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야구, 다른 규칙? 왜 미국 고교야구는 공식야구규칙을 사용하지 않는가? 미국 고교야구 이야기 – 2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백충헌 >

미주리주에서 가장 강한 고등학교 야구팀은 없다? 미국 고교야구 이야기 – 1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는 매년 공식야구규칙을 발행한다. 그리고 이 규칙을 가지고 초등, 중등, 고등, 대학, 그리고 프로야구가 진행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공식야구규칙에는 아마추어에게 필요한 규칙이 부가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어린이와 어린 청소년이 뛰는 리틀리그(Little League), 중학교 고학년과 고교생이 뛰는 고교리그(National Federation of State High School Associations; NFHS), 대학생이 뛰는 NCAA, 그리고 메이저리그가 각각 자신만의 야구규칙을 매년 발행한다. 물론 미국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규칙을 공식야구규칙(Official Baseball Rules; OBR)이라고 말하지만, 이 규칙이 다른 리그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즉, 미국 고교야구나 대학야구는 공식야구규칙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고교야구에서 공식야구규칙과 어떠한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다. 앞선 글에서 미국 고교야구가 공식야구규칙이 아닌 독자적인 규칙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학생 스포츠가 온전한 기능을 펼치고 학생 스포츠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가치관을 학생 선수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목적 아래”라고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왜 고교야구 현장에서 프로와 다른 규칙이 필요한지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과 동시에 어떤 내용의 차이가 있는지를 다룰 것이다. 

< 2023 NFHS 야구 규칙서 모음. 야구 규칙, 사례집, 심판 지침서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고교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안전이다

미국 고교야구 규칙에는 공식야구규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의 안전과 관련된 조항이 많다. NFHS 야구 규칙의 부록 B부터 E는 각각 뇌진탕, 선수 장비, 위생 및 감염병, 그리고 악천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담고 있다. 그리고 심판은 경기 전 미팅에서 각 팀의 관리자는 누구인지, 의무 담당 인력은 확보되었는지, 제세동기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며, 악천후를 비롯한 각종 재해, 재난 상황에서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디로 대피할 수 있는지 인지해야 한다.

야구 장비에 대해서도 고교야구 규칙이 공식야구규칙보다 한층 더 까다롭다. 일전에 필자가 쓴 금속 배트 글에서처럼, 미국 고교 야구 선수가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배트는 굉장히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배트이다. 모든 배트는 특정 수치 이하의 반발력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반발력을 높이기 위해 배트를 임의로 조작하는 것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 심판이 경기 전 확인해야 할 다섯 가지 사항. 모두 선수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 >

아마추어 야구에서 양귀 헬멧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고교야구 규칙에 따르면 성인이 아닌 모든 사람은 수비수를 제외하고는 경기장 내에서 양귀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만약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사람이 라이브볼 상황에서 일부러 헬멧을 벗는다면 첫 번째 위반에는 팀 경고, 두 번째 위반에는 퇴장이다. 

포수는 운동장비표준위원회(National Operating Committee on Standards for Athletic Equipment; NOCSAE)가 인증한 보호 장비만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양쪽 귀를 완전하게 가리는 헬멧과 목 보호대를 무조건 착용해야 하며, 남성 포수는 낭심보호대 착용이 의무이다. 만약 심판이 장비 미비를 지적했음에도 포수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심판은 즉각 포수를 퇴장시켜야 한다. 

2023년 규칙에서 삭제됐지만, 2022년까지 미국 고교야구 선수는 장신구를 일절 착용할 수 없었다. 불과 작년까지 NFHS는 착용자 본인과 상대하는 선수의 안전을 위해 의료진의 허가를 받은 장신구를 제외하고는 선수가 장신구를 착용할 수 없도록 지시했다. NFHS는 선수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장신구 착용을 2023년부터 허가했다. 그러나 상대방을 도발하거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장신구, 혹은 착용자 본인과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장신구는 여전히 규제 대상이다. 

