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누군가 다치면서 만들어진 규칙 – 버스터 포지와 강정호(1)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태초의 야구는 신사의 스포츠로 태어났다. 19세기 야구에서는 슬라이딩이나 도루처럼 ‘신사적이지 못한’ 행동은 할 수 없었고,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행위도 당연히 금지되었다. 선수들은 잘 갖춰진 옷을 입고 경기에 나서야 했고, 신체 접촉은 최소한으로만 이뤄졌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만들어지며 성장한 20세기 야구는 이전 세기의 야구와는 달랐다. 여전히 정장과 비슷한 형태의 유니폼을 입고 정신적으로는 신사의 스포츠를 지향했지만, 상당히 거친 스포츠로 탈바꿈했다. 경기 중 선수 사이의 마찰은 일상이었고, 심지어 상대방이 공을 떨어트리도록 일부러 충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선수들은 홈과 2루에서 과격하게 부딪혔다.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는 공을 잡은 포수와 마치 코뿔소가 서열 싸움을 하듯이 정면 승부를 겨뤘다.  2루에서는 1루 주자가 병살을 막기 위해 다리를 옆으로 길게 뻗거나 높게 들어서 야수를 방해했다.  

< 위 : 2010년 4월 6일 LG:롯데 5말 가르시아-김태군 홈 충돌 >

< 아래 : 2018년 10월 28일 넥센:SK 3회초 강승호-샌즈 충돌 > 

하지만 21세기 야구, 정확하게는 2010년 이후 야구에서는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선수 부상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조금씩 조성되는 와중에 두 선수, 버스터 포지와 강정호가 각각 홈과 2루에서 충돌로 인해 선수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 그로 인해 야구 규칙에는 새로운 방해 규정이 도입되었다. 이번과 다음 두 글로 알아볼 방해, 홈에서의 방해 병살에 대한 방해이다. 

 

슈퍼스타의 예기치 못한 부상과 신설 규정

2011년 5월 26일, 샌프란시스코의 AT&T 파크(現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現 마이애미 말린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 12회 초 6:6 동점인 가운데 1사 1,3루에서 짧은 우익수 뜬공이 나오자 3루 주자 스캇 커진스는 홈으로 태그업했다. 홈을 지키고 있던 자이언츠의 포수 버스터 포지가 송구를 잡지 못했지만, 커진스는 득점을 위해 홈이 아니라 포지를 향해 전력으로 쇄도(시청 주의)해 버렸다. 포지는 충돌로 인해 왼쪽 다리가 부러지고 발목 인대 세 개나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전년도 신인상 수상자가 한 시즌을 날리는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구계의 여론은 반반으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포지가 공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블로킹을 시도했다가 다친 것이지, 커즌스의 쇄도와 승부는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더 이상 야구에서 이와 같은 충돌로 누군가가 또다시 다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2년간의 공방 속에 결국 2013년 윈터미팅에서 홈 충돌 방지법이 통과되었고, 2014년 2월 메이저리그 선수협회 또한 이를 승인하면서 메이저리그에서는 2014년 시즌부터 홈에서 주자와 포수와의 충돌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KBO에서는 2년 후인 2016년 시즌부터 홈 충돌 방지 규정이 도입되었다. 홈 충돌 방지 규정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와 현행 규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현행 규정을 위주로 설명하고자 한다. 

 

고의적인 충돌은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

홈 충돌 방지를 규정한 조항은 공식야구규칙 6.01(i)이다. 조항이 워낙 길기 때문에 간략하게 핵심을 정리한 후 설명하고자 한다. 홈 충돌 방지를 규정하는 6.01(i)는 주자편, 포수편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에서는 주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2)에서는 포수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담고 있다. 6.01(i)에서 말하는 포수는 포수뿐만이 아니라 홈을 지키는 야수 일체를 지칭한다. 

