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
역대 최고의 야구 붐. 2024년을 그렇게 말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프로야구는 개막 이래 최초로 천만 관중을 달성했다.
최근 유입된 팬에게 ‘하는 야구’는 남성의 것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관중석을 넘어 직접 그라운드에서 플레이하고자 하는 여성은 계속 나오고 있다.
“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 – 2020년 여자야구 독립 영화 <야구소녀> 중
여자야구의 과거와 현재는 어땠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는 야구’에 참여하는 여성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대중의 관심 속에 여자야구의 인상을 심을 수 있을까.
여자야구의 시작
여자야구의 시초 역시 야구 종주국인 미국이다. 최초 프로여자야구리그는 1943년 시작된 미국의 AAGPBL(All-American Girls Professional League)로 알려져 있다. 세계 2차 대전으로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있던 시기다. 당시 MLB 사무국 임원진은 야구가 잊혀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새로 여자리그를 창설했다. (관련글) AAGPBL를 시작으로 당시 여성들이 여러 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흑인 리그인 Negro League에서 뛴 토니 스톤(Toni Stone)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 종전 후 다시 메이저리그에 선수가 돌아오면서 여자리그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 사진 출처 = Youtube >
1년 만에 리그가 사라지긴 했지만, 기록에는 일본도 1950년경 여자프로야구가 존재했다고 한다. 당시 오사카 니치니치 시스터즈(大阪日日シスターズ)라는 팀에 소속됐던 타카사카 미네코는 10-0으로 진 게임조차도 밤에 라이트 켜진 경기장에서 경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말했다.
39연승, 여자야구의 최강야구 일본
현재 여자야구를 이야기할 때도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현재 세계 여자야구를 선도하는 나라다. 명성에 걸맞게 연맹 차원의 지원도 충분하다. 일본 여자야구팀들은 일본고등학교경식여자야구연맹(JHGBF), 일본여자야구협회(WBAG)등의 풍족한 지원 하에 여자야구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그런 일본조차 현재는 여자프로야구 리그가 ‘휴업 중’이다. 일본은 가장 최근까지 여자프로야구리그를 운영했다. 2009년 일본여자프로야구(JWBL)가 문을 열었으나 점차 관심이 적어졌다. 결국 2021년, 코로나19 여파와 함께 선수 부족으로 리그 문을 닫게 되었다.
< 일본 여자야구리그 분포 예시.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
그럼에도 고등, 대학, 실업팀은 쉬지 않고 있다. 2022년 3개 리그가 추가, 총 7개의 여자 야구 리그가 운영 중이다. 위 일본 전도만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인프라를 바탕으로 야구를 즐길 기회가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어떤 구조가 일본 여자야구를 발전시키고 있을까?
첫째 리그의 구성이 다양하다. 간토 지방에서 진행하는 비너스 리그(Venus League)는 53개의 팀이 참가하는 가장 큰 여자야구리그다. 고등학교 팀부터 시작해서 대학팀, 실업팀, 성인 동아리팀까지 다양한 팀들이 서로 겨룬다. 간사이 지역에서 진행하는 럭키 리그(Lucky League)는 다양한 연령대 팀이 참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2022년 새로 생긴 도호쿠 리그(Tohoku League)는 고등학교 9개 팀으로만 구성된 리그다.
리그마다 적용되는 규칙도 다양하다. 공인구만 해도 경식구뿐 아니라 연식구를 쓰는 리그가 별도로 운영된다. 다양한 인프라는 더 많은 여성이 야구에 참여할 수 있게 돕는다.
둘째 프로 구단, 기업과의 연관성이 높다.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는 비너스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고 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도 여성팀이 있다. 이 팀들은 프로 구단 OB 팀과 친선전, 교류전을 자주 개최한다. 기업과 연관된 여자야구 구단은 남성팀의 적극적인 지원 덕에 유수한 실력을 쌓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편이다.
일례로 2023년, 35개 팀이 참여한 여자야구 챔피언십 리그의 우승팀은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여성팀이었다. (경기 영상) 2021년 창단한 팀이 단 2년 만에,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요미우리 여성팀은 프로 구단과 연계한 여성팀이 기업 후원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좋은 사례다.
한국의 여자야구
우리나라의 여자야구는 어떨까? 과거에 ‘마녀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치고 달리는 여자(치달녀)’가 방영된다는 소식이 들리는 등 TV에서는 가끔 여자야구를 다룬다. 하지만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여자야구가 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차츰차츰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코로나 때 잠시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한국여자야구연맹(WBKA)의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여자야구 활동이 이어져왔다. 2024년 WBKA리그에서는 선덕여왕배, LX배 전국여자야구대회를 포함해 올스타전, 베이스볼5 등 각종 이벤트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 대만, 홍콩, 일본이 참여한 국제여자야구교류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WBKA 리그는 명목상 리그라지만, 실질적으로는 단발성 사회인 야구 대회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인 리그처럼 긴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게임을 하기보다는 1~2주 주말만을 쓰는 경우가 많다. 대회 기간에 지방에 내려가서 경기를 치르고 오는 등 수고가 뒤따른다. 심지어 대회 개최 지역도 매번 다르다. 사회인 야구 리그처럼 꾸준하게 리그 경기를 할 단일한 구장조차 없다.
기업 후원이 대회 개최 정도에 머무른다는 점도 아쉽다. LX배 전국여자야구대회 등 기업이 대회를 후원한다는 것 자체로 여자야구에 큰 힘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일본의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 한신 타이거즈 여성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여성팀과 같이 여성 구단에 직접 후원하는 기업은 전무하다.
< 사진 출처 = 한국여자야구연맹 >
한편 엘리트 야구가 전무하던 우리나라 여자야구에 최근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국민대학교와 장안대학교는 지난 5월 WBKA에 여자야구팀 창단의사를 전달했다. 또한 2024년 8월 21일에 국내 첫 중고등 여자야구부인 무학 드림즈가 창단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2024년 기준 여자 선수들은 WBKA에 등록된 여성 동호인 야구 49팀, 혼성팀 2팀 총 51팀에서만 활약해 왔다. 프로 구단은 고사하고 실업팀조차 없던 한국 여자야구가 엘리트 여자야구부 창단으로 드디어 전문적인 트레이닝 기회를 얻은 셈이다. 향후 전문적으로 훈련한 선수들이 유입된다면 여성 리그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마치며
어떤 스포츠 리그든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지속적인 언급, 기업의 관심과 후원, 스타 탄생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여자야구 성장을 재해석 할 수 있다. 일본은 선수를 늘리기 위해 리그를 다양화하고, 기업의 후원도 받고, 아이코닉한 선수를 배출하기 위해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비너스 리그는 일본 신문사인 호치 신문사의 보도를 통해 관심을 이끌어 냈고 종종 중계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대중적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리그도 적을뿐더러 여자가 야구한다는 개념 자체가 어색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한국 여자야구도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여자야구는 수면 위로 더 떠오를 수 있을까? 미디어와 기업의 관심을 받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여자야구리그를 꾸준히 진행할 수 있는 도시와 구장은 어디가 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도 여자프로야구가 생길 날이 오긴 할까?
참고 = MLB.com, WBKA, The Japan News
야구공작소 유승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천태인,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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