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17시즌 리뷰] LA 에인절스 – 못 먹어도 고?

(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원영)

팬그래프 시즌 예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2위 (83승 79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2위 (80승 82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이의재] 에인절스의 지난 겨울은 분주하면서도 조용했다. 과거와 같은 거액의 장기계약들은 모습을 감췄고, 대신 수많은 중소 규모의 계약과 트레이드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보장받은 신규 FA들의 면면은 루이스 발부에나와 벤 르비어, 제시 차베즈, 앤드류 베일리 정도가 전부였고, 여기에 카메론 메이빈과 마이크 말도나도, 대니 에스피노자가 대단치 않은 대가의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했다. 한두 명의 뛰어난 자원에 ‘올인’하기보다는 팀의 여러 구멍들을 고르게 메꾸고자 했던 빌리 에플러 단장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오프시즌이었다.

그러나 에인절스는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을 유린했던 부상 악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빈번한 부상에 시달렸던 것은 선발진이었다. 에이스 개럿 리차즈는 첫 등판을 끝으로 전반기 내내 모습을 감췄고, 맷 슈메이커와 타일러 스캑스도 시즌의 절반 이상을 부상자 명단에서 흘려보냈다. 심지어 이들을 대신해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된 선수들마저도 교대하듯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다. 결국 에인절스의 선발진은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은 5.5의 fWAR을 합작하며 또 한 번 아쉬움만을 남기고 말았다(전체 26위).

야수진도 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부상의 빈도와 심각성은 선발진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팀의 간판인 마이크 트라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타격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5월 29일 경기에서 도루를 시도하다 엄지손가락에 부상을 입은 트라웃은 전반기가 막을 내리고 나서야 로스터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처럼 트라웃마저 중간에 자리를 비운 에인절스의 타선은 지난 시즌에 비해서도 힘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팀 도루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의외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타석에서 부진하면서 팀 득점 22위라는 안타까운 성적표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에인절스의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경쟁은 8월말까지 계속됐다. 불펜진이 선보인 기대 이상의 활약과 트라웃의 복귀 이후로 이어진 상승세 덕분이었다. 그렇게 와일드카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에인절스는 웨이버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막을 내리기 직전, 취약 포지션이던 2루수와 좌익수 자리에 브랜든 필립스와 저스틴 업튼을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에인절스는 9월 5일 이후 8승 15패로 무너지면서 와일드카드 자리를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기대를 모았던 이적생들의 활약은 신통치 않았고, 굳건히 버텨주던 불펜진마저 난조를 겪으면서 승부처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정규시즌의 마지막 한 달 동안 에인절스가 얻은 소득은 23이닝을 7자책점으로 막아낸 개럿 리차즈의 깔끔한 복귀뿐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에인절스는 옵트아웃이 유력했던 업튼에게 기존 계약에 1년 1750만 달러를 추가하는 연장계약을 제시하면서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에인절스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릴’ 것임을 천명하는 행보이기도 했다. 향후 3년간 트라웃과 업튼 그리고 알버트 푸홀스에게만 매년 8000만 달러 남짓을 지출하게 된 이상, 꾸준히 포스트시즌 진출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인절스의 2017시즌은 또 한 번의 승부수와 함께 막을 내렸다.

 

최고의 선수 – 마이크 트라웃, 안드렐튼 시몬스

마이크 트라웃: 114경기 0.306/0.442/0.629 33홈런 22도루 wRC+ 181 fWAR 6.9 bWAR 6.7
안드렐튼 시몬스: 158경기 0.278/0.331/0.421 14홈런 19도루 wRC+ 103 fWAR 4.9 bWAR 7.1

커리어에서 가장 아쉬운 시즌을 보낸 트라웃이지만, 팀내 최고의 선수로 꼽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없었다. 올 시즌 트라웃을 가로막았던 것은 실력이 아닌 부상이었다. 도루 과정에서 손가락 부상을 입으면서 7주가량을 결장했던 트라웃은 ‘트라웃임을 감안하면’ 만족하기 어려운 6.9의 fWAR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경기에 나설 동안에는 타석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작성하고 있었던 만큼 아쉬움이 한층 짙게 남는 시즌이었다. 본격적으로 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2012시즌 이래 최초로 MVP 최종 후보 3인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시즌이기도 했다.