 

6.01(i) 홈 플레이트에서의 충돌

(1) 주자편

  • 주자는 포수와 접촉할 목적으로 주로를 이탈할 수 없으며, 피할 수 있는 충돌을 피하지 않으면 아웃이다. 
  • 주자가 적절한 방식으로 슬라이딩하는 경우 이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 포수가 주자의 주로를 막아 발생하는 접촉은 이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2) 포수편

  • 공을 갖고 있지 않은 포수는 주자의 주로를 막을 수 없다. 공이 없는 포수가 주자를 막으면 이는 주루방해(1)이다. 
  • 포수가 송구받는 정당한 과정에 주로를 막는 것은 허용된다.
  • 포수가 공을 갖고 있더라도 불필요하게 주자를 가로막을 수 없다.
  • 원래 아웃이 될 주자는 주루방해 대상이 되지 않는다.
  • 이 규정은 홈에서의 포스 플레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6.01(i)(1)은 (2)와 비교해 비교적 단순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위 사진에서 커즌스가 한 것처럼 주자는 더 이상 포수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없다. 물론 주자와 포수가 접촉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자가 아웃되는 건 아니다. 불가피하게 주자와 포수가 충돌했거나 혹은 주자가 적절한 슬라이딩을 해서 접촉이 일어나면 정상적인 플레이로 간주한다. (1)항 위반이 발생하면 수비 방해이기 때문에 다른 주자들은 충돌이 발생할 당시 점유했던 베이스로 복귀해야 한다.

 

읽어도 읽어도 애매모호한 홈 충돌

사실 홈 충돌 방지 규정을 위반했는지 아닌지를 판독하는 사례의 99%는 (2)항으로,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막아 주자의 주루를 막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당 규정이 상당히 자세하게 쓰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확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포수가 언제부터 홈플레이트를 막을 수 있는지, 공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포수가 어떤 포지셔닝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홈플레이트를 막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관한 설명이 모호하다.

한편 포수가 주자를 방해했는지 여부는 오로지 심판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상기한 이유로 다른 유형의 판정과 달리 홈 충돌의 경우 판독센터의 판정 번복도 가장 많이 일어난다. 2020년 시즌부터 KBO 비디오판독센터가 시행한 홈 충돌 판독은 총 13번이었는데, 이 중 6번이 번복되었다. 

조항을 하나씩 해체해 보자. 우선 공을 갖고 있지 않은 포수가 주자의 주로를 막을 수 없다는 문장은 쉽다. 지난 화에서 이야기한 주루방해의 규정이랑 똑같다. 따라서 마치 런다운 상황에서 주자와 공이 없는 야수가 부딪혔을 때와 같이 주루방해(1)이 되며 볼데드가 선언된다. 다시 말해 주자의 득점을 막기 위해서는 홈플레이트를 막으려면 포수가 공을 온전하게 소유한 상태여야만 한다. 포수가 공을 한 번에 포구하지 못했거나 떨어트린 공을 다시 잡으려는 상황에서 홈플레이트를 막았다든가 하면 이는 주루방해가 된다. 더 나아가 홈 충돌 규정은 태그플레이 상황에만 적용된다. 즉, 포스플레이 상황에서는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 

 

단 여기서 예외 상황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송구받는 정당한 과정에서 공이 없는 상태로 홈플레이트를 막는 것은 인정된다. 날아오는 공을 받기 위해 자연스럽게 포수가 홈플레이트로 이동해야 한다면, 이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더 나아가 투수나 전진수비를 펼친 내야수가 던진 송구를 받는 과정이라면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막더라도 정당한 플레이로 인정받을 수 있다. 포수가 주자를 위한 길을 비켜줄 충분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이 없는 상태에서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막았다 하더라도 주자를 상대로 수비할 생각이 없다면 주루방해로 간주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주자가 아직 홈플레이트와 거리가 먼 상황이라면, 포수가 공이 없는 상태에서 홈플레이트를 막고 공을 기다리더라도 방해로 간주하지 않는다. 

