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wallpaperflare.com >
마찰력은 서로 맞닿은 물질이 미끄러져 움직이려 할 때 이를 방해하는 힘이다. 마찰력이 높으면 공에 회전을 주기 쉽고 낮으면 어렵다. 참기름을 바른 미끌미끌한 공에 회전을 준다고 상상해보자. 반대로 2018년에 트레버 바우어는 경기 중 한 이닝만 손에 파인타르를 발라서 그 이닝만 회전수가 높아진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파인타르를 비롯한 여러 물질이 구체적으로 마찰력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5일에 ‘네이처’에 소속된 재료공학 저널인 ‘communications materials’에 이를 정량적으로 실험한 논문 Effect of grip-enhancing agents on sliding friction between a fingertip and a baseball(‘그립 보조 물질이 야구공과 손가락 사이의 미끄럼마찰에 미치는 영향’)이 게재되었다. 논문에서는 MLB 공인구에 로진 및 ‘끈적거리는 물질’을 바르기 전후의 마찰력을 비교해 마찰력 증가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했다. 또한 NPB 공인구와 비교해 MLB 공인구가 얼마나 더 미끄러운지도 확인했다.
이 글에서는 논문의 실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풀어서 설명하려 한다. 논문을 풀어쓴 다른 칼럼 The Science of Spin: How Sticky Stuff Spikes RPM도 참고했다.
실험 설계
실험은 손가락과 야구공 사이의 마찰력, 정확히는 ‘미끄럼 마찰계수’를 다양한 상황에서 측정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수직으로 누르고, 그 상태로 손가락을 몸쪽으로 당겨 보자. 수직으로 누르는 힘이 강할수록 수평으로 당길 때 느껴지는 저항도 커진다. 이때 수평으로 작용하는 저항을 수직으로 누르는 힘으로 나눈 것이 손가락과 바닥 사이의 미끄럼 마찰계수다. 공과 손가락 사이의 미끄럼 마찰계수가 크다는 것은 공을 같은 힘으로 누를 때 더 큰 마찰력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미끄럼 마찰계수>
실험에서는 야구공 가죽과 손가락의 세팅을 바꿔가며 공과 손가락 사이의 마찰계수를 측정했다. 마찰계수를 측정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지 않다면 넘어가도 좋다.
- 실험자: 21~44세(평균 25세)의 남성 9명이 참여했다(모두 오른손잡이, 야구 유경험자 2명).
- 실험 방법: 야구공을 가죽만 벗겨 힘 센서(force transducer) 위에 붙인다. 그다음 검지로 가죽을 ‘눌러 당긴다’. (그림 1의 a, b).
실밥 유무, 로진 바름 여부 등 공과 손가락의 세팅 각각의 경우에 눌러 당기는 행위를 다섯 번 시행해 마찰계수를 확인한다. 이때 다섯 번 각각에서 손가락으로 누르는 세기를 서로 다르게 한다. 당기는 속도는 약 10cm/s가 되게 했다. 손가락의 습도와 실험실 온도, 습도는 일정하게 통제했다.
<그림 1>
손가락으로 공을 당길 때 힘 센서는 시간에 따라 그림 1의 a, b에 표시된 y, z축 방향으로 얼마만큼의 힘이 작용하였는지를 측정한다(그림 2의 1, 2번째 그래프). 마찰계수 μ는 y축 방향으로 작용한 힘을 z축 방향으로 작용한 힘으로 나눈 것으로 정의되며(μ = Fy/Fz), 시간에 따른 μ 값 중 시행 유형별 최댓값을 μmax로 정의한다(그림 2, 세 번째 그래프의 5개 피크 점).
<그림 2>
즉 실험자 1명에 대해 하나의 세팅 당 5개의 μmax가 있으며 실험자가 9명이므로 45개의 μmax가 있다. 이때 45개 μmax 시점에서의 (Fz, Fy)를 그래프에 점으로 찍을 수 있다(그림 3에서 실험자 3명만 골라 표현해 놓았다). 그러고 나서 45개 점을 지나는 최소제곱 회귀선을 그어 그 기울기를 해당 세팅에서의 최종 마찰계수로 정의했다(그림 3의 경우 0.778).
<그림 3>
추가 정보
- 로진: 2ZA-416; MIZUNO Corporation, Tokyo, Japan 제품을 다섯 번 만져서 검지에 완전히 묻도록 함.
- 끈적거리는 물질: iTac2 Pole Fitness Grip-Extra Strength, iTac2 Pty Ltd., Australia 제품을 검지에 묻히고 2분 말린 뒤 실험.
- 진흙: Baseball Rubbing Mud: Personal size, Lena Blackburne Baseball Rubbing Mud, New Jersey, USA에 물을 섞어 실험 2시간 전에 공을 문지름.