9월 들어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에인절스의 ‘뒷심 부족’에도 상당한 부분 공헌했던 트라웃이지만, 그럼에도 올 시즌의 활약을 통해 통산 bWAR을 55.0까지 끌어올리면서 척 핀리(53.0)을 제치고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최고 기록 보유자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그의 나이 만 26세. 그가 현시대를 대표하는 ‘현재진행형 전설’이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비형 유격수의 최고봉 안드렐튼 시몬스 역시 흠잡을 데 없는 한 해를 보냈다. 수비는 여느 때처럼 리그 최고 수준으로 견실했고, 그리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공격에서도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출루율과 장타율, 타점, 도루 모두 커리어 하이. 별다른 부상 없이 건강하게 내야를 지켰던 시몬스는 트라웃을 제치고 팀에서 가장 높은 bWAR을 기록하는 소소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에인절스는 앞으로도 3시즌 동안 3900만 달러의 경제적인 비용으로 시몬스를 활용할 수 있다. 2년 전 시몬스의 트레이드 대가로 넘어간 션 뉴컴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나쁘지 않은 데뷔 시즌을 보냈지만, 지금 같은 활약이 이어진다면 에인절스가 그 선택을 후회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선수 – 알버트 푸홀스

시즌 성적: 149경기 0.241/0.286/0.386 23홈런 101타점 wRC+ 78 fWAR -2.0 bWAR -1.8

푸홀스는 여전히 득점 기회에서 상대에게 압박감을 줄 수 있는 타자다. 올 시즌에도 푸홀스는 팀내 최다인 101타점을 기록하면서 타점 생산에서만큼은 건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문제는 그 존재감을 제외하면 긍정적인 여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타점을 제외한 모든 지표들은 푸홀스가 2017시즌 메이저리그 최악의 야수였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지명타자라는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타격은 리그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예전에도 느린 편에 속했던 주력은 오프시즌의 발 수술 여파가 더해지면서 압도적인 리그 최하위로 처지고 말았다.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푸홀스는 올 시즌 초당 23피트의 스프린트 스피드를 기록하면서 10회 이상 루상을 질주했던 444명의 선수들 가운데 444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공수주가 모두 무너져버린 푸홀스는 리그에서 가장 낮은 -2.0의 fWAR을 적립하면서 다른 의미로 ‘전설적’이었던 시즌을 보냈다. 계약은 앞으로도 4시즌이나 더 남아 있고,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면 푸홀스는 만으로 41세가 된다. 이 ‘살아있는 전설’과 에인절스의 동행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될 것이다.

 

가장 발전한 선수 – 파커 브리드웰, 블레이크 파커, 유스메이로 페팃

파커 브리드웰: 21경기(20선발) 10승 3패 121이닝 ERA 3.64 fWAR 1.0 bWAR 2.0
블레이크 파커: 71경기 3승 3패 15홀드 8세이브 K/9 11.50 ERA 2.54 fWAR 1.6 bWAR 1.8
유스메이로 페팃: 60경기(1선발) 5승 2패 14홀드 K/9 9.95 ERA 2.76 fWAR 2.2 bWAR 1.6

부상으로 신음했던 에인절스의 선발진에서도 긍정적인 인상을 남긴 선수는 있었다. 투수 육성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출신의 유망주 파커 브리드웰이 그 주인공이다. 시즌 초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에인절스로 건너온 브리드웰은 스캇 슈메이커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6월부터 꾸준히 선발등판 기회를 잡았고, 20번의 선발등판에서 13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면서 수준급의 안정감을 과시했다.