NFHS 규칙에는 경기 중에도 선수의 안전을 고려하는 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만약 선수가 경기 중간에 출혈을 일으킨다면, 그 선수는 피가 멎을 때까지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간단한 처치로 출혈을 멎게 할 수 있다면 그 선수는 교체되지 않아도 되지만, 오랜 시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교체돼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약 선수가 뇌진탕 증세를 일으킨다면 그 선수는 즉시 경기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주자가 어떤 슬라이딩을 해서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공식야구규칙과 비교해서 구체적이다. 주자는 야수를 상대로 구르기나 몸이 겹치는 슬라이딩, 혹은 슬라이딩 후 튀어 오르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또한 슬라이딩하는 다리가 서 있는 야수의 무릎보다 높게 올라간다면 정당하지 않은 슬라이딩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야수의 몸으로 슬라이딩해서는 안 된다. 

한편 경기장에 최소 9명의 선수가 반드시 출장해야 하는 공식야구규칙과 달리 NFHS 규칙에서는 경기 중 부상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8명으로 경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더라도 몰수패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수가 부상을 안은 채로 무리하게 경기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 8명으로 진행하는 중에 만약 빠진 선수의 타순이 돌아온다면 자동으로 아웃으로 처리된다. 

 

고교생의 체육 활동은 특권이자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NFHS는 고교생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에 기반한 체육 활동이 다음 10가지의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다. 

 

  1. 고교 체육 활동은 특권이다.
  2. 고교 체육 활동은 교육적 경험을 풍부하게 해준다.
  3. 고교 체육 활동은 학업 성과를 발전시킨다.
  4. 고교 체육 활동은 존중, 진실성, 그리고 스포츠맨십을 장려한다.
  5. 고교 체육 활동은 글로벌 공동체라는 미래의 밑바탕이다.
  6. 고교 체육 활동은 리더십과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준다.
  7. 고교 체육 활동은 다양한 인종이 함께할 기회를 조성한다.
  8. 고교 체육 활동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 기회와 안전한 경쟁을 펼칠 기회를 제공한다.
  9. 고교 체육 활동은 밝은 학교 분위기와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킨다.
  10. 고교 체육 활동은 즐거워야 한다. 

 

NFHS가 만든 고교 야구 규칙은 위 10가지 가치관에 따라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선수가 즐겁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경기를 통해 선수가 다양한 가치관을 학습해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미국 고교야구가 도입한 지명 주자, 재출장 규칙, 지명타자 규칙은 아직 성장이 덜 된 선수가 경기 경험을 쉽게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규칙이다. 공식야구규칙에 따른 경기에서는 동시에 출장할 수 있는 선수가 최대 10명이다. 그러나 투수와 포수에게 지명 주자가 할당된다면 최대 12명의 선수가 경기에 나설 수 있다. 재출장 규칙 덕분에 선발 출장 선수가 경기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부담 없이 교체 선수가 대타, 대수비, 혹은 대주자로 나설 수 있다. 공식야구규칙에서는 오로지 투수에만 지명타자가 배정될 수 있지만, 미국 고교야구에서는 어떤 포지션에도 지명타자가 배정될 수 있기에 타격만 잘하는 선수 혹은 수비만 잘하는 선수가 출장하기 좀 더 쉬워진다. 

NFHS 규칙은 고교야구 선수들이 다양한 포지션의 글러브를 마련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글러브 부분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공식야구규칙에서는 투수의 글러브, 포수의 미트, 1루수의 미트에 대한 제한이 있지만, NFHS 규칙은 그렇지 않다. 투수는 흰색이나 회색이 아니라면 2개 배색으로 된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 등판할 수 있다. 1루수나 포수는 미트가 아니라 일반 글러브를 착용하고 해당 포지션에 나설 수 있다. 1루수 미트를 갖고 다른 포지션에서 뛰는 것도 허용된다. 

