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KBO 드래프트는 수많은 야구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유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비선수 출신’ 한선태가 드래프트에서 지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2022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에서 방출되기는 했으나 수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前 LG 트윈스 투수 한선태 / 사진 = LG 트윈스)
한선태와 같은 ‘비선수 출신’과 일반적인 드래프트 지명자들인 ‘선수 출신’을 나누는 정확한 기준은 무엇일까?
보통 야구계에서 선출이란 고교야구에서 선수 생활을 해본 이들을 말한다. 선출들은 사회인야구 경기에서 나무 배트만을 사용해야 하거나 투, 포수를 맡을 수 없다는 등 플레이에 제한을 받게 된다. 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이들의 경우 선출로 부르지 않고 중출(중학교 선수출신)로 분류된다.
여기에 더해 초등학교에서조차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없는 이의 경우 순수 비선출로 불린다. 한선태의 경우 순수 비선출이며 가장 보편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비선출로 생각하면 된다. 한선태에 이어 2022년 드래프트에서는 롯데 자이언츠가 리틀야구에서만 잠시 선수 생활을 했던 비선출 김서진을 지명했다. 30년 넘게 깨지지 않던 비선출의 벽이 점차 깨지기 시작한 거다.
*선수 출신 규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점점 프로야구에 비선출들이 등장한 데는 이전에 비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졌다는 게 주효했다. 과거 학교에서 코치에 의해 지도받아야만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시대와는 달라진 것이다. 롯데에 지명된 비선출 김서진 역시 유튜브, 책, 그리고 사설 아카데미 등의 도움을 받았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헌데 최근 야구계에는 이처럼 비선출 ‘선수’만 나타난 게 아니다. 비선출 ‘코칭스태프’ 역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주류 야구계 편입 이후 야구단 프런트에는 수많은 비선출들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몫은 언제나 선출들에게 있었다.
야구팬이라면 QC 코치, QA 코치, 런 프로덕션 코치 등등 지난 몇 년 사이 다소 독특한 명칭의 코칭스태프들을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꼭 그런 건 아니나 이같은 생소한 이름의 코치들은 보통 비선출, 혹은 선수 경험이 일천한 이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팀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로 숫자를 만지는 일을 맡는다. 키움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QC 코치를 맡았던 윤윤덕 코치가 대표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국에서는 여성을 코치로 채용하여 금녀의 벽을 깨는 팀 역시 나타났다. 탬파 타폰스(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A)의 레이철 볼코벡은 2022년 1월 10일 미국 프로야구 역사의 첫 여성 감독으로 임명됐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보조 코치인 앨리사 내킨은 2022년 4월 13일 메이저리그 경기 필드에 선 최초의 여성 지도자가 되었다.
(탬파 타폰스의 레이첼 벨코벡 감독 / 사진 = 뉴욕 양키스)
물론 이들은 주로 야구와 매우 비슷한 스포츠인 소프트볼 선출들이다. 다만 그들이 구단에 채용되는 건 일반적인 비선출 남성들이 편견을 깨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음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MLB에서 비선출이 감독을 맡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현대 야구에서 구단은 감독에게 어떤 능력을 원할까?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비선출이 감독직을 맡는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게 된다. 쉽지 않겠지만 이전보다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야구 업계를 선도하는 메이저리그의 감독들은 현재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비교적 젊고 데이터에 친숙한 신세대 감독이다. 두 번째는 과거부터 오랜 시간 코칭 경험을 해온 올드스쿨 감독이다.
세이버메트릭스가 야구계를 주도한 이후 프런트는 주로 전자의 신세대형 감독들을 선호했다. 이들은 뛰어난 전략가인 동시에 프런트에도 친화적이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지 메이저리그에는 다시 올드스쿨 감독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전자의 신세대 감독들처럼 숫자에 밝지는 못하지만, 더그아웃에서 뛰어난 리더쉽으로 선수단을 이끄는 강점을 보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더스티 베이커, 뉴욕 메츠의 벅 쇼월터,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브루스 보치 등은 대표적인 올드스쿨 감독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탬파베이 레이스의 케빈 캐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AJ 힌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게이브 캐플러 등은 신세대형 감독에 가깝다.
베이커 감독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가다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현대 야구와 예전 야구가 어우러질 필요가 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며 올드스쿨 감독들의 귀환을 설명했다.
두 유형의 감독을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겠으나 차이는 존재한다. 신세대 감독들은 보통 경기장 내에서의 전략 및 게임 플랜을 짜는데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로 영미권 국가에서 야구 이외에 다른 감독을 부를 때 쓰는 Head Coach에 가깝다. 반면 올드스쿨 감독들의 경우 그보다는 선수단을 관리하는 역할을 더 중심적으로 맡는다. 야구 감독에게 주로 사용되는 Manager에 어울린다.
만약 구단이 Manager를 원하다면 비선출에게는 기회가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현장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풍부한 선수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을 굳이 맡길 이유가 없을 터이다. 반면 전술적 역량이 강조되는 Head coach를 원한다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Head coach에 해당하는 감독직인 축구, 농구 쪽에서는 이미 비선수 출신 감독들이 등장했다.
물론 야구 감독이라는 위치가 꼭 기술적 능력만을 따져서 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어쩌면 훌륭한 코치는 얼마나 잘 ‘가르치는’ 사람인지 보다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가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한 좋은 사람은 꼭 인품이 바르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상호존중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존재하는 이를 말한다.
결국 야구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일반적인 기업들, 그리고 야구단 역시 직원을 채용할 때 자격요건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항목을 괜히 넣어두는 게 아니다. 비선출이 바로 감독이 되긴 쉽지 않다. 따라서 밑에서부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여전히 스포츠계에서는 비선수 출신에 대한 꼬리표가 남아있다.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대행을 맡았던 김창현 코치에게 쏟아졌던 전문가, 팬들의 의구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비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비(非)프로’ 출신이었다.
비선수출신이 반드시 감독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팬으로서 또 하나의 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조만간 그 주인공이 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야구공작소 정세윤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박기태,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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