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KBO리그 MVP, 역사는 답을 알고 있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2016년 KBO리그 페넌트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10월 29일 현재는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이고,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최우수선수(MVP) 및 신인왕 투표가 이루어진다. 이 중 신인왕은 넥센의 신재영으로 굳어진 모양새다. 다른 두드러지는 후보가 없는 가운데 홀로 15승을 거두며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편 MVP는 두산 니퍼트와 삼성 최형우의 2파전으로 좁혀진 상황이다. 9월 말까지는 NC 테임즈도 유력한 후보였으나 9월 29일,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MVP 경쟁에서 사실상 탈락하고 말았다. 테임즈와 공동으로 홈런왕을 차지한 최정은 홈런 이외에 타율(45위)이나 타점(10위)처럼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머지 지표들에서 많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MVP는 누구에게 향하게 될까. 니퍼트일까, 최형우일까. 이 질문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누가 MVP가 되어야 하는가, 곧 누구에게 ‘당위성’이 있는가이고, 둘째는 기자단 투표에서 현실적으로 누가 MVP로 뽑힐 것인가, 다시 말해 당위성과는 다르게 누가 MVP가 될 ‘경향성’, 혹은 ‘가능성’이 높은가이다.

당위성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똑같은 성적을 두고도 어떤 성적을 더 중시하는지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MVP의 경향성은 1982년부터 치뤄진 34번의 투표에서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역사는 답을 알고 있다.

 

같은 값이면 다승왕이나 홈런왕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의 KBO리그 MVP 수상자들은 모두 세 가지의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킨다. 다승왕이거나, 홈런왕이거나, 아니면 대기록을 세웠거나. 다승왕이 MVP를 수상한 경우는 82, 84, 86, 89, 90, 96, 04~08, 11년이다. 투수가 수상한 경우는 모두 다승왕이었다. 홈런왕이 수상한 경우는 83, 85, 88, 91~93, 95, 97~03, 09, 10, 12, 13년이며, 둘 다 아니지만 대기록을 세우고 MVP를 수상한 경우가 87, 94, 14, 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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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MVP 수상자>

34년 동안 단 4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MVP가 홈런왕 또는 다승왕이었다. 0.387이라는 기록적인 타율을 올렸던 1987년의 장효조, 역시 0.393의 놀라운 타율에 196안타, 84도루를 기록했던 1994년의 이종범,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를 돌파한 2014년의 서건창, 그리고 40-40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운 지난해의 테임즈까지. 4번의 예외 모두가 그야말로 ‘역대급’ 대기록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 정도의 대기록을 세운 선수는 없다.

이번 시즌의 최형우는 타율, 타점, 최다안타의 세 부문에서 리그 수위를 달렸다. 정확성과 힘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타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홈런왕은 차지하지 못했다. 역사를 되짚어 보았을 때, 이런 유형의 타자들은 대개 MVP 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지 못했다.

1983년 장효조는 타율, 출루율, 장타율, 최다안타의 4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홈런, 타점 두 개 부문 1위였던 이만수에게 눌려 MVP 투표에서는 3위에 그쳤다(이만수 95점, 장명부 50점, 장효조 49점). 1993년, 양준혁은 신인임에도 타율, 출루율, 장타율 3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홈런, 타점에서도 2위를 기록했지만, 역시나 홈런, 타점 1위를 기록한 김성래에게 2배 이상의 큰 표차로 밀리고 말았다(양준혁 213점, 김성래 510점). 2004년의 브룸바 또한 타율, 출루율, 장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3위 등의 고른 성적을 올렸지만 총 99표 중 13표밖에 얻지 못했다(1위 배영수 84표).

이들의 공통점은 WAR과 같은 현대적 지표에서 모두 경쟁자들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1983년 장효조와 이만수의 WAR은 각각 7.40과 6.05였고, 1993년의 양준혁과 김성래는 각각 6.85와 6.30이었다. 2004년의 브룸바와 배영수는 8.37과 6.49로 그 차이가 1.88에 달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그 모든 격차에도 불구하고 홈런왕과 다승왕을 선택했다. 다승왕을 차지한 니퍼트가 올해의 MVP 투표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약 테임즈가 경기 외적인 일로 출장 정지를 받지 않고 단독 홈런왕에 올랐더라면 계산이 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홈런왕은 다승왕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할 타자 백인천조차 출장 정지 징계 때문에 MVP 후보에 오르지 못했을 만큼 의외로(?) 경기 외적인 도덕성을 많이 보는 곳이 MVP 투표다. 음주운전 징계로 인해 테임즈의 수상 가능성은 사실상 0이 되었고, 니퍼트의 가장 큰 대항마도 사라져 버렸다.

