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PN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28 OUTS. 오심으로 날아간 아르만도 갈라라가의 퍼펙트게임, 그리고 그것의 사후보전을 청원한 로렌스 존스 몬머스 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
2010년 6월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는 27번째 아웃 카운트가 돼야 할 상황이 명백한 오심으로 인해 세이프가 되며 퍼팩트가 깨졌다. 그 상황을 판정한 1루심 짐 조이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MLB에 수정을 요청했다. 정치권 또한 정의와 진실을 위해 MLB에 이례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MLB는 요지부동했다. ‘28개 아웃 퍼펙트 게임’이라 불리는 갈라라가의 이날 등판은 여전히 퍼펙트 게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업명: 법과 사회
아름다운 해변과 함께 대서양이 광활하게 보이는 뉴저지의 도시 몬머스에 있는 몬머스 대학교. 2021년 가을 뉴저지주 대법관을 그만두고 몬머스에서 교편을 잡은 로렌스 존스(現 뉴멕시코 대학교수)는 학부생 16명과 함께 법과 사회(Law and Society)란 수업을 진행했다. 한 학기 동안 이들은 사회 옹호란 주제와 함께 공정과 평등을 제고하기 위해 법과 규범의 정신이 때때로 구문보다 우선하는 사례를 살펴봤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스는 갈라라가의 잃어버린 퍼펙트 게임을 되찾아보자는 프로젝트를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 갈라라가의 잃어버린 퍼펙트 게임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로렌스 존스 교수. ESPN 다큐멘터리 28 OUTS 중. >
수업을 신청한 모두가 야구를 알진 못했다. 스포츠에 전혀 관심 없는 학생도 있었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수로부터 그리고 직접 갈라라가로부터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사회 정의와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 가을 ‘법과 사회’ 수업에서는 갈라라가의 퍼펙트가 인정돼야 한다는 여러 이유를 담아 MLB 사무국에 제출할 82쪽짜리 청원서를 작성했다.
올바른 것을 행해야 하는 이유
‘법과 사회’ 수업이 갈라라가의 퍼펙트 게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갈라라가가 그날 선보인 노력을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라라가와 디트로이트 팀원들은 27개 아웃 카운트를 잡는 데 있어서 운이나 요행수에 의지하지 않고 갈고닦은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MLB의 수정 시도가 진실함의 사례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 ‘28개 아웃 퍼펙트 게임’은 부정적이고 불공평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만약 MLB가 기록을 고친다면, 사회 정의가 발현된 사례로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규칙에 연연하는 관료제적 관습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칙은 필요하지만, 규칙을 어기지 않은 사람을 처벌해선 안 된다. 만약 MLB가 조이스의 오심을 고치는 유연한 대응을 보여준다면, 사회 다른 영역에서도 이는 귀감이 될 것이다.
‘법과 사회’ 수업은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로 근거로 다음의 10가지를 제시했다.
- MLB 커미셔너는 MLB를 총괄하는 수장으로 법관과 같이 이례적인 상황에서 합리와 공정이란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갈라라가의 경기는 공수와 심판이 27번째 타자의 아웃을 인정했고, 느린 화면도 그 주장을 뒷받침했다. 심지어 28번째 타자도 1루를 밟지 못한 이례적인 상황이다.
- 1983년 MLB는 조지 브렛이 파인 타르를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취소된 홈런을 사후에 번복한 적이 있다.
- 1991년 MLB는 노히트의 정의를 바꿔 더 이상 1959년 하비 해딕스의 퍼펙트 게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 2014년 MLB는 다르빗슈 유가 9회 2아웃까지 이어간 노히트 경기에 대해, 7회 있었던 실책을 안타로 바꾸면서 경기의 성격을 바꾼 적이 있었다.
- 갈라라가의 경기는 27번째 타자를 사사구로 출루시킨 1908년 훅스 윌츠의 경기와 1972년 밀트 파파스의 경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 갈라라가의 경기는 오심이 없었다고 가정해도 다음 상황을 재구성할 수 없다는 ‘덴킨저 교리’의 대상이 아니다.
- 로저 마리스의 61홈런이 무려 30년 만에 단일 시즌 최다 홈런자로 인정받은 것처럼 MLB가 갈라라가의 퍼펙트 게임을 너무 늦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
- 갈라라가의 경기를 재고하면서 MLB는 공정함이란 가치를 수만의 스포츠 팬에게 보여줄 수 있다.
