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일을 하게 된 지도 올해로 벌써 8번째 시즌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또렷이 기억나지도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야구팬이었으니, 덕업일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 구단에 적을 두고 소속 구단의 승리를 위해 직접 세이버메트릭스를 다루지는 않지만, 그 재료가 되는 트래킹 데이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취미가 일이 되면 마주하게 되는 여러 어려움은 물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큼 즐겁게 일하고 있다. 정말 복 받은 일이다. 재작년부터는 덴마크에 소재한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야구를 진짜 좋아하는데, 야구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참 많이 들었다. 사실 뾰족한 답은 없다. 무슨 자격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야구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나도 많아서 아무리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지원자라도 어느 정도는 운이 필요하다. 야구 일이라는 것도 천차만별이라, 내가 알고 있는 분야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도 하다. 그나마 수학 쪽 일을 하고 있다 보니 통계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로부터의 문의를 많이 받게 되는데, 데이터 분석의 쓰임새가 늘어가면서 이런 연락도 부쩍 늘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게 체감이 된다. 야구공작소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KBO 구단에 데이터 분석 쪽으로 취직을 많이 했다. 실제 선수 생활을 해보지 않고도 야구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한국에서도 많이 늘었다.
야구 쪽으로 취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대단한 조언을 해주기는 쉽지 않다. 감히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야구 일을 해오면서, 주위의 야구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 회사에 지원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든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려고 한다.
왜 야구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자기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를 피력하기 위해 애를 쓴다. 반은 오답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마음만으로 덤볐다가 곧 그만두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다. 내가 처음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아침에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야구 영상만 보고 각종 상황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종일 야구를 보면서 돈도 받는다니! 처음엔 마냥 즐거웠는데, 며칠이 지나면 이도 시들해지기 쉽다.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왜’라고 생각한다. 야구의 어떤 부분이 내게 매력적인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다면, 그에 맞춰서 준비하는 일도 한결 수월할 수 있다. 많은 야구 관련 직업 중에 프런트 오피스나 애널리스트 일을 꿈꾸는 사람으로 범위를 좁혀 보더라도, 선수들의 투구/타격 자세나 생체 역학에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물리나 수학적 모델링이 재밌을 수도 있고, 혹은 데이터베이스를 다루거나 프로그래밍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야구 일도 결국 회사 일이고, 하기 싫은 부분이 없을 순 없다. 특히 데이터 분석 일이 미국처럼 정립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그것이 팀에 어떻게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어필하는 일이 한결 중요하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숫자를 보는 게 좋았다. 타율을 계산하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숫자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야구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스포츠 신문을 가득 메운 숫자를 보는 것이 마냥 좋았고, 그 수치들이 선수 평가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점차 다루는 데이터의 양이 많아졌고, 복잡한 계산식이 등장했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공부하는 일 또한 즐거웠다. 데이터 안의 패턴을 찾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특히 데이터 분석의 중요도가 인정을 받으면서, 감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확률과 기댓값을 계산하고, 거기서 도출된 결과들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에 쓰인다는 점도 좋다. 요즘 회전수가 높은 선수들이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는 것처럼 실제 야구에도 내 연구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도 큰 보람이다.
어떤 직업을 꿈꾸게 되는 동기는 아주 사소할 수 있다. 이 글, 혹은 지난 몇 편의 내 글을 읽고 야구 일을 꿈꾸게 되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야구공작소 홍기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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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