPS의 기반에는 높은 BABIP와 HR/FO가 있다. 이들이 안치홍 본인의 역량 변화가 아닌 운으로 인해 상승했을 경우, 후반기 동안 고유값을 찾아가면서 2루수 최초 ‘OPS 1.000 시즌’을 자연스럽게 무산시킬 수 있다.
수비 비중이 가장 높은 포지션이라는 유격수와 포수에서도 여태껏 각각 3차례, 5차례씩 OPS 1.000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배출됐다. 올 시즌 안치홍은 2루수 최초로 이 대열에 이름을 올릴 기회를 얻었다. 더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요령을 깨우치면서 타자로서 한 걸음 올라선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야구의 신이 미소를 보내줬던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안치홍은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새하얀 눈길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을 수 있을까.
기록: Statiz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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