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오연우] 삼성PAVV, 마구마구, 롯데카드의 공통점은? 언뜻 보면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세 단어 뒤에 ‘프로야구’라는 단어를 붙여서 읽어 보면 곧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셋은 모두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프로야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고 KBO 재정이 썩 넉넉한 것도 아니기에 타이틀에 스폰서십을 붙여 파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현재의 KBOP와 같이 마케팅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조직이 없었기에 이런 작업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올스타전이나 시범경기 등에 스폰서가 붙긴 했지만 큰 규모는 아니었다. 스포츠 산업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러 부분에 대한 스폰서가 있었지만 이 중 가장 돈이 되는 프로야구 타이틀에 스폰서가 붙은 것은 2000년이 되어서였다. 스폰서는 삼성증권이었고 타이틀은 당시 삼성증권에서 개설한 증권 전문 포탈 사이트인 samsungfn.com의 이름을 따 ‘2000 삼성fn.com 프로야구’로 결정됐다.(현재 저 주소로 접속하면 삼성증권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여기서는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를 비롯한 프로야구 스폰서 전반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연도별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
동해생명과 파랑새존
프로야구 경기에 최초로 스폰서가 붙은 것은 1982년 한국시리즈다. 당시 동해생명에서 스폰서를 맡았다.
일반적인 후원과 비슷하게 MVP에게 주어지는 자동차 등도 마련했지만, 동해생명의 후원은 하나 특징적인 것이 있었다. 바로 파랑새존이라는 특별 상금존을 운영했던 것.
파랑새존이란 외야 펜스에 설치된 가로 12.5m, 세로 1.5m의 광고판인데 여기를 넘기는 홈런을 치거나(100만원), 타구로 직격하거나(50만원), 굴려서 맞히면(30만원) 상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타구가 광고판을 넘겼는지의 판단은 홈런인 경우 주심이, 그 외의 경우는 2루심이 했다. 이름이 파랑새존인 이유는 동해생명의 사조(社鳥)가 파랑새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파랑새존 광고, 1983년 동해생명이 동아그룹에 통합되면서 명칭이 동아생명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상금을 받아간 선수는 OB 김우열이었다. 파랑새존이 첫선을 보인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하나의 타구도 파랑새존으로 가지 않았지만 10월 9일 열린 4차전 경기에서 김우열이 파랑새존을 넘어가는 홈런으로 100만원을 수상했다. 김우열은 상금의 절반은 독립기념관에 성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모교인 선린상고 야구부에 기부했다.
파랑새존은 다른 스폰서들과는 달리 상당히 장기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1982년에는 한국시리즈의 서울 경기에 한해 운영되었지만 이듬해부터는 정규시즌 모든 경기로 확대되었고 1989년까지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80년대 프로야구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동아생명 이후 포스트시즌 스폰서는 부정기적으로 현대자동차, 현대증권 등이 맡은 바 있다.
<파랑새존 연도별 시상금 지급내역, 8년 동안 약 1억 9천만 원의 상금이 지급되었다>
올스타전 스폰서
최초의 올스타전 스폰서는 1983년 올스타전을 후원한 나이키였다. 당시 나이키는 약 1억 원에 달하는 올스타전 대회 경비를 지불하고 올스타전 스폰서가 되었다.
<1983년 6월 30일 동아일보>
올스타전 MVP는 1차전에서 4타수 3안타 1홈런의 맹타를 휘두른 OB 신경식. 시상식 사진에서 ‘미스타 나이키’라고 쓰여진 띠를 두르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 해만 유일하게 스폰서 이름을 붙인 띠를 둘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시리즈 및 정규시즌 MVP 시상에서도 마찬가지로, 1983년만 한국시리즈 MVP인 김봉연과 정규시즌 MVP인 이만수가 미스터 파랑새라는 띠를 두르고 있다. 1984년부터는 모두 평범한(?) 띠를 두르게 된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83년 올스타, 한국시리즈, 정규시즌 MVP인 신경식, 김봉연, 이만수. 미스타 나이키, 미스터 파랑새라고 쓰인 띠를 두르고 있다.>
한편 올스타전 스폰서는 한 기업에서 길게 이어지지는 못해 매년 스폰서가 바뀌게 되는데, 프로스펙스, 진로, 현대자동차, 코카콜라 등이 올스타전을 후원한 기업들이었다.
타이틀 스폰서
KBO에서 타이틀 스폰서 유치를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1998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KBO는 한국통신 및 신세기이동통신과 협상을 벌여 연간 30억을 요구했는데 협상이 그리 잘 진행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난색을 표하던 두 기업은 결국 끝까지 난색만 표했고, 1998년은 타이틀 스폰서는 유치하지 못한 채 포스트시즌 스폰서(현대자동차)를 유치하는 데에 그친다.
한편 1999년에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를 보인다. 1월에 현대 계열사인 금강기획에서 15억원을 후원받기로 하고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스폰서 권리를 부여했으나 금강기획에서 스폰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시즌 중반에 포스트시즌 스폰서만 새로 구하게 되었는데, 이때 입찰한 것이 금강기획과 SMI라는 스포츠 마케팅사였다.
그러나 SMI가 5억 원, 금강기획이 4억 5천만 원에 입찰했음에도 불구하고 KBO 회원사(현대)의 계열사라는 이유로 박용오 당시 KBO 총재가 금강기획과 계약하도록 지시한다. SMI 측에서는 기자회견을 열고 불공정거래라고 항의해 보았지만 (당연히)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결국 1999년 포스트시즌은 현대증권의 펀드명을 딴 바이코리아컵 ’99 포스트시즌이라는 이름으로 열리게 된다.
(출처 : 바이 코리아 CF 캡처)
2000년에 서두에서 말한 삼성증권과 제대로 된 계약을 하게 된 것은 이런 추태를 보인 다음이었다. 2002년부터는 마케팅을 전담하는 KBO의 자회사 KBOP가 설립되어 스폰서 업무 전반을 전담하게 된다.
2000년부터 스폰서를 맡은 삼성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스폰서를 너무 오래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때까지 무려 9년간 장기집권했다. 그리고 삼성이 하차하자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진다. 2009년부터 마구마구에서 2년, 롯데카드에서 1년, 팔도에서 1년, 한국야쿠르트에서 2년을 맡는 등 어느 곳도 길게 가지 못했다. 올해로 3년째가 되는 타이어뱅크가 가장 긴 기록이다.
다만 스폰서 기간과 무관하게 타이틀 스폰서를 대기업 계열사보다 중견기업들에서 맡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고, 또 고무적이다. 올해는 타이어뱅크와의 3년 스폰서 계약이 만료되는 해다. 과연 2018년부터는 어떤 기업이 KBO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따낼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