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김우빈] ‘이승엽’이라는 단어가 사라진다면 한국 야구의 매력은 얼마나 줄어들게 될까. 이승엽은 기존의 야구 팬에게는 더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 새롭게 유입된 팬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명장면을 선사하는 KBO리그의 ‘캐시 카우’였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던 2003년에는 외야 관중들이 치킨과 맥주 대신 잠자리채를 들고 경기를 관람하는 진풍경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이처럼 KBO리그의 새로운 관람 문화를 선도했던 이승엽은 2003시즌을 마치고 일본 프로야구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하면서 한국 야구와 작별을 택했다. 이후 8년 동안 일본 리그에서 활약하며 영광과 좌절의 순간들을 겪었고, 총 15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12시즌을 앞두고 KBO리그로 복귀한 그는 2017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KBO리그 통산 467홈런, 한일 통산 626홈런. 따라올 이가 없는 엄청난 숫자이지만, 여기에는 그의 야구 인생이 남긴 최대의 ‘만약’이 담겨 있다. 만약 이승엽이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그대로 잔류했다면 얼마나 많은 홈런을 쳐낼 수 있었을까?
이승엽은 한국에 잠자리채 문화를 도입한 장본인이었다.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산출 방식
공백 기간 동안 이승엽이 기록했을 홈런의 숫자를 계산하기 위해 여기서는 EC 지표(Equivalence Coefficient, 동형성 지표)라는 개념을 활용해보려 한다. EC 지표는 동일한 한 가지 검사의 두 가지 다른 형태를 동일한 피험자에게 한 번에 시행하여 얻은 신뢰도 계수이다. 즉, 기존 선수들의 경향을 파악해 공백의 기간을 채워낼 수 있는 통계학적 방법이다.
EC 지표를 산출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EC 지표를 생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공백 기간인 2004년부터 2011년 사이에 이승엽이 들어섰을 타석의 수를 가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승엽의 평균 타석수를 같은 기간 KBO리그에서 연평균 15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의 평균 타석수인 416.7타석으로 가정하기로 했다. 풀타임으로 출전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수이지만, 일본 시절 이승엽이 집중된 견제로 인해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평균 100타석가량의 결장은 그리 무리한 가정이 아니다. 실제로 이승엽은 2008년 이후 일본 리그에서 한 시즌 300타석 이상을 소화해낸 적이 없다.
이승엽의 연도별 홈런 수
이승엽의 기량 변화를 설정하기 위해서 먼저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리그의 전반적인 투고ㆍ타고 추세다. 이승엽의 본격적인 홈런 행진이 시작된 1997년부터 그가 일본으로 떠난 2003년까지는 KBO리그 역대 홈런의 25%가 기록된 최초의 ‘홈런 인플레이션’ 시기였다. 마찬가지로 이승엽의 복귀 이후인 2014년부터 올해까지도 4시즌 만에 역대 홈런의 20%에 육박하는 홈런이 쏟아진 2차 홈런 인플레이션 시기였다. 반면 이승엽이 자리를 비운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극심한 투고타저의 바람이 불었다. 추세가 정점에 이르렀던 2006년에는 홈런 선두인 이대호의 홈런 개수가 30개를 넘지 못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승엽은 홈런이 많이 나온 시기에 주로 활약한 선수였다. 때문에 ‘홈런 가뭄’이 상대적으로 심했던 2004년부터 2011년까지의 기록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기량의 상승 폭을 보다 작게, 하락 폭은 더욱 크게 추산할 필요가 있었다.
이승엽의 일본 시절 홈런 변화 추이를 보면 진출 후 4년차까지는 상당히 많은 홈런을 때려냈지만, 2008년부터 4년간은 홈런 개수가 급감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승엽의 기량 변화량이 반전되는 시기를 2008년이라고 전제하고 2008년까지의 기량 상승 폭을 10%~15%로, 이후의 하락 폭을 15%~20%로 가정했다. 여기에 2008년까지는 6%, 2011년까지는 4%의 감소량을 각각 덧씌움으로써 당시의 리그 사정을 고려한 이승엽의 홈런 생산력 변화 추이를 산출해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커리어 최악의 시즌이었던 2013시즌이 막을 내렸을 무렵, 이승엽은 한국에서 통산 358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계산한 그의 한국 잔류 시 통산 홈런 추정치는 최대 547개. 그러나 이승엽은 38세였던 2014시즌부터 무려 107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전성기에 버금가는 빼어난 홈런 페이스를 선보였고, 이를 통해 그의 홈런 추정치를 최대 646개까지 끌어올렸다. 그가 실제로 달성한 626개의 한일 통산 홈런보다 20개가 더 많은 기록이다.
일본은 그동안 오 사다하루를 ‘세계의 홈런왕’이라 칭하면서 자국 리그의 격을 끌어올려왔다. 메이저리그 기록이 아니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미국의 대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기록에는 국적과 인종의 차가 없다”며 오 사다하루의 편을 들었다. 만약 이승엽이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KBO리그에서도 오 사다하루의 기록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홈런 기록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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