- 모래: 2ZA450; MIZUNO Corporation, Tokyo, Japan 사용.
- 모든 유의 수준은 0.05.
결과
먼저 MLB 공인구에 실밥 유무(2가지)와 손가락에 무엇을 발랐느냐(3가지, 안 바름/로진/끈적거리는 물질)에 따라 총 6가지 상황에서의 마찰계수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는 아래와 같다.
<그림 4>
그림 4의 a 그래프는 6가지 경우의 마찰계수를 나타낸 것으로, 이 연구의 핵심이다. 왼쪽은 셋은 실밥이 있는 경우, 오른쪽 셋은 실밥이 없는 경우이며 흰색은 손가락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경우(맨손), 파란색은 로진, 빨간색은 끈적거리는 물질을 바른 경우다. 이 그래프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실밥 유무와 관계 없이
맨손 < 로진(+25%) < 끈적거리는 물질(+55%)
순으로 마찰계수가 높아졌다.
2). 맨손인 경우와 로진을 바른 경우는 실밥이 있을 때 더 마찰계수가 높았다(+10%).
그림 4의 b, c 그래프는 6가지 경우에 마찰계수의 변동성(변동계수)을 측정한 것이다. b는 9명 실험자 개개인(within-participant)이 5번씩 측정한 것의 변동성을, c는 참가자 간(between-participant)의 변동성을 확인한 것이다. 로진은 개인의 변동성과 개인 간 변동성을 모두 낮췄으며 끈적거리는 물질은 개인의 변동성은 높이고 개인 간 변동성은 낮췄다. 즉 마찰계수를 한 명에게서 여러 번 측정하는 경우에 로진은 변동성을 낮췄으나 끈적거리는 물질은 높였고, 여러 명에게서 측정하는 경우에는 로진과 끈적거리는 물질 모두 변동성을 낮췄다.
다음으로는 맨손일 때 NPB 공인구의 마찰계수를 측정해 MLB 공인구와 비교했다.
<그림 5>
그림 5도 그림 4와 같은 구성이다.
그림 5의 a는 맨손일 때 MLB 공인구의 마찰계수(남색)와 NPB 공인구의 마찰계수(빨간색)를 실밥 유무에 따라 비교한 것이다(남색 막대는 그림 4에서 흰색 막대와 같다). 실밥 유무와 무관하게 NPB 공인구의 마찰계수가 15~25% 정도 높았다.
그림 5의 b, c를 통해서는 실험자 개인의 변동성과 개인 간 변동성이 MLB 공인구와 NPB 공인구에서 실밥 유무와 무관하게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MLB 공인구와 NPB 공인구를 각각 진흙과 모래로 문지르고 마찰계수를 측정했다.
<그림 6>
그림 6의 a, b는 각각 실밥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에 진흙/모래로 MLB/NPB 공인구를 문지른 결과다. 어느 경우에도 진흙, 모래가 마찰계수에 유의미한 변화를 주진 못했다.
결과 요약
- MLB 공인구는 손에 로진을 바르는 것만으로 25% 정도의 마찰력 증가가 있었다.
- MLB 공인구에 더 끈적거리는 물질을 바르면 55~60%까지 증가했다.
- MLB 공인구로 실험했을 때 로진은 개인 및 개인 간의 마찰력 변동성을 낮췄다. 반면 끈적거리는 물질은 개인의 마찰력 변동성은 높이고 개인 간 변동성은 낮췄다.
-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을 때 NPB 공인구의 마찰력이 MLB 공인구보다 15~25% 정도 높았다.
- MLB 공인구는 실밥이 있는 부분의 마찰력이 10%가량 높았다. NPB 공인구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 MLB 공인구에 진흙을 바르는 것과 NPB 공인구에 모래를 바르는 것은 모두 마찰력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물론 실험 환경과 실제 투구 환경 간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도 있다. 둥근 공에 실험한 것이 아니라 가죽만 떼 평평한 바닥에서 실험했고, 실제 투구 시에는 공에 검지 하나로 회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의 손가락으로 회전을 준다. 또 실험에서 가죽을 눌렀던 힘보다 투구 시 공을 누르는 힘이 조금 더 큰 편이다. 마찰계수의 증가가 실제로 회전수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로진이 마찰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MLB 공인구가 NPB 공인구보다 더 미끄럽다’는 여러 투수들의 증언을 수치로 확인하는 등 이전까지 다소 막연하게 알려졌던 것들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연구라고 하겠다.
참고 = 논문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3246-022-00317-4#Sec8
Baseball Prospectus의 해설 칼럼 링크 : https://www.baseballprospectus.com/news/article/79838/moonshot-the-science-of-spin-how-sticky-stuff-spikes-rpm/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홍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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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