- 1946년 브루클린 다저스 감독 레오 두로셔의 ‘착한 사람은 꼴찌다’란 발언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실수로 이어지지 않은 오심
1편에서도 설명했지만, 갈라라가의 상황과 가장 유사했던 상황은 1908년 7월 4일 훅스 윌츠의 경기와 1972년 9월 2일 밀트 파파스의 경기다. 두 경기는 선발투수가 26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낸 후 27번째 타자에게 사사구를 내줘 퍼펙트가 깨진 사례다. 그러나 ‘법과 사회’ 수업은 갈라라가의 사례가 이 둘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윌츠의 사례를 먼저 보자. ‘법과 사회’ 수업은 윌츠는 오심처럼 보이는 볼 판정에도 불구하고 퍼펙트를 만들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봤다. 윌츠는 27번째 타자 조지 맥퀼란을 상대로 1-2 카운트에서 던진 4구가 스트라이크처럼 보였지만 볼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카운트는 2-2이다. 스스로 경기를 마무리할 기회는 남아있었으나 윌츠는 다음 투구로 맥퀼란의 몸을 맞추면서 내보냈다.
< 노히터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아쉬움을 표현한 밀트 파파스. 출처 = MLB >
파파스 역시 0-2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 간 공 네 개가 연속으로 볼이 되면서 볼넷을 허용했다. 1-2에서도 파파스에겐 퍼펙트를 만들 기회가 세 차례가 더 있었다. 게다가 당시 구심인 브루스 프로에밍은 자신의 투구 판정에 잘못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프로에밍은 은퇴 후에도 자신의 판정은 옳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두 사례에서는 오심처럼 보이는 상황 후 발생한 투수의 실수로 인해 결과가 바뀌었다.
반대로 갈라라가의 경우 갈라라가는 잘못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을 잡은 채로 타자주자 제이슨 도날드보다 1루에 먼저 도달했다는 명백한 영상 증거가 있다. 타구를 만든 도날드도 자신이 늦었다고 인정했으며, 조이스 역시 경기 후 자신의 판정이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게다가 갈라라가는 오심 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야구엔 만약이란 말이 없지만 만약 갈라라가가 28번째 타자를 내보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비록 무관심 도루 2회로 도날드가 3루까지 갔지만, 갈라라가는 끝내 28번째 타자에게도 1루를 내주지 않았다. 그는 27번째 타자를 상대로 응당 아웃을 얻어내야 했지만, 그것을 실패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경기를 완봉으로 끝냈다.
<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조지 브렛은 자기가 친 역전 홈런이 부정배트 사용으로 부정당하자 불같이 화냈다. 출처 = MLB >
MLB는 번복한 적이 있다
더 나아가 MLB가 역사상 심판의 판정을 번복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1983년 7월 24일 뉴욕 양키스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 9회초 양키스가 4-3으로 앞서고 있는 2사 1루, 조지 브렛이 리치 고새지를 상대로 역전 투런 홈런을 쳤다. 그러나 그 홈런은 현장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빌리 마틴 뉴욕 양키스 감독은 브렛의 방망이에 파인 타르가 지나치게 많이 발라졌으니 부정배트라고 항의했다. 팀 맥클럴랜드 구심을 비롯한 4심은 긴 논의 끝에 마틴의 항의를 받아들이고 브렛에게 부정배트 사용으로 아웃을 선고했다.
캔자스시티는 즉각 아메리칸 리그에 경기를 제소했다. 4일 후 리 맥파일 아메리칸 리그 총재는 캔자스시티의 제소가 합당하다고 인정하고 브렛의 홈런 또한 돌려놨다. 맥파일은 야구의 정신과 규칙이 의도한 바를 고려하면 심판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심판진과 졸지에 승리가 날아간 양키스는 총재가 내린 결정에 불복했다. 하지만 경기는 8월 18일 5-4로 캔자스시티가 앞선 상황에서 재개됐고 결국 캔자스시티가 점수를 유지하며 이겼다.
한편 ‘법과 사회’ 수업은 브렛의 파인 타르 사건과 갈라라가의 사건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고 주장했다. 첫째, 아메리칸 리그가 브렛의 홈런을 인정하면서 승자와 패자가 달라진 반면에 갈라라가가 당한 오심을 번복하더라도 그렇지 않다. 둘째, 브렛 사건의 경우 현장 심판이 총재의 결정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갈라라가 사건의 경우 세이프를 선언한 심판이 가장 앞서 MLB가 고쳐주길 원했다. 셋째, 브렛 사건의 경우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된 양키스가 총재의 결정을 반대했지만, 갈라라가 사건의 경우 퍼펙트를 내주게 될 클리블랜드도 세이프 번복을 반대하지 않았다. 마지막, 브렛에게 아웃을 선언한 것이 총재의 번복과는 별개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조이스의 세이프 선언은 역사적으로 아주 희소한 기록과 연관이 있다.