 

포수가 공을 갖고 있더라도 불필요하게 주자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말은 공식야구규칙에 ‘예를 들어 무릎, 정강이 보호대, 팔꿈치, 전완 등을 이용하여 시도하는 접촉’이라고 자세히 명시되어 있다. 슬라이딩하는 주자가 포수의 전술한 부위와 다리 혹은 팔이 부딪혔을 경우 다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규칙에서 이를 금지한 것이다. 자세를 잡는 과정, 혹은 최초 수비 과정에서 무릎 등 부위로 홈플레이트를 막았다면 방해가 아니지만, 이미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신체의 단단한 부위로 홈플레이트를 또다시 막는다면 이는 규제 대상이다. 

 

사례로 살펴보는 홈 충돌 판정

사진은 2023년 6월 21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기 장면이며, 아래 사진은 2023년 8월 21일 마이애미 말린스와 파드레스의 경기 장면이다. 둘을 비교하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뉴욕 MLB 리플레이 센터는 위에는 포수가 주로를 막았다고, 아래는 그렇지 않다는 판정을 내렸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기에 다른 판정이 나온 것일까? 

답은 포수가 공을 받으려고 자세를 잡기 시작한 순간 위치한 곳이 달랐기 때문이다. 파드레스의 포수 개리 산체스의 왼발은 3루 쪽 파울선을 넘어버렸지, 말린스의 포수 닉 포르테스의 왼발은 페어 지역에 남아있다. 공을 받는 과정에서 포수가 파울라인을 넘어서 공을 잡는 것은 허용되지만, 최초의 위치를 잡을 때부터 포수가 파울라인을 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사진은 2023년 5월 18일 대전에서 열린 롯데와 한화 경기 5회초 장면이다. 원심은 아웃이었지만, 비디오판독센터에 의해 세이프로 정정되었다. 롯데가 스퀴즈 번트를 시도해 3루 주자가 홈으로 쇄도한 상황에서 포수 박상언이 다리를 밀어 넣어 주자의 진루를 막았기 때문이다. 투수가 타구를 잡았기에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막은 채로 수비하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지만, 사진에서처럼 박상언은 다리를 추가로 밀어 넣으며 주자를 방해했기 때문에 주루방해로 인정되었다.   

 

정확한 판정을 위해서는 그 전 상황부터 봐야 한다

이 사진은 2023년 4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경기 1회초로, 투수 알버트 수아레즈가 주자 고승민을 홈에서 잡기 위해 자세를 잡은 장면이다. 최종 판정은 아웃으로, 수아레즈가 홈을 막지 않았다고 결론이 났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맞는 결정이었을까? KBO 비디오판독센터가 올린 영상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비디오판독센터가 올린 41초짜리 영상은 수아레즈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자세를 잡기 시작한 순간보다는 수아레즈가 공을 잡고 고승민을 태그했는지 여부를 더 집중해서 보여주며, 수아레즈가 공을 잡기 위한 자세를 잡을 때 위치가 어땠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홈 충돌 방지 규정을 위반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영상으로는 부적합한 것이다. 

홈 충돌 비디오판독을 실시한 후 심판팀장이 어떠한 이유로 아웃이 되었는지, 세이프가 되었는지를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마이크를 잡고 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있다. 홈 충돌 방지 규정은 전술했듯이 꽤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만약 포수가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면 단순하게 도곡동에서 그렇게 판정했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포수의 어떤 행동이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를 설명해야 오해가 줄어들 것이다.      

정리하자면 홈 충돌 방지 규정은 심판의 판단이 다른 규정과 비교해 강하게 개입되는 규정이다. 선수와 팬 모두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폭넓은 증거와 함께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해야만 한다. 따라서 현장의 심판과 판독실 심판 모두 지금보다는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참고 = MLive, OSEN, 스포츠조선, MLB, Bleacher Report, USA Today, Baseball-in-Play, Close Call Sports, KBO 비디오판독센터, 스포츠조선, OSEN, AP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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