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바꿔 놓은 2명의 이적생들

사진1. 토론토로 이적한 그랜더슨(사진=flickr)

 

[야구공작소 이해인]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경기, 타석에 들어선 토론토의 외야수 랜달 그리척은 이내 범타로 물러났다. 개막 후 2안타를 친 것이 전부인 그의 슬럼프는 계속되고 있었다. 고향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쓸쓸히 더그아웃에 돌아온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격려를 해주기 시작했다. 바로 15년차 베테랑 커티스 그랜더슨이었다. 그가 FA 계약으로 새롭게 합류한 토론토에서 맡게 된 것은 플래툰으로 우완투수를 상대하는 역할이다. 줄곧 주전 외야수로 출전하던 과거에 비해 훨씬 좁아진 입지다. 그럼에도 팀에 쉽게 적응을 마친 그는 같은 포지션의 후배를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표출하는 토론토의 이적생이 한 명 더 있다. 지난 시즌까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던 내야 유틸리티 얀게르비스 솔라르테다. 팀 동료 또는 자신이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추는 춤은 이미 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파드리스를 담당하는 한 기자는 경기 전에 그가 마커스 스트로먼, 기프트 은고페와 함께 댄스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찍어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영상1. 홈런을 치고 들어오며 춤을 추는 솔라르테

물론 이전까지 토론토 선수들이 홈런 세레모니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솔라르테의 세레모니에는 더 특별한 구석이 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팀 동료의 좋은 플레이들을 진심으로 기뻐하기 때문이다. 필드 위에서 나온 실책에 한없이 아쉬워하는 모습 역시 보인다. 그가 야구를 대하는 진정성은 이제 팀 동료들에게도 전파되고 있다.

3년 전, 2015시즌 토론토에도 그랜더슨과 솔라르테의 역할을 해주는 선수들이 있었다. 베테랑의 존재감을 뽐내며 젊은 선수들을 다독이던 마크 벌리, 필드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던 호세 레예스가 대표적이다. 벤치 멤버 무네노리 가와사키는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나머지 선수들은 이들이 이끄는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야구를 하면 됐다. 호세 바티스타, 에드윈 엔카나시온, 조쉬 도날드슨 등이 구성한 ‘메가 토론토포’는 그 장단 위에서 홈런으로 춤을 췄다.

2016시즌부터는 토론토에서 벌리, 레예스 그리고 가와사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성적상 이들의 빈자리는 크지 않았다. 2015시즌 중반까지 겨우 5할 승률 근처에 머물던 팀은 오히려 레예스가 떠나고 트로이 툴로위츠키가 합류한 뒤로 거짓말처럼 승승장구하며 지구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또 벌리가 은퇴한 후 2016시즌부터는 J.A. 햅,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등의 선발투수들이 팀에 합류하며 강력한 로테이션을 구축했다. 2016시즌에도 토론토는 와일드카드 진출권을 획득해 ALCS까지 진출했다. 가와사키는 애초에 벤치 멤버로 팀 성적을 좌우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문제는 성적이 아닌 팀 분위기였다. 성적이 좋을 때는 당연히 분위기가 좋았지만 팀이 한번 슬럼프에 빠지면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와일드카드 진출권을 획득했던 2016시즌에도 9월은 지옥 같아 이기는 방법을 잊은 팀의 모습이었다. 선수 개개인은 슬럼프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앞에 나서는 선수는 없었다.

2017시즌의 분위기는 더 심각했다. 너무 어두웠던 더그아웃 분위기에 더해 마커스 스트로먼과 애런 산체스라는 두 젊은 투수 사이의 불화설까지 제기됐다. 그들은 야구를 별로 즐기는 것 같지 않았다. 팀은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5할 승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늘 패배가 승리보다 많았다. 그러나 팬들이 토론토의 야구를 보기 힘든 것은 실력보다도 분위기 탓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곤 했다. 지고 있을 때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팀의 베테랑들에게 아예 리더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티스타는 자신의 성적이 좋을 때는 그 누구보다 좋은 리더였다. 엔카나시온도 좋은 흐름을 더 극대화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날드슨은 리더 역할을 자처해 솔직하고 당당하게 구단의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영리하게 털어놓곤 했다. 러셀 마틴은 포수로서 로베르토 오수나 등의 젊은 투수들과 합을 잘 맞춰주는 것이 강점으로 꼽혔다.

 

영상2. 오수나와 마틴의 댑 세레모니

그러나 그 누구도 팀이 부진할 때 중심축이 되어주지 못했다. 대부분의 베테랑들이 스스로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팀의 젊은 선수들을 돌보지 못했다. 게다가 부상 악령마저 팀을 덮쳤다.

반면 2018시즌 더그아웃에서 풍기는 느낌은 다르다.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야구를 즐긴다. 투수 마르코 에스트라다는 지난 7일 경기 후 “우리는 재미있게 야구를 하고 있다”고 팀의 분위기를 전했다. 포수 마틴 역시 “경기장에 좋은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고 말했다.

이런 에너지를 심어주는 선수가 바로 그랜더슨과 솔라르테다. 존 기븐스 감독은 그랜더슨에 대해 “매우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며 “그런 성격이 팀의 모든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한편 마틴은 솔라르테를 “더 많은 홈런을 치는 가와사키 같다”고 표현했다. 가와사키가 토론토의 팀 분위기 형성에 기여한 지대한 역할을 생각하면 이 표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대진의 영향도 있겠지만 토론토는 시즌을 15승 12패로 시작했다. 특히 시즌을 2연패로 시작했지만 이후 곧바로 4연승을 달렸다. 이 가운데 첫 3승은 무려 8회에 나온 역전승이었다. 2경기 연속으로 뉴욕 양키스의 강력한 불펜을 무너뜨렸을 때는 그저 운이라는 의구심이 존재했다. 그러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패하며 연승이 끊어질 때 팬들 사이에서는 어느 새 점수차를 좁힐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겨났다.

지금 팀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은 것에는 기대보다 좋은 성적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팀이 ‘한 팀’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선수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정신적 측면이 고취된 덕분이다. 같은 지구의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너무나 강해진 지금 토론토 팬들이 바라는 현실적인 목표는 와일드카드 진출권 획득이다. LA 에인절스 등 다크호스 팀들의 효과적인 전력 보강으로 이 역시 녹록지는 않다. 하지만 토론토 팬들에게는 성적 외에도 야구를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바로 한 팀이 된 선수들이 하는 즐거운 야구, 이를 그랜더슨과 솔라르테라는 두 이적생이 이끌고 있다.

에디터=야구공작소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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