더 나아가 ‘법과 사회’ 수업은 MLB가 갈라라가의 28개 아웃 퍼펙트 사건을 수정하더라도 이와 유사한 논란이 봇물 터지듯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브렛의 파인 타르 사건 후에도 심판의 오심을 뒤집어달라는 제소가 지난 40년 동안 많이 있지 않았다. 설사 28개 아웃 퍼펙트처럼 마지막 아웃 카운트에서 오심이 발생하더라도 이제는 비디오 판독이라는 수단을 통해 곧바로 현장에서 실수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MLB가 심판의 판정을 리그 차원에서 번복한 사례가 있으면서도 갈라라가 사건의 경우 그때보다 논란이 적다는 것이다. 경기 결과도 바뀌지 않으며 당사자 모두가 결과 번복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 MLB가 로렌스 존스 교수와 ‘법과 사회’ 수강생에게 보낸 회신. ESPN 다큐멘터리 28 OUTS 중. >
열리지 않을 판도라의 상자
청원이 MLB 사무국에 도착한 지 3달이 지난 후, 로버트 만프레드 MLB 커미셔너의 이름으로 존스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갈라라가의 퍼펙트를 인정해 달라는 호소에 MLB가 공식적으로 답변했다.
규칙에 근거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은 현장의 판정을 번복한다면 야구 역사 속 여러 사건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잘못이나 미래에 발생할 실책에 대해 끊임없는 검증과 논쟁이 이어질 것입니다.1
만프레드는 개인적으로는 갈라라가가 퍼펙트 게임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조직 차원에서는 다르다고 답했다. MLB가 조이스의 오심을 뒤집고 갈라라가의 퍼펙트를 인정할 뜻이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조이스는 MLB가 자신의 오류를 그리고 기록의 수정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 ‘관습’을 제시했는데, 만프레드는 전임자의 결정을 지켜주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언젠간 인정받을까?
전술한 것처럼 MLB는 여러 차례 기록을 수정한 적이 있다. 해딕스가 32년 만에 퍼펙트 게임을 잃었듯이, 마리스가 40년 만에 *표를 떼고 단일 시즌 최다 홈런자로 인정받았듯이. 현직 커미셔너인 만프레드가 물러난 후 취임할 다음 커미셔너는 전임자의 결정을 물리고 갈라라가에게 퍼펙트 게임을 선사할 수도 있다.
존스와 수강생은 MLB의 위와 같은 답변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갈라라가 사건과 같이 당사자 모두가 아웃이라 인정하지만, 세이프로 굳어버린 사례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과거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일이 없다. 또한 앞으로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비디오 판독이 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브렛의 파인 타르 사건을 MLB가 기억해야 한다 말했고, 다른 학생은 판정을 뒤집지 않아도 좋지만 갈라라가의 퍼펙트 게임을 인정돼야 한다고 재반박했다. 존스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법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번론을 해 모두를 설득하더라도 패소할 수 있다’라고 위로를 전했다.
갈라라가는 비록 자신의 노히트가 퍼펙트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스스로 퍼펙트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언젠간, 자신이 죽기 전엔 퍼펙트 게임 명단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참고 = MLB, ESPN, Newspapers.com, Baseball-Almanac, Baseball Reference, SABR, Monmouth University, Mitchell Republic, Focus on Sport, State of Michigan, CBS, New York Times, Crescent City Sport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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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ar Professor Jones,I have received your submission an 82-page document, making a case for Armando Galarraga to be added to the list of pitchers who had a perfect game. I commend your Monmouth University students for thorough consideration of Mr. Galarraga’s outstanding outing on June 2, 2010. Their passion and advocacy skills bode extremely well for their future. Our Position on this matter was expressed by my predecessor, Commissioner Allen H. Bud Selig. As much as he or I would like to alter what happened, a reversal of the true historical record of what occurred on the field under the rules in place at that time, would open a pandora’s box of issues from the history of the game, where past and future errors would constantly be vulnerable to scrutiny and disputes.
Sincerely,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국이라서 그랬을까요? 이 글이 더욱 뜻깊고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이금강 선생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