 

MVP는 팀 다 팔아먹… 으면 안 준다(?)

잘 알려진 대로, 소속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도 MVP 수상 여부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포스트시즌이 열리지 않았던 1985년을 제외한 33번의 MVP 투표 중에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 소속 선수에게 상이 돌아간 경우는 1983년의 이만수, 2005년의 손민한, 그리고 2012년의 박병호가 전부다. 1983년에는 현재와 같은 단일리그가 아니라 전, 후기로 나누어 리그를 진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예외’는 사실상 두 번뿐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다승왕은 개인의 능력만큼이나 팀의 전력이 요구되는 감투이고, 때문에 다승왕을 배출하는 팀들은 대부분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 강팀들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홈런을 리그에서 가장 많이 친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팀의 성적이 하위권인 경우도 그렇게 많지 않다. 때문에 다승왕과 홈런왕을 중시하는 MVP 투표의 수상자들이 포스트시즌 진출 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특별히 포스트시즌 진출 팀의 선수를 우대한 결과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33번 중 30번의 MVP가 포스트시즌 진출 팀에서 나왔다는 것은 역시 무시하기 어려운 높은 비율이다. 니퍼트의 두산은 정규시즌을 단일시즌 최다승인 93승으로 통과했고, 최형우의 삼성은 구단 역사상 가장 나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큰 차이가 없다면 마지막에 조금이라도 더 힘이 실리는 쪽은 니퍼트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도를 넘지는 않았다

매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면 외국인 선수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MVP를 수상하고도 1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던 1998년의 우즈다. 그 다음 해인1999년에도 데이비스가 30-30을 기록하고도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고, 가깝게는 2012년의 나이트가 장원삼에 밀리면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MVP 투표에서는 이러한 차별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오직 다승왕, 홈런왕, 대기록이라는 3가지의 원칙에만 충실했다.

1998년의 우즈는 홈런왕을 차지하고 ‘정상적으로’ MVP에 올랐다. 2007년의 리오스 역시 다승왕을 차지하고 MVP에 올랐다. 작년 시즌의 테임즈는 40-40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끝에 MVP가 되었다. 받을 선수는 다 받은 셈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 이후 홈런왕을 차지하고도 MVP에서 고배를 마신 외국인 선수는 2005년의 서튼(홈런왕)뿐이다. 당시 MVP로 선정된 손민한(18승 6패, ERA 2.46)의 성적은 서튼(35홈런, 102타점)보다 전혀 못하지 않았다.

다승왕의 경우에는 2002, 2004, 2009, 2013-2015년처럼 타이틀을 차지하고도 MVP에 오르지 못한 사례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맥락을 들여다 봤을 때, 이들이 MVP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외국인 차별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2002년은 이승엽의 최전성기였고, 2004년은 배영수가 공동 다승왕으로서 17승 2패라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2009년, 2013년은 다승왕이라고 해도 고작 14승에 불과했으며, 2014년에는 서건창의 200안타가 있었다. 2015년의 경우에는 같은 외국인 타자인 테임즈가 MVP였다.

이처럼 외국인 선수라 해도 MVP 투표에서는 골든글러브에서처럼 뚜렷하게 차별당하는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니퍼트는 장수 외국인으로, 6년째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기까지 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구실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전체 역사를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이렇게 전체적인 MVP의 역사를 살펴 보면 높은 확률로 니퍼트가 MVP를 수상하리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가능성과 경향성의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고, 당위성으로만 보면 최형우도 MVP가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니퍼트의 다승왕과 2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성적 이면에는 167.2이닝이라는 적은 이닝과 4.44라는 높은 FIP가 숨어 있다.

하지만 MVP는 단순히 승리 기여도나 득점 생산력 순으로 선수들을 줄 세워서 주는 상이 아니고, 그런 기준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기록으로 줄을 세워서 수상자를 결정할 공산이라면, 애초에 투표라는 방식을 취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니퍼트가 2016년 KBO리그 MVP를 수상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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