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가는 MLB 투수들 – 피치 클락과 구속 혁명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

지난해 메이저리그(MLB)에 피치 클락이 도입된 이후 투수들의 부상 빈도가 높아졌다는 논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올 시즌 유주자 시 18초(기존 20초)로 피치 클락 단축을 결정한 뒤 셰인 비버, 유리 페레즈, 스펜서 스트라이더, 게릿 콜 등 특급 선수들이 나란히 팔꿈치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하면서 피치 클락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샌디 알칸타라, 제이콥 디그롬, 오타니 쇼헤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선수들이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을 겪었다. 

이에 MLB 선수노조는 피치 클락 단축으로 투수들이 줄부상을 당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MLB 사무국은 곧장 투수들의 부상 증가는 피치 클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반박하며 공방전이 벌어졌다.

과연 피치 클락은 선수들의 부상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을까? 해외 칼럼의 내용을 바탕으로 알아보자.

 

정말 피치클락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피치 클락이 선수들의 줄부상을 일으킨다는 인과관계를 현재로선 증명할 수 없다. Baseball Prospectus(BP)는 이번 시즌 투수들의 부상 데이터를 제공하며 여타 시즌들과의 특이점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표1 = 지난 4년간 투수의 부상 발생 횟수 >

표1은 단축 시즌(2020년도)을 제외한 지난 4년간 투수들이 부상당한 횟수다. 2021년에 243회로 2019년에 비해 51회 더 증가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연도는 특이점이 없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피치 클락이 도입된 2023년은 2022년의 부상 횟수와 큰 차이가 없다.

아래 그림1을 통해 지난 4년간 투수의 부상이 발생한 부위의 빈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 역시 파악할 수 있다. 오히려 피치 클락이 도입된 2023년엔 투수 부상이 더욱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팔꿈치 부위(검은색 진한 선)의 부상이 2022년 54회에서 피치 클락 시행 첫해인 2023년 70회로 유독 증가했다.

< 그림 1 = 지난 4년간 투수의 부상 발생 부위 횟수(어깨, 팔꿈치, 팔꿈치 아래, 팔꿈치 위)>

이에 대해서 해당 칼럼은 팔꿈치와 관련된 토미 존 수술 통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피치 클락이 시행된 해 팔꿈치 부상의 빈도는 늘었지만, 표2와 같이 정작 토미 존 수술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표2 = 지난 4년간 발생한 토미존 수술 횟수 >

또한 토미 존 수술이 발생한 시기를 강조하며 피치 클락과 투수들의 부상 간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제시했다. 피치 클락이 시행된 첫 해(그림2 빨간색 진한 선) 토미 존 수술이 발생한 시기를 보면 예년에 비해 5월에 유독 몰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피치 클락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점으로 이때 발생한 토미 존 수술을 피치 클락의 여파로 보기엔 다소 이른 시기다. 즉, 피치 클락으로 인해 팔꿈치 부상이 늘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림2 = 지난 4년간 월별 토미 존 수술 빈도 비교>

이처럼 현재까지 투수들의 부상과 피치 클락 간의 관계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고 있다. 다만 피치 클락이 시행된 지 불과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다. 표본이 더 쌓인다면 새로운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구속 혁명

구속 혁명은 투수들의 부상 증가를 논할 때 피치 클락과 함께 등장하는 세트 같은 주제다. 현재로선 투수 부상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8년 시속 147.9 km/h였던 MLB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지난해 시속 151.6km/h까지 증가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링크). 하지만 그만큼 투수들의 부상 빈도도 늘어났다. 2010년 241건에 그쳤던 MLB 투수의 부상자 명단 횟수는 2021년 552건으로 크게 상승했다. 또한 Sports Illustrated(SI) 칼럼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시속 155.3 km/h 이상을 기록한 선발 투수(600개 이상을 투구) 21명 중 무려 18명이 팔꿈치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그림3 = 지난 5년간 평균 구속 시속 155.3km/h 이상을 던진 선발 투수 명단 및 부상 여부>

더불어 SI는 생체역학 실험을 근거로 시속 150km/h 이상의 공은 인간의 팔꿈치에 큰 부하를 준다고 경고했다. 특히 팔꿈치의 척골 측부 인대는 컨디셔닝과 훈련을 통해 강화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하를 극복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물론 투수들에게 ‘구속을 올리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야구 관계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SI에서 Fleisig의 주장처럼 ‘속도만을 쫓는 행위’는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로케이션 형성도 투수의 덕목 중 하나다. 무작정 구속을 올리며 커리어를 위협하는 것보다 적정선에서 좋은 제구력을 발휘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또 다른 무언가

지난 2021년 타일러 글래스노우는 한 인터뷰에서 MLB 사무국이 이물질 사용을 금지한 이후 자신이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미끄럽기로 유명한 MLB의 공인구를 투구할 때 끈적이는 이물질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투수의 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더욱이 해당 시즌 중반에 이물질 금지 규정이 적용되며 몇몇 투수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CBS SPORTS의 칼럼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해당 칼럼은 투수들이 이물질 없이 강한 회전수를 내기 위해 공을 더 강하게 쥐고 던지는 것에 주목했다. 이러한 행위는 팔꿈치 안쪽 부분에 더 큰 부하를 주게 되고 결국 투수의 부상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해당 주장 역시 피치 클락과 마찬가지로 투수의 부상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하진 못했다. 다만 투수들의 부상이 증가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미끄러운 공인구에 대한 논의도 고려해 볼 사항이다. 

 

마치며

CBS SPORTS에 따르면 올해 MLB 개막일 당시 부상자 명단에 오른 투수는 132명으로 전체의 80%에 해당했다. 불과 6년 전인 2019년은 68%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사실 투구는 그 자체로 이미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다. 그렇기에 투수의 부상은 앞서 언급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다방면에서 확인하고 검증해야 하는 문제다. 투수들의 부상은 투수 본인과 구단 그리고 리그 흥행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글을 통해 투수 부상에 관한 해외 칼럼의 다양한 주장을 살펴봤다. 그 결과 피치 클락이 투수 부상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은 현재로선 밝혀내지 못했으며 구속 혁명으로 인해 부상자들의 증가 수와 투수의 팔에 가해지는 부하는 어느 정도 입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미끄러운 공인구와 같은 또 다른 원인이 존재할 가능성도 살펴봤다.

앞으로 피치 클락 등 투수 부상에 관련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MLB 선수 노조와 사무국은 서로 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투수의 부상을 한 쪽의 잘못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닌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리그의 흥행과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 = Baseball Prospectus, The Athletic, 스포츠 춘추, CBS SPORTS, 이창섭의 MLB 와이드, Sports IIIustrated

야구공작소 김건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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