NFHS 규칙은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고교생이 스포츠맨십과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키워갈 수 있도록 공식야구규칙과 비교해 행동에 대한 제약이 많다. 경기 중 선수는 어떠한 형태로든 상대방을 도발할 수 없으며 과도한 세레머니나 욕설, 상대방에 대해 위협도 할 수 없다. 배트, 헬멧 등 어떠한 물건을 고의로 던져서도 안 된다. 이러한 행동은 선수뿐만이 아니라 코치도 경기가 진행 중일 때는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동은 강력한 처벌로 이어진다. 프로야구에서는 종종 선수들이 상대 주자를 기만하거나 혹은 장난삼아서 빈 글러브로 태그를 하지만, 미국 고교야구에서는 이는 절대 해서 안 되는 행동이다. 만약 야수가 고의로 빈 글러브를 가지고 태그한다면 퇴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상대방 투수가 보크를 저지르도록 타임을 갑자기 부르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한다면 곧바로 퇴장이다.

공식야구규칙에서는 소리에 의한 수비 방해를 규정하는 규칙은 없지만, NFHS 규칙에서는 물리적인 수비 방해와 함께 괴성이나 대화 등 소리에 의한 수비 방해가 인정된다. 예를 들어서 유격수 앞 땅볼이 나왔을 때, 2루 주자가 유격수 앞을 지나가면서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유격수가 포구하지 못한다면 수비 방해가 주어질 수 있다. 

만약 선수와 코치가 스포츠맨십을 위반하는 행동이나 부정한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행동하다가 적발되면 곧바로 징계받는다. 징계의 종류에는 구두 경고, 서면 경고, 출장 제한, 그리고 퇴장이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인 구두 경고가 선수와 코치에게 페어플레이를 환기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 서면 경고부터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만약 심판이 선수 혹은 코치에게 서면 경고를 내렸다면 경기 이후 심판이 속한 주 협회에 해당 징계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출장 제한은 선수와 코치가 경기 동안 더그아웃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하며 퇴장은 경기장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는 징계이다.  

 

아직 성장 중인 청소년을 위한 규칙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라 축구, 농구, 미식축구, 소프트볼 등 NFHS의 주관하에 치러지는 모든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선수의 안전이다. 여기서 안전이란 단순하게 물리적인 수준의 안전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포함된다.

모든 규칙서 제일 첫 번째 장에는 왜 고교 스포츠를 위한 독자적인 규칙이 필요한지에 대해 NFHS의 철학이 명시되어 있다. NFHS는 “스포츠의 건전한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스포츠맨십을 하기 위해, 그리고 잠재적인 부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고교 스포츠를 위한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앞선 글에서는 미국에서 고교야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봤다면, 이번 글에서는 미국 고교야구에서 사용하는 독자적인 규칙에 대해 알아봤다. 공식야구규칙이 공정한 경기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NFHS의 야구 규칙은 공정한 경기의 진행과 함께 선수들의 안전과 바람직한 시민 육성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야구 경기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공식야구규칙과 NFHS의 야구 규칙은 거의 똑같다. 미국 고교야구에서 정식 경기가 9이닝이 아니라 7이닝인 점, 보크가 인플레이가 아니라 자동으로 볼 데드가 된다는 점, 와인드업과 셋 포지션의 정의가 공식야구규칙과 다르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전술한 차이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사소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고교야구에서도 공식야구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약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규칙을 사용한다면, 규칙의 차이로 인해 선수, 코치, 심판, 운영위원 등이 빚을 수 있는 혼선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고교야구의 환경은 프로와 완전히 다르다고 믿는다. 따라서 고교야구에서 프로와 같은 규칙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놓칠 수밖에 없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식야구규칙에서 깊게 다루지 않는, 선수의 안전과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라는 부분은 우리나라 고교야구계 및 유관 기관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교야구 선수의 꿈은 당연히 성공한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 전에 어른들이 바람직한 인성과 시민의 자질을 갖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참고 = MSHSAA, NFH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홍기훈,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백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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