플라이볼을 많이 유도하는 투수임에도 탈삼진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불안요소지만(K/9 5.43), 준수한 제구력과 슬라이더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가 에인절스의 수비력도 나쁘지 않은 편인 만큼 4선발 정도의 역할은 계속해서 기대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던 에인절스의 불펜진은 두 투수의 ‘깜짝 활약’으로부터 그 동력을 얻었다. 2016년 동안에만 4차례나 웨이버로 팀을 옮겨 다녔던 블레이크 파커는 빼어난 구위와 디셉션을 앞세워 만 32세에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시즌 후반에는 페이스가 떨어진 버드 노리스와 캠 베드로시안을 대신해 마무리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다음 시즌에는 베드로시안과 마무리투수 자리를 두고 경쟁하거나, 혹은 근래의 트렌드대로 멀티 이닝 셋업맨 역할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겨울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에인절스에 합류했던 유스메이로 페팃 역시 기대를 뛰어넘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페팃은 2014시즌 이래로 가장 높은 9.95개의 K/9을 기록했고, 높은 내야플라이 비율에 힘입어 피홈런을 효과적으로 억제해냈다. 이전까지는 롱릴리프와 임시 선발 보직을 주로 수행했던 페팃이지만, 거듭된 호투로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얻은 올 시즌에는 팀의 셋업맨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키포인트 – 2루수가 누구야? 선발투수는 뭐야?

저스틴 업튼의 옵트아웃이라는 난제를 추가 연장계약으로 해결한 에인절스의 남은 오프시즌 과제는 두 가지, 바로 2루수 보강과 선발투수 보강이다.

대니 에스피노자와 케일럽 코와트, 브랜든 필립스 등의 선수들이 -0.3의 처참한 fWAR을 합작했던 2루수 자리에는 현재 닐 워커, 에두아르도 누네즈, 하위 켄드릭 같은 FA 자원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이안 킨슬러나 조시 해리슨, 디 고든 같은 선수들을 트레이드로 데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인절스의 유망주 사정은 결코 풍부한 편이 아니지만, 이들의 소속팀 중에는 유망주를 받아오지 못하더라도 고액 연봉자를 떠넘기는 선에서 만족할 수 있는 팀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나마 건강하게 로테이션을 지켜주던 리키 놀라스코를 FA로 떠나보낸 선발진도 사정이 썩 좋지 못하다. 에인절스의 내년 시즌 예상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들은 개럿 리차즈, 타일러 스캑스, 앤드류 히니, 맷 슈메이커, JC 라미레즈 그리고 파커 브리드웰. 기량과 건강 어느 쪽에서도 이렇다 할 확신을 주지 못하는 이름들이다. 때문에 제이크 아리에타와 다르빗슈 유를 비롯한 FA 시장의 상위권 선발투수 자원들을 데려오는 것이 빌리 에플러 단장의 이번 오프시즌 최대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진출을 선언한 오타니 쇼헤이에게 본격적으로 구애해볼 수도 있지만, 부동의 지명타자 푸홀스의 존재가 오타니의 투타 겸업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에필로그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평범한 감독이 아니다. 에인절스 프랜차이즈의 유일무이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낸 신화적 인물이며, 18년간 팀을 이끌면서 6차례의 지구 우승을 만들어낸 현역 최장수 사령탑이다. 그러나 에인절스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굳건했던 소시아 감독의 입지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이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압도적인 왕조 후보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같은 지구의 텍사스 레인저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역시 ‘한 끗 차이’로 컨텐더가 되지 못하고 있는 다크호스들이다. 선수단 구성상 계속해서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에인절스로서는 지금의 서부지구 판도가 못내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겨울 동안의 영입만으로는 내년 시즌에도 가을야구를 장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는 하늘의 도움이 따라줘야만 한다. 예컨대, 선발 로테이션을 휩쓸던 부상 역병이 자취를 감추고 알버트 푸홀스가 약간이나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준다면 어떨까.

물론 트라웃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이 팀은 어디까지나 ‘트라웃의 팀’이기 때문이다.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MLB.com, Roster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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