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SSG와 두산의 경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조금 과장하면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11회 말 두산의 공격. 2-2 동점인 1사 만루에서 두산 조수행이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를 날렸다. 좌익수가 슬라이딩 캐치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고 3루 주자 김재호는 홈에 들어왔다. 평범한 끝내기였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끝내기의 기쁨에 들뜬 1루 주자 안재석과 2루 주자 정수빈이 각각 2루와 3루를 밟지 않은 것이다. 이를 놓치지 않은 SSG 야수진은 침착하게 내야로 공을 송구해 우선 정수빈을 태그했고(2아웃), 2루를 밟아 안재석을 포스아웃시켰다(3아웃). 당연히 안타였어야 할 타구가 졸지에 병살타로 둔갑한 것이다. 3루 주자 김재호의 득점이 취소된 것도 물론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생각해도 좋다. 1사 만루에서 3루 땅볼이 나왔다고 하자. 이때 3루수가 3루를 밟아 2루 주자를 아웃시키고 2루로 던져 1루 주자도 아웃시켰다면 이것은 당연히 병살타다. 그 사이에 3루 주자가 홈을 밟아도 득점이 인정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서 ‘3루수’만 ‘좌익수’로 바꾸면 5월 18일의 상황이 된다.
프레드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
이처럼 끝내기 상황에서는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이따금씩 평소에 볼 수 없는 본헤드 플레이가 발생한다. 야구 역사상 끝내기 상황에서 발생한 본헤드 플레이로 가장 유명한 것은 1908년 뉴욕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프레드 머클(Fred Merkle)이 저지른 본헤드 플레이일 것이다. 워낙 유명해서 ‘Merkle’s Boner’라는 고유명칭으로도 불린다.
1908년 9월 23일, 시카고 컵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뉴욕 자이언츠의 홈인 폴로 그라운드에서 만났다. 경기는 1-1인 채로 9회 말에 접어들었고 2사 1루에서 프레드 머클이 우익수 앞 안타를 치며 2사 1, 3루를 만든다. 이어 알 브리드웰(Al Bridwell)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를 날려 3루 주자는 홈을 밟았다.
이 순간 경기장 안으로 관중이 쏟아져 들어왔다. 1루 주자였던 머클은 3루 주자의 홈인을 보고는 관중을 피하기 위해 당시 클럽하우스가 있던 방향인 중앙 외야 쪽으로 달려나갔다. 2루를 밟지 않은 채.
훗날 수비 하나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컵스 2루수 조니 에버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자이언츠 선수가 끝내기(가 되었어야 할) 공을 관중에게 던진 것을 컵스 선수들이 반강제로 탈취했다든가, 혹은 아예 다른 공을 들고왔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아무튼 에버스는 공을 들고 2루를 밟았다.(이 공은 이후 에버스가 보관하다 4대가 지나 우연히 서랍에서 발견돼 27500달러에 팔린다.)
규칙은 규칙이니 아웃은 인정되었고 경기 속개가 불가능했기에 1-1 무승부가 선언되었다. 이날 이후 프레드 머클은 죽을 때까지 “bonehead”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 이후
물론 머클의 본헤드 플레이는 그 자체로도 무척 재밌는 사건이지만 ‘이렇게까지’ 유명한 이유는 더 있다. 당시 뉴욕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리그 우승을 다투는 관계였다. 그런데 시즌을 마치고 보니 공교롭게도 양 팀 모두 98승 55패로 공동 1위에 오른다. 그에 따라 내셔널리그 우승자 결정전으로서 무승부로 끝났던 9월 23일 경기의 재경기를 10월 8일에 치렀다.
이 경기에서 컵스가 4-2로 승리해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1908년에서 짐작했겠지만 컵스는 이어진 월드시리즈에서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4승 1패로 누르며 (향후 108년간 다시 없을)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된다.
자이언츠가 이겼어야 할 경기가 재경기에서 컵스의 승리로 바뀌었듯 5월 18일 경기도 두산이 이길 경기를 SSG가 12회에 3득점 하며 5-2로 잡았다. 5월 19일 현재는 아직 두 팀 사이에 5.5경기 차이가 있지만 남은 시즌은 길다. 정말 만약에, 시즌이 끝났을 때 SSG가 두산을 앞섰는데 차이가 1경기 이하라면, 두산은 두고두고 이날의 경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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